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4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41화 (완결)(241/241)
에필로그 2
따스한 기후인 동부, 클라이더 령.
그곳의 영지민들은 오늘따라 상기된 얼굴이었다.
“오늘이 바로 폐하께서 영지를 방문하시는 날이라지?”
“폐하의 첫 번째 외부 일정이 우리 영지라니……. 믿기지가 않아.”
루멘치아 황가가 무너지고 새로운 황가가 들어선 만큼, 타국과의 교류를 우선할 거라 생각했다.
황실로 한가득 쏟아진 타국의 서신들이 그 증명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첫 번째 외부 일정을 동부로 정했다. 황제의 부군이자 현 클라이더 공작의 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제일 먼저 공작성으로 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는 공작령에 위치한 작은 교회로 향했다. 많은 인원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 셋이서만 그곳을 찾았다.
교회 뒤편의 작은 언덕.
그곳엔 선대 클라이더 공작 부부가 잠들어 있었다.
대개 귀족들의 시신은 가문에서 지정한 땅에 묻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클라이더의 역대 가주들은 죽기 전 자신이 묻힐 곳을 직접 정했다. 자신의 아내와 처음 만난 곳이거나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영면을 취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출입에 제안은 없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은 한 번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데미안에게 무덤 위치를 알려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에르하르트에게, 데미안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난 다음에, 그때 찾아뵙고 싶습니다.”
데미안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공작 부부의 아들이었다. 그 고난을 이겨내, 겨우 살아남은 아이.
이를 대단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눈앞에서 진실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은 언제나 데미안을 시험하려 들었다.
그래서 데미안은 그를 증명하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본래 제 것이 맞는데도, 그 어린아이가 피와 비명으로 물든 전쟁터로 내몰려야 했다. 아들임을 인정받은 후, 만나 뵙겠다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데미안은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비석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을 꽉 쥘 뿐, 비석을 만지는 것조차 머뭇거리고 있었다.
너무 늦은 저를, 원망하고 계시진 않을까 망설여졌다.
“네 아버지는 살아 있을 때부터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거라고 말했지.”
그런 데미안을 향해 에르하르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으로 만난 장소거든.”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햇빛이 더없이 찬찬 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데미안, 이걸 한번 보겠느냐.”
그때, 에르하르트가 품속에서 오래된 종이를 꺼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건…….”
“네 아버지의 유언장이다.”
“…….”
“지금 네게 주어야 할 것 같구나.”
데미안은 에르하르트가 내미는 유언장을 천천히 받아 들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펼치는 손길이 조금 떨렸다.
[나의 하나뿐인 친우에게.만약 자네가 이것을 읽게 된다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겠지.]
죽음을 말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난 항상 자네에게 걱정이 많은 양반이라며 나무랐어. 부인과 함께 웃고만 살아도 부족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자 최악을 가정할 수밖에 없더군.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내 부인은, 우리 아이는 어떡할까.
그리고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만약 부인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혼자 남겨질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신기하게도 곧장 자네의 얼굴이 떠오르더군.
인정하기는 싫지만 객관적으로 자네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아버지는 장난스럽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내가 정말 이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줄 테니 내 가족을 지켜주게.슬픔에 빠진 자네에게 할 부탁은 아니란 걸 알아. 하지만 먼저 간 친우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네.
내 아내를, 우리에게 찾아온 축복을 지켜주게.
그리고 만약 우리의 아이가 이걸 보게 된다면.]
그다음 문장은 작성하는 데 망설여졌는지, 잉크가 조금 번져있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이 편지를 볼 때쯤엔 우리는 네 곁에 없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네가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가 사랑한다고 계속 말해줬는데, 그것이 네게 전해졌을지 궁금하단다.
비록 네 옆에 실재하지는 못하지만 부디 엄마, 아빠가 계속 너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네 모든 삶을 축복함을 알아주기를 바라. 엄마, 아빠의 삶에 찾아와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
유언장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데미안은 말없이 손을 들어 비석 위 글자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손끝에 닿는, 죽음을 뜻하는 음각이 그제야 생생히 느껴졌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겪어본 적이 없으니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그들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기적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데미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낮은 목소리는 몇 번의 망설임을 담아낸 듯, 작게 떨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데미안의 시선이 무너지듯 아래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엘리였다.
“같이 인사드릴까?”
엘리가 꽉 쥔 데미안의 손위로 제 손을 올리며 옅게 웃었다.
“데미안, 네 덕분에 나는 존재조차 몰랐던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었어. 다 너희 부모님 덕분이야.”
“…….”
“그러니까 같이 감사 인사를 드리자.”
그리 말하는 엘리의 눈동자에도 먹먹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엘리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 또한 여러 번 자책의 파도에 휩쓸렸기에.
하지만 여기서 무너진다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그의 부모님이었다.
그러니 무너지지 말고, 함께 웃어 보이자. 엘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데미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함께 비석을 바라보았다.
