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3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38화(238/241)
“왜 이걸 제게…….”
“그건 저도 모릅니다. 슈에츠 공작님께서 이 서신을 폐하의 담당 기사께 전달하라는 말씀뿐이셨습니다.”
레이스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서신을 받아 들었다. 궁금증보다도 명령의 수행이 먼저였다.
그런데 엘리에게 향하던 도중 가장 만나기 께름칙한 사람을 마주치고 말았다.
데미안과 그의 보좌관 토미였다.
하필이면 엘리를 보러 갈 때 데미안을 만나다니.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데미안이 원체 경계가 심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독 그레이스에겐 날을 세웠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사람이 눈치란 게 있으면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은 저를 싫어한다. 그것도 꽤 많이.
‘그건 아마도…… 엘리의 습관적인 플러팅 때문이겠지.’
엘리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그만큼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전속 기사가 된 그레이스에게도 표현의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저를 향한 엘리의 표현이 대부분 “잘생겼다”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레이스는 다소 곤란해졌다.
그때마다 데미안이 싱긋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으니까.
그래, 바로 지금처럼.
때로 사람의 미소는 칼날보다 두려운 법이다. 두 공작의 ‘숙청’을 보면서 직접 머리에 새긴 사실이었다.
그레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클라이더 공작님.”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데미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경. 이른 시간부터 무슨 일입니까?”
“아, 슈에츠 공작님께서 제게 서신 전달을 맡기셨습니다.”
그레이스의 말에 데미안의 시선이 손에 들린 서신 위로 내려앉았다.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미안이 그리 말하며 서신을 받아 든 순간이었다.
함께 동봉하지 않은 것인지 팔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이건.’
아델란이 주연으로 나오는 오페라의 티켓이었다.
돈 주고도 못 사서 웃돈을 몇 배나 주어야 겨우 구할 수 있는, 아주 값진 티켓이었다.
그러나 그 귀한 것을 보는 데미안의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웠다.
‘저 티켓…… 엘리에겐 무사히 갈 수 없겠구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그레이스는 데미안에게 티켓을 내밀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데미안은 그 티켓을 서신과 함께 챙겼다.
살벌한 것만 같았던 표정 또한 덤덤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얼떨떨한 그레이스를 뒤로한 채, 데미안이 정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신을 찢어발기지 않아서 놀라셨죠?”
그런 그레이스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토미가 속삭였다.
그레이스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요.”
“겉으론 저래 보이셔도 속으론 엄청 질투하고 계실 겁니다.”
그리 말하는 토미의 얼굴에 지긋지긋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저 여우…… 아니, 공작님께선 폐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시거든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토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인사와 함께 다시 몸을 돌렸다.
‘생각만큼 집착이 심하진 않은가 보구나.’
그레이스는 작게 안도하며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슈에츠 공작님께선 어째서 내게 서신 전달을 부탁하신 거지?’
에르하르트의 짓궂은 속내를 알리 없는 그레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집착이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던 그레이스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데미안의 마음은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엘리는 아델란의 오페라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직접 초대장을 보냈으니,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관람할 터였다.
바꿔 말하면, 저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더더욱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가 좋아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데미안은 또다시 차오르는 어두운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며, 엘리가 있을 정무실 안쪽으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 말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제국의 건국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타국의 사절단이었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를 알현할 수 있어서 저희 왕국에도 큰 영광입니다.”
들려오는 대화와 시간대로 보건대, 이제 슬슬 끝나갈 시점인 듯했다.
‘이 일이 끝나면 엘리도 조금 쉴 수 있을 테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폐하.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에 뵐 때는 제 손자와 함께 만나 뵈어도 되겠습니까?”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데미안의 몸이 우뚝 굳었다.
슈에츠 공작 다음으로 꼬마들을 놀리는 데에 진심이었던.
“내 손자 중에 아주 키 크고 잘생긴 아이가 있는데. 마침 영애 또래란다.”
그 말 한마디로 어린 데미안의 경계 대상 2순위에 등극한, 클로비스 루디아의 목소리였다.
서신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곧장 자각하고 바로 힘을 빼긴 했지만, 이미 서신은 구겨진 뒤였다.
데미안이 얕은 한숨과 함께 손을 들어 이마를 꾸욱 짚었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과거의 말이 어른의 짓궂은 장난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클로비스 루디아는 그가 전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엘리가 만든 치유 붕대를 대륙 전역으로 퍼뜨려 준 사람이었다.
