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6화(23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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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수도 이전 소식이 알려지자 수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잡았던 몇몇 귀족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북부는 마물이 많습니다. 기차를 설치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갈 테고,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를 겁니다.”
“게다가 북부가 황궁을 세울 만큼 영지가 넓은 곳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었다.
수도에 인구가 몰리는 건 당연하다. 마물들은 세계수인 나에겐 덤벼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빠는 그들의 염려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보다 근본적인 방향으로.
데미안과 함께 북부에 득시글거리던 마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한 달 이하라고 호언장담하던 륀켈트 후작 말대로, 탈룸을 비롯한 까마귀 수인들은 무려 2주 만에 새로운 황궁을 만들어냈다.
흩날리는 눈발 아래, 완공된 황궁의 자태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마물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신수인 샤키가 정화까지 마쳤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남은 구실까지 잃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수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북부로 향한 후였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었는지, 대부분 나와 함께 재판을 봤던 귀족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너그럽게 웃어주었다.
그러자 반대했던 귀족들은 덜컥 겁이 났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북부로 거주지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보다 추운 날씨 때문에 수도 토박이들은 퍽 견디기 힘들 텐데. 역시 권력에 눈먼 사람들다웠다.
“이래서 돈에 눈먼 것들은 안된다니까.”
내 머리를 정리해 주던 이모가 혀를 쯧쯧 찼다.
“언니, 말.”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메이의 지적에 이모가 입술을 삐쭉이며 툴툴거렸다.
라티오넬의 몰락을 위해 다시 감옥에 갇혔던 이모와 메이는 얼마 후, 다시 풀려났다.
어느 순간, 이모와 메이가 라티오넬의 실체를 녹화한 영상석을 퍼뜨린 사람들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매들의 사면을 주장했고, 그렇게 이모와 메이는 용감한 시민이란 이름과 함께 정정당당히 감옥을 나왔다.
‘물론 그렇게 여론을 만든 데에 아빠의 힘이 쓰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모와 메이 덕분에 라티오넬을 수월하게 무너뜨릴 수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족도 찾았으니 하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메이는 계속 이곳에 남아 나를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메이 뜻이라면 그러라고 말했고, 내가 사랑하는 세명의 하녀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사,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대관식 준비로 바쁘게 돌아다니던 아셀이 문득 창밖을 확인하곤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발 디딜 틈 없겠는데?”
웬만한 일엔 잘 놀라지 않는 이모 또한 입을 떡 벌렸다.
이모 말대로 새로 지어진 황궁을 향해,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 중엔 평민도 있었고, 타국의 높으신 왕족도 있었다.
세계수는 한때 대륙을 지탱했던 신의 축복이었다. 그런 세계수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니,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 일터였다.
“다 되었습니다, 엘리 님. 한번 일어나 보시겠어요?”
로이나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게 늘어뜨린 금발은 세 명의 하녀들이 정성껏 관리해 준 티가 났다.
장미가 그려진 순백색의 하얀 드레스는 제뮈엘 살롱의 재단사들이 나를 위해 날을 새 가며 열심히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목덜미부터 가슴을 부드럽게 감싼 목걸이엔 녹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외출 기념으로 데미안이 사주었던, 목걸이의 보석이었다.
사실 시장에서 산 것이라 보석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내 눈엔 그 어떤 목걸이보다 아름다웠다. 아까워서 목에 걸어보지도 못했는데,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체인이 녹슬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이 보석만큼은 가지고 들어가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산 물건이니까.’
그래서 제리트는 보석만 따로 빼, 대관식과 어울리는 완벽한 목걸이를 만들어주었다.
“엘리 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하녀들이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하녀들의 옷에도 내가 어릴 때 선물해 주었던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잔뜩 흠이 지고, 색이 바래 버린 싸구려 브로치였으나, 그들은 단 한 번도 빼지 않았다.
