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22화(222/241)
“……누이라니. 갑자기 호칭이 달라지셨네요.”
그 호칭에 엘리가 유쾌하지 않은 낯으로 말했다.
파비안은 가벼운 웃음으로 이를 응수했다.
“오늘 이후, 네가 황태자가 되면 나는 네게 존칭을 써야 해.”
“…….”
“그러니 마지막으로 누이라고 불러 보고 싶었어.”
황태자 자리는 당연히 그녀의 것이라는 듯, 자연스러운 뉘앙스에 엘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파비안은 자신의 처지가 엘리의 동정심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누이라는 호칭에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
파비안이 웃었다.
“준비가 다 끝났어. 이제 슬슬 가야 할 시간이야.”
“……알았어요.”
엘리가 시종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부신 금발이 어깨 위로 늘어졌다.
오늘 엘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지만, 파비안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일어난 사기를 정화하느라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어진 임명식 준비까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와중에 성녀가 카르티아를 통해 만들어 낸 사기를 세상에 내보낸다면, 엘리는 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엘리의 체력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녀가 쓰러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저는 엘리를 데리고 황궁으로 들어와, 황실 기사단을 움직일 것이다.
파비안은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이 제국의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며, 땅의 마나를 조사했다는 정황을 입수했다.
오늘 황궁을 뒤엎을 사기를 그들에게 덮어 씌우는 것이다.
설사 억울함을 주장한다고 해도, 황제는 이미 사기에 오염되어 언데드가 되었다. 아직 후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황제의 대리는 적자인 1 황자가 되고 황제와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황명을 어기는 건, 곧 반역의 길. 두 공작의 몰락은 당연했다.
그럼 비로소 저는 엘리를 완전히 가질 수 있게 된다.
파비안의 마음이 내뱉지 못할 욕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폐하께서는요?”
그때, 엘리가 물었다.
“먼저 가신다고 하더군. 곧 시작이니, 우린 바로 올라가면 될 거야.”
파비안은 엘리를 먼저 보낸 후, 제 친위대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는 미리 말을 맞춰놓은 귀족파의 기사단도 함께였다.
엘리는 권력의 심화보다 공생을 원했다. 그것은 귀족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였다.
귀족들은 엘리가 황태자가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파비안과 이해관계가 맞았다.
파비안이 그들에게 명했다.
“지금 당장 반역자인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을 잡아와.”
그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이런 기습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처럼, 조용히 명을 받들었다.
* * *
황태자 임명식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제도로 몰렸다.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전광판 앞자리를 사수하려 들었다.
임명식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3 황녀 전하!”
“제국을 보살펴 주십시오!”
축복을 바라듯, 인파가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 휘말려 죽고 싶은 건가.’
한 편에 앉아 있던 아샤벨이 조소했다.
뭐, 어차피 저것들도 제가 만든 사기에 도움이 되어줄 테니 상관없었다.
그때, 아샤벨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임명식이 치러지는 단상과 관객석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시종들을 세워두기까지 했다.
마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누가 저걸…….’
아샤벨이 눈매를 좁혔다.
“성녀.”
그때, 시작을 기다리던 파비안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나는 그대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그대도 지켜.”
그의 서늘한 금안이 아샤벨에게 닿았다.
“만약 엘리가 그대의 사기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우리의 약속은 파기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아샤벨이 싱긋 웃자 파비안이 못 미더운 얼굴로 물러났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저렇게 거리를 띄워놓은 건 1 황자인 듯했다.
‘그래서 저렇게 거리를 띄워놨구나.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제국인들은 잘못이 없다, 이건가. 나름대로 차기 황제다운 생각이었다.
물론, 속내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그런데, 슈에츠 공작님과 데미안 님은 어디 계시지?’
엘리가 왔으니 두 사람도 당연히 왔을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봐! 3 황녀 전하셔!”
그때, 높은 단상 위로 후보인 파비안, 엘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샤벨의 신경이 자연스럽게 엘리를 향해 쏠렸다.
자신을 향한 함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엘리가 활짝 웃었다.
마치 자신의 승리를 예감한 사람처럼.
그러나 엘리의 얼굴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피로가 녹아 있었다.
이윽고 황제와 교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겉으로 보기엔 인간처럼 보이지만, 이미 언데드로 변모한 후였다.
그 이질감을 느낄 법도 한데, 엘리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에 아샤벨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사기를 느끼지 못하는 거야.’
엘리의 몸은, 지금 더없이 약해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사이, 기계적으로 연설을 끝낸 벤터스는 입을 열었다.
“……하여, 이 자리에서 모든 제국인들에게 새로운 태양을 소개하고자 하네.”
지금이다.
판단을 끝낸 아샤벨이 라미트라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이제 곧, 지엄한 황궁에 제가 만든 악이 강림할 터였다.
엘리가 그 악을 공격하면, 그녀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힘을 갈취할 생각이었다.
아샤벨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후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세례를 내리듯,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엘리에게 향하는 제 손이 꼭, 느릿하게 태엽을 감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야.’
바로 지금!
그녀의 안광이 번뜩인 순간이었다.
“……!”
갑작스럽게 전신에 큰 통증이 내달렸다.
