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0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05화(205/241)
* * *
“아르펜!”
“아.”
명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뜩 들뜬 얼굴을 한 엘리가 데미안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연기를 내뿜던 아르펜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왔네.”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진짜 왔냐고 물으면 어떡해.”
엘리가 장난스럽게 핀잔하자 아르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완성했어?”
“어느 정도는.”
엘리가 보여달라는 듯 눈을 빛내자 아르펜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을 가져왔다.
일반적인 영상구보다 몇 배는 큰, 거대한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의 영상구 제작서와 아르펜의 명석한 두뇌로 만들어낸, 새로운 합작품이었다.
“아주 먼 거리에서도 마나에 영향을 받지 않았어. 끊기지도 않고, 화면도 선명해.”
“우와…….”
“그런데 이걸 어디에 쓰려고?”
아르펜의 물음에 엘리가 말했다.
“아르펜, 혹시 전광판이라고 들어봤어?”
“전광판?”
“응. 누군가의 비리를 밝히는 데에 아주 적합한 물건인데…….”
엘리가 잔뜩 신난 얼굴로 아르펜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얼굴이 오랜만에 활짝 피어났다.
못 박힌 듯 서 있던 데미안이 그런 엘리의 웃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얼굴 뚫리겠구나.
그때, 신수가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신수가 데미안의 어깨 위에 빨래처럼 양 앞발을 걸쳐 올리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과 웃는 것도 용납 못 하면서, 황제가 되는 걸 돕겠다니. 우습구나.
“…….”
-너는 그 집착을 좀 억누를 필요가 있단다. 남들보다 몇 배는 과한 거 알고 있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마물이 웃겠구나. 그럼 우리 아가가 왜 저렇게 빨간 건지 설명을…….
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미안이 곧장 시선을 들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엘리의 목덜미였다.
다행히 그녀의 목덜미는 잘 가려져 있었다.
데미안이 안도하자 신수가 입을 떡 벌렸다.
-바, 방금 그건 무엇이냐! 나는 그 잠깐 사이 우리 아가 얼굴이 왜 저렇게 빨개졌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정말 그새를 못 참고 일을 저지른 게냐?
“…….”
-어찌 대답이 없어! 이놈아!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어날 뻔하긴 했지만.
데미안은 떠오르는 뒷말을 조용히 삼켰다.
키스가 끝났을 때, 마주한 시선에 정염이 가득했다. 저를 원한다고 소리치는 엘리의 눈빛을 본 순간, 그는 이성을 잃을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래가 뻐근해지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인내까지 짜내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이런 곳에서 그녀를 안을 수는 없었으니까.
엘리가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저를 쳐다봐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맛만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경한 감각에 파르르 떠는 그녀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팔로 옭아맸다. 제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했다.
데미안이 엘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신수가 낑낑거렸다.
-그, 그만! 그만하거라! 순수함이 몸은 버티기 힘들구나!
“힘드시면 제 생각을 읽지 마십시오.”
-읽은 적 없다! 그냥 숨 막히는 기운이 느껴지는 걸 어떡하니!
데미안의 기운을 느낄 때마다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어둡고 깊은 늪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신수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시도 때도 없구나. 슈에츠가 작작 좀 하라고 안 가르치던?
“…….”
-……가르친 게로구나. 그런데 통하지 않은 거고.
충격받은 얼굴을 하던 신수가 문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마음, 우리 아가는 알고 있니?
“……!”
데미안의 눈빛이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신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건방진 내 아들의 입을 다물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게 무어냐? 어서 알려주거라!
“글쎄.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일 거야.”
에르하르트가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신수의 두 꼬리가 붕붕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가 이걸 알면 얼마나 무서워할까. 그래, 뭐 부부 사이의 그런 일이야 서로 좋으니 그렇다 쳐도 이건 좀 이야기가 다르지 않니?
“…….”
-에구, 하나뿐인 남편이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온통 그렇고 그런……. 으으, 상상했더니 등골이 서늘하구나. 이 몸은 못 견딘단다.
이어지는 장난에도 데미안은 대답이 없었다. 잔뜩 신난 신수가 킹킹거리며 웃을 때였다.
“그럼 나 이거 한번 봐도 돼?”
“그래.”
때마침 이야기가 끝났는지, 엘리가 개발한 영상구로 다가갔다.
그러자 데미안이 어깨에 신수를 얹은 채, 한쪽에서 담배를 꺼내던 아르펜에게 다가갔다.
“전에 짐승을 연구한 적이 있다고 했지.”
“아아, 그런데 왜?”
“신기한 게 있어서.”
“어깨의 그 여우를 말하는 건가? ……잠깐. 두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는 처음인데.”
아르펜의 눈이 번뜩이자 신수가 끼양! 하고 소리를 지르며 털을 바짝 세웠다.
겉모습만 봐도 아르펜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신수로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잘못 걸리면 죽는다!
-컁컁! 컁컁컁!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신수가 연신 울며 잘못을 빌듯 앞발을 비볐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안 되겠군. 내 부인께서 아끼는 거라.”