내가 도둑의 딸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한 명의 아이’로 봐준.
내게 다정함을 알려준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오늘같이 기쁜 날, 함께해 줘서 고마워.”
“흐어엉.”
내 말에 울음보가 터졌는지, 아셀이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좋은 날에 울면 어떡해?”
“하, 하지만…… 흐엉…….”
“자, 볼.”
나는 쉬이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셀에게 선심 쓰듯 한쪽 볼을 내밀었다.
“이제 내가 황제 되면 못 찔러봐.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흐어엉…….”
그 말에 아셀이 눈물을 닦으며 내 볼을 콕, 찔렀다. 이바나가 진짜 찌르면 어떡하냐며 찰싹 손을 때렸고, 아셀은 “여전히 말랑해-!” 하며 엉엉 울었다.
하여간 못 말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그레이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공녀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황궁 기사 단복을 갖춰 입은 그레이스가 정중히 말했다.
그레이스는 이제 신전의 소속이 아닌, 황궁의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거나 묻는 내게,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여기 있으니까.”
짧고 간결한 말이었다. 무어라도 묻고 싶었는데, 싱긋 웃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넋을 잃고 말았다. 결국 타이밍을 놓쳤고, 구체적인 이유는 묻지 못했다.
“오늘도 잘생겼다, 그레이스. 기사 단복이 참 잘 어울려.”
내 장난스러운 너스레에 그레이스가 멈칫했다.
“……너도 예뻐.”
“응? 잘 안 들려.”
“너, 너도 예쁘다고.”
그레이스가 귀 끝을 물들이고서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 따님이 이렇게 매력적이어서야, 원.”
그때,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깔끔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아빠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이 한시도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겠구나. 불안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아빠가 미약한 한숨을 내쉬자 그레이스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아빠! 데미안은요?”
대관식 입장은 부인, 혹은 남편과 함께하는 것이 관례였다.
“순서를 가로챘지. 어찌나 째려보던지, 아직도 뒤통수가 따갑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며 뒷목을 쓸었다.
“엘리.”
다음으로 나온 목소리는 전보다 진지해져 있었다.
“이번엔 정말 아빠와 딸로서, 네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
“허락해 주겠느냐.”
아빠가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내 결혼식 때처럼, 아빠의 허리춤엔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매듭이 묶여 있었다.
정복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낡고 초라해, 누군가는 말렸을 테지만 끝까지 고집했을 아빠를 생각하니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빠 해주실 거예요?”
“……네가 원한다면.”
결혼식을 올렸던 그날과 똑같은 대화.
다른 게 있다면, 잔뜩 긴장한 쪽은 내가 아니라 아빠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처럼 크게 한번 숨을 들이쉬고는, 큼지막한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그럼 가볼까요, 아버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눈썹을 으쓱이며 말하자 아빠가 피식 웃었다.
“그래, 따님.”
대관식은 이례적으로 야외에서 치러졌다.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눈 내리는 날씨가 걱정되었지만 신이 오늘을 미리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북부를 뒤덮었던 눈이 뚝 그쳤다.
맑게 갠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꼭 축복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오늘로서 오랜 약탈자인 루멘치아가 무너지고 제국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광스러운 장면을 함께 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황궁 밖으로 나와 아빠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황제 폐하 만세!”
“두 번째 세계수님 만세!”
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시선이 모두 내게 향해 있다.
제단으로 나서기 전, 데미안이 샤키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미안의 다정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긴장되니?
샤키가 물었다.
“조금은요. 하지만 그럴수록 당당해져야죠.”
-맞는 말이구나. 자, 이제 가자꾸나.
샤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조금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그 말 한마디에 여러 감정이 묻어났다. 그래서 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할 수 있어요. 저, 아빠 딸이잖아요.”
그 말에 아빠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이윽고 아빠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딸이지.”
아빠는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놔 주었고, 데미안이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잡았다.
