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4화(24/241)
목소리의 주인은 이바나였다.
이바나가 헐레벌떡 우리를 향해달려 왔다.
“어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무슨 일 있어요?”
“아만타 남작님을 뵙지는 않으셨나요?”
“아, 방금 전에 만났어요. 남작부인이랑 함께 있었거든요.”
순순한 대답에 이바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공자님, 엘리 님. 다음부턴 남작부인을 뵈어도 그냥 피하세요.”
“왜?”
내 물음에 이바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남작부인께서는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큰 병을 앓고 계시거든요. 기억이 자꾸 사라지는 병이라네요.”
이바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린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려운 듯했다.
“앞으로 더 심해지실 거예요. 워낙 몸이 좋지 않으신 분이라서요.”
“왜 몸이 안 좋으신데요?”
이바나가 망설이다 말했다.
“……아만타 남작님과 남작부인 사이엔 아드님이 한 분 계세요. 제리트 님이시죠. 남작부인께선 제리트 님을 낳다 몸이 많이 상하셨어요. 출산을 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도 여럿 있답니다.”
이바나는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해주려는 듯했다.
“기억을 잃는 병을 앓으면, 어른이라고 해도 한순간에 아기가 되어 버릴 수 있고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기는 통제하기 힘들어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죠.”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글쎄요. 저도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요. 듣기로는 기억을 잃는 환자들은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을 만나면 기억을 되찾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바나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클루먼시 병은 기억을 잃으며 점점 퇴화하는 불치병이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피하라고 한 것일 테고.
하지만 남작부인의 병세는 그렇게까지 심해 보이지 않던데.
남작을 보자마자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고.
“그러니 공자님, 아가씨. 앞으로 남작부인을 뵈었을 땐 다른 시종에게 먼저 알려주세요. 아시겠죠?”
이바나가 약속을 받아내듯 물었다.
오클루먼시 병에 걸린 사람은 통제하기 힘들다. 어른의 몸으로 아기가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두는 게 답일까.
덜덜 떨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으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난 그냥 어물쩍 웃어 넘기기로 했다.
이바나가 옅게 한숨을 내쉬다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중에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눈을 맞추기 위해 상체를 숙였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 그만 들어가셔요. 날이 더 추워지고 있어요.”
“응. 가자, 데미안.”
나는 데미안과 손을 잡은 채 공작성 안으로 들어왔다.
* * *
아만타 남작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작부인, 비에라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얼굴로 남작을 힐끔거렸다.
“여보…….”
“위험해서 시종들을 잔뜩 붙여놨더니.”
낮게 가라앉은 남작의 목소리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몰래 사라져 버릴 줄이야.”
“……여보, 나는.”
“알아. 그 순간만큼은 당신이 당신이 아니라는 걸.”
남작은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비에라는 기억을 잃는 병을 앓고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지만, 날이 갈수록 사고의 빈도가 잦아졌다.
시종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그들의 눈을 피해 저택을 벗어났다.
참다못해 소리를 지른 날 밤, 또다시 그녀가 사라졌고 절벽 근처에서 잠든 부인을 찾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영영 아내를 잃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녀를 묶어둘 수도 없었다.
비에라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를 사랑하던 사람이었고,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건 자신이었다.
비에라가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기뻤다. 비에라는 아이가 찾아와 주길 손꼽아 기다렸으니까.
하지만 출산을 기점으로 비에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리고 지금, 덜컥 기억을 잃는 병까지 얻게 되었다.
아직까지 제국의 의술로는 오클루먼시 병을 고칠 수 없었다.
해서 남작은 일단 광물 개발을 아들, 제리트에게 맡기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그녀 곁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기억을 계속 잃어가는 건 모든 걸 잊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깊은 죄책감에 아만타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남작의 중얼거림에 비에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제가 고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일이 벌어진 후였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비에라는 애써 밝게 웃었다. 자신이 우울해할수록 남편의 얼굴엔 더욱 근심이 늘었다.
