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27화(227/241)
“당신은…….”
데미안이 무어라 말을 잇기 도전, 여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왜 그랬어요?”
옅은 갈색머리에 녹안을 가진 여인이 대뜸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왜 엘리를 먼저 두고 떠났냐고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적어도 어떤 생각인지는 말해줬어야죠. 함께 궁리를 했어야죠! 왜 혼자서……!”
무어라 소리치던 여자는 울컥 차오르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데미안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엘리의 어머니이시군요.”
유리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데미안이 물었다.
“여긴 사후세계입니까?”
“……맞아요.”
유리아의 입에서 나온 긍정에, 데미안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엘리는 무사할까.
오직 그 생각만이 전부였다.
제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슬퍼하는 게 당연하죠.”
그때,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엘리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나요?”
“……!”
그 말에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엘리의 희생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만든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맞아요. 그 기분, 지금 엘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같아요.”
“…….”
“아니, 어쩌면 더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유리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게…… 내가 제일 후회하는 거예요.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데미안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같은 선택을 했던 사람으로서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망자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이해했다.
그녀가 데미안의 입장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유리아가 거칠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세요.”
“……예?”
“다시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해요.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도 하고요.”
“…….”
“얼른 가서 우리 딸 눈물을 닦아주란 말이에요!”
유리아의 말에 데미안의 눈이 잘게 떨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여긴 사후세계지 않습니까.”
“하지만 죽은 건 아니에요.”
유리아가 말을 받았다.
“기억하나요? 나는 소멸되기 전, 신수와 계약을 했어요.”
“계약이라면…….”
데미안은 신수를 통해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 아이를 살릴 아이, 그 아이를 구해주세요.”
설마…….
데미안의 얼굴이 깨달음으로 물들었다. 그제야 유리아가 흐리게 웃었다.
“신수는 세계수의 권속. 현생의 신수는 죽지 않았고, 당신은 그런 신수에게서 힘을 넘겨받았죠.”
데미안이 엘리를 위해 스스로 무저갱에 몸을 던졌고, 비로소 계약이 시작된 것이다.
데미안의 얼굴이 깨달음으로 물들자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
“그러니 다시 엘리에게 돌아가요.”
유리아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들의 중심에서부터 빛이 퍼져 나왔다.
백색의 공간 너머, 황금과 녹음의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엘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 텅 비었던 가슴이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자신은 갈 수 없는, 빛 너머의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리아가 말했다.
“넓은 세상을 느끼고, 얼굴에 주름이 질 때까지 오래오래 살다가…… 때가 되면, 그때 와요.”
“…….”
“그래도 늦지 않으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딸을 잘 부탁해요, 사위. 내 남편이 뒤늦게 딸을 찾아서 못난 꼴을 보이더라도 이해해 주고요.”
“…….”
“그리고…… 엘리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울음 섞인 목소리가 기쁨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칠게 눈가를 닦아낸 유리아가 데미안의 등을 부드럽게 밀었다.
“돌아가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찐하게 키스부터 해요. 아니면 다른 것도 괜찮고. 남자는 그게 전부예요. 알죠?”
“……아.”
데미안이 드물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유리아의 입장에선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뜨끔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사이, 어느새 데미안은 빛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빛무리 앞에서, 데미안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엘리에게 전해줄래요?”
황금과 녹음의 빛이 데미안을 감싸기 직전, 유리아가 용기 내 입을 열었다.
“부족하고 못난 엄마라 미안하고, 내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애써 웃는 얼굴 위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활짝 웃었다.
이윽고 눈부신 빛무리가 데미안을 완전히 감쌌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리운 공간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여긴…….’
나는 몽롱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아원으로 가기 전,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이었다.
좁고 낡아,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새지만 그럼에도 행복으로 가득하던 곳.
나는 시선을 내려 내 몸을 살폈다.
상대적으로 작은 손, 의자 밑에 닿지 않는 발.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은 꿈이구나, 하고 인지할 뿐이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볕이 유독 따스했다. 나는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보다, 팔을 베고 누웠다.
“졸려?”
그때,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쉽게 깨질 유리를 만지듯, 섬세했고 그만큼 다정했다.
나는 이 손길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내가 잠에 들기 전, 엄마가 항상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줬으니까.
‘좋다.’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어리광 부리듯 그 손에 머리를 비볐다. 그러자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이렇게 꿈이나 꾸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던 난 멈칫했다.
……꼭 깨야 할까?
이대로 눈 떠봤자 내게 남은 건 슬픔뿐일 텐데, 굳이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평생 꿈속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 이제 좀 쉬어도 되잖아. 난 너무 지쳤단 말이야…….
“이렇게 자면 불편할 텐데. 계속 자려고?”
그때, 엄마가 물었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가 옅게 웃었다.
“하하. 엄마랑 평생 같이 있으려고?”
