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화(23/241)
‘누구지?’
나는 데미안과 손을 꼭 잡고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여기가…… 여기가 어디야? 너무 추워…….”
그녀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길이라도 잃으신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할머니의 복장은 다른 귀부인들보다도 좋아 보였다.
‘하녀장인 로이나도 이런 옷을 입지 않아.’
공작성의 사용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어디 많이 아프세요?”
“추워…… 너무 추워…….”
“일단 일어나 보시겠어요? 여기보다 안에서…….”
부축을 위해 할머니의 손을 조심스레 잡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자세히 보니 얼굴색도 좋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날지도 몰라.’
하지만 함부로 몸을 일으킬 수도 없다. 지금 그녀는 알 수 없는 패닉에 빠져 있다.
섣불리 이끌었다간 더욱 겁에 질릴지도 몰랐다.
나는 심각한 얼굴을 지워내곤 짓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내 물음에 멈칫하던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넌 누구니?”
“제 이름은 엘리예요. 제 친구인 데미안이랑 같이 산책하고 있었어요. 할머니는요?”
“나…… 나는…….”
그녀의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나는 할머니가 생각을 정리하도록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내가…… 할머니니?”
이윽고, 그녀가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할머니라고 불린 게 생소한 듯했다.
넋이 나간 눈빛으로 머리를 붙잡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때부터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역시 오클루먼시 병인 걸까.’
제국에는 불치병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클루먼시 병’이었다.
오클루먼시 병은 모든 기억이 차근차근 사라지는 병이었다.
현대의 치매와 비슷한 병이었는데, 치료법이 없다는 것마저 비슷했다.
‘오클루먼시 병에 걸린 사람을 불안하게 하면 병세가 더욱 악화된다고 들었어.’
나는 조금 굳었던 얼굴을 지우곤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저희랑 같이 놀아요! 할머니 손, 너무 차가워요.”
나는 로이나가 손수 매어 주었던 목도리를 할머니에게 둘러주었다.
“같이 가요. 저쪽에 예쁜 꽃이 잔뜩 핀 곳이 있어요! 엄청 따뜻해요!”
“……저기에 가면 따뜻한 곳이 있니?”
“네!”
크게 외치자 머뭇거리던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긋 웃으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이 눈치 빠르게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할머니는 왼손은 나, 오른손은 데미안과 맞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따뜻하구나.”
온실로 들어서자 할머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예쁜 꽃들을 보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 사그라든듯했다.
꽃을 구경하던 나는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길이라도 잃으신 거예요?”
“잘 모르겠어. 왜 내가 여기 있었는지…….”
나의 물음에 할머니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죠. 저도 많이 깜빡깜빡해요. 그렇지, 데미안?”
“……응.”
나의 눈빛에 데미안이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와 데미안이 맞장구를 치자 그녀의 얼굴이 한층 편안하게 풀렸다.
“할머니, 그럼 이름은 뭐예요?”
“……이름?”
“네. 아까 할머니라고 불리는 거 싫어하시는 것 같길래요. 헤헤.”
“이름…….”
멋쩍게 웃자 그녀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내 이름은…….”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질 때였다.
“비에라!”
온실 밖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온실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
목소리의 주인은 아만타 남작이었다. 우리를 발견한 남작이 일순간 얼굴을 굳혔다.
“비에라!”
“……마빈?”
어느새 다가온 할머니가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남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남작과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설마 둘 사람, 부부였어?’
그럼 할머니가 아니라 아만타 남작부인인 거고?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을 만난 터라,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남작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비에라.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
“마빈?”
“내가 얼마나…….”
남작은 감정이 북받치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일순간 할머니, 그러니까 아만타 남작부인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녀가 눈을 한번 깜빡였다.
“마빈…….?”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다시 되찾은듯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빈. 미안해요. 길을 잃어버려서…….”
아만타 남작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리 와. 이쪽에 있으면 위험해.”
“마빈, 하지만…….”
남작부인이 무어라 말하는데도 남작은 막무가내였다.
오클루먼시 병에 걸린 환자에겐 섣불리 화를 내어선 안 된다. 불안은 그녀의 기억을 더욱 잡아먹을 뿐이다.
그때, 그녀를 데리고 가려던 아만타 남작이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아내를 함부로 이용하지 마십시오.”
“……예?”
“제 아내의 아픔을 이용해 비겁한 수를 쓰지 마시라는 겁니다.”
아만타 남작이 독설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억울함에 한마디 하려는데, 데미안이 내 앞을 막아섰다.
“데, 데미안?”
“……엘리를 나쁘게 말하지 마세요.”
데미안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남작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아만타 남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공자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그저-”
“오해 아니에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남작의 말을 잘랐다.
“착한 사람이 엘리한테 그렇게 말할 리 없어요.”
잔뜩 날 선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데미안은 남작을 경계해서는 안된다.
‘데미안의 스승이 될 사람이니까!’
아만타 남작은 광산을 발견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무척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검을 쥐는 일은 드물었지만 오랜 연륜과 기술은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었다.
데미안은 그런 아만타 남작의 밑에서 더욱 숙련된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스승이 되어주실 분께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나는 얼른 데미안의 팔을 끌어당겼다.
“데미안, 하지 마.”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그만 해.”
나의 재촉에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곤 팔을 내렸다.
아만타 남작이 코웃음을 쳤다.
“……공작님께서 함께 데려오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는 내가 데미안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죽거렸다.
“제 부인에게 접근한 것도 이 때문이겠군요.”
“마빈.”
남작부인이 그만하라는 듯 그의 팔을 붙잡았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양녀로 들일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비겁한 수는 쓰지 마십시오. 제겐 통하지 않습니다.”
남작은 그 말만 내뱉곤 몸을 휘돌려 가버렸다.
남작부인이 무어라고 말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형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남작의 반응도 이해는 갔지만 솔직히 억울했다.
‘나를 싫어할 거라곤 대충 예상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
솔직히 나를 싫어하는 건 상관없었다. 익숙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데미안까지 미운털이 박혀버렸잖아…….’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 무조건적인 경계 태세는 좋은 게 아니야.”
“왜?”
데미안은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엘리가 그랬잖아. 당하고만 있지 말라고. 화가 나면 때리고 반격하라고.”
“……그건 그렇긴 한데, 나 말고 너한테 한 말이야.”
“하지만…….”
데미안이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걸.”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저 사람이 엘리한테 나쁜 말을 해서 화가 나. 그래서 그랬어.”
데미안이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한 거야……?”
그 모습에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데미안은 분노, 좌절, 슬픔 따위의 감정을 모르는 아이였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긴 했지만, 아직도 자신의 감정에 무딘 아이.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화를 냈다. 저항하고, 적으로 느낀 사람에게 검을 겨눴다.
그런 네게, 안 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아니. 잘했어.”
감정을 표출한 것만으로도 한걸음 나아간 셈이었다.
데미안은 타인을 대하는 게 미숙한 아이였지만,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된다.
데미안은 착하고 순한 아이니까 옆에서 잘 알려주면 될 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전장치는 하나 만들어두는 게좋겠지.
“데미안. 만약 네가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싶더라도, 내가 안된다고 하면 바로 그만둬야 해. 알았지?”
“엘리가 위험해도?”
“난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아. 있어도 빠져나갈 거야.”
당당하게 말하자 데미안의 눈빛이 존경심을 띠었다.
“응. 알았어.”
어이구, 이 순둥이. 나는 칭찬하듯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데미안이 뺨을 붉히며 눈을 꼭 감았다.
귀와 꼬리만 없을 뿐, 영락없는 강아지 같았다.
“공자님! 엘리 님!”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