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1화(21/241)
“눈 뜨고 못 봐줄 발악이군.”
그때, 공작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제야 이성을 찾은 자작이 몸을 흠칫 떨며 공작을 바라보았다.
“꼴값을 떠는 자작의 모습이 꼭 더러운 수를 쓴 사람처럼 보이는데.”
“…….”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내가 지금 착각을 하는 건가?”
고요했던 짙은 적안이 순식간에 살기로 뒤덮였다.
“아닙니다, 공작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코르비노 자작이 절박한 얼굴로 소리쳤다.
“저는 그저 공작가가 걱정되었을 뿐입니다! 의심할 정황이 너무 명확하지 않습니까!”
“의심할 정황.”
공작이 따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군. 그럼 나도 그 정황에 따라서 자작을 의심해야겠어.”
그러자 그림자처럼 뒤편에 서있던 안테가 자작의 곁으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자작님.”
안테가 탐색하듯 자작의 몸을 수색했다.
잠시 후, 잠잠했던 안테의 눈빛이 경멸의 빛을 띠었다.
안테의 손에 들린 것은 블루 호프였다. 가신들이 놀란 숨을 삼켰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이걸 어쩐다…….”
공작이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댄 채 중얼거렸다.
열심히 쥐새끼를 찾아내 주었으니, 그에 따른 보답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처리해.”
“예.”
“공작님, 공작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공작님……!”
코르비노 자작의 애원이 울려 퍼졌으나, 공작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쿵.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울음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회의장에 남은 것은 깊은 침묵뿐이었다.
가신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공작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가신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엘리.”
공작이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그가 제 이름을 불렀다.
그 사실에 조금 멍해진 엘리가 입을 벙긋거리다 겨우 대답했다.
“네, 공작님.”
“방금 전, 네가 이들에게 걸었던 조건이 무엇이었지.”
“조건…… 어, 제게 사과해 달라고 말했어요.”
“들었지. 다들 귀가 있을 테니.”
공작이 검지로 자신의 귀를 톡톡 두드렸다.
뜻을 이해한 가신들 몇몇이 침음을 삼키며 결국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순식간에 뒤바뀐 태도에 공작이 쯧쯧, 혀를 찼다.
“갑자기 엎드리면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나. 그만 일어나도록.”
“공, 공작님…….”
용서를 받았다는 생각에 가신들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그런데 내가 최근 들어 이명이 심해져서 말이야.”
편안해진 얼굴과는 달리 그의 적안은 칼날처럼 선명했다.
“방금 전에 떠들던 개소리가 잊히지 않는군. 역시 함께 처리하는 게 좋겠어.”
가신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공작의 이명이 사라진 것은 회의실의 자리가 절반이나 비워진 후였다.
* * *
한바탕 피바람이 일었던 소동이 끝났다.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시종이나 코르비노 자작의 옷이 좀 더 가볍거나 얇았다면 실패했을 터였다.
‘공작성이 북부에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추운 날씨에 감사를 표하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동조하지 않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신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명도 사라졌으니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
공작이 느릿한 말투로 운을 떼었다.
“전에 말했듯이, 난 이 아이를 후계자로 양성할 계획이다.”
“저…… 하지만 공작님, 평민과 귀족의 결혼은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가신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고 있지. 그대들을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이네.”
공작이 시선을 내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양녀로 들일 가문을 찾기 위해서지.”
“예?!”
가신들이 입을 떡 벌렸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방금 전, 코르비노 자작이 밝히지 않았는가.
내가 도둑의 딸이라고.
그것도 그냥 도둑이 아니라 황가의 보물을 훔친 도둑이다.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귀족이 나를 양녀로 삼는단 말인가.
난감한 기색이 한가득 어린 우리와는 달리, 슈에츠 공작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그럼 누가 할 것이지?”
모두가 하나같이 침묵을 지켰다. 공작은 나른한 숨을 뱉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하는 수 없지.”
공작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엘리. 네가 고르거라.”
“제, 제가요?”
“그래. 네 이름이 될 가문이니, 네가 고르는 것이 낫겠지.”
공작의 말투는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잡화점의 물건을 고르라는 말도 이보단 다정할 터였다.
나는 당황을 멈출 수 없었다.
양녀로 삼아 주시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판에, 내가 직접 가문을 고르라니.
“어, 저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가족. 입양. 그 단어를 떠올리자 목이 꾹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애를 우리 딸의 놀이 하녀로 붙인다고요? 저희 가문의 수치예요!”
“아버지, 아무리 제 말 상대를 붙여주고 싶으셔도 이런 출신은 좀…… 거북하네요.”
“수준이 맞지 않은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보물을 훔친 게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저지른 일처럼 말했다.
처음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왜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서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걸까.
하지만 세 번째로 파양 되던 날, 나는 깨달았다.
“엘리. 넌 어딜 가서든 사랑받을 거야.”
“엄마가 알려줄게. 네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태어났는지를.”
날 사랑해 준 사람은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은 엄마뿐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도둑년의 딸이라는 말에 부정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억을 더듬던 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야. 좋게 생각하자.’
자작을 한 방 먹일 땐 일부러 약한 척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움받는 건 익숙했다.
‘어차피 진짜 양녀로 받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니 잠깐만 신세를 진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현재 회의장에 남은 가신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클라이더의 가신들에게 나를 맡길 리 없으니, 슈에츠가의 사람들일 것이다.
‘파양 당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골라야 해.’
고민하던 그때였다.
똑똑.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공작님.”
들어온 사람은 시종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만타 남작님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그게…… 마님께서 갑자기…….”
시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풍채를 가진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상태는.”
“전처럼 나쁘지는 않으십니다. 그, 저희가 옆에 붙어 있었는데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로 가버리셔…….”
아만타 남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공작님. 죄송합니다만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남작의 말에 공작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은 공작에게 인사를 올리며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스치듯 봤던 남작의 얼굴은 반쯤 홀린 사람 같았다.
“또 남작부인의 병세가 도지신 모양이야.”
“남작님 마음도 불편하시겠지. 눈만 뗐다 하면 어딘가로 가버리시니까.”
가신들 몇몇이 작게 수군거렸다.
“광산을 새로 발견하면 뭐 해. 남작부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실걸.”
‘……!’
가신들의 말에 희미한 기억이 또렷해졌다.
‘드디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