“응. 엄마랑 평생 같이 있을 거야.”
“…….”
“이대로 계속, 엄마랑 같이 있을게. 혼자 두지 않을게.”
내 말에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도 멈췄다.
“엄마?”
의아해진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늘 엄마의 얼굴과 목에 자리하던 얼룩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 상황이 꿈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내 눈동자가 잘게 떨리자 엄마가 흐리게 웃으며 말했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엘리. 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엄마는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님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엄마, 하지만…….”
“알아.”
“…….”
“많이 고생한 것도 알아. 그간 수고한 것도 알아.”
“…….”
“그래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그래야 해, 엘리.”
사랑하는 사람들.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빠, 제리트 오라버니, 탈룸, 공작성의 하녀들, 그리고…… 사랑하는 데미안까지.
그때, 내 몸이 크게 전율했다.
느껴지지 않았던 감각들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현실로 다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건 타의가 아니었다.
힘들고 험한 일들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나의 무의식이 나를 꿈속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내 얼굴이 흐려지자 엄마가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듯이.
그러자 창밖 너머로 보이는 햇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의 주변이 천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꿈의 세계가 곧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엄마를 끌어안았다. 정말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눈물이 펑펑 나왔다.
“엄마, 미안해. 엄마 혼자 그 많은 고통을 끌어안게 해서 미안해.”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자 나의 죄책감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엄마가 내 등을 쓸어내렸다.
“엄마도 미안해. 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줬어.”
“엄마…….”
“하지만 엘리. 이건 알아줘. 엄마는 엄마라서 널 구한 게 아니야. 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였어. 그래서 엄마는 뭐든지 할 수 있었던 거야.”
“…….”
“네 아버지와 네 남편처럼. 그리고 너처럼.”
“…….”
“그러니 죄책감 가지지 마, 엘리. 나는 후회하지 않아.”
“…….”
“널 만나서, 내 인생은 구원받았으니까.”
엄마의 목소리에도 천천히 물기가 어렸다.
그사이, 빛무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엄마의 옷자락을 꽉 그러쥐었고, 엄마는 그런 내게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엘리, 엄마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완전히 밝아진, 백색의 공간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꽃가루들이 찬란한 햇빛과 함께 우리 주위로 축복을 내리듯 흩날렸다.
“나도 고마워.”
“…….”
“나를 딸로 받아줘서,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엄마.”
“…….”
“다음 생에 태어나면, 엄마가 내 딸 해줘. 내가 정말 잘할게.”
내 말에 엄마는 활짝 웃었다.
빛이 반짝였고, 내가 눈을 깜박였을 때 엄마의 형상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
텅 빈 손을 내려다보던 나는 결국 그곳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무언가 내 뺨을 간질이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나를 중심으로 황금과 녹음의 빛줄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
그 순간, 어디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내 또 다른 어머니였다.
내 꿈이 만들어낸 환청일 수도 있는데,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그리운 이름을 중얼거렸다.
“……데미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저곳으로 가면 데미안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주먹을 꽉 쥐었다.
엄마들이 준 삶이었는데, 그 소중한 삶을 쓸모없다고 생각했어.
살아 숨 쉬는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라 생각하면서도, 당장 나 자신은 쓸모없다고 생각했어.
‘이젠 포기하지 않을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처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빛의 입구 앞에 다다랐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검게 물든 공간 속에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아샤벨과 황후를 상대했던, 사기 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데미안은 없었다.
역시 아니었던 걸까. 모든 게 내 착각이자 희망이었던 걸까.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을 감고,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나처럼 쉼 없이 달려온 듯, 미약하게 바람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속에 본연이 가진 청량한 향기까지.
잠깐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몸을 돌리지 못했다.
“엘리.”
내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가 정말 환상 같아서. 고개를 돌린 순간 다 사라져 버릴까 봐.
“……미안해.”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정말 미안해. 다신 그러지 않을게.”
“…….”
“제발 용서해 줘.”
그 말에 그리움에 밀려,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미움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거짓말. 못 믿겠어.”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마음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그 말에 데미안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엘리, 나는…….”
“네가 진짜 데미안이라면.”
나는 곧장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내 말이 다시 그를 지옥까지 몰고 간 듯, 푸른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또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서 그에게 말했다.
“네가 진짜 데미안이라면, 나한테 키스해 줘.”
“…….”
“키스해 줘, 데미안.”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으나, 아주 찰나였다.
한 손은 내 허리를, 다른 손으로는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싼 그가 곧장 내 입술과 숨결을 앗아갔다.
“지금도 가짜 같아?”
서로의 체온이 같아질 때까지 한참 동안 나를 탐하던 데미안이 이마를 맞붙인 채 속삭였다.
“응, 아직 가짜 같아.”
나는 그의 목에 팔을 걸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다시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두 번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