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2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28화(228/241)
* * *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울었던 터라, 이런 격한 입맞춤을 받아들이기엔 내숭이 모자랐다.
내가 미약하게 헐떡이자 입술이 잠깐 떨어지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데미안은 겨우 차오른 내 숨을 다시 앗아갔다.
“잠깐, 데미안…….”
나는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과한 열기에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목에 감긴 팔에 힘이 풀리자 데미안이 입술을 붙인 채 속삭였다.
“이제 진짜인 것 같아?”
“그건 진작에…….”
대답할 힘도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집요하게 나를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이 데미안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힘겹게 숨만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그가 물러났다.
물론 허리를 감싼 팔엔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어?”
내 물음에 붉어진 눈가를 닦아주던 데미안이 말했다.
“네 어머니를 만났어.”
“우리 엄마를?”
“그래. 유리아 님을 만났어.”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오래전, 신수와 유리아 님의 계약 덕분에 나는 살 수 있었지.”
“내 아이를 살릴 아이, 그 아이를 구해주세요.”
“지금도 마찬가지야.”
“…….”
“유리아 님께서 또 다시, 나를 살려주셨어.”
데미안이 눈물진 얼굴로 슬프게 웃었다.
나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내 두 어머니들이 또 나를 살렸구나.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주었구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별다른 말은…… 안 하셨어?”
“……고맙다고 하셨어.”
“부족하고 못난 엄마라 미안하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
아.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또, 다른 말은?”
내 물음에 그가 내 눈물을 닦아주며 이마에 입 맞췄다.
“멋대로 선택한 것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키스하라고도 덧붙이셨지.”
“……거짓말.”
“정말이야.”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울다가 웃다니,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 ‘
엄마, 고마워요.
엄마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났어요.
정말 고마워요.
이마를 맞댄 채 웃던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맞잡았다.
* * *
엘리와 데미안이 검은 사기 속으로 들어간 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안쪽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사기가 조금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 또한 아니었다.
전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긴 했으나, 개중에서 낙오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어서 저 검은 폭풍을 없애야 했다.
“젠장…….”
에르하르트가 욕설을 중얼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신수는 아직도 엘프와 기사단을 도와 마물과 언데드를 막고 있었다.
신수는 세계수의 권속. 아직 엘리가 무사하단 소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기는 건재했다.
그렇다면 경우는 두 가지다.
숨은 붙어 있지만 엘리의 체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거나.
혹은, 엘리가 다른 곳에 힘을 써버린 경우.
‘그렇다면, 설마 데미안이…….’에르하르트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어릴 때, 밑에서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향해 부러진 검을 날렸던, 그래서 에르하르트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파비안이 웃고 있었다.
“안에서, 큭, 죽었나 봅니다.”
“닥쳐.”
에르하르트가 살벌한 목소리로 읊조렸지만 파비안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던진 검이 엘리 혹은 데미안, 둘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뻤다.
“공작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무사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랜 시간,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 으윽!”
그 순간, 파비안의 턱이 붙잡혔다. 강한 악력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에르하르트가 낯을 가까이했다.
“분명 입 다물라고 했을 텐데.”
에르하르트의 서늘한 적안이 번뜩였다.
“왜 황족 새끼들은 말을 한 번에 들어 처먹지 못하는 거지?”
“으으으!”
에르하르트가 검을 들어 파비안의 입가로 가져갔다.
‘설마.’
설마 정말 제 혀를 자르려고? 파비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마구 버둥거렸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어, 벗어나려고 했으나 에르하르트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에르하르트는 미동 없는 눈빛으로 그의 발악을 지켜보았다.
파비안을 죽이지 않은 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다시 사기를 일으킬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와 데미안이 다시 돌아오지 않자,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슬슬 한계에 치닫고 있었다.
“쓸모없는 말이나 나불거리는 혀는.”
“으어억……!”
“잘라버리는 게 좋겠지.”
그 말과 함께 차가운 검날이 파비안의 입꼬리 위로 내려앉았다.
잘그락, 이빨과 검날이 맞부딪히는 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의 금안에 두려움으로 인한 생리적인 눈물이 맺혔다. 헐떡이는 파비안에게 호응하듯, 에르하르트가 손잡이에 힘을 줄 때였다.
쿠웅-!
큰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다.
에르하르트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마물의 날뜀이 아니었다. 소리가 들린 곳은 검은 사기 속이었다. 사기가 점점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간신히 대피한 사람들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화, 황녀 전하께서는? 어디 가신 거지?”
“설마 사기에 잡아먹히신 건가?”
가라앉았던 불안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겁으로 일그러졌던 파비안의 입가에 언제 그랬냐는 듯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다.
정화는 실패했다. 공작이 어떻게든 지키려 했던 두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럼 저는 반역을 명목으로 슈에츠 공작과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들을 치워 버릴 수 있었다.
짜릿한 희열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때였다.
크르륵-
이상한 소리와 함께 몸집을 키웠던 사기가 우뚝 멈췄다.
그러더니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다시 쪼그라들었다.
