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1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15화(215/241)
벤터스는 굳은 얼굴로 서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에르하르트를 바라볼 뿐.
“확인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벤터스의 시선이 서류가 아닌, 제게 닿아 있자,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하면 직접 읽어드리겠습니다.”
에르하르트가 또렷한 목소리로 서류를 읽었다.
황후 카르티아가 마탑에 명령을 내려 흑마법의 흐름을 지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흑마법의 발생지는.”
서류에 꽂혀있던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벤터스에게 닿았다.
“제국 북부.”
“…….”
“제 친우의 마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던, 바로 그곳이군요.”
벤터스가 주먹을 꽉 쥐다,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흑마법에 대한 기록은 황실에서도 철저히 조사했네. 그때 찾지 못한 흑마법의 기록이 지금에서야 다시 나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않나.”
“흑마법의 기운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황실에서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누군가 그 기록을 지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
벤터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흑마법으로 사고를 일으킨 후, 마탑에 명해 흑마법의 기록을 지운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다.
그리고 황후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자신이 그 기록을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그건 그녀에게 일종의 보험이었다.
두 사람은 공범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그 기록을 황후에게 넘긴 것인데.
벤터스의 시선이 실성한 듯 히죽대는 마테오에게로 향했다.
‘마테오, 네가 이 아비를 배신할 줄이야.’
그는 내뱉을 수 없는 욕설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 아들은 이미 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제 어미로도 모자라, 묻혀있던 사실까지 파헤친 것이다.
에르하르트는 황제의 분노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리고 얌전히 참고 싶어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귀찮은 입씨름은 그의 성정과 맞지 않은 데다가,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은 곧장 마탑으로 쳐들어가 마법사들을 족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엘리가 싫어하겠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황실이 선대 클라이더 공작 부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엘리의 생각이었다.
‘누구 명령인데.’
기꺼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을 마친 에르하르트가 다시 벤터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정당한 판결을 내릴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집요하고도 끈질긴 시선이었다.
벤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에 자리한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즉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황후는 2 황자인 마테오를 공격했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니, 황실의 명예가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으려면.
‘황후를 마녀로 만들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방법밖에 없다.’
벤터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여태껏 침묵을 지킨 교황을 바라보았다.
교황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삿된 기운을 이용해 성녀를 공격하고, 3 황녀는 물론, 2 황자까지 시해한 카르티아 라티오넬을 황후 자리에서 폐한다.”
벤터스의 말과 함께 멍청히 서있던 법관이 황급히 법봉을 두드렸다.
“……하.”
고개를 숙인 카르티아가 희미한 비소를 흘렸다. 웃음이 점점 커진다 싶더니, 이내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마테오가 질겁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녀 곁으로 다가오던 기사들마저 머뭇거릴 정도였다.
그때, 연신 끅끅거리던 그녀의 웃음이 우뚝 멈췄다.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놓거라.”
“…….”
“내 몸에서 손 떼.”
그녀의 시선이 아직도 제 손목을 붙잡고 있는 데미안에게로 향했다.
데미안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카르티아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며 몸을 돌렸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가 뒤편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뭐 하고 있지?”
“……예?”
“어서 날 감옥에 데려가지 않고 뭘 하고 있냔 말이다.”
그녀의 말에 기사들이 뒤늦게 허둥거리며 다가왔다.
팔을 붙잡으려 하자 카르티아가 가볍게 뿌리쳤다.
“내 두 발로 직접 가마.”
“하, 하지만…….”
“도망쳐봤자 소용없지 않니.”
“…….”
“난 너무 지쳤단다. 헛된 짓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녀의 목소리에 미약한 체념이 어려 있었다.
기사들이 난감한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황후의 뜻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르티아가 흔한 족쇄 하나 없이 제 발로 재판장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발걸음을 멈춘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곤 경악에 찬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쇄골 밑으로 손을 짚으며 우아하게 인사를 올렸다.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다시 뜬 그녀의 시선이 벤터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섬뜩한 눈빛에 그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으나, 카르티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 * *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 멀쩡한 집안을 박살 내놓고는 현 클라이더 공작님을 개새끼라 부르다니. 공작님께서 얼마나 슬프셨을지…….”
“황녀 전하께서도 이걸 알고 계실까?”
수군거리던 그들이 데미안을 힐끔거렸다.
“다들 혀를 어디 둘지 몰라 안달이 났군.”
물론 에르하르트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긴 했지만.
인상을 찌푸린 에르하르트가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여전히 무표정한 낯이었고, 에르하르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의 일이라면 미쳐 날뛰는 데미안이, 저와 관련된 일에는 지독히도 무심했기 때문이다.
그런 데미안에게 유일한 행복을 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던 그가 데미안에게 말했다.
