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19)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19화(219/241)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 힘겹게 말했다.
“말도 안 돼.”
“…….”
“우리 엄마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야?”
그녀는 침묵했다.
“그럴 리 없잖아.”
나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부정을 내뱉는 입과는 달리, 내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미안해, 엘리.”
그레이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네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어.”
그 말과 함께 그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래된 종이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더 이상 누구도 찾지 않았는지, [종료] 라고 쓰여 있는 서류에서 세월의 냄새가 났다.
나는 천천히 첫 장을 넘겼다.
빼곡하게 적힌 연구일지가 보였다.
가장 위에 적힌 날짜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시행된 연구 날짜는 엄마의 처형일로부터 며칠 후였다.
[소수 일족의 힘이 변이를 일으킨 듯, 붉은 머리카락이 분홍색으로 변함. 보라색 눈동자는 다행히 녹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그리고 제일 마지막엔.
[대륙 최남단.]기록은 거기서 끝이었다.
애써 부정했던 나의 얼굴에 완전한 절망이 깃들었다.
* * *
그 시각, 황궁의 어전.
황제, 벤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와 마테오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의 축복이라 일컫는 이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게다가 그날 이후, 제국 전역에 사기가 끓고 있었다.
‘황후의 처형을 앞당겨야겠군. 그 뒤, 황태자를 임명해야겠어.’
악을 없애고 새로운 차기 태양을 내세운다면 제국도 조금이나마 잠잠해질 터였다.
“대신관을 불러라. 그리고 황궁 주위의 호위들을 모두 물리거라.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벤터스가 시종에게 그리 명령하며 대신관, 라미트라를 호출했다.
“폐하.”
라미트라가 경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그런 말은 되었네. 오히려 그런 악독한 여자를 아내로 들였다는 게 창피할 정도군.”
벤터스가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황후의 사형을 앞당겨야겠네.”
그 말에 부드럽던 라미트라의 미소가 조금 가라앉았으나, 황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여자를 죽인 다음, 황태자 임명식을 열 계획이야. 그러면 사람들도 조용해지겠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폐하.”
다시 미소를 지으며 긍정을 표하던 라미트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폐하. 둘의 순서를 바꾸시는 게 어떻습니까?”
“순서를 바꾼다고?”
“예. 새로 제국의 태양이 되실 황태자 전하께서 폐후를 사형시키는 것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더 좋을 듯합니다.”
벤터스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황태자에 대한 믿음도 더 커질 터였다.
“좋은 생각이군. 그래, 신전 쪽 생각은 어떠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온전한 힘을 가진 3 황녀가 황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벤터스는 그리 말하며 라미트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신전이 엘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의 승계를 반대한다면, 성녀가 만들어진 존재이며 신전이 그녀를 만들었다고 소문을 퍼뜨릴 계획까지 세웠다.
“예, 저도 폐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 긍정이 나왔다.
“정말인가?”
“예. 물론입니다. 태양제 때 많은 제국인이 3 황녀님의 힘을 보지 않았습니까. 황녀님께서 황태자 자리에 오르시고 폐후를 처형한다면 제국인들의 수군거림도 금세 사그라들 겁니다.”
라미트라는 그러며 덧붙였다.
“그 자리에, 성녀님과 교황 성하께서도 함께하시면 더욱 좋겠지만요.”
그에 황제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엘리의 승계를 반대하지 않을 테니, 성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란 뜻이었다.
하지만 성녀의 존재는 황실의 치부도 되었기에, 벤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황태자 임명식을 공표하지. 신전 쪽에서도 준비 잘해주길 바라네.”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라미트라는 황궁을 빠져나와 신전으로 향했다.
“성녀님.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기도실 문을 열었다.
본래 순백색으로 가득했던 기도실 안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홀로 서 있던 아샤벨은 달콤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신관님. 황제 폐하는 잘 만나고 오셨나요?”
“성녀님.”
라미트라가 익숙한 듯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황궁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폐하께서 황태자 임명식을 빠른 시일 내에 여시겠다더군요.”
“어머나, 그래요? 잘됐네요.”
아샤벨이 그리 말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에 시선을 주었다.
신전의 이름을 빌린다고 해도, 아이들의 수급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1 황자, 파비안이 그에게 협력해 준 덕분에 수월히 ‘재물’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주 중요한 사실까지 알려주었다.
“황궁 재판에 3 황녀는 참석하지 않았다.”
“태양제 이후 체력이 급격히 약해졌다고 들었어. 정화를 하면 할수록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더군.”
태양제 때 사기를 정화한 이후, 엘리가 급격한 체력 감소를 겪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 아샤벨은 깨달았다.
