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5화(235/241)
엘리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괜찮지? 오가는 사람들도 없어서 되게 조용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햇빛이 한가득 내리쬐는 곳.
그러다 가끔 더우면 그늘에서 편히 쉴 수도 있는 나무 아래를, 두 어머니들은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 이후로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무너뜨린 루멘치아 황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엘리는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그들의 이름이 치욕으로 물들었을 때, 그때 찾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더 이상 루멘치아는 이 나라에 황가로서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 있되 살아 있을 수 없는 자들로서 평생을 살 것이다.
“다 끝났어, 엄마들. 이제 정말 끝이야.”
엘리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니까…… 이제 편히 쉬어도 돼.”
그러나 웃는 얼굴과는 달리 눈매는 슬프게 일그러졌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건 슬퍼서 우는 거 아니야. 기뻐서 우는 거야.”
엘리가 변명이라도 하듯, 붉어진 눈가를 벅벅 닦으며 말했다.
“사람은 기쁠 때도 눈물이 나는 법이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엘리가 코를 한번 훌쩍이고선 다시 씩 웃었다.
“응, 맞아. 사실 조금 슬프긴 해. 그리고…… 솔직히 오늘이 마지막으로 우는 거라고 말은 못 하겠어.”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지나가다 본 꽃이 너무 예뻐서, 수다를 떨다가 먹은 디저트가 너무 달콤해서 같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나는 두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고, 그때마다 슬퍼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 잠식되진 않을게.”
잠깐 지나갈 비구름에 온몸이 흠뻑 젖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다른 슬픔이 몰려와도 이겨낼 수 있도록 단단해질게.
그래서.
“……반드시 행복해질게.”
그러니 엄마들도 때로는 나비처럼, 저 하늘의 구름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엘리가 나무에 이마를 대며 눈을 감았다.
그때, 따스한 것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어느새 다가온 에르하르트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옅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속에 어떤 감정이 깃들어있는지,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텅 비어있던 가슴이 따스한 무언가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따스함을 참지 못한 엘리가 말했다.
“안아주세요.”
언젠가, 이 삶이 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엑스트라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처럼, 엘리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에 에르하르트가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에 깃든 편안한 미소에, 그 또한 따라 웃으며 말했다.
“또 어리광이 늘었군.”
“아빠 딸이니까 그래도 돼요.”
엘리가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하여튼, 제멋대로라니까.”
에르하르트가 피식 웃을 때였다.
“싫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자 묵묵히 두 부녀의 대화를 듣던 데미안이 말했다.
에르하르트의 얼굴이 언제 웃었나는 듯 와락 일그러졌다.
“누구 마음대로 내 딸을 끌어안아?”
“전에 부러우면 빨리 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렸을 땐 엘리보다 키가 작았지만, 지금의 데미안은 에르하르트에게 견줘도 작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이건 누가 봐도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밤톨만 한 게 무슨……. 그리고 내 딸은 아무 데도 못 준다.”
“죄송하지만 그 딸을 제게 주신 분이 공작님이십니다.”
“저런, 잠깐 꿈을 꿨나 보군. 내가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했을 리가 있나.”
“저희 결혼식을 축하해 주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만…….”
데미안이 전혀 서운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설마 엘리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시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건……!”
에르하르트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제 딸을 제 손으로 직접 늑대 같은 놈에게 시집보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젠장, 하필이면…….”
그가 이를 갈며 이마를 짚었다.
다른 놈들이라면 억지로라도 떼어놓을 수 있겠지만, 하필이면 클라이더였다.
멀리 갈 것 없이, 제 친우만 생각해도…….
다시금 몰려오는 두통에 그가 끙, 하고 작게 앓는 소리를 했다.
그에 엘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아빠가 말문을 잃다니.’
당황한 아빠의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유치하게 이게 뭐예요.”
그 웃음에 두 사람이 멈칫하고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 이건 아빠로서…….”
“공작님께서 먼저…….”
앞다퉈 나오는 하소연에 그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하지만 확실히 키는 아빠가 더 크긴 하지.”
“……!”
그 말에 데미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엘리, 그건, 아주 미세한…… 그래 봤자 몇 센티밖에…….”
“큰 변화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부터 시작하지.”
금세 의기양양해진 에르하르트가 애써 반박하려는 데미안의 노력을 짓밟았다.
에르하르트의 얼굴에 승리감으로 물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하지만 아빠. 그래 봤자 내 남편이 데미안인 건 변하지 않아요.”
“……!”
그러자 이번에는 에르하르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엘리가 밉지 않게 둘을 흘겨보았다.
“둘 다 그만 좀 해요. 안아달라는 말에 이렇게까지 옥신각신할 일이에요? 가족끼리 서로 포옹하는 게 뭐 어때서요.”
그 말에 둘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저보다 몇 배나 큰 덩치를 가져놓고선, 제 말 한마디에 반박도 못하고 시무룩해 있는 것이 퍽 귀여웠다.
잔뜩 꾸중을 듣는 아이들 같았다.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싸우면 되겠어요?”
“할 일이라니, 아직 또 있단 말이냐?”
에르하르트가 얼굴을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숨 좀 돌리는 줄 알았는데, 또 일이라니.
데미안도 그와 같은 생각인 듯 표정이 좋지 못했다.
“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엘리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침대에 누워서 푹 잔 다음, 가족들끼리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밥 먹고 싶어요.”
에르하르트가 멈칫하더니 픽 웃었다.
“또. 다른 건 없고?”
“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일인데요…….”
엘리가 말끝을 늘이며 데미안쪽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데미안이 움찔 몸을 떨었다.
장난이라지만 방금 전까지 결혼 무효 이야기를 했었기에, 그는 그녀의 시선 하나만으로도 조금 불안해졌다.
그때, 엘리가 씩 웃으며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인사드리러 가야죠. 이렇게 예쁜 남편을 제게 주셔서 고맙다고.”
“……어?”
그런데 상상치도 못한 말이 돌아왔다. 데미안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너희 부모님, 한 번도 뵈러 가지 못했잖아.”
“…….”
“사실 진작에 갔어야 했는데, 나도 깜빡하고 있었어. 정말 미안해.”
“…….”
“이제라도 가서 인사드리자. 지금처럼 예쁘게 잘 살겠다고.”
그에 데미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충격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얼마 안 가 그의 푸른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응. 그러자.”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가 활짝 웃었다.
“눈물을 무기로 쓰다니. 하여튼 여우 같으니.”
에르하르트가 장난스럽게 핀잔하며 데미안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애정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
엘리와 에르하르트는 닮은 구석이 이만큼도 없었다. 다들 정말 친자가 맞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책임감은 슈에츠들의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저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었다.
데미안이 아직도 눈물이 어려, 붉어진 눈매를 휘며 웃었다. 헝클어진 머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울다가 웃으면 못나진다. 남자는 외모다. 관리 못하면 버려질걸.”
“……노력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결국 에르하르트는 픽 웃어버렸다.
엘리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저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이따금씩 햇빛이 스며들었다.
엘리가 천천히 눈을 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과 똑같은 하늘인데도 유독 맑고 푸르러 보였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이유가 된, 소중한 가족들이 함께 있었다.
살아남은 것이 죄라고 생각하던 제게, 행복을 알려준 사람들.
이보다 든든한 것이 또 있을까.
엘리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서 가요, 우리 집으로.”
두 사람이 힘차게 나아가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쏴아아, 나뭇잎이 인사하듯 바람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