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2화(232/241)
* * *
그것을 시작으로 황제의 얼굴이 검은 얼룩으로 물들었다.
“헉……!”
“저, 저건……!”
모두의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곳에 자리한 자들은 저 검은 얼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타인의 힘을 갈취했던 흔적이, 황제의 얼굴에 고스란히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벤터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듯, 살가죽은 힘을 잃고 뼈에 달라붙었다.
눈은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움푹 파였고, 위아래로 말라붙은 입술에선 쉬어버린 음성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어떤 마법도 사람의 ‘생명’을 뺏어갈 순 없었다. 물리적으로 공격해 목숨을 끊는 것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벤터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계수의 힘을 훔친 건 그의 오랜 선조다. 이미 죽고 없는 자들.
그러니 힘을 돌려받으려면 황족의 완전한 소멸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제를 이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었다. 엘리는 그의 몸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 힘을 조절했다.
“허, 헉, 헉……!”
그러자 벤터스가 물에 빠졌다가 건져 올려진 사람처럼 헐떡였다.
엘리는 그런 벤터스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 아직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좌중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 자리하신 분들께선 알고 계실 겁니다. 제 것이 아닌 마나는 절대 가질 수 없다는 것을요.”
“…….”
“바꿔 말하면 마나의 주인이 빼앗긴 자신의 힘을 다시 거둘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수의 힘을 다시 거뒀습니다. 그러자 어떤 상황이 벌어졌습니까? 그 즉시 몸이 사라져 가지 않았습니까.”
엘리는 아직도 헐떡이는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 증명이 됐겠지요.”
“…….”
“황족이 오래전, 세계수를 시들게 한 주범이자 약탈자라는 것을.”
“…….”
“그럼에도 확실하게 2차 확인을 원하신다면 구금되어 있는 1 황자와 2 황자를 데려와 다시 보여드리지요. 그들 또한 황족이니까요.”
그러자 방금 전까지 증명을 외치던 사람들이 모두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그때였다.
“야, 약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겨우 기력을 되찾은 벤터스가 힘겹게 쉰소리를 질렀다.
“내 힘이다! 그 힘은, 크흑, 원래 내가 가졌어야 할 힘이라고!”
엘리는 발악하는 황제를 싸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황후와 아샤벨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긴 했으나, 모든 악의 근원은 황제였다.
제 어머니들을, 어쩌면 제 자매였을지도 모르는 소수 일족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린 자.
하지만 그는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가해자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끝끝내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건 피해자들이었다.
“엘리. 이 거슬리는 자식에게 꼭 일일이 답을 해줘야 할까?”
에르하르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엘리에게 물었다.
“저도 알아요, 아빠. 무식한 자가 갖는 신념만큼, 답 없는 상황은 없다는 것을.”
“뭐……!”
울컥한 듯 쏘아붙이려던 벤터스가 돌연 멈칫했다.
“아빠? 아, 아빠라고?”
그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엘리와 에르하르트를 훑었다.
“네가…… 레일리의 딸이 아니었단 말이냐?”
“그 더러운 입에 내 어머니의 이름을 올리지 마.”
엘리가 싸늘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그, 그렇다면 너는…… 그 여자의…….”
벤터스의 떨리는 시선이 에르하르트에게 닿았다.
지금 에르하르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시무시했다.
“마, 말도 안 돼! 그 여자의 딸을, 어째서 레일리가……!”
겁에 질린 듯 벤터스가 뒷걸음질을 쳤다.
자식을 수단으로 이용한 자가, 타인의 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운 사람의 이야기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반역.”
그때,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황제가 외쳤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래. 반역이다! 슈에츠 공작이 공녀를 황녀의 신분으로 위장시켜 제국을 집어삼키려 한 것이로구나!”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벤터스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어리석은 건 여전하구나.
엘리의 곁에 있던 신수가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전설 속에서만 나온 신수의 등장에 벤터스가 눈을 홉떴다.
-내 너의 선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이 추악한 것.
“넌…….”
-세계수의 힘을 훔쳐간 것으로도 모자라, 수많은 소수 일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사용한 네 죄를, 정녕 모른다고 할 셈이냐?
“그, 그건…….”
벤터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렸다.
그 순간, 신수의 눈이 붉게 빛났다.
-네 영혼에서 오래된 악취가 나는구나. 그래, 그것 또한 네 그릇이겠지. 하면 어울리는 것을 주어야겠구나.