새로운 제국 건국에 대한 대륙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클로비스의 공이 컸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데미안의 마음은 쉬이 맑아지질 않았다.
‘……이것도 모두 공작님의 계산이겠군.’
굳이 그레이스를 통해 아델란의 서신을, 지금 이 시간에 전달하라고 한 이유는 제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임이 분명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딸이 한순간에 다른 놈의 부인이 되었으니, 못마땅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그는 데미안의 집착이 웬만한 사람보다 훨씬 심한 것을 알고 있었다. 더더욱 딸이 걱정될 터였다.
하지만 데미안이 엘리 앞에선 꼼짝 못 한다는 걸 안 이후론, 가끔 이렇게 짓궂은 짓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건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얼른 엘리에게 가라’는 아버지로서의 응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 좀 해봐라’는, 장인으로서의 심술이었다.
‘물론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문제였다.
집착하지 말자. 속으로 수천 번 되뇌어봐도 그때뿐, 도통 나아지질 않았다.
후우.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는 사이,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안녕하십니까.”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데미안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사절단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사절단이 황송하다는 듯 연거푸 손을 내저었다. 황제의 부군이자신수의 힘을 이어받은 사람이었으니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소까지 함께였으니, 데미안에 대한 호감도는 더더욱 높아졌다.
‘이런…….’
하지만 클로비스는 그 미소 속에 깊은 어둠이 숨어 있음을 눈치챘다.
아무래도 손주를 언급한 것을, 저 질투 많은 공작이 들은 모양이었다.
사실 그녀의 손주는 가정까지 있는, 그저 상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간 붕대 유통을 맡아왔기에 엘리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만…….
‘그 말이 지금의 공작에게 통할리 없겠지.’
클로비스가 빠르게 판단을 끝냈을 때였다.
“저, 공작님.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눈치 없는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데미안과 함께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수작이었다.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나 클로비스가 단호히 그 말을 잘라냈다.
어서 빨리 공작이 황제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어야 했다.
오랜 세월을 겪어, 발달할 대로 발달한 클로비스의 눈치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클로비스가 그렇게 말하니, 하는 수 없었다. 사절단은 아쉬운 기색과 함께 물러났다.
홀로 남겨지자 데미안의 입가에 웃음이 천천히 지워졌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한 데미안이 노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폐하.”
“왔어?”
그의 부름에 엘리가 곧장 고개를 들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 피곤할 법도 한데, 그녀의 입가엔 여전히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서신이 왔어?”
“예.”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신을 내밀었다.
즉위 이후, 데미안은 업무를 볼 때만큼은 그녀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썼다.
“어, 이건…….”
서신을 확인한 엘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델란이 보낸 것이 분명한 오페라 티켓이었다. 언제든지 와도 된다는 듯, 날짜는 쓰여 있지 않았다.
“음…….”
엘리가 티켓을 바라보며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닮은 구석이 없나 싶다가도 저런 표정을 지을 땐 슈에츠 공작이 떠올랐다.
“왜 그러십니까?”
“이번 주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주.
마침 그도 일정을 비워둔 시간대였다. 아니, 일정이 있었다고 해도 어떻게든 시간을 비웠겠지.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 입안 가득 맴돌았으나, 데미안은 억지로 참았다.
그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잘 쓰지 않던 안경까지 꺼내 착용했다.
안경은 눈빛을 가려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어서, 단둘만 남겨졌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이곤 했다.
그런데 그때, 엘리가 티켓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델란에겐 미안하지만 나중에 가야겠어.”
“다른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응. 아주 중요하게 만날 사람이 있거든.”
그가 알기로 그녀가 당장 이번 주에 만나야 할 주요 인사는 없었다.
엘리가 좋아하는 오페라까지 포기해 가면서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잡은 서류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으나, 꾸역꾸역 참아 내며 물었다.
“……많이 중요한 일이십니까?”
평정심.
데미안은 그 단어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말이 나와도 절대 드러내지 않을 만큼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응. 오랜만에 남편이랑 오붓하게 보내려고. 요즘 들어 키스도 제대로 못 했거든.”
후드득.
그러나 그의 다짐은 엘리의 말 한 마디에 들고 있던 서류와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