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5화(25/241)
‘내가 입양을 바랄 줄 알았겠지.’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이쪽에서 사양이다.’
남몰래 흥, 코웃음을 친 나는 남작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인, 저와 함께 산책해주세요!”
“……예?”
남작부인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겨우 원하시는 게 산책뿐이십니까? 다른 부탁은 없으시고요?”
“네. 전 산책이 좋아요! 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가 데미안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부인께서 제 친구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로이나도 바쁘고, 아셀도 바쁘고, 데미안도 바빠서 저랑 놀아줄 시간이 없대요…….”
시무룩한 척 어깨를 늘어뜨리자 남작과 남작부인이 흠칫 몸을 떨었다.
“나, 하나도 안 바쁜…….”
반박하려던 데미안이 나의 시선에 합, 입을 다물었다.
얼른 표정을 푼 나는 눈치 보듯 그들을 힐끔거렸다.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일주일에 딱 세 번만 같이 놀아주시면 안 되나요?”
망설이듯 입술을 벙긋거리던 남작부인이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엘리 님께 제가 짐이 될 텐데요.”
“제가 더 귀찮게 굴어서 괜찮아요!”
“하지만…….”
“온실도 같이 가요. 보여드리고 싶은 꽃이 많아요.”
아이처럼 조르자 남작부인이 처연히 웃었다.
이윽고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 둘러주었다. 내가 그녀에게 둘러주었던 목도리였다.
“……영광입니다, 엘리 님.”
주름이 가득한 그녀의 미소는 햇살처럼 따사로웠다.
* * *
며칠 후, 찬바람이 부는 따스한 오후.
나와 남작부인은 햇빛을 받으며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 남작부인의 상태는 좋은 듯했다.
“그래서, 이곳 공작성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러셨군요. 어쩜, 그렇게 험한 곳에서……. 북부로 오시는 것도 어려운 결정이셨겠어요.”
내가 이곳에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자 남작부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내 마음에 공감해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남작부인의 위로가 생경했다.
남작부인이 가식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이 없어, 부인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려웠다고 말해야 옳았다.
귀족에, 게다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건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음…… 쪼끔 무섭긴 했는데 괜찮아요! 고아원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에요!”
나는 애써 헤헤 웃어 보였다.
구박받는 건 익숙하기도 했고, 딱히 큰 타격을 받지도 않으니 상관없었다.
‘자본을 얻는데, 이 정도 시련은 기본이지.’
전생의 경험을 떠올리며 코코아를 홀짝이는데, 머리 위로 따스한 체온이 내려앉았다.
남작부인의 손이었다.
“고생이 많으셨군요.”
“어…….”
그녀의 눈빛과 손길은 너무나 따스했다.
로이나와 다른 하녀들이 쓰다듬어 줄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친할머니가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가슴께가 조금 간지러웠다.
“별로 안 힘들었어요. 아이들도 모두 착했거든요. 물론…… 아닌 애들도 있었지만.”
“설마 엘리 님을 괴롭힌 아이들이 있었나요?”
“네. 그런데 공작님께서 다 쓸어버렸…… 아니, 전부 해결해주셨어요.”
뒤늦게 말을 수정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신기하군요. 슈에츠 공작님께서 남의 일에 먼저 나서 주다니.”
그런가?
소설 속에서 슈에츠 공작은 표현은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속내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친구의 아들을 찾기 위해 온 제국을 뒤지는 것만으로도 알 만하잖아.’
그 다정함의 범주가 데미안에게 한정되어 있었지만.
“공작님께선 남의 일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공작님께선 데미안을 고아원에서 구해주셨는 걸요.”
“그건…… 아마 죄책감 때문이시겠죠.”
죄책감? 예상치 못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이걸 말씀드려도 되는지 걱정스럽습니다만……. 제 기억이 온전할 때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죠.”
남작부인은 조금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아니면 엘리 님께 이런 말씀을 드릴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약 15년 전, 제국에 대전쟁이 일어난 것을 알고 계신가요?”
그 이야기라면 잘 알고 있었다.
