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25화(225/241)
“정말 눈물 나는 사랑이네, 황후 말대로.”
“그래, 네가 절대 가지지 못할 것이지.”
엘리의 말에 아샤벨이 픽 웃었다.
“맞아.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난 진짜가 될 수 없어.”
그녀의 목소리에 언뜻 체념이 묻어났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눈빛이 악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다 죽여버리려고. 그러면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거 아니야.”
그녀가 방긋 웃었다. 그와 동시에 주위를 둘러싸던 사기가 잘 벼린 칼날처럼 단단해졌다.
데미안이 허리춤의 검을 꺼내 들었다.
챙!
사기를 잘라냈으나, 그들은 끊임없이 뭉쳐 들었다.
잘라도, 잘라도 끝이 없었다. 그러나 데미안은 멈추지 않고 그 사기를 잘라냈다.
엘리 또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황금과 녹음의 빛이 주위로 퍼졌다.
장미 넝쿨처럼 그들을 옭아매려던 사기가 힘없이 바스러졌다.
“와. 정말 대단하네.”
아샤벨이 감탄사를 흘렸다.
“저 힘이 내 것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샤벨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악에 물들어,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이는 이 순간에도 데미안의 얼굴만큼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데미안의 웃음, 한 자락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제게 웃어주지 않았다.
제 모든 미소는 전부 엘리의 것이라는 듯이.
“전부 뺐으면 되잖아.”
카르티아의 악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응, 그러려고.”
아샤벨이 입매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 순간.
빠드득! 가득!
단상에 올라온 시점에서부터 멈췄던 소리들이 다시금 커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감쌌던 사기들이 울룩불룩, 제멋대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커다란 구가 하늘에 떠올랐다.
그 속에서 나타난 것은…….
“……황후.”
검은 악으로 물든 카르티아였다.
“정말 예쁘지? 이 안에 많은 사람들의 마나를 모았어. 황후 폐하께서 손수 그릇이 되어주셨지.”
아샤벨이 활짝 웃었다.
“……너희를 없애기 위해서.”
카르티아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기가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엘리가 재빨리 결계를 만들었다.
차앙!
큰 소리와 함께 사기가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르티아가 엘리의 결계를 향해 날카로운 사기를 퍼부었다. 뚫릴 때까지 몰아치겠다는 뜻이다.
엘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갈되기 시작했던 힘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방어만 할 수는 없었다.
쿠구구구구구-!
큰 소리와 함께 단상이 크게 진동했다.
엘리는 이를 악물었다. 결계를 만들어내는 팔에 점점 힘이 풀려갔다.
그때였다.
데미안이 엘리의 뒤편으로 다가와, 지탱해 주듯 그녀의 팔을 함께 붙잡았다.
데미안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엘리, 결계를 풀고 성녀에게가. 그동안 황후는 내가 상대할게.”
“뭐?”
엘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혼자 악으로 가득한 황후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상대는 검으로 이길 수 없었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엘리, 지금 네 세계수의 힘, 얼마 안 남았지?”
“……!”
데미안의 속삭임에 엘리가 흠칫했다. 어떻게 알았냐는 뜻이었다.
데미안이 다정히 웃었다.
“나는 걱정하지 마.”
그 말과 함께, 데미안이 그녀의 팔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찰랑. 무언가 그녀의 몸속에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신수의 힘……!’
엘리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가 내게 힘을 나눠줬던 거, 기억나지? 신수가 네 권속이 되었으니, 나 또한 네 권속이야. 난 네 생각처럼 쉽게 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엘리.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네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 드려.”
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혼란은 잠시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데미안은 검을 고쳐 잡으며 엘리가 만든 결계를 빠르게 벗어났다.
헤벌쭉 웃으며 사기를 내뿜던 카르티아가 데미안을 발견하곤 우뚝 굳었다.
“개새끼가 제 발로 나왔구나.”
기어코 살아나, 황녀를 찾아낸 모든 일의 원흉.
카르티아가 데미안에게 덤벼들었다.
신수에게 힘을 이어받은 것은 사실이었는지,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오러가 보호막처럼 그를 감쌌다.
데미안도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
엘리가 눈을 감고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퍼져 나간 마나가 아샤벨에게 덤벼들었다.
아샤벨이 손을 휘둘렀다. 사기가 엘리의 마나에 정화되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엘리가 그랬듯, 그녀도 사기를 이용해 스스로를 보호한 것이다.
사기와 정화.
두 성질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무(無)로 돌아갔다.
엘리가 가까이 접촉하지 않는 이상, 정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아샤벨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두 사람의 거리도 꽤나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하! 나한테 다가오려고?”
아샤벨이 이죽거리며 사기를 내뿜었다.
엘리가 재빨리 피하며 가까스로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힘만 허비할 거야.’
엘리의 지친 기색을 엿본 아샤벨이 히죽, 웃었다.
그녀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니 몇 번 놀아주면서 지쳐가는 것을 천천히 지켜보면, 알아서 쓰러질 것이다.
채찍처럼 날아온 아샤벨의 사기가 엘리에게 덤벼들었다.
엘리가 빠르게 사기를 쳐냈다.
어떻게든 아샤벨과 가까워져야 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하지만 어떻게?
