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1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18화(218/241)
“그릇이요?”
“사기를 모아 살아 있는 언데드를 만드는 것을 말해요.”
뒤에 있던 아샤벨이 상냥히 설명했다.
“물론 그릇엔 더 많은 영혼을 넣어서, 한층 악하고 짙은 원념을 넣을 거예요. 제국을 집어삼킬, 살아 있는 지옥을 탄생시키는 겁니다.”
“……!”
“황후 폐하께서 친절히, 그릇이 되어주기로 하셨어요.”
아샤벨이 덧붙인 말에 파비안의 눈동자가 거칠게 일렁였다.
황궁 재판 때, 카르티아는 제 발로 순순히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더 큰 복수를 위해, 제 발로 떠난 것이었다.
파비안의 얼굴에 혼란이 어리자 카르티아가 엉금엉금 다가와 창살을 붙잡았다.
“루멘치아의 성을 가진 모든 이들을 죽여다오. 그리고 네가 황제 자리에 앉는 거다.”
“지금 무슨 말을…….”
“그럼 넌 그동안 널 괴롭혔던 나와, 황제, 마테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뿐더러.”
창살에 얼굴을 가까이 댄 카르티아가 그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그 계집도 가질 수 있다.”
“…….”
“그럼 년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모두를 죽일 수 있고, 마음에 담아둔 계집도 가질 수 있는 거다!”
그녀의 목소리에 광기가 실렸다.
저를 배신한 마테오와 황제를 보며, 카르티아는 생각했다.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이 제국을 없애 버리겠다고.
그래서 성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루멘치아의 두 남자를, 이 나라를 없앨 수 있다면 그녀의 마지막 불꽃을 바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해되는 자들 또한 모두 죽일 수 있지. 그래! 슈에츠든 클라이더든, 방해되는 건 모조리 죽일 수 있다!”
“…….”
“나를 네 복수에 이용하렴. 그리고 황제가 되어, 네가 원하는걸 손에 쥐거라.”
카르티아가 기괴하게 입술을 비틀며 속삭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파비안이 아닌, 지독한 복수 그 자체였다.
“당신…… 정말 갈 데까지 갔군.”
파비안이 경멸 섞인 눈빛으로 카르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르티아가 이죽거리며 웃었다.
“날 찾아온 순간부터, 너도 갈 데까지 간 몸이지 않니.”
파비안이 입을 꾹 다물자 아샤벨이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는 같은 배를 탄 것뿐입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거예요.”
“…….”
“황제가 되어, 그 아이를 가지세요. 제가 황자님을 도와드릴게요.”
아샤벨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파비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철창 밖으로 내민 카르티아의 손 위로, 파비안의 손이 올려졌다.
그러나 파비안은 그녀를 뿌리치지 않았다.
이미 파비안의 눈은 그들과 같은 욕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폐위된 황후 때문에 제국의 분위기는 더없이 소란스러웠다.
사기의 주범이자 2 황자의 배후, 그리고 흑마법으로 선대 클라이더 공작을 죽인 범인이 황후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 모든 일이 아샤벨의 계략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황제가 총애하는 3 황녀가 성녀의 퇴출을 요구했다.
‘원래 아샤벨이었다면 신전에 꼭꼭 숨어서 절대 나오지 않았을 거야. 태양제 같은 건 신경도 안 썼겠지.’
그래서 나는 그녀의 참가 소식을 듣자마자 제국 곳곳에 전광판을 설치했다.
혹시라도 아샤벨이 암수를 저지른다면, 이 장면을 지켜본 모든 제국인들이 내 눈과 귀가 되어줄 터였다.
하지만 아샤벨은 나를 공격하기는커녕, 마테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사기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마테오가 다른 사사로운 일을 저지르려다 실패한 줄 알았다.
하지만.
“3 황녀! 어디 다친 데는 없나? 괜찮은 거야?”
“어서 나가자. 내가 그대를 안내하지.”
파비안은 사기가 하늘을 메우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마치 내가 다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다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샤벨인데, 어째서 나를.’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 사기를 만든 사람이 아샤벨이며.
그녀의 자작극을, 파비안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파비안은 아샤벨이 만들어낸 사기가 나를 공격하진 않을까 걱정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1 황자가 아샤벨과 한패일 수도 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머리를 굴려 여기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마테오를 공격하는 건, 카르티아를 공격하는 것과 같아.’
그들의 몰락을 바라는 건 적어도 나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만큼은 아샤벨의 시나리오를 따라주기로 했다.
사기를 정화하고 마테오의 노성을 녹음해 황족의 실체를 낱낱이 밝혔다.
‘그 과정에서 마테오가 실명하고, 최종적으로 황후가 모든 것을 짊어지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 남은 건, 아샤벨이 어떤 방법으로 내게 접근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파비안.’
그와 아샤벨이 한패라는 증거도 잡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덫을 놨다.
태양제 이후,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마테오의 죄를 심판하는 황궁 재판장에도 나가지 않자 사람들은 내 상태를 궁금해했다.
호기심이 극에 달했을 때쯤, 나는 레이쿠스를 불렀다.
“……파비안이 그럴 리 없어.”
