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4화(34/241)
* * *
퀴퀴한 악취가 한차례 빠지고 나서야 외보르크는 문을 닫았다.
나는 난로에 딱 붙어 따뜻한 열기를 쬐었고, 외보르크는 화살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오두막 안을 열심히 살폈다.
글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추웠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따뜻했다면 벌레가 잔뜩 끓었을 것이다. 게다가 구석에 잔뜩 쌓인 술병까지.
건강아 사라져라, 하고 고사를 지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빈속에 독한 술만 먹다간 골로 간다.
‘이래선 없던 병도 생기겠는데…….’
“아저씨, 아저씨.”
“왜.”
“저 배고파요.”
“……뭐?”
그 말에 화살에 꽂혀 있던 외보르크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헤헤 웃었다.
그러자 외보르크는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먹을 게 없다마는.”
“네? 그럼 아저씨는 뭘 먹고 사세요?”
나의 물음에 외보르크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면 안 돼요.”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했어요.”
“…….”
“많이 먹어야 내일을 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살 수 있댔어요.”
외보르크의 눈이 잘게 떨렸다.
험상궂은 얼굴이 흐려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이 정곡을 찌른듯했다.
외보르크는 내일을 꿈꾸지 않는다. 딸도 잃고, 딸처럼 아꼈던 사람도 잃었다.
그가 놓은 것은 망치가 아니었다. 삶의 의지였다.
“꼭…….”
한참 동안 침묵하던 외보르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꼭…… 우리 딸과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
“참, 그 소리를 듣는 게 얼마만인지…….”
외보르크는 허탈한 한숨을 흘렸다. 멍하니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허망함과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침묵했다.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었으니까.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예쁜 딸이었지.”
퉁명스러운 목소리지만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늘 네가 한참 동안 바라보던 호수, 거기에 빠져 죽었거든.”
“…….”
“그리고 딸처럼 아꼈던 분도 잃었지.”
외보르크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는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 몸짓은 무언갈 붙잡는 것 같기도 했고, 이미 비어 있는 손을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가지 말라고 일렀어야 했는데. 좀 더 엄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아저씨.”
나는 그의 자책을 잘라냈다.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아저씨는 절 구해주셨잖아요.”
“…….”
“따님도, 미리 발견했더라면 잃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외보르크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따님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네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우리 엄마야말로 저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
내 말에 외보르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누구도 우리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유명한 도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이야기였다.
엄마는 나를 가진 후, 모든 일에서 손을 털었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이 딸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목이 매달려 죽었다. 사람들의 질타를 받으면서.
엄마의 행동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지금까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엄마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
“네 잘못이 아니야.”
외보르크의 눈이 잘게 떨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저씨 딸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까요?”
외보르크는 침묵했다.
나는 얌전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부디 내 말이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몇 년 전에.”
외보르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와 같은 말을 하던 분이 있었어.”
“…….”
“닮았군, 무척이나.”
외보르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미소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때였다.
거센 바람이 몰려오는지 창문이 크게 덜컹거렸다.
저절로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 호수에 간 사실을 로이나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끝이었다.
“아저씨, 저 이만 가볼게요. 너무 밖에 오래 있어서 혼날지도 몰라요.”
외보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둘러보던 화살을 내게 내밀었다.
화살을 받으려던 나는 멈칫했다.
“아저씨, 그거 오늘만 빌려드릴게요.”
“……빌려준다고?”
“네. 대신 다음에 저랑 같이 놀아주세요. 제 친구들이랑 같이요.”
헤헤 웃음을 흘리자 잠시 생각하던 외보르크가 말했다.
“그래, 그러마.”
그리고 승낙이 떨어졌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음, 그건…….”
나는 잠시 생각하다 씩 웃었다.
“공작성으로 오시면 돼요.”
“……뭐?”
“공작성이요. 제가 마중 나갈게요.”
나는 외보르크가 무어라 더 묻기 전에 재빨리 문 쪽으로 달려갔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저씨!”
그 말만 남기고서 후다닥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 * *
그렇게 오두막을 막 나와 붉은 호수를 지나가려는데.
까악-!
눈 덮인 나무 위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인사하듯 울어댔다.
‘왜 자꾸 울어, 무섭게…….’
움츠리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까마귀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날 공격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까마귀는 말없이 붉은 호수 위를 맴돌았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호수 위에 닿았다.
‘잠깐만.’
나는 오두막에서 슬쩍했던 외보르크의 약병을 꺼냈다.
병에 들어 있는 약이 더 맑긴 하지만…….
‘비슷해 보여.’
설마 이거, 약이 아니라…….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입을 꾹 다물었다.
‘조사할 게 하나 더 늘었네.’
나는 까마귀를 힐끔거리다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시간에 맞춰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훈련장 안에서는 아만타 남작과 데미안이 검을 나누는 중이었다.
나는 살짝 문을 열고 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데미안이 목검을 들고 남작에게 덤벼들었다.
남작이 지지 않고 데미안의 검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잠깐의 틈을 날렵하게 파고들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남작이야 평생 검을 잡은 기사라지만.’
데미안도 대단했다. 역시 남자 주인공다웠다.
그렇게 몇 번 더 맞부딪혔을 때.
탕!
큰 소리와 함께 데미안의 목검이 날아갔다.
남작의 검이 데미안의 목, 바로 앞에 멈췄다.
후우. 데미안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남작은 말없이 검을 거뒀고, 지켜보던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나는 이 틈을 타 재빨리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데미안!”
힘차게 부르자 데미안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엘리……I”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데미안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훈련 열심히 했어? 어휴, 이 땀 좀 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데미안의 땀을 닦아주었다.
“하나도 안 힘들어.”
“정말? 뺨이 이렇게 빨간데?”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
데미안이 나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엘리 님 오셨습니까.”
그때, 아만타 남작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남작님, 안녕하세요.”
“엘리 님도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딱딱했지만 전에 비하면 한없이 너그러운 목소리였다.
그도 데미안과 검을 나누는 게 어느 정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데미안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단 뜻이겠지.
“오늘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공자님께서 워낙 실력이 뛰어나셔서, 되레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예. 이제 목검이 아니라 진짜 검으로 수련해도 될 정도입니다.”
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물었다.
“목검과 일반 검은 차이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기사의 실력에 따라 들 수 있는 검도 천차만별이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아만타 남작이 아쉬운 듯 표정을 흐렸다.
“……새로운 검을 만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 제 친구도 검을 만들 줄 안다고 했어요.”
“친구요? 누구 말입니까?”
남작의 물음에 나는 헤헤 웃었다.
“음……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기억이 잘 안 나요.”
나는 헤헤 웃다가 말했다.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눈을 빛내며 묻자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끼리 만나는 데에, 저 같은 늙은이가 낄 생각은 없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일부러 기죽은 목소리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남작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머뭇거리던 남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이 먹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초대해 주셨으니 가야죠.”
“정말요?”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남작님도 함께 가요! 곧 친구 올 시간이에요!”
“……그 친구가 저를 반길지 모르겠습니다.”
남작이 망설였으나, 모르는 소리였다. 나는 곧 이뤄질 만남을 기대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