“폐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미안이 손등에 입 맞추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꾹 참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클라이더 공작.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테니 지금부터 적응하도록 해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데미안이 내 장난을 가볍게 응수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가실까요, 폐하.”
“좋아요.”
나와 데미안은 함께 제단으로 나아갔고, 그 옆을 샤키가 따랐다.
붉은 카펫 양 옆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엘프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두 번째 세계수임을 받아들이고 충성하겠다는 뜻이었다.
본래 황제의 관은 교황만이 씌울 수 있었다.
하지만 교황은 악에 빠져 언데드로 변모했다. 그에게서 황관을 수여받을 이유는 없었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나는 내가 스스로 쓰기로 했었다.
그런데 재단 앞엔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베티.”
고아원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녔던, 울보 꼬마 베티였다.
올해 12살. 내가 아빠를 찾아 입양을 가던 때와 비슷한 나이가 된 베티가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린아이가 앞에 선 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제국인들이 나를 황제로 선택했음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 일을 꾸몄으리라 추정되는 아빠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빠가 능청스럽게 내 옆에 서있는 데미안을 가리켰다. 하지만 데미안이 했다 한들, 아빠도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었을 터였다.
‘하여튼.’
나는 피식 웃으며 제단 앞에 섰다. 데미안이 샤키와 함께 옆으로 비켜 주었다.
“많이 컸네. 베티.”
“응. 나 키 엄청 컸어. 언니가 나만 했을 때보다 클걸?”
베티가 짓궂게 웃었다.
“아직 한참 멀었어. 더 자라야 해.”
“당연하지. 어른이 되면 언니보다 커질 거야.”
베티가 새침하게 말하고선 목을 가다듬었다.
“제국의 새로운 태양에게 묻겠습니다. 그대는 제국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듯, 또렷한 목소리였다.
“맹세합니다.”
“두 번째 세계수로서 아픈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제국과 대륙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이 대답이 끝나면 황관을 쓸 차례였다.
그러나 베티는 질문을 끝내지 않았다.
“행복해질 것을 맹세합니까?”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그러나 정말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배가 빵빵 해지도록 강하게 흐읍, 숨을 들이쉬었다.
“맹세합니다!”
그 대답에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움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베티가 배시시 웃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악몽을 쫓아줘서 고마워, 언니.”
베티가 황관을 씌워주며 내게 속삭였다.
“언니는 그때부터 내 영웅이었어. 나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영웅.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들기 전, 손을 잡아준 행동 하나만으로 저 어린아이가 나로 인해 내일을 꿈꾼다는 사실이, 어른이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기뻤다.
이윽고 내 머리 위로 황관이 씌워졌다.
베티가 내게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는 몸을 돌려 재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샤키와 데미안이 그런 나를 따라 양 옆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슈에츠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그 순간, 하늘에서 펑! 하고 폭죽이 터졌다. 엄청난 양의 꽃가루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늘엔 아무것도 없는데…….’
깜짝 놀란 나의 시야에 곧, 한쪽에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는 아르펜이 보였다.
나의 세 번째 가족이자 이제는 자매가 된, 괴짜 과학자였다. 하늘을 눈짓한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을 시작으로 천천히 좌중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내려온 이모와 내가 사랑한 하녀들이 눈물을 훌쩍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제일 처음으로 도착한 아만타 남작 부인은 남작과 함께 인자하게 웃고 있었고, 제리트는 그 뒤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고 있었다.
탈룸과 그의 일족들은 격하게 손을 흔들며 나의 즉위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도, 나는 내가 마주했던 많은 사람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아빠와 데미안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내 편.
그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함께 걸어줄, 나의 가족들.
그들의 따스한 미소를 보자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한 줌의 불안함마저 사라졌다.
미소 짓던 나의 시야에 문득 나비 두 마리가 들어왔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나비가 곧 겨울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속에서, 나는 사라지는 나비를 향해 씩 웃었다.
행복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