레이쿠스는 단호히 내 말을 부정했다. 오랜 친구인 그가, 신전과 한패가 됐다는 걸 믿을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파비안이 신전에 자주 드나들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
“다른 건 다 내가 감당할 테니 혹시라도 내 이야기를 묻는다면 이렇게만 말해줘. 태양제 이후, 내 체력이 부쩍 약해진 게 사실이며 힘을 쓰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이야.”
레이쿠스는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황녀님.”
시종 하나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은색 쟁반 위에, 은은한 향이 나는 봉투가 있었다.
“……이게 뭐니?”
“피로 해소에 좋은 찻잎입니다. 1 황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나는 그 찻잎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파비안이 내 덫을 물었다.
그렇다면 과연 성녀는, 이를 알고 있을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제국 여러 영지에 사기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아샤벨의 귀에 내 체력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갔다는 뜻이겠지.’
나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제국을 돌아다니며 정화 활동을 펼쳤다.
가끔씩 콜록거리며 기침하는 것도 잊지 않았으니, 이제 신전에서도 어느 정도 내 힘과 체력의 상관관계를 눈치챘을 터였다.
판단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궁을 빠져나왔다.
“중앙 광장으로 가자.”
“예? 지금 말씀이십니까?”
황궁을 나선 내가 목적지를 말하자, 마부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쯤 중앙 광장엔 마차가 붐빌 시간이라 이동하는 데 오래 걸리실 겁니다. 다음에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시간을 언급해 회유하고는 있었으나,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알아. 그래서 가는 거야.’
“그럼 잘 부탁해.”
마차에 타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자 마부가 하는 수 없이 마차를 몰았다.
마부 말대로, 중앙 광장은 마차와 사람들 때문에 인산인해였다.
“에휴.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마부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거리의 소음 사이로 들려왔다.
그때, 길이 조금 풀린 듯, 뒤편에 있던 한 마차가 내가 있는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힐끔거리며 마부석을 살핀 나는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러곤 손을 뻗자, 건너편 마차에 있던 누군가가 힘껏 나를 끌어당겼다.
무사히 환승에 성공한 나는 씩 웃으며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 들켰지, 그레이스?”
“완벽했어.”
무겁지도 않은지, 나를 가뿐히 안아 올린 그레이스가 옅게 웃었다.
오늘 만날 중요한 손님이 바로 그레이스였다.
그녀는 내 친구이긴 했지만, 성기사이기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조심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굳이 마차로 붐비는 시간에 광장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왜 만나자고 한 거야? 아주 중요한 일이라니. 무슨 일 있어?”
내 물음에 그레이스의 미소가 서서히 지워졌다.
얼마간의 침묵 후,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신전이 깨끗한 곳이라 믿고 싶었어. 그날, 흑마법을 썼던 신관은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신전엔 너처럼 착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성기사가 된 거야.”
“…….”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아.”
그레이스는 결의에 찬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 교황 성하에 대해 아는 게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 교황에 대해서라면 나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전 교황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원작,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던 미래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현 교황은 신성력이 뛰어나지 않은, 이름 없는 신관이었다. 굳이 특이점을 찾자면, 신께 자주 기도를 올릴 정도로 지극한 신앙심을 가졌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건 왜?”
“……며칠 전, 성녀님께서 반드시 대신관님을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어. 그래서 같이 따라갔는데…… 교황의 움직임이 이상했어. 갑자기 성녀님께서 찾아왔으니 놀랄 법도 한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시더라고. 오직 대신관님의 말만 들었어. 꼭……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말이야.”
“인형이라면…….”
“그래서 몰래 금서목록을 찾아봤어. 오래전, 마탑과 함께 연구한 연구 기록이 있더라고. 그 주제는…….”
그레이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죽은 사람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넣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어.”
그 순간, 수장 엘프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소수 일족은 다시 세계수를 틔워내기 위해 남은 힘을 쪼개어가졌다.
‘그리고 황족은 소수 일족을 모두 잡아들였지.’
그렇다면 그레이스가 발견한 연구 기록은 진실일 터였다.
“그럼 교황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 있다는 거야? 그걸 조종하는 게 라미트라 대신관이고?”
그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몸에 타인의 영혼을 넣는 일은 신의 뜻이라고 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선행을 추구하는 신전이라면 더더욱.
‘이걸로 신전을, 더 나아가 황족까지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
단서를 얻었다는 생각에 내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런 나와는 달리, 그레이스는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왜? 아직 더 할 말이 남은 거야?”
내 물음에도 그레이스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주저하는 눈빛 속에 걱정이 묻어났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악을 정화하고, 언데드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처형 후 신전에서 시체를 수거해.”
“응. 그건 엄마 때문에 알고 있어.”
황후의 친정인 라티오넬은 신전과 깊은 유착 관계였다. 그래서 어린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시신도 신전에서 정화 후, 처리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신전의 연구랑 범죄자랑 무슨 상관…….”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죽은 사람의 몸에 타인의 영혼을 넣으려 했던 신전의 연구 기록.
정화를 명목으로 범죄자들의 시체를 수거한 신전.
어떻게든 세계수의 힘을 갖기 위해 소수 일족을 박해한 황족.
그리고…… 제국에서 제일가는 도둑이었던 엄마.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며 전신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