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7화(37/241)
“갑작스레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공작님.”
다급히 문을 두드린 사람은 하녀장 로이나였다.
로이나는 평생을 공작성에서 일해온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회의 중에 뛰쳐 들어올 정도로 급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쉬지 않고 달려온 듯, 숨을 몰아쉰 로이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디에른 박사. 디에른 박사가 여기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만…….”
디에른이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가 처방한 약 때문에 엘리 님께서 통증을 호소하고 계시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예? 하지만 저는 그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뭔가 오해가…….”
“그럼 이 약이, 자네가 처방한 약이 아니란 말인가?”
부정하려던 디에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로이나의 손에 올려진, 붉은 액체가 담긴 병 때문이었다.
그건 자신이 직접 만들어 외보르크에게 처방한 약이었다.
외보르크의 치료를 담당하고는 있었으나, 디에른은 한시라도 빨리 외보르크가 쇠약해지길 바랐다.
그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 제게 오는 이득이 커질 테니까. 그러나 생명줄 하나는 끈질겼다.
직접 죽이는 방법도 있었으나,늘 외보르크를 찾아가는 사람은 디에른뿐이었다.
만약 외보르크가 죽는다면 가장 먼저 의심을 살 사람은 저였다.
게다가 디에른과 외보르크의 체격 차이는 극명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죽는 사람은 자신이 될 터.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번 다시 망치를 들 수 없는 몸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외보르크는 어린 시절 입은 부상 때문에 한쪽 눈에 늘 안대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 한쪽 눈마저 잃게 만든다면, 제 일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때마침 안성맞춤인 약도 있었다.
모두가 두려워해, 쉽사리 조사하지 못하는 ‘독약’.
‘붉은 호수.’
성분도 밝힐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저주의 호수는 외보르크의 세상을 빠르게 어둠으로 물들여 줄 터였다.
‘그런데 그것을 눈에 넣었다니!’
그 건강한 외보르크도 약을 넣을 때마다 통증을 호소했다. 하물며 아이는 오죽할까.
만약 아이가 실명이라도 하는 날엔…….
디에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것은 약이 아닙니다! 어서 상태를 봐야 합니다. 그분께선 지금 어디 계십니까?”
“뭐? 무슨 말인가. 이게 약이 아니라고?”
“이것은 몸에 해로운 독약입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 약이라고…….”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했단 말입니까?”
디에른이 되레 허탈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 됐습니다. 제가 직접 상태를 봐야겠습니다.”
디에른이 바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로이나가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리는지는 듣지 못했다.
어느새 짐을 다 챙긴 디에른이 로이나 곁으로 다가왔다.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어서 제게 안내를…….”
그때였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자 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보르크였다.
디에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자, 자네가 어떻게 여, 여기에……?”
외보르크는 금방이라도 디에른을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건, 그러니까, 설명을, 설명을 좀…….”
“이 약이 가짜라고.”
“그, 그것이…….”
“내게 주었던 약이, 사실은 독이었다고?”
짓씹듯 내뱉은 목소리엔 원망과 살기가 가득 뒤섞여 있었다.
디에른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외보르크. 자네 눈은 다 나은 겐가?”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멀쩡한데?”
“그것보다 디에른, 이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가짜 약을 주었단 말인가? 외보르크에게?”
“분명 외보르크가 치료를 거부했다 말하지 않았나.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서 설명해보게!”
그들 뒤로 가신들의 말이 회의실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저, 저는…….”
디에른은 입만 뻐끔거렸다.
공작성의 주치의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자신도 주치의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났다.
이미 제 입으로 모든 걸 밝히지 않았는가.
‘하지만 모든 걸 끌어안고, 혼자 죽을 순 없다.’
디에른이 이를 악 물었다.
“저는, 모두 시키는 대로 하였을 뿐입니다! 모두 퀸타르 자작님께서 제게 명하신 일입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퀸타르 자작이 깜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외보르크가 죽어야 북부의 군사력이 약해진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네가 저지른 일을 어찌 내게 뒤집어씌우는 겐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저 교활한 인간!’
퀸타르 자작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러다간 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게 된다.
조소를 흘린 디에른이 품 속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여 준비해 놓은 영상구였다.
희미한 인영 속, 퀸타르 자작의 모습이 드러났다.
〈외보르크, 그놈만 없으면 무기 생산도 끝이야. 그럼 슈에츠 공작도 볼품없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겠지.〉
이윽고 이어진 말은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완벽한 증거는 없었다.
‘멍청한 디에른이 감히……!’
