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3화(33/241)
영상구 너머로 희미하게 인영이 보였다.
정복을 갖춰 입은, 짙은 은발을 가진 남자였다.
“확실히 해야 할 거야. 아만타 남작, 그 작자가 발견한 광물이 외보르크에게 넘어간다면 슈에츠 가문의 힘은 더욱 커진다.”
“네, 네. 물론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디에른이 연신 영상구를 향해 굽실거렸다.
“외보르크, 그놈만 없으면 무기 생산도 끝이야. 그럼 슈에츠 공작의 실력이 허무맹랑한 과장이라는 게 드러나겠지.”
영상구 속 남자는 공작의 몰락을 진심으로 바라는 듯했다. 목소리만으로도 가득한 적의가 느껴졌다.
“네, 분명 퀸타르 자작님 뜻대로 되실 겁니다.”
맞장구를 치던 디에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이번 일만 잘되면 정말…… 제게 무기 상권의 권한 일부를 넘겨주시는 것이 맞으시지요?”
“자네는 내가 거짓을 말할 사람처럼 보이는가?”
“아유, 아니지요. 물론 아닙니다. 제가 어찌 자작님의 뜻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렇게 몇 차례 아양을 부리고 나서야 영상구의 빛이 희미해졌다.
디에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작게 혀를 찬 그가 영상구를 품에 넣고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함께 얼마 후,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저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녹안을 가진 아이, 엘리였다.
* * *
아셀에게 외보르크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이상하게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도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일까.’
물론,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답답함에 산책을 나온 건데.’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퀸타르 자작, 그가 가진 무기 상권과 외보르크의 실명.
그리고 아만타 남작이 최근 발견한 새로운 광물까지.
나는 차근차근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외보르크는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였다. 그러나 사고로 하나뿐인 딸 잃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고 있다.
‘외보르크의 대장간이 멈췄으니, 다른 무기 상인들에겐 기회였을 거야.’
그런 와중에 아만타 남작이 새로운 광물을 발견했다.
‘외보르크가 다시 망치를 손에 쥘까 두려웠겠지.’
그렇다면 그가 한쪽 눈을 잃은 것도 어쩌면…….
‘모두 계획된 일일 수도 있다.’
큰 슬픔을 겪은 터라 사람들이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할 테니, 치료를 거부한다는 거짓말도 잘 통했을 터였다.
정리를 마치자 작게 소름이 일었다.
어쩜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할까.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자 힘든 사람을 더 큰 슬픔으로 몰아가다니.
‘하지만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아.’
분명 영상구 속 퀸타르 자작은 이렇게 말했다.
슈에츠 공작의 실력이 허무맹랑한 과장이라고.
‘슈에츠 공작을 끌어내리려는 또 다른 세력이 있는 모양이네.’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에츠다.
쉽게 무너질 가문이 아니었다.
쯧.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그래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쥐새끼는 없애는 게 좋겠지.
공작에게 점수도 따놓을 수 있을 테고.
나는 씩 웃었다.
* * *
까악!
까마귀 울음소리에 외보르크는 잠에서 깼다.
오늘따라 눈이 더욱 뻑뻑했다.
전보다 더 독한 약을 쓴 듯했다.
후우. 외보르크는 깊은 숨을 내쉬며 굳은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마다 빈 술병들이 발치에 치였다.
‘……언제 이렇게 더러워진 거지.’
하지만 뭐, 상관없나.
어차피 제 집의 청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더 이상 없으니까.
외보르크가 덥수룩한 수염을 벅벅 긁을 때였다.
까악! 까악!
오늘따라 유독 까마귀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늘 울음소리를 듣고 살았던 외보르크도 시끄럽다 느낄 정도였다.
외보르크는 까마귀를 내쫓기 위해 벌컥 문을 열었다.
“……!”
호수 근처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외보르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이는 호수 근처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위험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나갔다.
외보르크가 아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풀썩. 깊게 쌓인 눈밭 위로 아이의 몸이 굴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외보르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호수가 얼마나 위험한데! 겁도 없어?!”
