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20화(220/241)
데미안은 그녀의 말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문득 데미안의 시야에 그녀가 쥔 서류가 들어왔다. 그 위엔 신전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설마.’
데미안이 떨리는 눈으로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소수 일족의 힘이 변이를 일으킨 듯, 붉은 머리카락이 분홍색으로 변함. 보라색 눈동자는 다행히 녹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대륙 최남단…….”
데미안이 저도 모르게 마지막 문단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성녀가 정화를 치른 땅, 그곳에서 섀넌의 기운이 읽힌 것은.
‘그녀가 섀넌의 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깨달은 진실에 데미안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에르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나 때문이야.”
자백처럼 이어진 말에 두 사람이 멈칫했다.
엘리의 공허한 눈동자가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오랜 죄책감이 그녀를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나, 나만 아니었더라면 엄마는 죽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나, 나 때문에 엄마가.”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 두서없이 말을 흘리던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엘리, 아니야. 그렇지 않아.”
데미안이 다급히 엘리를 끌어안았다.
“우리 엄마 어떡해. 어떡해, 데미안. 편히 쉬지도 못 하고, 나 때문에. 다 내 잘못이야.”
“……엘리.”
“어떡해, 데미안.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결국 엘리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 어떤 일에도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엘리는, 어머니와 관련된 일에는 이토록 쉽게 무너졌다.
데미안은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그레이스는 억눌린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고, 에르하르트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치솟는 살기를 꾸역꾸역 억누르고 있었다.
“……되찾고 싶어.”
한참 동안 꺽꺽거리며 울던 엘리가 힘겹게 말했다.
“우리 엄마 몸…… 되찾고 싶어, 데미안.”
“……그래, 찾자.”
데미안이 그녀의 머리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찾을 수 있어. 반드시 찾게 해 줄게. 약속할게.”
그 말에 엘리의 헐떡임이 아주,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못했다. 엘리는 그대로 푹, 데미안의 품속에서 쓰러졌다.
“엘리!”
데미안의 말에 에르하르트가 빠르게 엘리의 상태를 살폈다.
“……걱정 마라. 잠시 탈진한 것 같으니.”
“우선 편히 쉴 수 있도록 옮겨야겠군.”
에르하르트가 꽉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미안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녀를 안아 든 채 마차에서 내렸다.
엘리를 기다리고 있던 제리트가 혼절한 그녀를 보고 사색이 되었다. 한쪽에서 연기를 태우던 아르펜도 적잖이 놀란 낯이었다.
그레이스가 그녀를 살피겠다며 데미안을 안심시켰다.
눈물 젖은 그녀의 뺨을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데미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르하르트의 곁으로 다가가자, 분노로 인한 폭주를 참을 수 없었는지 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성녀도 알고 있을까.”
한참 만에 에르하르트가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랬다면 제일 먼저 제 몸을 이용해 엘리를 협박했을 겁니다. 오히려 무서울 게 없으니 더욱 막 나갔을 테고요.”
“적어도 본인이 가짜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겠지. 태양제 때 엘리가 사기를 정화했으니.”
“제 힘이라 생각했던 세계수의 힘이 엘리에게 있으니, 눈이 뒤집혔을 겁니다. 어떻게든 엘리를 공격하려 하겠지요.”
그렇다면 반드시, 성녀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성녀는 섀넌의 몸을 쓰고 있다.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고 성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당장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데미안이 말했다.
“타인의 마나를 제 것처럼 쓸 경우, 지독한 악취를 풍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녀의 몸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위 계승 때 성녀와 가까이 접촉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마나가 지금까지 뒤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로군.”
“어째서…….”
-나와의 계약 덕분이겠지.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수가 말했다.
-나와 섀넌은 헤어지기 전에 마나를 나눠주었단다. 상호 계약이었으니, 내 힘이 그 몸에 남아있었을 확률이 높아.
“그렇다면 성녀가 잠깐이나마 세계수의 힘을 쓸 수 있었던 건 황족이 착취한 소수 일족의 힘과 당신과의 계약 덕분이겠군요. 그것이 지금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 방금 전 느꼈던 뒤틀린 기운이 바로 그 증거란다. 죽은 사람 몸에 주인의 것이 아닌 영혼이 들어갔으니까.
점점 계약이 풀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녀는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에르하르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성녀는 강해지기 위해 더 많은 피를 원할 거다. 그리고 종국엔 엘리를 해치려 하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막아야 합니다.”
데미안이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에르하르트가 무슨 당연한 소릴하나는 투로 대답했다.
“몸을 되찾으려면 성녀의 영혼을 없애야 해.”
“엘리의 힘을 이용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삿된 힘으로 만들어진 영혼이니, 엘리의 힘으로 영혼을 정화한다면 몸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자가 약해진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오히려 엘리의 힘으로 또 다른 부활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가 가진 세계수의 힘이 되레 성녀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내몰린 지금의 상태에서, 세계수의 힘까지 쓴다면 엘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수가 말했다.
-엘리의 힘을 그 아이에게 넣는다면 영혼을 없앨 수 있을 게다. 지금으로선 몸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저…….”
그때, 엘리의 안정을 확인하고 나온 그레이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대신관님께서 황궁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제가 대신관을 따로 만날 이유가 있나?”
에르하르트가 미간을 좁혔다.
“……황태자 임명식.”
데미안이 중얼거렸다.