“가 봐.”
“어디를 말입니까?”
“엘리에게 가보라는 뜻이다.”
“…….”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가 봐.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지만…….”
“어서.”
에르하르트가 얼른 가보라는 듯 어깨를 툭 쳤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떨어뜨려 놓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데미안은 꾸벅 인사하고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런 데미안의 뒷모습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에르하르트가 몸을 돌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쥐새끼는 잡았나?”
그가 뒤편의 안테를 향해 물었다.
“예. 고문실에 가둬놨습니다.”
“잘됐군. 지금 가지.”
에르하르트가 그 말과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황궁으로 가기 위해선 마차를 타야 했다.
데미안이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그 속에는 3 황녀, 이혼 같은 단어들도 섞여 있었다.
엘리는 황녀로 알려져 있었고, 한때 황족이었던 황후는 데미안의 부모를 죽였으니,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생각도 없는데 주변에서 기대하듯 이혼을 떠드는 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워졌다.
엘리의 마음이 변했을 거라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엘리는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저는 그런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었을 뿐
다정한 눈빛이, 따스한 손길이, 맑은 웃음이 오로지 저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에 홀로 괴로워할 뿐이었다.
문득 데미안은 작게 조소했다.
제 부모의 죽음에 대한 전말이 밝혀진 시점에서, 그는 부인에 대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스스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미를 팔아넘긴 마테오와 제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공작님의 말씀이 맞았다.
엘리에 대한 과한 집착이 저를 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마, 평생 이 감정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터였다.
불안 속에 갇혀, 잿더미로 변한 마음을 붙잡은 채 억지로 괜찮은 척 웃고,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겠지.
데미안이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때였다.
“데미안!”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그에게 달려왔다.
따스한 햇빛 냄새, 눈부신 금발.
엘리였다.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엘리는 일부러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황제가 자신과 데미안을 이용해 ‘가족’이라는 핑계로 마테오를 면벌하려는 수작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덫을 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
데미안은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엘리를 마주 끌어안았다.
“크흠…….”
“대낮부터…… 흠흠.”
지나가던 귀족들이 남사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때, 품속에 안긴 엘리가 데미안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재판, 잘 버텨줘서 고마워.”
“…….”
“정말 고마워, 데미안.”
이번 재판을 통해, 그는 제 친부모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힐 예정이었다.
겉으론 괜찮아 보였지만, 엘리는 알고 있었다. 데미안은 제가 피를 흘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무척이나 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데미안을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도…… 힘든 게 있다면 말해 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게.”
그 말에 데미안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기다림을 참지 못 하고 달려 나온 만큼, 저를 걱정했구나.
그렇다면 적어도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릴 때만큼은,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저로 가득했겠구나…….
그 생각이 든 순간, 데미안이 충동적으로 물었다.
“키스해도 돼?”
그 말에 엘리가 멈칫하자 데미안은 곧장 후회했다.
여기서 키스를 나눈다면 이혼과 관련된 소문은 완벽히 없앨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한 추문이 따라붙을 터였다.
안 그래도 엘리는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그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당장 제 마음의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엘리에게 이기적인 부탁을 하는 꼴이라니.
데미안이 스스로에게 욕을 중얼거리다 애써 웃었다.
“미안, 내가 잠깐 미쳤나 봐. 그냥 못 들은 걸로…….”
“그래.”
“……어?”
데미안이 드물게 바보처럼 되물었다.
엘리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스해 줘, 데미안.”
데미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녀가 정말 수락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쉬이 말을 잇기 힘든 듯, 그의 입술이 벙긋거리다 다시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엘리가 옅게 웃었다.
“내가 거부할 줄 알았지?”
“…….”
“날 뭘로 보는 거야. 이젠 웬만한 걸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녀가 장난스럽게 투덜거리자 데미안이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어?”
“뭐가?”
엘리가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우린 부부잖아. 부부끼리 키스 좀 하겠다는데, 그게 이상해?”
“…….”
“아, 여기서 하는 건 좀 그러려나……. 에이, 됐어. 욕할 거면 하라고 해. 내 남편이랑 같이 욕먹지 뭐.”
그녀가 데미안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그 순간, 데미안 마음속에 있는 불안함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를 향한 애정이 입안에 맴돌아 순식간에 넘쳐날 것 같았다. 그가 입을 꾹 다물고선 엘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래도 역시, 단둘만 있을 때 하고 싶어.”
한참 만에 나온 중얼거림에 엘리가 품속에서 킥킥 웃었다.
데미안의 얼굴에도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마차로 들어갈까?”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잠깐 사이도 떨어지기 싫었던 부부는 다정히 손을 맞잡은 채 함께 마차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