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4화(234/241)
“수도 천도라니…….”
귀족들 중 누군가 넋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마땅한 반박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소수 일족이자 두 번째 세계수로서 새로운 거처를 찾겠다는데, 그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그들은 슬쩍 시선을 들어 엘리의 뒤편에 선 두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말이라도 잘못 꺼냈다간 목이 날아가겠군.’
엘리에게 반역이라 소리친 귀족들이 두 공작에게 어떤 꼴을 겪었는지 모조리 지켜봤다.
떠올리기만 해도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것이 슈에츠 공작의 지론이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눈이 마주치자 에르하르트와 데미안이 조용히 옆구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들은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새로운 황궁을 지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소란이 수그러든 지금, 즉위식을 치르는 것이 엘리 님께도 좋을 겁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헤론이 이어 말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일처리라면 아주 빠르고 신속한 친구들이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친구들이요?”
“네. 음…… 아마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황궁을 짓는 데 그것밖에 안 걸린다고?
일반적인 고층 건물도 완공되는 데에 한 달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한 달이라니.
믿기지 않는 시간 계산에 모두가 놀라자 엘리가 가볍게 그에 응수했다.
“일 처리가 빠른 친구들이 있어서요.”
“…….”
“기차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사람들이라 실력 하나는 보장해요. 그렇죠, 륀켈트 후작님?”
엘리의 부름에 저쪽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륀켈트 후작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황제와 황후의 처형이 치러질 때만 해도 륀켈트 후작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내가 바로 차기 황제 폐하의 대부란 말이야!”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쳐 댔다.
그러나 연이은 업무에 그는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힘들면 나중에 해도 된다고 엘리가 누누이 말했지만, 대부가 되어 도망칠 수 없다는 말로 끝끝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점점 의기양양하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자존심은 굽힐 수 없어서 억지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젠 한계에 달했는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끔뻑이고 있었다.
“……한 달. 그 이하로 봅니다.”
그 말과 함께 륀켈트 후작은 장렬히 전사했다. 곧장 잠에 빠진 듯,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명쾌한 대답에 엘리는 작게 웃으며 귀족들을 돌아보았다.
“물론 수도를 북부에 천도하면 여러 리스크가 있겠죠. 하지만 기차를 이용해 교통에 따른 불편함을 해소하고, 의회를 만들면 어떨까 해요.”
그간 제국법 제정은 귀족 회의를 통해 이뤄졌다.
귀족들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황궁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황제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교육의 다양화를 실시하고 수도를 옮겨 세력을 분산시킨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평민에서 귀족이 될 수는 없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은 귀족의 것.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개혁은 무용지물이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의회 사람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자리를 갖는다면 그에 따른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수도 쪽 귀족들이 반대할 테지만…….”
엘리는 가볍게 말끝을 늘였다.
“어차피 저에게 반역이라 외쳤던 사람들이니, 처분에 앞서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면 해결될 것 같아요.”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말이죠.
그러며 생긋 웃는 얼굴에, 내심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귀족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 가르침을, 슈에츠 공녀는 누구보다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럼 빠르게 처분을 끝내야겠군.”
에르하르트가 그리 말하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처분. 귀족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수도를 옮긴다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상기되어 있던 엘리의 얼굴이 점점 차분해졌다.
“이것이 마지막이겠구나.”
“……네.”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같이 가자.”
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헤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가 걱정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내가 지켜볼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너라.
신수, 샤키도 앞발로 가슴털을 툭 툭 두드리며 힘을 보탰다.
엘리는 옅게 웃으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향한 곳은 황궁 아래 마련된 지하 감옥이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정한 온기로 물들었던 엘리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굳게 닫힌 문을 열자마자 실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는 왼쪽 옥사 앞에 멈춰 섰다.
웃음소리의 주인은 마테오였다.
희미하게 스며드는 햇빛이 그토록 기쁜지, 감옥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히죽 웃고 있었다.
푹 파인 볼과 퀭하게 들어간 눈매, 씻지 못해 검은 얼룩으로 가득한 얼굴은 한때 제국의 황자였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카르티아를 사기의 주범이라 고발한 후, 마테오는 이상증세를 보였다.
누군가가 자꾸만 저를 죽이려 한다며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테오에게선 그 어떤 사기도 보이지 않았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것 같다고 의사는 진단을 내렸으나, 마테오는 믿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대도! 내 옆에 서 있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마테오는 그야말로 악을 썼다.
그럼에도 아무도 꺼내 주지 않자 벽을 박박 긁었고, 종국에는 잘못했다며 엉엉 울었다.
그러나 여전히 옥사는 열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마테오의 울음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멈췄던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데 그 소리가 실실 새어 나가는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간수가 옥사를 확인했고, 그가 증언하기를.
마테오가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고 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어머니셨군요…….”
그 이후, 마테오는 완전히 정신을 놔버렸다.
그러니 그에게는 법으로 따져 묻는 일이 필요치 않았다. 남은 삶이, 그에게 꼬리표처럼 붙은 죄책감이 형벌이었으므로.
