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화(3/241)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또 맞을 테니 치료 따위 필요 없다.
짧은 말만으로도 데미안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저항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폭력을 가라앉힐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체념이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그런 것을 알다니.
어쩐지 목이 꾹 조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안 바르는 것보단 나아.”
나는 데미안의 손에 억지로 연고를 쥐여주었다.
“나중에라도 발라. 통증이라도 줄여줄 테니까.”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바보처럼 이런 어쭙잖은 위로밖에 하질 못했다.
데미안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데미안은 나를 보고 있었을까? 나를 닮은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 * *
식사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물이 대부분이라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수프, 만들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퍼석퍼석해진 빵, 오래되어 숨이 다 죽어버린 샐러드 따위를 식당에 날랐다.
카트를 옮길 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데미안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방에 있는 걸까? 이제 곧 식사 시간인데.
“뭐 해? 어서 그릇을 나르지 않고?”
그때 보육교사가 그새를 못 참고 나를 핀잔했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거뒀다.
“얌전히 앉아서 식사하도록. 조용히. 식사 중 수다는 금물이다.”
교사의 말에 우리는 얌전히 식기를 들었다.
우스운 말이겠지만, 우리 고아원 아이들은 귀족식 예법이나 사교계 화법 따위를 배웠다.
귀족분들께서 번거롭게 가르칠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고아원은 그 높으신 분들께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원장은 이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얼마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데미안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거를 작정인 건가?’
지금은 저녁이다. 이 식사를 거른다면 내일까지 쫄쫄 굶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면…….’
“엘리. 빵 안 먹어?”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토미가 아직 먹지 않은 빵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
나는 한번 빵을 힐끔거리곤 속삭였다.
“아니, 안 돼.”
“엑. 하지만 안 먹고 있잖아.”
“먹을 거야. 그러니까 손대지 마.”
나의 단호한 대답에 토미가 입을 삐죽였다.
평소라면 양보했겠지만, 오늘은 주인이 따로 있었다.
물론 그 아이가 먹을지 안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식사가 끝나자 청소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분주하게 자신이 먹은 그릇과 원장, 보육교사가 먹은 식기들을 치웠다.
오늘 내가 맡은 곳은 주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고아원으로 들어온 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짙은 어둠이 깔린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도 없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여기서 뭐 하냐?”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카르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뭐해? 귀신이라도 찾아?”
카르센이 재미없는 농담을 던졌다.
“아니. 난 귀신같은 거 안 무서워.”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하긴. 넌 무서운 게 없으니까.”
카르센이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보다는 그 자식이 더 무서워하려나?”
“그 자식?”
“오늘 들어온 애 말이야.”
나의 물음에 뒤에 있던 수하 하나가 대답했다.
“원장이 이야기하는 거 몰래 들었는데, 여기 오기 전에 노예로 지냈다던데.”
“깜깜한 곳에서 마물을 잡았대.”
“말도 안 돼. 그 작은 애가 어떻게 마물을 잡아.”
그들은 재밌는 농담이라도 말해주듯이 낄낄거렸다.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왜? 너도 그 애한테 관심 있어?”
내가 흥미를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카르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애는 꼭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아이들을 지독히도 괴롭혔다.
몇몇은 괜찮았지만, 가끔 기분이 나쁜 날엔 그 아이들도 폭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 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베티가 있는지 보러 온 거야.”
“그래?”
“응, 게다가 그 아이는 창고에 있는 것 같던데. 오다가 봤어.”
덧붙이며 웃자 카르센이 미심쩍은 눈을 했다.
“하지만 창고는 선생님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게다가 잠겨있기까지 하고. 걔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보조 선생님들이랑 같이 들어가던데?”
“뭐?”
“창고엔 맛있는 게 많잖아. 맛있는 걸 몰래 주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러자 카르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아까 식당에서도 없었잖아. 따로 주려는 거지. 봐, 걔는 오자마자 일도 안 했잖아.”
“…….”
“원장 선생님이 아끼셔서 그런 거 아닐까?”
데미안이 일을 안 하는 건, 데미안의 주인 때문이었다. 원장은 임시로 데미안을 맡아준 것뿐이니 타인의 노예를 함부로 부릴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르센은 그걸 모르지.’
그리고 지금 창고에 있는 사람은, 원장 몰래 밀회를 즐기러 온 교사들이라는 사실도.
나는 카르센의 행동을 부추기기 위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까 마물도 잡았다고 했지? 실력이 엄청 뛰어난가 봐. 정말 멋지다!”
