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1)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1화(31/241)
* * *
검을 거둔 아만타 남작이 이쪽을 바라보자 남작부인이 내 등을 토닥였다.
어서 가보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데미안을 향해 달려갔다.
데미안은 분한 표정으로 남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데미안이 누군가에게 이런 표정을 한 적이 있었던가.
‘데미안이 남작에게 나쁜 감정을 품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한가득 안고서 데미안을 바라보는데, 데미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것은 여태껏 봐왔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엘리.”
여린 미성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데미안은 남작이 남작부인과 함께 사라지는 뒷모습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나, 열심히 할 거야.”
그가 뱉은 말은 예상과는 다른 말이었다.
“강한 사람이 될래.”
데미안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차갑다고 생각했던 푸른 눈동자가 뜨거운 결의로 가득했다.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익숙했던 데미안에게 처음으로 목표라는 것이 생긴 순간이 아닐까.
그 변화가 너무 기특하고 착해서, 나는 품속의 손수건을 꺼내 데미안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넌 이미 강해.”
“아니야. 난 약해.”
데미안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어. 지금의 난 아무것도 못해.”
“남작님께서 그러셨어?”
조금 놀랐다. 남작의 저 말은 지금 나오기에는 조금 일렀다.
‘아마 원작 여주가 등장할 때 쯤에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벌써 나오다니.’
그래도 데미안이 검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소중한 사람이라니.’
누가 남주 아니랄까 봐. 목표하는 바도 주인공다웠다.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밥도 많이 먹어야겠네.”
“밥이랑 상관이 있어?”
“당연하지.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해지고, 건강해져야 강해질 수 있어.”
“엘리처럼?”
나?
갑자기 데미안이 나를 언급하자 답하는 것도 잊고 입을 뻐끔거렸다.
“엘리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강하니까.”
나를 올려다보는 데미안의 눈이 너무나 반짝거렸다.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배운 기술들이 날 강해 보이게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에게 차마 손기술, 소매치기, 사기 및 공갈협박, 다른 데로 시선을 유도한 후 슬쩍 물건 빼내기 같은 뒷골목의 생존 방식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차근차근 알게 될 일이니까.’
지금 당장은 동심을 지켜줘도 되겠지. 나는 조금 허세를 부리기로 했다.
“데미안, 너는 아직 날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거든? 너 십칠 대 일로 싸워본 적 있어?”
내가 턱을 쳐들고 기세등등하게 말하자 데미안이 움찔했다.
“마, 마물하곤 싸워본 적 있어.”
“마물 말고. 사람 말이야.”
“……없어.”
데미안의 목소리가 시무룩하게 줄어들었다.
사실 나도 없지만,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어. 그러니까 앞으로 밥도 많이 먹어야 해.”
“응.”
“내 말도 잘 들어야 하고.”
“응.”
“또 훈련하기 싫다고 떼쓸 거야?”
“응. ……아, 아니! 안 그럴게!”
습관적으로 대답하던 데미안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귀여워라.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입이 짧아서 걱정이었는데. 잘됐다.’
어쩜 이렇게 말도 잘 듣고 착한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슬쩍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보던 데미안이 눈을 꼭 감고서 따라 웃었다.
‘이제 식습관은 잘 고쳐질 것 같긴 한데…….’
나는 바닥에 놓인 목검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에게 검을 만들어 줄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니.’
무슨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할 때였다.
“공자님. 엘리 님. 어머, 집사님까지 함께 계셨군요.”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은 아셀이 훈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훈련장은 밀폐된 공간이라 특유의 땀 냄새가 났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 듯했다.
“식사 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때를 놓치시면 안 되니 함께 가시지요.”
“가자, 데미안.”
나는 데미안의 손을 잡아끌고 훈련장을 벗어났다.
밥 많이 먹고 튼튼해지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 * *
며칠 후, 해가 높이 뜬 낮.
나와 데미안은 조금 멀리 산책을 나왔다.