콰직-!
큰 소리와 함께 응축된 사기의 구에 균열이 생겼다.
순식간이라도 사기가 퍼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신수가 보호막을 펼치기 위해 경계 태세를 갖출 때였다.
“어……?”
한데 그 균열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모두를 공포로 물들인 사기가 아니었다.
찬란한 녹음과 황금의 빛이 사기로 까맣게 변한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설마……!”
기대감 어린 탄성에 호응하듯, 균열이 더욱 늘어났다.
넝쿨이 휘어 감기듯, 두 빛이 사기를 완전히 감쌌을 때.
콰이앙!
큰 소리와 함께 사기가 폭발했다.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겨우 눈을 떴을 때, 부서진 빛의 잔해가 마치 꽃잎처럼 휘날렸다.
쿠웅-!
인간들을 탐하기 위해 날뛰던 마물들과 언데드가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더니 곧 먼지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이건……!”
활시위를 당기던 엘프들의 얼굴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어?”
그때 누군가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빛의 꽃잎을 맞은 순간, 피난 도중 부상당했던 곳이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다친 자를 일어나게 하는 힘.
“세, 세계수의 힘!”
겁에 질렸던 사람들의 얼굴에 환희가 차올랐다.
그러자 축복처럼 나풀거렸던 빛의 꽃잎이 다시 날아올랐다. 마치 나비들이 날아오르듯 아름다운 풍경에 모두 넋을 잃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나비들이 검게 물든 하늘을 감쌌다.
그 순간.
화아앗—!
빛이 퍼지는 소리와 함께 지평선 너머 태양이 떠오르듯이, 천천히 밝아지던 빛이 완전히 대지를 감쌌다.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점멸했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사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본래 사기의 구가 있던 자리엔 모든 악을 없애고, 정화를 일으킨 세계수가, 엘리가 거기 있었다.
그 기적 같은 모습에 모두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와아아아아!”
“신께서 다시 세계수를 이 땅에 내려주셨다!”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살았다는 기쁨에 탄성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의 치유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말도, 안 돼……!”
그 광경을 지켜보던 파비안이 부정을 내뱉었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탐하며 불러일으켰던 사기다. 그렇게 쉬이 사라질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몸속을 맴돌던 사기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힘을, 저 빛의 잔해에 빼앗긴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혼란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 파비안의 입가에 내려앉은 서늘한 검날 때문이었다.
“감히 그 더러운 눈으로 어딜 쳐다봐?”
에르하르트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딸이 모든 걸 없앴으니, 이제 네 피를 봐도 되겠지.”
“……!”
“아, 물론 죽이진 않을 거야. 쓰레기라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에르하르트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비안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에 에르하르트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아쉬운 소리를 냈다.
“확실히 혀가 없으면 증언이 힘들겠지.”
“……!”
파비안의 얼굴이 찰나의 안도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보이지? 이거.”
에르하르트가 눈썹을 으쓱이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빛의 꽃잎을 가리켰다.
“이게 아직 있으니, 혀는 다시 자랄 테지.”
“……!”
“안 그래, 황자님?”
에르하르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짐과 동시에 단면이 긁히는, 다소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파비안이 고통스럽게 발버둥 쳤다. 하지만 에르하르트의 말대로, 잘린 혀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픔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파비안이 제게 다가오는 에르하르트를 향해 빌었다.
“제, 제발 그만…….”
“어어,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어딜 가시나.”
에르하르트가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제대로 낫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번엔 다른 곳을 공격할 참이었다.
물론 완전히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엘리가 혼낼 테니, 적당히 너덜거릴 정도로만 손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 미친 새끼!”
그 외침과 함께 파비안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달려온 엘리가 파비안의 멱살을 틀어쥔 채 주먹으로 그를 내리치고 있었다.
“감히 내 남편을 건드려?”
그것을 시작으로 엘리는 마구 주먹질을 퍼부었다.
강한 분노를 띤 손길은 매서웠고, 그만큼 거침이 없었다.
살벌한 소리에 엘리를 향해 환호를 내뱉던 사람들조차 멈칫할 정도였다.
에르하르트마저 잠시 제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잊은 채 멍하니서 있었다.
“엘리! 진정해!”
“안 돼. 이런 놈들은 좀 맞아야 해!”
뒤따라온 데미안이 그녀를 말렸으나, 엘리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 이어진 주먹질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리던 엘리의 시선이 에르하르트의 검에 닿았다.
그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제 검을 등 뒤편으로 숨겼다.
“아빠, 그거 주세요.”
“……엘리, 이미 1 황자는 기절한 것 같다만.”
에르하르트가 축 늘어진 파비안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리고…… 우선은 보는 눈이 많으니 진정하는 게 좋겠구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엘리.”
이어진 두 사람의 말에 엘리가 그제야 멈칫했다.
분노로 잠시 흐릿해졌던 이성이 돌아오자, 천천히 눈앞의 상황이 인식됐다.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뒤늦게 엘리가 파비안의 멱살을 놓았다.
풀썩, 기절한 파비안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