엘리는 남을 살릴 만큼 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체력을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사기라니. 그것만큼 그녀가 자신 있는 것은 없었다.
더 큰 사기를 만들어낸다면, 그래서 엘리가 정화하는 틈을 노려 공격한다면.
‘그녀를 없앨 수 있다!’
파비안에게 엘리를 가지게 도와주겠다 약속했지만, 그녀는 지킬 생각이 없었다.
아샤벨이 꿈꾸는 세상에서, 엘리는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으므로.
히죽 웃던 아샤벨이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타인의 몸은 그녀의 영혼을 완벽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진짜 이 몸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되어야 했다.
“황태자 임명식이라. 많은 제국인들이 모이겠네요.”
아샤벨은 피로 물든 뺨을 쓱 닦으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날을 황녀 전하의 장례식으로 만드는 게 좋겠어요.”
* * *
한편.
에르하르트는 데미안과 함께 폐허가 된 땅 위에 서 있었다.
“이곳이 신전에서 다녀간 곳이라고?”
“보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성녀가 신관들과 함께 정화 의식을 치른 곳이라더군요.”
데미안의 말에 에르하르트가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땅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직은 아무런 악취도 나지 않는데. 네 생각은 어떻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데미안은 신수에게 힘을 이어받았음을 자각한 후, 마나에 감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짜라고 해도 성녀는 보는 눈을 의식해 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곳에 미약하게나마 성녀의 힘이 남아 있을 터.
‘그런데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다니. 내 착각인가?’
데미안이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란다. 이 땅엔 아무런 사기도 느껴지지 않아.
에르하르트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신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화 의식을 치렀다면 신성력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선 무언가 뒤틀린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신수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털을 바짝 세웠다.
“그럼 좀 더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군.”
에르하르트가 데미안을 향해 말했다.
“데미안, 난 이 여우와 함께 저쪽을 볼 테니 넌 우선 이쪽부터 살펴봐.”
“알겠습니다.”
에르하르트는 신수와 함께 멀어졌고, 홀로 남겨진 데미안은 대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혔다.
장갑을 벗은 그가 성녀가 정화의식을 마쳤다던 땅 위에 제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마나를 읽은 순간이었다.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말도 안 돼.”
그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저은 데미안이 땅속에 스며든 희미한 마나에 다시 신경을 집중했다.
제 생각이 틀렸다 느낄 때까지, 수차례 감응을 시도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데미안.”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에르하르트가 신수와 함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
“데미안.”
에르하르트가 조급하게 재촉했다. 판단이 빠른 아이가 이렇게까지 굳어 있다면, 적잖이 심각하단 뜻이었다.
한참 만에 데미안이 대답했다.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떤 기운.”
쉬이 말하기 힘든 듯, 데미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신수가 땅 위로 폴짝 뛰어내 였다.
기운을 느끼던 신수가 말했다.
-……섀넌의 기운이로구나.
그는 헤어지기 전, 섀넌과 계약을 맺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성녀가 정화를 치른 땅에서, 섀넌의 기운이 느껴진다니. 어째서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신수 또한 이렇다 할 답이 떠오르지 않는 듯 말이 없었다.
데미안의 얼굴에 짙은 혼란이 어렸다. 에르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곧바로 직면한 두 번째 문제 때문이었다.
엘리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엘리는 키워준 엄마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를 키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라티오넬 저택에 숨어들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실을 엘리에게 전한다면 그녀는 큰 상처를 입을 터였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맴돌 때였다.
“……우선.”
한참 뒤, 에르하르트가 굳은 얼굴로 입을 떼었다.
“엘리에게 가자.”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안다.”
“…….”
“하지만 이 일은 그 누구보다도 엘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해.”
데미안은 입을 다물었다.
세 사람은 자신이 짊어진 고통을 쉬이 말하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저 때문에 괜한 짐을 짊어지게 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오랜 습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세 사람은 가족이었고, 서로의 고통을 기꺼이 나눌 수 있었다.
데미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미리 도착한 듯, 마차는 멈춰있었다.
저 안에 엘리가 있을 터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수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던 그가 힘겹게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데미안이 반사적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그를 공포로 몰고 갔던 찰나의 상상과는 달리, 엘리는 무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렇게 사색이 된 엘리는 처음이었다.
“엘리,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응?”
데미안이 당황한 얼굴로 엘리를 살폈다.
“……데미안.”
엘리가 멍한 시선을 움직여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어떡하면 좋아?”
그녀의 목소리가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돼?”
“엘리, 무슨 일인지 말해줘. 뭐든지 도와줄 테니까…….”
“우리 엄마.”
그녀의 말에 데미안이 멈칫했다. 엘리가 멍하니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 몸에…… 성녀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아.”
그 말에 데미안과 에르하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