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2화(32/241)
그의 모습은 흔히 말하는 ‘야차’ 같았다.
정돈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은 괴팍하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 순간, 까마귀들이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푸드덕, 날개 펄럭이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놀란 마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어있자, 야차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설마 손찌검이라도 하려는 건가. 야차에게 맞으면 바로 죽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야차는 손에 들린 병을 입에 대고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미약하게 알코올 냄새가 나는 걸 보아, 병 안에 담긴 것은 술인 듯했다.
냄새만으로도 독한 게 느껴지는데, 저걸 한 번에 마시다니.
나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셀이 재빨리 우리를 뒤로 숨기며 입을 열었다.
“안,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얼굴을 뵙네요.”
“…….”
“저 기억하시죠…….”
야차는 술병에서 입을 떼어내더니 나와 데미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꼭 눈빛으로 찍어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아이들을 데려오면 위험하다고 분명 일렀을 텐데.”
거칠게 깔린 저음은 차갑다 못해 오싹했다.
“네, 알고 있지만 그게…….”
대답하던 아셀이 돌연 흡,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술 냄새와 시큼시큼한 냄새가 섞인 것이 느껴졌다.
아셀이 말했던 냄새의 주인은 아무래도 이 사람인 듯했다.
‘씻지도 않고 계속 저렇게 독한 술만 마시고 있나 봐.’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빠, 빠르게 물러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토기라도 몰려오는 건지, 아셀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나와 데미안의 손을 잡은 아셀이 야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외보르크님.”
외보르크?
예상치 못한 이름에 내 눈이 크게 뜨였다.
남자는 얼른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듯, 손을 내저었고 아셀은 우리를 데리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하…… 살았다.”
공작성에 도착하자 아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셀, 아셀. 저분이 외보르크라는 분이에요?”
“외보르크 님을 아세요?”
“저번에 대장장이라고 남작님께서 말씀해 주셨거든요.”
나의 물음에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작성의 무기 중, 외보르크 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답니다. 실력은 제국에서 가장 손꼽히시죠.”
“하지만…….”
그렇게는 안 보이던걸. 나는 입안에 맴도는 질문을 삼켰다. 실례인 말이니까.
“물론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지만요.”
눈치 빠른 아셀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눈이 안 보여서 그런 거예요?”
“그렇다기보단, 음…….”
아셀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다 한숨을 폭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외보르크 님의 딸이 저 붉은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요?”
“네. 꽤 된 일이기도 해서 공작성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답니다.”
“그럼…….”
치료를 거부한 것도 모두…….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독한 술만 먹는 심정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꼭 눈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외보르크 님께서 저렇게 되신 건 유리아 님께서 돌아가신 후랍니다.”
유리아는 죽은 슈에츠 공작부인의 이름이었다.
“따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외보르크 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거든요. 그때쯤 유리아 님께서 공작성에 오셨고요.”
아셀은 죽은 외보르크의 딸과 유리아가 또래였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랑스러운 유리아 덕분에 외보르크가 우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런데 유리아 님 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두 번째 딸을 잃으신 것 같았나 봐요. 그 이후론 저렇게 오두막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술만 드시고 계시답니다. 공작성 주치의 말로는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고 계신대요.”
“그렇구나…….”
그제야 이해가 갔다. 치료를 거부한 이유가.
세상의 모든 절망을 끌어안은 기분이겠지.
“아무튼 이제 아시겠죠? 절대 붉은 호수 근처에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네.”
내 대답에 데미안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오늘 산책은 여기까지예요. 어서 들어가셔요.”
아셀이 우리를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괜스레 뒤쪽을 힐끔거렸다.
풀숲에 가려진 붉은 호수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 * *
빈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 위.
기절하듯 쓰러진 남자가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창밖 너머로 까악, 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남자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를 더듬거렸다. 빈 병들이 손에 걸려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나뒹굴었다.
쨍그랑!
그러다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술잔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젠장…….”
남자가 욕설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시선이 흐릿했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비비다 멈칫했다.
그의 손은 애꿎은 안대 위를 맴돌고 있었다.
“……익숙해지질 않는군.”
외보르크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며 손을 내렸다.
이제 정말 그만 마셔야 했다.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후우.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독한 알코올 향이 허공으로 퍼졌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수염을 벅벅 긁던 외보르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술병들은 죄다 비어 있었다. 또 습관적으로 마신 모양이었다.
외보르크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외보르크가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쿵쿵쿵!
그때, 누군가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이 시간에 누가…….’
외보르크는 이마를 짚으며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 찰나도 기다리기 힘든 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아, 외보르크!”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그를 반겼다.
공작성의 주치의, 디에른 박사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 나 아니면 자네 집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디에른이 너스레를 떨자 외보르크의 미간이 신경질적으로 구겨졌다.
맞는 말이었다.
공작성 사람들은 외보르크를 안쓰럽게 여겨 잘 찾아오지도 않았다.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후다닥 도망가 버릴 뿐이었다.
“약은 잘 쓰고 있나?”
외보르크가 귀찮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은 디에른이 작은 약병을 내밀었다.
“그럴 줄 알고 가져왔지. 약 떨어질 때 되었지?”
디에른이 약병을 두어 번 흔들었다. 작은 병 속 붉은 액체가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기분 나쁜 색깔이었다.
“……이 약을 써도 나아지지 않아. 오히려 눈이 더 아프다고.”
“자네는 명현현상도 모르나?”
“몰라, 그런 거.”
외보르크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디에른이 그럴 줄 알았다며 작게 혀를 찼다.
“치료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뜻일세.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눈이 갑자기 낫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
“그것도 아니면 자네, 설마 나를 못 믿는 건가? 공작성의 주치의인 이 나를?”
디에른이 으스대며 말했다.
외보르크는 ‘주치의는 당신이 아니라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가 아니냐’고 따지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고립되어 지내며 사회성을 잃었어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외보르크는 후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약병을 받아 들었다.
디에른이 한층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용법은 전과 동일하네. 하루 세 번. 그 약을 양쪽 눈에 넣으면 되네.”
“……이번엔 효과가 있어야 할 거야.”
“아, 그럼 당연하지!”
디에른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어서 넣어보게. 내 자네가 제대로 치료를 하는지 이 두 눈으로 봐야겠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공작성 사람들 모두 자네가 빨리 낫길 바라고 있다고.”
거절하려던 외보르크가 멈칫하고선 한숨과 함께 약병을 열었다.
안대를 옆으로 밀어낸 후, 흐릿한 눈에 붉은 액체를 떨어뜨렸다.
짧은 찰나, 디에른이 히죽 웃었다.
외보르크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아픔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원래 좋은 약일수록 독한 법이지. 수고 많았어.”
디에른이 외보르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약도 전해줬으니 내 오늘은 이만 가보겠네. 어어, 나오지 말고.”
디에른은 재빨리 외보르크의 오두막을 벗어났다.
순간, 까마귀들이 디에른 곁으로 날아왔다.
“아, 이 자식들이. 저리 안 꺼져?”
디에른이 쉬쉬, 하고 입 소리를 내며 까마귀를 내쫓았다.
‘재수 없는 곳 아니랄까 봐 까마귀들까지 가득하군.’
디에른이 혀를 차며 재빨리 붉은 호수를 벗어났다.
인적이 드문 곳에 왔을 때,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디에른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품속에서 나온 것은 작은 영상구였다.
큼큼, 목을 가다듬은 디에른이 영상구를 보며 말했다.
“예. 걱정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물론입니다.”
쩔쩔맨다 싶을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던 디에른이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한쪽 눈마저 못 쓰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