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2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28화(28/241)
“사실은…… 이거 드리려고요.”
내가 내민 것은 두통약이었다.
아만타 남작부인에게 공작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공작성에서 오래 일했다던 로이나를 붙잡고 물었다.
공작님이 앓는 광증이 대체 무엇인지를.
“글쎄요. 저도 제대로 여쭤보진 못했지만 아마 두통 아닐까요?”
“두통?”
“네. 공작님은 별로 표정 변화가 없으시지만, 가끔 인상을 크게 찌푸리실 때가 있어요. 두통을 겪으시는 것 같이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나는 로이나의 물음에 말없이 머리를 짚었다. 그러곤 기우뚱 몸을 기울였다.
“아. 머리가…….”
“헉! 엘리 님!”
깜짝 놀란 로이나는 빠르게 두통약을 가져왔고, 나는 그 약을 작은 종이에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은 내 손에 들려 있다.
“가끔 두통을 앓으신다고 들었어요.”
“…….”
“이거 공작님 드릴게요.”
공작은 약이 들어 있는 종이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쩜 이리도 마음이 고우신지.”
프란츠가 허허 웃었지만 공작의 무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를 위해 가져왔다?”
한참의 침묵 후, 공작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네?”
“어째서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한 거지?”
공작이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짙은 적안이 조금 무서웠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음, 걱정되니까요.”
“걱정?”
“네…….”
그러나 삐딱한 말투에 마지막 대답은 소심하게 줄어들었다.
“흐음.”
공작이 느릿한 한숨을 내뱉었다. 내리깐 눈매가 꼭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 같았다.
“공작님.”
프란츠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공작을 재촉했다. 그러나 공작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엘리 님. 제게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집사님께요?”
“예. 저도 종종 두통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프란츠는 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내 약의 쓰임새를 찾아주려는 게 고마웠다.
‘그래도 일단 공작에게 호의를 보인 건 표현한 셈이니까.’
“알았어요.”
손에 들린 약봉투를 프란츠에게 넘기려 할 때였다.
“프란츠.”
공작이 대뜸 입을 열었다.
“가져와.”
그가 프란츠가 막 집어 든 약봉투를 가리켰다.
“……예?”
“가져오라고, 그거.”
공작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듯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프란츠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만 뻐끔거리다 약봉투를 공작에게 내밀었다.
공작이 낚아채듯 봉투를 가져 갔다.
“평생 어지럼증도 한번 없던 사람이 두통은 무슨 두통.”
그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혀를 찼다.
‘빙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받아주려는 모양이야.’
계획이 통했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서 이걸 가져온 목적이 무엇이지?”
“네?”
“단순히 약만 주려고 온 게 아닐 텐데.”
공작이 어서 사실을 고하라는 듯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이런 눈치 빠른 인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말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어차피 말해야 할 거, 지금 말해도 나쁘진 않겠지.’
나는 표정을 정리했다. 어쭙잖은 부탁은 공작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한번 큼큼, 목을 가다듬은 후 입을 뗐다.
“공작님, 전에 입양 갈 가문을 골라도 된다고 하셨죠.”
“그랬지.”
“다시 골라도 되나요?”
내 질문에 공작의 얼굴이 묘해졌다.
“가문을 바꾼다는 것이냐.”
“네.”
“흐음.”
공작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내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굳이 다 완성되어가는 일을 뒤엎는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공작이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번복하는 이유가 있겠지. 그래, 한번 들어나 볼까. 가고 싶은 가문이 어디지?”
공작의 물음에 나는 한번 숨을 참았다. 그러곤,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슈에츠요.”
“……뭐?”
순간, 단단한 가면을 쓴 것 같았던 공작의 표정에 금이 갔다.
“공작님 가문으로 갈래요.”
나는 다시금 쐐기를 박았다.
처음엔 아만타 남작가로 입양을 원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알고 나니, 도저히 양녀로 받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
슈에츠는 현재 제국의 유일한 공작가다.
게다가 클라이더 공작이 남긴 상단까지 갖고 있으니, 부와 명예, 위상까지 두루 갖췄다. 이보다 더 높은 가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현재 데미안을 양자로 들인 상태였다.
나를 며느리로 들일 거라고 했지만, 어차피 이 자리는 여주인공의 자리였다.
‘그러니까 며느리 말고 딸로 받아줘.’
그럼 복잡한 이혼 절차를, 파양으로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을 터였다.
“공작님 가문으로 가고 싶어요.”
오래 있지 않을게.
나이가 먹으면 파양 준비는 알아서 할 테니, 잠깐만 데리고 있어 줘.
나는 긴장을 애써 숨기며 밝게 웃었다.
공작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느새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짓이 멈춰 있었다.
짙은 적안이 나를 꿰뚫을 것처럼 흉흉했다.
한참 후, 공작이 느릿하게 입술을 벌렸다.
“어림없는 소리.”
단호한 거절이었다.
“난 귀찮은 걸 싫어해. 아이는 더더욱 싫어하지.”
“공, 공작님.”
프란츠가 당황한 목소리로 공작을 말렸다.
“……알았어요.”
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차가운 거절이었다.
‘하긴. 누가 도둑의 딸을 양녀로 들이고 싶어 하겠어.’
나는 익숙한 체념을 끌어안 고공 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인사까지 마친 후 방을 빠져나왔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많아.’
데미안이 전쟁에 출정하기까지 앞으로 4년.
그로부터 5년 후, 여주인공을 데리고 돌아온다. 시간만 따지자면 9년이란 시간이 남은 셈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여주인공이 나타나기 전에 살길을 마련해 놔야 해.’
할 수 있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앞으로 나아갔다.
* * *
엘리가 집무실을 빠져나간 후, 프란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단호하십니다. 돌려 말하셔도 될 일이지 않습니까.”
프란츠의 핀잔에도 에르하르트는 침묵을 지키며 손 안의 약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살짝 표면을 긁자, 숨어있던 알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르하르트는 허, 작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들어 있는 약은 아이들용이었다. 성인에게는 통하지도 않는 약.
‘이걸 제게 가져오다니.’
그의 주기적인 두통은 어떠한 약으로도 낫지 않았다.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의 피를 고작 약 하나로 없앨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자주 두통을 앓으신다고 들었어요.”
“이거 공작님 드릴게요.”
“공작님 가문으로 가고 싶어요.”
그 말이 참, 왜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건지.
에르하르트가 말없이 약만 바라보자 프란츠는 조금 불안해졌다.
어린 소녀의 마음이 무차별적으로 무시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저, 공작님. 치워드리겠습니다.”
프란츠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무엇을.”
“엘리 님께서 주셨던 약 말입니다.”
프란츠를 한번 힐끔거린 에르하르트가 다시 약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됐어.”
그러곤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예……?”
되레 당황한 사람은 프란츠였다.
“되었다고. 얼빠진 표정 짓지 말고 이거나 가져가.”
에르하르트가 그리 말하며 프란츠를 향해 무언가를 내던졌다.
프란츠는 능숙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아만타 남작이 가져온 화살이었다.
“이걸 왜 제게 주십니까?”
“그대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에게 주는 거냐고 물으려던 프란츠가 입을 다물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의 곁을 지켰던 사람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챌 만큼의 눈치는 있었다.
“그 어린것이 나름의 친절을 베풀었으니, 나도 그리해야겠지.”
“……활까지 함께 만들어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르하르트는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집무실을 빠져나온 프란츠는 화살촉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아이의 친절을 무시하지 않고 활까지 만들어 친절에 보답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