그의 고함에 낑낑거리던 아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푸하!”
아이는 작은 손으로 제 얼굴에 가득 묻은 눈을 털어냈다.
그러다 외보르크와 눈이 마주치자 헤헤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안녕은 무슨!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외보르크가 단박에 인사를 튕겨냈다.
그러다 뒤늦게 멈칫했다.
외보르크는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평생 망치를 들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말투도 부드럽지 못했다.
때문에 그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곤 했다.
그런데 눈앞의 작은 소녀는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눈을 빛냈다.
“헤헤……. 죄송해요.”
아이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웃음이 너무나 맑아 보였다.
순식간에 외보르크의 화가 가라앉았다.
‘그래. 이런 꼬마한테 화를 내서 무엇하겠어.’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긴 건, 외보르크 자신이었다.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아이가 말간 얼굴로 웃었다. 웃는 모습이 꼭 햇살 같았다.
외보르크는 순간 움찔했다.
“구해준 게 아니라……. 크홈.”
멋쩍어진 외보르크는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지?”
외보르크의 말에 아이는 말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의 손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화살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화살촉이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외보르크의 눈이 본능적으로 번쩍 뜨였다.
“이거 멋지죠? 선물로 받은 거예요!”
“선물이라고?”
“네. 그런데 제가 한 번도 활을 쏴 본 적이 없어서요. 혹시라도 저 때문에 누가 다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연습하러 왔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무어라 쫑알거렸다.
그러나 외보르크는 아이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의 손에 들린 화살촉은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물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관심을 보일 줄 알았어.’
엘리는 그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이거, 드릴까요?”
엘리는 외보르크를 향해 화살을 내밀었다. 그가 움찔했다.
“이걸 준다고? 내게?”
외보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냉큼 화살을 받아 들었다.
한쪽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세밀하게 화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빛났던 화살촉은 손이 닿자마자 까매지더니 딱딱하게 변했다.
‘처음 보는 광물이다.’
외보르크의 눈이 번뜩였다.
이 광물을 좀 더 분석하고 싶었다. 제 손이 닿으면 어떻게 변할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실로 오랜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그러다 엘리의 부름에 그제야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났다.
“……코 묻은 물건을 뺏을 만큼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음…… 그럼 빌려드릴게요!”
“빌려준다고?”
엘리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께서 눈을 못 떼고 계시잖아요! 저도 드리고는 싶지만, 그럼 아만타 남작님께서 슬퍼하실 거예요.”
엘리는 부러 ‘아만타’라는 이름에 힘을 줘 말했다.
승낙이 떨어졌지만 외보르크는 망설였다.
그러나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크흠. 그럼 뭐…… 잠깐만 보도록 하지.”
외보르크는 헛기침을 흘리며 화살을 쥐었다.
“그…… 일단 이쪽으로 오너라. 눈밭에만 있으면 너도 추울 테니.”
외보르크는 몸을 돌려 오두막으로 향했다.
엘리는 남몰래 우히히 웃으며 그를 졸졸 따라갔다.
그런데 그가 돌연 우뚝 멈췄다.
오두막 안은 형편없었다. 환기를 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났고 이미 사방에 배어버린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그는 재빨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죽어가는 난로에 장작도 몇 개 던졌고, 발치에 가득 치이는 술병도 옆으로 잔뜩 밀었다.
외보르크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엘리도 열심히 눈을 굴렸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약병을 발견했다.
병 안에 맑고 투명한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저게 뭐지?’
엘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 이 오두막, 저 약병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이 색깔은…….’
엘리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약병을 손안에 감췄다.
그러곤 팔을 감싼 채 으슬으슬 떠는 척했다.
‘귀찮은 녀석.’
외보르크가 쯧 혀를 찼다.
지금 이 꼬마 때문에 때아닌 대청소를 하게 생겼다.
외보르크는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난로에 장작더미를 추가로 내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