공작성과 가깝긴 했지만 둘만 다니면 위험할지도 모르니, 하녀도 함께 대동했다. 오늘 우리를 담당한 하녀는 아셀이었다.
“날씨가 참 춥다. 그렇지?”
나는 괜스레 호, 하고 하늘에 입김을 내뱉었다.
구름을 닮은 입김이 하늘에 퍼지자 데미안이 나를 따라 입김을 내뿜었다.
“뭐야. 나 따라 하는 거야?”
“응.”
데미안이 눈매를 휘며 배시시 웃었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추운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귀여워 나는 데미안의 볼을 쪼물거렸다.
“귀, 귀여워……!”
아셀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해진 나는 못 들은 척 넘어가기로 했다.
이번엔 저기로 가볼까.
데미안과 손을 꼭 잡은 채 이동하려는데, 아셀이 우리를 다급히 불렀다.
“공자님, 엘리 님. 거기는 위험…….”
아셀이 말하다 말고 다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이쪽은 위험해요. 다른 길로 가셔요.”
부랴부랴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아셀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아셀. 코는 왜 막아요? 이상한 냄새라도 나나요?”
나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겨울 내음만 가득할 뿐, 다른 체취는 없었다.
“죄송해요, 엘리 님. 저는 코가 예민한 편이라 다른 사람도 맡지 못하는 냄새를 잘 맡곤 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
눈을 깜빡이며 묻던 나는 설마 싶은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그것도 아니면…… 저한테서 냄새가 나나요?”
그러자 아셀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설마요! 그럴 리가요! 엘리 님과 공자님께선 항상 꽃내음이 나신다고요!”
아셀이 강하게 외쳤으나 쉽게 믿기지 않았다.
사람에겐 각자 가진 향기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지워지지 않는 본연의 냄새.
‘이상한 냄새가 나나 봐.’
좀 더 열심히 씻어야 하나.
그 생각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안절부절못하던 아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 없지요. 공자님, 엘리 님.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항상 우리 뒤를 따르던 아셀이 이번엔 먼저 앞장을 섰다.
나와 데미안은 그녀를 졸졸 따라갔다.
눈이 가득 쌓인 나무 덤불을 힘겹게 지나가자 붉디붉은 호수가 나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얼지도 않은 데다가 물 색깔이 빨간 호수라니.
호수는 내부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아 보였다. 손을 담가보고 싶다고 무심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희 영지에만 있는 호수예요. 물 색깔 때문에 저희는 붉은 호수라고 부른답니다.”
나의 호기심을 읽은 아셀이 재빨리 설명을 해주었다.
“꽤 오래전부터 물 색깔이 이렇게 붉었다고 해요.”
“왜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공작성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던 호수였거든요. 표면적으로 영지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아셀이 조금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색깔이 특이해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자주…… 호수에 빠져 죽는 일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빠져 죽었다고? 놀란 마음에 토끼눈을 떴다.
“어른들도 자주 사고가 났는데, 최근엔 아이들도 많이 빠져서…… 호수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아무리 주의 줘도 매해 사고는 터지더군요. 매립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는데…….”
땅속 깊이 깃든 마력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호수는 메워지지 않았다고 아셀은 설명했다.
“그러니 두 분께서도 호수 근처에는 얼씬도 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큰일이니까요.”
“들었지, 데미안?”
나는 얼른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 님도 약속해 주세요.”
“난 데미안보다는 어른이에요.”
당연한 이야기를 말한 것뿐인데, 아셀이 흐뭇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라?’
눈이 가득 덮인 풀숲 너머,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꽤 멀리 나오긴 했지만, 여기도 영지 안인데 또 다른 집이 있네?’
“아셀. 저기엔 누가 사나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아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벌컥!
큰 소리와 함께 오두막 문이 열렸다.
험상궂은 얼굴,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수염에 피처럼 묻어 있는 붉은 액체.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린, 덩치 큰 사내가 험상궂은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