‘저 높은 곳에서, 그녀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만한 방법이…….’
그때, 엘리의 시선이 아샤벨의 황좌에 닿았다. 사기로 만들어낸 황좌.
‘그렇다면!’
엘리가 이를 악물며 마나를 내뿜었다.
“소용없다니까!”
조소하며 사기를 일으키던 아샤벨이 멈칫했다.
넝쿨처럼 뿜어져 나온 엘리의 마나가 제가 아닌, 사기로 만들어낸 황좌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아샤벨이 욕설을 지껄였으나, 거기까지 였다.
파아앗! 큰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기가 흩어졌다.
쿠웅!
큰 소리와 함께 아샤벨의 몸이 바닥으로 내쳐졌다.
“빌어먹을……!”
아샤벨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엘리가 더 빨랐다.
엘리가 아샤벨의 목을 짓눌렀다.
아샤벨의 까맣게 물든 동공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몸속에 맴돌던 사기가 점점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안 돼.”
안 돼! 이 몸은 내 거라고! 아샤벨이 마구 발버둥 치며 절규했다.
‘이 계집의 힘을 없애야 해.’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 순간, 아샤벨의 시야에 아직도 대치 중인 카르티아와 데미안이 들어왔다.
‘저거다!’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아샤벨이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악을 끌어냈다.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던 카르티아의 몸이 우뚝 굳었다.
‘빈틈인가?’
파악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그는 이미 단상의 끝까지 밀린 상태였다.
데미안이 카르티아에게 검을 내리찍으려던 순간이었다. 일순간, 데미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먼지처럼 주위에 흩날리던 검은 사기가, 그의 복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폭풍 속에 날아든 검에 의해 한차례 꿰뚫렸던 그 자리였다.
신수의 힘을 간신히 끌어, 지혈하긴 했으나 검을 들고 크게 움직이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기는 타인의 죽음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누가 됐든 간에, 상관없었다. 그저 피를 원할 뿐.
“큭……!”
데미안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 신음에 엘리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데미안?”
엘리의 떨리는 음성이 닿은 순간, 데미안이 바닥에 쿵, 무릎을 꿇었다.
엘리의 숨이 일순간 멈췄다.
“……안 돼.”
멍하니 중얼거린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데미안, 안 돼……!”
엘리가 아샤벨을 내팽개친 채 데미안에게 달려갔다.
겨우 벗어난 아샤벨이 힘겹게 헐떡였다. 엄청난 힘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카르티아도 저도 사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엘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데미안을 고치거나, 아니면 제 영혼을 빼앗거나.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니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을 터.
카르티아와 저는 그 사이에 남은 사기를 회복하면 될 일이었다.
흐흐, 아샤벨이 넋 나간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엘리가 덜덜 떨리는 손을 그의 환부에 내려놓았다.
“지금, 지금 고쳐줄게. 세계수의 힘을 쓰면-”
그때, 데미안이 엘리의 손을 밀어냈다.
“이 힘은, 나한테 쓰면 안 돼.”
“……뭐?”
엘리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무슨 말을……! 지금 힘을 쓰지 않으면 네가 죽는단 말이야!”
엘리가 다시금 데미안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금 그녀의 손을 강하게 붙들었다.
“네 어머니.”
“……!”
“어머니를 구해, 엘리.”
데미안이 흐릿해지는 눈을 깜빡이며 옅게 웃었다.
“성녀를 없애고, 어머니의 몸을 되찾아.”
“하지만……!”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를 되찾게 해 주겠다고.”
데미안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그러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잖아.”
엘리가 억눌린 표정으로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렸구나. 데미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질 때였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어.”
“널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야!”
울먹이며 쏘아붙인 엘리의 말에 데미안의 표정이 멍해졌다.
“난 둘 다 포기 못 해.”
“…….”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이젠 싫어.”
다짐하듯 중얼거린 엘리가 데미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말릴 틈도 없었다. 따스한 빛이 사기가 스며들던 자상 위로 내려앉았다.
‘조금만 더.’
엘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군가를 살리는 힘은 정화보다도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이를 증명하듯 엘리의 얼굴이 힘겹게 일그러 졌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 엘리의 체력은 한계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엘리.”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줘. 금방 끝날 테니까…….”
데미안이 낯을 숙여, 허둥거리는 엘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엘리가 멈칫하며 데미안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했다.
저 때문에 우는 일은, 죽어도 없기를 바랐는데…….
울컥, 차오르는 감정처럼 데미안의 입가에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사기가 그의 몸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미안해.”
데미안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숨을 내뱉으며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먼저 손을 놔야 할 것 같아.”
“……뭐?”
그릇.
데미안이 엘리의 손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는 걸음마다 죽음이 투둑, 검붉은 흔적을 남겼다.
“뭐, 뭐 하는 거야. 데미안. 안돼. 그러지 마.”
뒷일을 예상한 듯, 엘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녀가 다급히 손을 뻗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데미안은 뒤로 물러났다.
“안 돼.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데미안. 제발…….”
결국 엘리가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데미안의 표정도 함께 일그러졌다.
나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준.
작은 웃음만으로도 내 세상을 찬란히 물들여 주었던.
나의 신. 나의 태양.
“……내 사랑.”
그 속삭임과 함께 데미안이 아득한 무저갱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