“잘 살게요, 저희.”
엘리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예쁜 남편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황제의 남편이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도록 애지중지 잘 돌보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너스레에 데미안은 결국 픽 웃어버렸다.
엘리도 따라서 웃으며 데미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문득 불어온 바람이 부부의 머릿결을 흩뜨렸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에르하르트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떨어뜨려 놓고 싶은 마음이 살짝 사그라들 만큼, 두 부부는 편안해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데미안의 큼지막한 손을 장난치듯 꼼지락거리던 엘리가 툭 내뱉듯 물었다.
“몇 명이 좋을까?”
“응?”
데미안이 반대 손을 들어 바람에 헝클어진 엘리의 머릿결을 정리해 주며 되물었다.
“우리 아이 말이야.”
그러나 이어진 말에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우뚝 멈췄다.
엘리는 그를 모르는 듯, 여전히 데미안의 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몇 명이 됐든 축복이겠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정해 놓으면 계획을 세울 때도 더 편하지 않을까?”
“자, 잠깐, 엘리, 계획이라니, 무슨…….”
“난 세 명이면 딱 좋은 것 같은데. 데미안, 네 생각은 어때?”
엘리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데미안의 하얀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문득 장난으로 뽀뽀해 달라고 졸랐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 오랜만에 나타난 복숭아다.’
엘리가 무의식적으로 그의 뺨을 콕 찔렀다.
그러자 그가 뺨이 눌린 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나, 나는 아직 아이 같은 건 생각도…….”
“아…… 설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거야?”
예상 못 한 난관에 엘리는 다소 난감해졌다.
황제가 된 이상 미래를 위해서라도 후계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남편인 그가 아이 생각이 없다고 말하니 조금 곤란해졌다.
“그건 절대 아니야!”
그때, 엘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데미안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녀와 저 사이의 아이라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출산엔 많은 고통이 따른다. 여자 혼자 오롯이 그 고생을 떠안는다는 점이 특히나 그랬다.
아비로서 냉정하단 말을 들을지 몰라도, 데미안은 엘리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그건 제 자식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에르하르트가 빠르게 동의했다.
“아이라니. 그 일은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데미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꼭 파렴치한 도둑놈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무엇보다, 이 밤톨 같은 놈이 제대로 남자 구실을 하는지도 아직 모르지 않느냐.”
그래서 마지막 말은 그가 생각해도 유치한 억지였다.
신수에게 ‘그 여우가 세상에 글쎄!’ 하며 시작한 하소연만 해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하지만 엘리 앞에선 그 음심을 숨기는 데미안이었으니, 이 억지가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음, 그건 아닐걸요.”
“……뭐?”
엘리의 단언에 에르하르트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걸 엘리, 네가 어떻게 알지?”
“하하, 글쎄요.”
엘리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 저쪽에 꽃이 폈네.”
그러곤 폭탄을 던진 것도 모른 채 어디론가로 향했다.
에르하르트의 살벌한 시선이 데미안에게 닿았다.
데미안이 못 본 척 시선을 피했다.
“사위.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에르하르트가 싱긋 웃으며 데미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꽈아악.
강한 악력이 퍼부어지는 소리가 생생했다.
“……저 지금까지 부모님과 이야기 중이었습니다만.”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소형견처럼 따라다니던 순간이 엊그제 같아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운 데 모르는 척하는 것이냐. 이 아버지는 서운하구나.”
“그렇게 따라다닌 적 없습니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사위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아. 개족보라 가끔 왔다 갔다 할 거니까 적응해. 싫으면 우리 딸 남편 자리부터 내려놓든가.”
가히 터무니없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엔 이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에르하르트의 얼굴에 유치한 심술이 어렸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모습을 지켜볼 유리아가 싫어할 것 같았다.
“허튼짓하면, 알지?”
“…….”
“내 딸한테 잘해.”
다소 살벌한 말과 함께 그가 데미안의 어깨를 놔주었다.
그러곤 가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머뭇거리던 데미안이 엘리 곁으로 다가갔다.
후우.
혼자 남겨진 에르하르트가 다소 복잡한 심경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하여튼, 누구 아들인지.”
작게 중얼거리는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나란히 놓인 비석 위로 내려앉았다.
그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비석과 시선을 맞췄다.
많은 상실을 겪은 붉은 눈동자에 오랜 그리움이 스쳤다.
그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가 다시 시선을 들었다.
엘리가 꽃을 들어 데미안의 귀 뒤에 꽂아 주고 있었고, 데미안은 귀 끝을 붉힌 채 그런 엘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성장한 아이들이 서로의 행복을 마주하고 있었다.
에르하르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고맙다.”
툭, 어깨를 두드리듯 비석 위로 주먹을 내려놓은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외롭던 내게 가족을 줘서 고마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그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아빠!”
“그래.”
따님의 부름에 그가 짧은 인사를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스한 바람이 스치는 비석 위로 두 마리의 나비가 내려앉았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