전쟁고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선대 클라이더 공작님과 슈에츠 공작님께서 대전쟁에 출정하셨고, 제국에 승리를 안겨주셨어요. 두 공작님께서 둘도 없는 친우가 된 것도, 힘든 전쟁을 겪은 후랍니다.”
남작부인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승전보를 들은 저희는 돌아오신 공작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어요. 그런데, 공작님께선 웬 여인과 함께 계셨답니다.”
여인?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책 속에는 공작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한 마디도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작고하신 유리아 님이시랍니다. 유리아 님은 소수 일족의 사람이셨어요.”
소수 일족이면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을 왜…….’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남작부인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슈에츠 공작가를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이라고 불러요. 그 이유를 아시나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슈에츠의 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대로 광증을 앓았어요.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저주 때문에, 듣기로 반쯤 미쳐버린다더군요. 슈에츠 영지가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랍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소설은 데미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슈에츠 공작의 일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공작님은 전쟁에 나가실 수밖에 없어요. 전쟁이 광증 해소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남작부인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유리아 님께서 오시고 난 후, 공작님의 광증이 사라졌어요.”
“어떻게요?”
“글쎄요……. 소수 일족은 다양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으니, 그들의 힘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밖에요.”
남작부인은 다시금 설명을 이어갔다.
“해서 공작님께선 유리아 님과 결혼을 올리셨죠. 처음엔 좀…… 많이 삐걱거리시긴 했지만, 두 분은 정말 열렬히 사랑하셨답니다. 유리아 님께선 정말 사랑스러운 분이셨거든요.”
유리아 님을 떠올리는 남작부인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남작부인도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인데, 슈에츠 공작이라면 어땠을까.’
대대로 내려오던 광증을 없애준 유일한 사람.
‘소수 일족이라도 데려올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런데 그게 슈에츠 공작의 죄책감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하자 남작부인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수 일족의 마법은 다른 마법과는 다릅니다. 발현하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해요.”
“대가요?”
“네. 유리아 님은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 대대로 내려오는 악마의 힘을 없애고자 하셨어요. 그래서 공작님께서 출정하신 틈을 타 마법을 쓰셨고…….”
남작부인은 말끝을 늘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늘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작부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위로하듯 남작부인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옅게 웃었다.
“……그 사고가 일어난 후, 공작님께선 모든 수교를 단절하셨어요. 하지만 클라이더 공작님께선 꾸준히 서신을 보내오셨죠.”
여기부터는 내가 아는 원작의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클라이더 공작님께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서신을 보내오셨어요. 그때, 슈에츠 공작님께선 처음으로 닫힌 성문을 개방하셨어요. 처음으로 응답하신 거죠.”
“그럼…….”
“예. 클라이더 공작님과 공작부인께서 이쪽으로 오시던 길에 사고가 일어났어요.”
황제가 일으킨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친우를 만나러 가다가 일어난 사고인 줄 알았는데.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왜 그가 데미안에게 죄책감을 가졌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부인을 잃은 것도, 친우를 잃은 것도.
전부 다, 제 잘못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나 또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으니까.
내 표정이 우울해지자 남작부인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엘리 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그리 냉정한 분은 아니시라는 생각이 드네요.”
남작부인이 주름 가득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엘리 님을 데려오셨잖아요.”
“헤헤. 말씀 감사해요.”
‘그것보다는…….’
무엇보다 데미안이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으니, 나를 데려갈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내가 유용하게 쓰일 것도 같았을 테고.
“하지만 엘리 님. 평민과 귀족의 혼인은 금지되어 있답니다. 정말 귀찮으셨다면 공작님께서 엘리 님을 모실 가문을 알아볼 리 없으시겠죠.”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남작부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이렇게 정정하신 분이 한순간에 변해 버린다니.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내 머리를 가만가만 쓸어주며 말했다.
“이렇게 엘리 님과 함께 있으니, 제 아들이 생각나네요.”
“아드님이 있으세요?”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척 눈을 빛냈다. 그러자 남작부인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죄송합니다만 엘리 님의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답니다. 나이도 아주 많은 데다가, 광산 일로 바쁘거든요.”
아들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부인, 저 그 광산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