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8화(38/241)
엘리의 머리가 앞뒤 좌우로 붕붕 흔들렸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공작님, 어, 어지러워요…….”
엘리의 앓는 소리에 에르하르트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멀미 난 사람처럼 해롱거리던 엘리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눈은.”
“네?”
“이상한 약을 넣었다던데.”
하지만 엘리의 시선은 을곧게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눈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에르하르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려다보는 눈초리가 사나워, 엘리는 몸을 움츠렸다.
‘혹시 거짓말한 걸 들켰나?’
하지만 그의 얼굴에 피가 묻은걸 보아, 일은 계획대로 흘러간 것 같은데……?
일이 중간에 틀어졌나? 역시 내가 직접 가서 안약을 넣는 시늉이라도 했었어야…….
“공작님?”
그때, 뒤편에서 짐짓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에르하르트가 소리의 행방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바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의아함에 미간을 좁힐 때였다.
“공작님!”
황급히 뒤따라온 안테가 공작의 곁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말도 없이 가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헉, 게다가, 그렇게 빨리…….”
뛰어오기라도 한 듯 헉헉거리던 안테가 경직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런…….”
탄식하듯 중얼거린 그가 재빨리 에르하르트를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작님. 어, 어서요!”
안테가 온 힘을 다해 그를 잡아당겼지만 에르하르트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상을 찡그리며 엘리를 지그시 내려다볼 뿐이었다.
엘리의 시선이 안테와 에르하르트에게 차례대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공작은 안테의 안달에 응해주었다.
문이 닫히고, 방과 멀어지자 안테는 에르하르트를 놔주었다.
“하아…….”
진심으로 지쳤다는 듯 내쉬는 안테의 한숨에 에르하르트가 물었다.
“왜 계속 한숨이야.”
“정말 몰라서 물으십니까?”
“알면 귀찮게 묻겠나?”
절로 입이 다물어지는 대답이었다. 안테가 질끈 눈을 감을 때, 로이나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레 회의장을 빠져나간 공작과 안테 때문에 또 다른 일이 생기진 않았나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피부터 닦으십시오.”
안테가 품속의 손수건을 내밀었다. 에르하르트는 그것을 한 번 힐끔거리다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
안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님께서 무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좀 심하십니다.”
“뭐?”
“엘리 님 말입니다.”
엘리의 이름이 나오자 에르하르트가 노골적으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알아듣게 말해.”
“저희야 익숙하지만, 엘리 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까지 묻히고 가시면 그 어린 분께서 얼마나 무서워하시겠습니까.”
안테가 어쩜 그리 둔하냐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진즉에 경기를 일으켰을 테지만요.”
“…….”
“그래도 피는 좀 자중해 주십시오. 아직 어리시지 않습니까.”
안테의 말에 에르하르트는 시선을 내려 제 손을 바라보았다.
피가 흘러내린 흔적이 선명했다.
확실히 그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망각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는 사람이던가?
그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영지에 발을 들인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저, 공작님…….”
그때 로이나가 조심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두고 가신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약이 들어 있는 약병이었다. 엘리가 공작에게 주었던 것.
“그 약, 엘리 님께서 제게 받아간 것인데…….”
“뭐?”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드시지 않고 공작님께 드렸나 보군요.”
어쩜 그렇게 속이 깊으신지. 로이나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하르트는 말없이 손 안의 약병을 내려다보았다.
이 약을 버리지 않은 건, 제게는 통하지도 않을 아이용 두통약을 가져와 내미는 것이 퍽 우스워 받아준 것뿐이었다.
그랬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신경이 쓰인단 말인가.’
에르하르트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강하게.
“세상에, 저라면 제가 냉큼 먹었을 겁니다.”
안테가 기다렸다는 듯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괴팍한 사람이 아프건 말건, 이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
신나서 입을 놀리던 안테가 날 선 에르하르트의 시선에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에르하르트가 손을 뻗었다.
안테는 움찔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 멈춰있을 뿐, 제 목을 조르거나 하진 않았다.
안테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님……?”
“내놔.”
“무엇을…….”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안테의 손이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방금 전 내밀었던 손수건.
“아, 예에…….”
안테가 빠르게 손수건을 공작에게 내밀었다.
낚아채듯 손수건을 가져간 에르하르트가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기 시작했다.
손을 내리자 하얀 손수건이 피로 물든 것이 보였다.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묻었나.’
확실히,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꼴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북부는 마물들로 가득하다. 피를 보는 일은 이보다 더 늘어날 터.
에르하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테.”
“예, 예. 공작님!”
“이런 거, 기사들도 가지고 있나?”
“……예?”
넋 나간 안테의 목소리에 에르하르트가 피 묻은 손수건을 들어 보였다.
“아, 아니요.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씩 배급해. 곧장 피를 닦을 수 있도록. 그냥 아무 천이나…….”
아무 천이나 찢어서 줘버려라, 하고 말하려던 에르하르트가 멈칫했다.
“피가 잘 닦이는 좋은 천으로 만들라 일러라.”
그러나 피만 잘 닦이는 천은 기본적으로 거칠다.
우연히 빌려 썼다가 연약한 아이의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최대한 부드러운 천으로 준비해.”
잠깐.
아이가 볼 수도 있으니 무늬도 신경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손수건은 잘 쓰이는 만큼, 남에게 빌려주는 일도 많았다.
엘리가 누군가에게 손수건을 빌릴 날이 올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꽃무늬 같은 것도 넣으면 좋겠군. 로이나, 그대가 하인들에게 단단히 일러라. 배급은 안테가 맡고.”
졸지에 손수건 배달부가 된 로이나와 안테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 * *
나는 얌전히 거울 앞에 앉아 이바나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오늘따라 열심히 꾸며주는 것 같은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나의 물음에 이바나가 머리에 리본을 묶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공작님께서 특별히 외출을 허락해 주셨거든요.”
“외출?”
고아원에서 슈에츠 영지로 온 이후, 공작성 근처나 종종 산책할 뿐, 성 밖은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럼 멀리까지 가볼 수 있어요?”
들뜬 마음에 눈을 빛내며 웃자이 바 나가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요. 마차를 타고 영지 중앙광장까지 나가볼 거예요. 재밌고 다양한 볼거리가 아주 많답니다.”
“우와!”
안 그래도 시장조사를 하고 싶었는데, 잘됐다!
여유롭고 편안한 미래를 위해선 시장조사는 필수였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4년 후, 데미안은 황제의 명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성장한 데미안이 황가에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15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전쟁터에 내보내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클라이더의 이름을 정정당당히 계승하기 위해 전쟁에 나가고, 5년 후 승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 여주인공과 함께 돌아오지.’
여주인공 아샤벨은 작은 마을에 저들끼리 모여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알고 보니 대신관도 가지지 못한, 강한 신성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전쟁에 휘말려 피난을 가던 도중, 습격을 당해 쓰러져 있는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여주인공은 데미안을 치료하다, 성력을 개화하고 제 능력을 깨닫는다.
아샤벨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녀의 손길만 스쳐도 상처가 나았으며 오랜 악몽도 손만 잡으면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본인도 몰랐던 힘을 가진 먼치킨. 여주인공 그 자체였다.
그러니 어찌 데미안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