데미안이 그리 말하며 몸을 돌렸다.
신수가 진이 빠진 듯 끼휴, 하는 소리를 내며 어깨 위에 축 늘어졌다.
아르펜이 뭐 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엘리가 말했다.
“아르펜! 진짜 대박이다! 상상 이상으로 잘 만들었는데?”
엘리가 잔뜩 들뜬 눈으로 아르펜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몇 개 더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음, 동시에 여러 화면으로 송출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가능은 하겠지만, 그럼 신성석이 많이 필요할 텐데.”
아르펜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너, 오라버니랑 연락 안 되지 않아?”
“…….”
“사람들이 다들 그러던데. 슈에츠의 가신이자 황녀의 양 오라버니가 네게 등을 돌렸다고.”
꽤 난처한 질문일 텐데 엘리는 미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른 건 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던 아르펜이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만들어서 뭐 하려고?”
“한꺼번에 잡아들여야 사람들에게도 볼거리가 생기지 않겠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엘리가 실로 슈에츠다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3 황녀가 황태자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떻게든 황후 쪽에 줄을 대려던 자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토록 고고한 귀족의 피를 고집하던 그들의 눈에도, 2 황자 마테오가 위태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슈에츠 공작은 다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를 찾지 않았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 황녀 자리에 오른 엘리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 선언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양 오라버니인 제리트 아만타마저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양 오라버니어도 슈에츠의 가신이니, 주군을 따라 3 황녀와 연을 끊는 것이로군.’
거기까지 생각하던 귀족들은 곧 멈칫했다.
3 황녀가 사교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시발점은 새로운 신성석 발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성석의 발견지는 슈에츠 공작성인 데다가 유통자는 그의 양 오라버니인 제리트 아만타다.
아무리 그녀가 발견자라고 해도, 두 가문과 연을 끊은 이상 새로운 신성석은 더 이상 3 황녀의 자금을 책임져 줄 수 없었다.
더불어 기차 개발에 함께 힘썼다고 해도, 실질적인 설계는 리번스 자작과 륀켈트 후작이었다.
두 가문 모두 황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 아무런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해도, 침묵이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귀족사회였다.
쉽게 말해, 3 황녀가 실질적으로 손에 쥔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3 황녀가 가진 것은 결국…… 남편과 황족의 힘인 치유력뿐인가.’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지며 3 황녀의 행보에 집중했다.
하지만…….
3 황녀는 웬 신분 없는 평민 계집과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집중할 뿐,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듣기로 새로운 마도구라던데.”
“하지만 이름 없는 평민과 마도구를 만드는 것이 황태자 경합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쯧쯧 혀를 차던 귀족들은 3 황녀에게 주었던 관심을 다른 데로 옮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나쁘지 않게 흘러가는구나.”
그 흐름을 모두 지켜보던 카르티아 황후가 입매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래, 이제 그들도 알았겠지. 그 아이가 빌어먹을 힘만 아니었다면 절대 황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가진 것 하나 없는 아이가 감히 황태자 자리를 넘보다니.
제 어미를 닮아 욕심은 많은 듯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욕심을 내다가 슈에츠를 잃었구나.”
피식 웃으며 조소를 흘리던 그녀가 눈앞의 서류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그중 하나는 그들이 만들었던 학술원에 대한 보고서였다.
알 수 없는 검은 얼룩이 황후를 덮쳤을 때, 학술원의 학생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엘리가 황태자 자리를 언급한 기점으로 다시 학생 수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 명단에 적힌 귀족들은 제게 뜻을 보탠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서류를 검토하던 카르티아는 그 옆의 서류를 바라보았다.
뱀들을 이용해 구해온, 스나우트 령의 학술원 보고서였다.
그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녀의 입가가 점점 큰 호선을 그었다.
‘하나같이 평민들 이름뿐이군.’
새로 짓고 있는 스나우트령의 학술원에 귀족이 아닌, 평민들과 고아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연줄로 쓸 만한 귀족들은 모두 황후 쪽에 쏠렸다.
그들도 체면이란 게 있을 테니 힘없는 평민 고아들을 학생들로 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신문 한쪽에 ‘약자들을 위해 힘썼다’는 말 한마디는 적힐 테니까.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다.
‘그 계집의 말에 홀랑 넘어가, 많은 돈을 투자했을 텐데…… 결국 받아들이는 건 평민 고아들뿐이라니.’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슈에츠의 가신인 제리트 아만타와 클라이더의 가신인 헤론 후퍼가 더 이상 3 황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
3 황녀를 지지했다면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학술원에 귀족들을 불러 모았을 테니까.
아무리 데미안이 제 아내에게 미쳐 버렸다고 해도 이제 막 공작위를 계승한 주군보다 오랫동안 빈자리를 메운 가신에게 신뢰가 쏠리는 법이었다.
‘잘하면 손대지 않고 이길 수 있겠군.’
똑똑.
‘……저것들만 해결한다면.’
여유롭게 웃으며 귀족 명부를 확인하던 카르티아가 들리는 노크 소리에 입매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