“그래도 오늘은 그 아이들 덕분에 살았어요.”
그녀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화제를 바꿨다.
“……아이들?”
비에라의 말에 관자놀이를 짚고 있던 남작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빈, 당신도 봤잖아요. 금발머리 여자아이요. 그 아이가 제 손도 녹여주고, 목도리도 둘러줬어요. 게다가 따스한 온실로 데려가 주기까지 했죠.”
비에라가 밝게 웃었다.
“정말 착하고 천사 같은 아이들이에요.”
남작이 오랜만에 화사하게 피어난 아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연기일 수 있다.
공작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비에라가 아픈 사람이라는 소식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제 부인에게 접근한 것도 이 때문이겠군요. 양녀로 들일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비겁한 수는 쓰지 마십시오. 제겐 통하지 않습니다.”
왜 이토록 마음이 무거운 것일까.
남작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비에라가 옅게 웃었다.
“마빈.”
그녀의 주름진 손이 남작의 손위로 내려앉았다.
“내일 나와 함께 가요. 다시 아이들을 만나는 거예요.”
“…….”
“그리고 함께 사과해요. 그래 줄 수 있죠?”
남작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비에라는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한참 후, 남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에라는 활짝 웃었다.
* * *
다음 날, 나는 데미안과 함께 방에서 놀고 있었다.
“데미안, 너 피부 진짜 좋다.”
“엘, 엘리…….”
정확히 말하면 나는 데미안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은 채 뺨을 조물거리고 있었고, 데미안은 눈을 꼭 감은 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부드럽지? 나보다 좋은 것 같아.”
“아, 아니야. 엘리가 더 좋을 거야.”
“아니야. 네가 더 좋아. 만져볼래?”
나는 선심 쓰듯 뺨을 살짝 옆으로 틀어주었다.
그러자 데미안이 화들짝 놀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난 못 해. 내가 어떻게…….”
“그럼 나 더 만져도 돼? 네 뺨 만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정말?”
데미안이 눈을 크게 떴다. 이내 뻐끔거리던 입을 꾹 다물곤 고개를 끄덕인다.
“으응…….”
승낙이 떨어졌다. 이때다 싶은 마음에 얼른 데미안의 뺨을 쪼물거렸다.
너무 많이 만져서 그런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귀여워! 나는 데미안을 꼭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로이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만타 남작님과 남작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이나가 문을 열자, 정말로 남작과 남작부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공자님. 아가씨.”
남작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인사를 올렸다.
곁에 있던 남작부인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상태는 어제보다 훨씬 좋은 듯했다.
“어쩐 일로 오셨나요?”
혹시 아직도 따질 일이 남았나?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남작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대뜸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죄송합니다.”
“남, 남작님?”
“제가 뭣도 모르고 공자님과 엘리 님을 오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거듭 그렇게 말하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당황해 입만 뻐끔거렸다.
어른,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에게 이런 사과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당황해 눈만 굴리는 나와는 달리, 데미안은 무표정했다.
방금 전, 잔뜩 당황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아만타 남작은 그가 발견한 광물로 큰 부를 얻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광물의 쓰임새는 조금 늦게 발견된다.
소설 속에서는 이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남작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작부인이 걱정되어서 다른 일을 제대로 못한 거야.’
그러니 자연스럽게 광물의 개발이 늦어진 거겠지.
어제 태도를 보아, 남작은 부인에게 지극정성인 듯했다. 간병인이 상주해도 안심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 입을 열었다.
“그럼 사과를 받아들이는 의미로 작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무엇입니까.”
남작은 결의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주실 건가요?”
“네.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작은 어떤 부탁을 해도 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 화내지 마세요.”
“……예?”
“오클루먼시 병에 걸린 환자는 쉽게 혼란에 빠진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부인께 화내지 마세요.”
내 말에 남작의 얼굴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