“뭐?”
역시, 내가 관심을 보이자 카르센이 도끼눈을 떴다.
“말도 안 돼! 그 약한 애가 어떻게 강하다는 거야? 우리 앞에선 꼼짝도 못 했잖아!”
‘사람들은 그걸 봐준 거라고 말한단다.’
나는 뒷말을 꼭 삼킨 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카르센이 더 강해?”
“다, 당연하지!”
치켜세워주자 금세 으스댄다.
‘단순하긴.’
나는 뒤에 숨겨두었던 빵을 꺼냈다.
대뜸 내밀어진 빵에 카르센이 붕어처럼 눈을 끔뻑였다.
“뭐야. 이, 이걸 왜…….”
“그냥. 난 배가 불러서.”
너 이거 좋아하잖아. 그렇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르센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카르센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뭐 이런 걸. ……잘 먹을게.”
카르센은 무어라 우물거리더니 헛기침과 함께 내 곁에서 멀어졌다.
창고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멀어지는 멍청이들을 바라보다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뒤덮인 눈에 발이 푹푹 빠져 시렸지만, 참을만했다.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나무에 몸을 숨겼다.
“여기서 저 혼자만 맛있는 걸 먹는단 말이지.”
저 멀리, 카르센과 그 무리들이 으스대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난 보육 선생님들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창고는 아이들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모든 식료품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또 물건을 훔치려고 했지! 이 말썽꾸러기들 같으니!”
“아니에요! 여기, 여기 그 자식이 분명 있다고 해서……!”
“시끄럽다, 이 녀석들! 그럼 네 손에 들린 빵은 뭔데!”
“이, 이건……!”
카르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윽고 카르센과 그 무리들이 선생님들에게 끌려갔다.
‘맛도 없는 빵에 정신을 뺏기니 이런 일이 생기지.’
“멍청이.”
나는 참았던 비웃음을 잔뜩 흘려준 뒤, 몸을 일으켰다.
방해꾼은 사라졌다.
그러니 이젠 주인공을 찾을 차례였다.
‘하지만 방 안에도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카르센의 말을 떠올렸다.
“깜깜한 곳에서 마물을 잡기도 했대.”
그 아이에게 제일 익숙한 건 어둠이었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뒤편의 눈 내리는 어두운 숲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 * *
램프가 찬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어둠에 뒤덮인 숲은 웬만한 어른이라도 들어가길 꺼렸다.
쏟아지는 눈과 시린 바람은 또 어떻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확했다.
숲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에 기댄 채 앉아 있는 데미안이 보였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멍하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덮을 망토도, 담요 같은 것도 없었다.
“……데미안.”
나는 데미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데미안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여기 있으면 몸이 꽁꽁 얼 거야. 그만하고 일어나.”
“…….”
“그 아이들, 선생님들께 잡혀갔어. 오늘은 편히 잘 수 있을 거야.”
“…….”
“게다가 너, 밥도 안 먹었잖아.”
나의 부름에도 들리지 않는 듯 침묵을 지켰다.
입술을 짓씹던 나는 무릎을 굽혀 데미안과 눈을 맞췄다.
램프의 은은한 불빛이 그의 까만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였다.
“이러다 몸 상해.”
“…….”
“감기 걸리면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제야 데미안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바람결에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그 애의 눈동자가 보였다.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 나도 모르게 멈칫할 때였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야.”
부르튼 입술 사이로 여린 미성이 흘러나왔다.
“뭐?”
“잡혀가도…… 그뿐이야. 다시 돌아와.”
“…….”
“난 여기가 편해.”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 적이 있었다.
슈에츠 공작에게 입양된 후,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을 때부터 데미안은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공작은 데미안에게 ‘검을 배운 적이 있느냐’ 물어보았고, 데미안은 ‘어둠 속에서 살기 위해선 검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암울한 성장 과정을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이건 단순한 비극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스스로를 깊은 어둠에 가뒀다.
그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검을 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램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혼자이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 안의 무언가가 들끓는 것 같았다. 눈앞에 대상이 없는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램프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없어. 돌아온다고 해도 곧 사라질 거야.”
“…….”
“약속할게. 내 목숨을 걸고.”
마지막 말에 데미안이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슈에츠 공작이 데미안을 찾으러 왔을 때, 카르센과 그 무리들은 고아원에서 쫓겨난다.
원작대로라면 그들 중엔 나도 섞여 있겠지. 비명횡사가 내 운명이니까.
그러니 목숨을 걸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날 보는 데미안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