신수가 말을 끝마친 순간, 엘리의 손을 타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허락을 구하듯, 엘리의 곁에서 연기가 맴돌았다.
그에 엘리가 에르하르트를 돌아보았다.
제가 황제를 단죄해도 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연기가 벤터스를 집어삼켰다.
“으. 으아악!”
벤터스가 허둥거리며 제 가슴께로 파고드는 연기를 털어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사, 사기를 이용해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냐! 세계수의 힘을 가진 자가 어찌-!”
“이건 사기가 아니야.”
엘리가 스산한 얼굴로 읊조렸다.
“당신이 죽인, 수많은 소수 일족들의 영혼이지.”
“……!”
벤터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탑에 남은 영혼들이 유리아와 섀넌의 기억을 흡수해 준 덕분에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제가 누구인지, 제 가족이 누구인지도 깨닫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니 저도 제 먼 가족이자 친구인 그들에게 보답할 차례였다.
오랜 복수의 시작이었다.
“아, 아아아……! 저리 가! 저리가란 말이다!”
벤터스가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연기는 갖은 발악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검은 연기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참 예쁜 눈이구나.
언젠가, 벤터스가 했던 속삭임이 고스란히 귓가로 파고든 순간.
푹-!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큰 고통이 그를 덮쳤다.
“아아악!”
벤터스가 제 눈을 감싸며 발작하듯 울부짖었다.
생으로 눈알이 척출되는 느낌이었다.
“내 눈, 내 눈이!”
퍽 안쓰러운 울음이었으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엔 혼란만이 가득했다.
벤터스의 눈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황제는 고통을 호소하며 제 눈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눈을 감쌌던 손이 배를, 목덜미를, 복부를 연신 움켜쥐었다.
심술궂은 주인을 가진 마리오네트처럼, 그의 팔다리가 괴이하게 뒤틀렸다.
“사, 살려…….”
그가 힘겹게 구원의 손길을 바라며 손을 뻗었으나, 검은 연기는 그 간사한 혀마저 앗아갔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황제의 눈이 거꾸로 뒤집혔다.
쿠웅-!
큰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견디다 못해 기절한 것이다.
무너진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기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벤터스의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무서우셨나 보네요.”
엘리가 벌레 보는 듯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다, 시선을 들어 올렸다.
끔찍하고 추악한 광경에 귀족들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
엘리가 좌중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아직도 루멘치아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나요?”
엘리의 말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이번 안건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엘리의 말 한마디로 모든 정리가 끝났다.
“공녀님. 이자는 어떻게 할까요? 다시 감옥에 구금할까요?”
그레이스가 엘리에게 정중히 물었다.
“아니.”
엘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지낼 곳은 따로 있어.”
* * *
벤터스는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여긴……?’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그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어떠한 구속구도 보이지 않았다. 벤터스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역시 꿈이었구나! 지독한 악몽을 꾼 게야!’
벤터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악몽을 만든 엘리를 가만둘 수 없었다.
‘일단 그 계집이 정말 내 딸이 맞는지 확인부터……!’
그때 벤터스가 멈칫했다.
이곳은 황궁이 아니었다. 눈앞에 드리워진 철창과 축축한 바닥……. 감옥이 분명했다.
한데, 황궁 감옥이 아니었다.
주위를 살피던 벤터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곳은 그가 힘을 얻기 위해 소수 일족들을 가뒀던 탑 안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벤터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사, 살려줘…….”
그가 힘겹게 철창을 붙잡았다.
“살려줘, 제발! 제발! 내가 잘못했다. 벌을 달게 받을 테니, 제발 이곳에서만은 꺼내다오!”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헐떡일 때였다.
턱이 붙잡혔다. 뒤에서 속살거리는 목소리들이 여럿이었다.
“허, 헉……!”
벤터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윽고 고통이 이어졌다.
“아아아악!”
그의 비명이 탑 밖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누구도 탑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차라리 기절을 바랐다. 그러나 정신은 멀쩡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으며 잠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째서!’
꺽꺽거리며 고통스러워하던 벤터스는 문득, 엘리를 떠올렸다.
그 아이 짓이로구나.
그 아이가, 나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로구나…….
하지만 그 생각은 이어진 고통으로 인해 얼마 가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무덤이 된 탑에서는 며칠이고 몇 달이고 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고,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