아샤벨이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며 뒤로 물러났다.
왜 이러지?
방금까지 충만했던 생명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커흑……!”
아샤벨이 입을 틀어막았다. 입에서 금방이라도 사기가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안 돼.’
이대로라면 모두에게 제 정체를 들키고 말 터였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그녀가 몸을 뒤로 물렸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 엘리가 그녀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성녀님, 어디 안 좋으신가요?”
“자, 잠깐, 몸이……!”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누가 목을 꽉 조르는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저런, 몸이 좋지 않으신가 보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엘리가 그리 말하며 아샤벨의 손목을 붙잡았다.
“……!!”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녀를 강타했다.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누군가 제 몸을 불구덩이에 처넣는 기분이었다. 아니, 전신을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산 채로 씹어 먹히는 기분이었다! 전광판 속, 아샤벨의 파리한 안색을 본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성녀님께서 갑자기 왜 저러시지?”
“몸이 안 좋으신가?”
“하지만 3 황녀님의 힘은 치유인데. 게다가 손을 꽉 잡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대체 왜 저러시는 거야?”
수군거림이 커져 갔다.
지금 이 상황은 제국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다.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은 파비안이 엘리에게 다가갔다.
“……!”
그러나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등줄기를 짓누르는, 싸늘한 검기(劍氣) 때문이었다.
“고, 공작, 갑자기 무슨 짓…….”
“무슨 짓은 당신이 꾸민 것 같은데.”
데미안이 가만히 앉아 있는 교황과 황제를 눈짓했다.
눈앞에 검을 든 자가 나타났는데도 교황과 황제는 아무런 혼란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명령도 받지 못한 인형처럼.
그렇게 속삭이는 데미안에게서 피 비린내가 났다.
주위를 지키던 그 많은 기사들이 그의 검에 저항조차 못 하고 죽었다는 뜻이었다.
파비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낸 군대는 지금 어디 있지? 아니, 그전에.’
“슈에츠 공작은 어디 있나!”
반대편에 있던 라미트라가 데미안의 등장에 곧장 몸을 돌렸다.
“신관! 어서 성기사들을 동원해 저 여자를-!”
순간 라미트라의 표정이 황망해졌다.
분명 제 뒤를 지키고 있어야 할 신관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습은 이렇게 하는 거지.”
그때, 소름 끼치는 저음의 그의 목덜미 뒤로 내려앉았다.
“빌어먹을 신께 기도만 하느라 몰랐던 모양이지만.”
“슈에츠 공작……!”
“여기 이 신관들처럼 척추 뼈부터 뽑히고 싶은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아.”
에르하르트의 검이 라미트라의 목덜미 위로 내려앉았다. 검날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그의 하얀 사제복을 물들였다.
“뭐, 뭐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찌 저런 곳에 검을……!”
사람들의 술렁임이 커졌다.
‘계획이 탄로 났구나!’
파비안과 함께 두 공작을 반역으로 몰고 가려던 귀족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슈, 슈에츠 공작과 클라이더 공작이 반역을 저질렀다!”
그러곤 혼란에 빠진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인 말에 홀리는 법이었다.
“시끄럽군.”
그러나 검을 들고 제 곁으로 다가오는 슈에츠 쪽 기사단을 본 순간, 입을 딱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대들은 슈에츠의 기사단 아닌가! 어찌 우리에게 검을 들이민단 말인가! 이것은 귀족 시해다!”
“반역자는 귀족으로 치지 않지.”
“뭐, 뭐라? 우리가 지금 반역을 저질렀다는 것인가?”
“하면 저 위로 올라가 보시지요.”
“……!”
그 말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저 위에서 곧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눈치챈 반응이었다.
“하여튼 다들 입만 살아서는.”
안테가 한심하다는 듯 쯧, 혀를 찼다. 무어라 말을 잇고 싶었으나, 서늘한 검날의 감각에 귀족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그, 그럼 반역이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근거도 없이 검부터 들이밀다니!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여러 혼란이 가중되는 동안, 아샤벨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건 끄윽, 끄윽, 죽어가는 숨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그때, 아주 큰 비밀을 알려주듯, 엘리가 아샤벨의 귓가에 낯을 가까이했다.
“그러니까 성녀님, 왜 욕심을 부리셨어요.”
“흐윽…… 헉…….”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무, 무슨 말을……!”
힘겹게 내뱉던 아샤벨이 흠칫 몸을 떨었다.
엘리의 눈동자가, 더없이 찬란한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제 영혼을 물들였던 생명의 빛이었다.
그제야 아샤벨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쳤다.
제 몸을 메웠던 힘은, 엘리가 저를 집어삼키기 위해 만든 함정이었다.
“마, 말도 안, 어, 어떻게 그런……!”
“너도 가짜를 만드는데, 나라고 못 만들까 봐?”
엘리가 입매를 비틀며 조소했다.
“이제 그 입 좀 닥치고.”
칼같이 그녀의 말을 끊어낸 엘리가 눈동자를 번뜩였다.
“내 어머니의 몸을 내놔, 이 쓰레기!”
그 순간, 엘리의 몸을 중심으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