엘리는 오른쪽 옥사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벽에 기대, 멍하니 앉아있던 파비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리.”
죽어 있던 그의 금안에 이채가 맺히자, 에르하르트가 미간을 좁혔다.
“지금이라도 혀와 눈을 뽑을까.”
엘리가 허락하지 않았으니 안된다고, 늘 습관처럼 말하던 데미안이 침묵했다. 이번만큼은 그와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족이 약탈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엘리가 두 번째 세계수라고 해도 모든 일 처리를 도맡아 할 수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유일하게 ‘멀쩡한’ 황족인 파비안이 모든 것을 인정했다.
“……공녀의 말이 맞다. 루멘치아 황가는 소수 일족을 억압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게다가 황족이 꽁꽁 숨겨 놓은 약탈의 증거 또한 순순히 내놓았다. 덕분에 마지막 남은 수군거림마저 사그라들었다.
지독히도 인정하기 싫지만, 어쨌든 엘리가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건 파비안 덕분이었다.
구겨진 두 남자들과는 달리 엘리는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시선이었지만 그마저도 파비안은 행복했다.
“……여긴 왜 온 거지? 또 물어볼 것이 있나?”
그렇게 묻는 파비안의 얼굴에 미약한 기대가 맴돌았다.
그에 엘리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여기 오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러 왔어.”
“……!”
어떠한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의 금안이 잘게 떨렸다.
“네가 도움을 준 건 고마워. 그건 인정할게. 하지만 네가 내 아버지를, 내 남편을 공격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 그리고.”
“…….”
“네가 아무리 잘못을 빈다고 해도 그 몸에 흐르는 피가 루멘치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엘리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는 내 가족을, 내 친구들을 애 낳는 가축 취급했어. 그게 설사 네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해도, 난 너를 용서할 수 없어.”
파비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감옥에 갇혀 빛 한 줌조차 볼 수 없는 것보다, 엘리가 더 이상 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절망스러웠다.
“나, 나는…… 원해서 루멘치아로 태어난 게 아니야.”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원해서 그의 아들로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하지만 황자님 다운 권력은 누렸지.”
“…….”
엘리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아샤벨과 함께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어. 네가 황제라 고해도, 아니, 설사 신이라고 해도 함부로 타인의 목숨을 건드릴 수 없어.”
누군가는 파비안의 방식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파비안은 엘리를 가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갈취했다. 엘리의 행복을 위해 제 목숨을 버렸던 데미안과는 달랐다.
아니,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한들 엘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데미안이었다.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강제할 수 없었다.
“황궁은 살아 있는 당신들의 무덤이 될 거야.”
“……!”
“부디, 남은 삶이 고통스럽기를 바랄게.”
엘리가 선언하듯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엔 어떠한 연민도 보이지 않았다. 파비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 잠깐……!”
엘리가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리자 파비안이 다급히 다가와 창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엘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감옥을 빠져나왔다.
옥사를 벗어나, 밖으로 빠져나온 엘리는 밝은 햇빛을 마주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눈부신 빛 때문일까. 정신이 멍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내렸다.
뒤따라 온 에르하르트와 데미안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빠, 이제 다 끝났어요. 이제 정말, 끝이에요.”
“글쎄,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네?”
엘리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에르하르트가 양팔을 벌렸다.
“어…… 뭐 하시는 거예요, 아빠?”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엘리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혼내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그의 눈동자에 어려 있었다.
“그러니 이리 와.”
에르하르트가 그리 말하며 팔을 까딱였다.
“네 두 어머니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느냐.”
그 말에 엘리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위로를 해줄게요.”
유리아가 에르하르트와 섀넌에게 해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위로였다.
그제야 엘리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이제야 울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사람처럼.
그러나 엘리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에르하르트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버지 또한 아직 너무 어리나 강해져야만 했던 딸의 등을 토닥였다.
“그동안 고생했다.”
“……네.”
“잘 참았어. 네가 자랑스럽다.”
엘리는 눈을 꼭 감았다. 꾹꾹 참았던 눈물이 기어코 흘러내렸다.
“아까 웃어놓고, 지금은 다시 울보가 됐어.”
“……아빠 때문이에요.”
“그래, 나 때문이지.”
장난스러운 핀잔에 에르하르트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 갈까.”
“……네.”
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어느새 다가온 데미안이 반대편 손을 잡았다.
엘리가 옅게 웃었다.
한참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궁과 멀리 떨어진 교외였다.
하늘이 유독 높고, 싱그러운 풀잎이 가득한 곳엔 울창한 나무 하나만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엘리가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한 이유이기도 했다.
마차에서 내린 엘리가 천천히 그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에르하르트와 데미안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바라보았다.
나무 앞에 선 엘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늦었지.”
고작 몇 마디만 꺼냈을 뿐인데, 벌써부터 목소리가 떨렸다.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 찾아오고 싶었어.”
엘리가 손을 들어 나무에 둥글게 매여 있는 명패를 쓸었다.
[누구보다 용감했던 유리아와 섀넌, 영원한 안식을 위해 이곳에 편히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