퀸타르 자작이 파르르 주먹을 떨 때였다.
문득, 어수선하던 주위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의아함을 느낀 퀸타르 자작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맹수를 마주한 사람처럼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슈에츠 공작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떠한 검날도 이보단 날카롭지 않으리라.
이윽고, 공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밌군.”
그가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의 ‘즐겁다’는 말은, 말 그대로였다.
전쟁으로 자신의 광증을 해소하는 살인귀.
그가 즐거움을 얻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를 찾는 새에, 쥐새끼가 숨어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공작이 퀸타르 자작이 직접 바친 검을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었을 줄이야.”
공작의 손가락이 날카로운 검날을 쓸었다. 왈칵 터져 나온 피가 검날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것도, 내 성에서.”
“공, 공작님…….”
퀸타르가 일말의 자비를 바라며 더듬거렸다.
여전히 공작의 시선은 검에 꽂혀 있었다.
“그대의 말대로야. 이 검은 다른 검보다 훨씬 가볍고, 마구 휘두르기 편하지.”
공작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러니 베기도 쉽겠군.”
그게 누구든 간에.
그것은 늘 보았던 공작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소중한 것을 잃은, 상실의 눈. 딱 그만큼의 증오를 담은 빛이었다.
안테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찬 검으로 손을 가져 갔다.
주군의 이성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토록 분개한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만약 주군이 완전히 이성을 잃는다면…….
안테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퀸타르는 용서를 비는 것도 잊은 채 덜덜 떨었고, 디에른은 이미 숨이라도 넘어간 사람처럼 끅끅거렸다.
그때였다.
“공작님.”
외보르크의 부름이 에르하르트의 살기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렸다.
“공작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외보르크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검의 단면이 검게 빛나는, 아만타 남작이 발견한 마물 광석으로 만든 검이었다.
“10년 만에, 제가 공작님께 바치는 검입니다.”
공작의 시선이 검날 위로 내려앉았다.
외보르크는 처형대에 올라온 죄수가 된 것만 같았다.
본분도 잊은 채, 망치를 놓은 지 10년이나 된 대장장이의 검을 누가 받으려 하겠는가.
“아아. 오랜만이군.”
그때, 공작이 느릿한 감탄사를 중얼거렸다.
마른 황무지처럼 건조한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역시 가짜는 손에 익지 않아서 말이야.”
전신을 휘감는 검은 오러 속에서 공작이 웃었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광증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공작성의 가신들은 헐레벌떡 회의장을 나섰다.
“그 아이를 들이는 건 황실과 척을 지는 일입니다!”
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던 가신들은 얌전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를 또렷하게 목격했으니까.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흥건했던 피까지 닦고 나서야 에르하르트는 검을 든 손을 내렸다.
“외보르크.”
공작의 목소리는 아직 지워내지 못한 검날의 피처럼 섬뜩했다.
“……예, 공작님.”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본분을 잊은 건 사실이었다.
하물며 공작은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재가 쥐새끼들이 날뛸 틈을 준 것이기도 했다.
외보르크는 어떠한 처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생각하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예?”
그러나 이어진 말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대가 만든 검 말이야. 기사들에게도 나눠줘야 하지 않겠나. 그들도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테고.”
에르하르트가 검을 든 손을 한번 눈짓하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무나 무심한 목소리에 외보르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에르하르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도 탓하지 않을 것이란 걸, 외보르크는 깨달았다.
“……늦지 않게 만들어 오겠습니다.”
외보르크의 말에 에르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테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조금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 기는 했으나, 외보르크도 복귀했고 암수를 쓰던 놈들도 붙잡았다.
‘게다가 공작님도 한차례 피를 보았으니 한동안은 잠잠하겠어.’
안테는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여전히 공작의 오러는 거둬지지 않은 채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쉽게 오러를 갈무리했겠지만, 슈에츠는 예외였다.
그들은 꼭 피를 보아야 했으며, 넘쳐나는 붉은 웅덩이를 마주해야만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할 때가 가끔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의 혼란을 겪을 때였다.
‘대체 무엇이?’
이미 상황은 다 끝나지 않았나? 안테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공작을 바라볼 때였다.
돌연 공작이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공작님?”
안테의 부름에도 공작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벌컥!
큰 소리와 함께 공작이 문을 열었다.
“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맑은 녹안을 가진 아이가 공작을 바라보았다.
“공작님?”
아이의 부름에도 에르하르트는 조금 우악스럽게 아이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러곤 휙휙 돌리며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