“황실은 현재 추문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든 소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새로운 황태자를 내세울 거예요.”
“그럼 그날 성녀가 엘리를 노리겠군.”
에르하르트가 이를 이득 갈았다.
황태자 임명식이 열리기 전, 성녀의 몸에 엘리의 힘을 넣어야 했다.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엘리의 힘을 넣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수의 죽음을 전제로 깔아야 했다. 아샤벨은 사람들을 죽여가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쪽에서도 가짜를 만들면 되겠네요.”
그때,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조금 기력을 회복했는지, 그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창백한 낯은 여전했다.
데미안과 에르하르트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
“엘리, 괜찮아?”
“좀 더 누워 있지, 어찌 나왔느냐.”
두 사람의 말에 엘리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시라도 빨리 엄마의 몸을 다시 되찾아,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
“가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르펜이 조금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신전이 그랬듯이, 너도 가짜를 만들겠다는 뜻이야?”
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기억나죠? 아샤벨은 자신이 아빠의 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르펜이 만들어 낸 친자 키트 덕분에 거짓임이 밝혀졌어요.”
“타인의 마나를 억지로 제 것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지.”
에르하르트의 대답에 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마나는 영혼과도 같아요. 빼앗았다고 해도 제 것이 될 수 없죠. 신수님과 엄마의 계약, 그리고 황족이 착취한 소수 일족의 힘 덕분에 한때 아샤벨이 세계수의 힘을 쓸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닌 것처럼요.”
아샤벨은 타인의 생명을 갈취해, 제 양분으로 삼고 있으나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진짜’는 될 수 없었다.
“현재 아샤벨은 타인을 죽여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어요. 그런 그녀가, 세계수의 힘이 들어간 가짜를 발견한다면 기뻐서 날뛸 거예요. 더 많은 힘을 얻고 싶어 하겠죠.”
하지만 결국 그녀의 것이 아니니, 언젠간 뒤틀릴 터였다. 다시 제 몸으로 돌아오려 하겠지.
아샤벨의 기운이 완전히 제 것으로 물들고, 그녀가 강해졌다고 자만할 때.
그때 제 마나를 다시 빼앗는다면.
‘엄마의 몸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엘리의 설명을 이해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짜를 만드는 게 가능할 리가…….”
“가능해.”
그레이스의 염려를, 아르펜이 덤덤히 응수했다.
“사실 아버지 몰래 인형을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 물론 짐승의 것이라 제대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엘리의 힘이 있다면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을 거야.”
-내 힘도 함께 주마. 그럼 더 견고 해질게다.
신수가 앞발로 제 가슴 털을 두드리자 아르펜이 흥미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털이랑 피 좀 뽑아도 될까? 발톱도 좋은데.”
-아니, 이놈이! 썩 물러나거라!
펄쩍 뛴 신수가 아르펜을 향해 털을 바짝 세웠다.
“저, 허락해 주신다면 그 인형들을 스나우트 쪽에 두겠습니다.”
제리트 또한 힘을 보태겠다는 듯 의견을 덧붙였다.
“학술원엔 이름 없는 빈민가 아이들과 평민들이 많이 드나드니, 인형들을 두더라도 신전에서는 쉬이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게 좋겠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에르하르트의 시선은 여전히 엘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짜를 이용해 성녀의 몸을 제 힘으로 메운 다음, 한꺼번에 꺼내겠다는 생각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엘리의 체력이었다. 지금은 강하게 저희를 마주하고 있지만, 만약 그녀가 쓰러진다면, 그래서 그 틈을 노려 성녀가 삿된 힘을 쓰게 된다면…….
두 남자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저, 안 무너져요.”
그때 엘리가 손을 뻗어 둘의 손을 잡았다.
“그 여자, 우리 엄마 몸에서 나가는 꼴 보기 전까지는, 절대 안 무너질 거예요. 게다가 아직 황제한테 제대로 복수하지도 못했어요.”
“…….”
“…….”
“제 손으로 없앨 거예요. 반드시.”
엘리는 또렷하게 말하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엘리는 절대 성녀를, 신전을, 황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분노로 넘실거렸다.
에르하르트가 굳은 입을 열었다.
“……절대, 절대 네 몸을 망쳐서는 안 된다. 만약 성녀가 너를 해치려 한다면.”
그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그땐 주저하지 않을 거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널 보호할 거다. 그게 만약…… 널 슬프게 하더라도.”
엘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알고 있어요, 아빠. 걱정하시지 않게 할게요.”
“……하여튼 말은 잘하지.”
“그럼요, 제가 누구 딸인데요.”
“누구긴. 내 딸이지.”
그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 힘든 상황을 잘 버텨준 엘리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극한의 상황에 수없이 내몰렸다는 반증 같아 마음이 아팠다.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는 열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안기려면 지금이 기회다.”
“…….”
“아니면 계속 거기 서 있든가.”
그 말에 데미안이 천천히 다가왔다. 에르하르트는 두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제게 찾아온 행복들을 좀 더 힘줘서 끌어안았다.
* * *
그사이, 결전의 날은 다가왔다.
아르펜은 신수와 함께 그동안 연구했던 실험을 토대로 인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엘리는 그곳에 제 마나를 주입했고, 제리트는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스나우트에 두었다.
부디 이 덫에 아샤벨이 걸려들기를. 그렇게 소망할 때.
며칠 뒤, 엘리의 바람대로 스나우트 령에 놓아둔 인형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