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39)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39화(39/241)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힘을 탐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황족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답게,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마법은 전쟁이 빈번하던 과거에 황권을 견고히 만들어주는 도구였다.
신성력과 치유력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힘만 따져보자면 치유력이 훨씬 강했다.
‘신관이라고 해도 저마다 가진 신성력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지.’
무한한 치유력을 가진 건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황족이 유일했다.
때문에 신전은 악을 물리치고 정화하는 신성력을, 황실은 사람을 치유하는 치유 마법을 기반으로 제국을 통치해 왔다.
문제는, 어떻게 된 일인지 황족의 치유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족 고유의 힘이 황족 중에서도 손에 꼽는 힘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샤벨은 신전과 황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데미안은 그녀를 제국으로 데려온다.
공작은 크게 반대하지만 여주인공답게 그 슈에츠 공작마저 제 편으로 만든 아샤벨은, 신전과 황실을 정정당당하게 물리친다.
‘그리고 데미안과 함께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산다는 게 원작의 내용이지.’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나는 필요 없는 이물질이다.
지금이야 슈에츠 공작의 보호 아래 좋은 걸 누리고 있지만, 그녀가 나타난 후에는 찬밥 신세가 될 것이다.
사실 쫓겨나는 것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슈에츠라는 이름이 없어도 당당히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러니 그전에 미리 돈을 많이 모아야 해.’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이바나를 바라보았다.
“데미안이랑 같이 가도 돼요?”
“어머나. 함께 가시려고요?”
“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데미안이 전쟁을 떠나고 나면 5년 동안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전에 많은 추억을 쌓아놓고 싶었다.
“데미안이랑 같이 갈래요.”
“어쩜, 사이도 좋으셔라.”
이바나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공자님 훈련이 끝날 시간이네요. 같이 모시러 갈까요?”
“네!”
나는 이바나와 함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훈련장 문은 열려 있었다. 훈련이 막 끝난 듯했다.
오늘 아만타 남작은 오지 않아, 기사들이 대신 대련을 해준 모양이었다.
기사들의 얼굴엔 피로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진심으로 데미안과 겨룬 듯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얼른 데미안 곁으로 다가갔다.
“데미안.”
내 부름에 목검을 붙잡고 있던 데미안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엘리!”
소중히 쥐고 있을 땐 언제고, 목검을 내팽개친 데미안이 얼른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디 다친 데 없어?”
“응. 하나도 안 다쳤어.”
데미안이 아직 열감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훈련 열심히 했나 보네.”
나는 데미안의 땀을 닦아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급히 나오느라 깜빡하고 손수건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바나, 혹시 손수건…….”
가지고 있지 않으냐고, 실례가 아니라면 빌려줄 수 있나 물으려고 했는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불쑥, 손수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응……?”
손수건의 주인은 때마침 우리 곁을 지나가던 기사였다.
눈과 뺨을 따라 칼자국이 진하게 난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쓰십시오.”
“아…… 고, 고마워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꽃무늬가 잔뜩 새겨진 보드라운 손수건이었다.
‘……이런 게 취향인가 봐.’
취향을 비웃을 생각은 없지만, 어울리진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데미안은 내 손에 들린 손수건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이 무늬가 싫은가?’
“데미안, 눈 감아.”
그러면서도 내 말엔 얌전히 눈을 감았다.
꼼꼼히 얼굴을 닦아주는데, 데미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귀엽기는.’
“다 됐다. 이제 눈 떠도 돼.”
눈을 뜨자 데미안의 맑고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예쁘네, 우리 데미안.”
“……내가 예뻐?”
“훈련도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듣는데, 당연히 예쁘지.”
이렇게 모든 일에 이유를 붙여 데미안을 칭찬하는 건, 데미안에게 애정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미래엔 소드마스터가 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타인에게 빼앗긴 애정을 지금이라도 느꼈으면 했다.
그 마음이 데미안에게 닿은 것일까.
데미안의 눈빛이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나, 앞으로도 엘리 말 잘 들을래.”
“정말? 아이, 착해.”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나를 올려다보던 데미안의 분홍빛 뺨이 한층 더 빨갛게 물들었다.
그때, 큼큼하고 작은 헛기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바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분께 죄송하지만 마차가 대기 중입니다. 남은 말씀은 마차 안에서 나누시는 게 어떠세요?”
“아, 맞다!”
광장에 나가기로 했었지!
“데미안, 얼른 나와. 같이 가자.”
“어디 가?”
“응, 재밌는 거 잔뜩 보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을 거야.”
“엘리도 같이 가?”
“당연하지.”
“그럼 나도 갈래!”
데미안이 밝은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데미안의 손을 꼭 잡은 채 이바나를 따라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 * *
우리가 향하는 곳은 슈에츠 영지의 중심지, 펠린구였다.
이바나는 슈에츠 상점가나 클라이더 상단으로 가지 않으시냐고 물었지만, 나는 펠린구로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독점으로 유통할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해.’
상단과 계약을 하거나 유통을 하려면 상품이 필수였다.
‘물론 슈에츠 가도 자체적으로 상단을 운영하는 데다가 클라이더 상단도 있지만…….”
파양을 당한 후에도 내 이름으로 떳떳이 장사를 하려면 다른 상단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도 북부의 중앙 시장이라던데, 작지는 않겠지?’
이동하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엘리, 엘리.”
“어?”
“이다음엔 어떻게 해?”
한눈을 팔고 있을 때, 데미안이 부르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데미안과 나 사이엔 작은 동전이 놓여 있었다.
‘맞다. 마술을 알려주는 중이었지.’
“봐, 눈앞의 동전이 보이지?”
“응.”
“내가 지금부터 이걸 사라지게 해 볼거야. 자, 집중해.”
데미안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타이밍을 보며 잠시 침묵하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 오늘은 웬일로 까마귀가 없네?”
“정말?”
그러자 데미안이 냉큼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 틈을 타 동전을 손안에 숨겼다.
“하늘 진짜 맑다, 엘리.”
“응, 그러네.”
나는 데미안의 말에 맞춰 씩 웃었다.
다시 집중하려던 데미안은 동전이 사라지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동전이…… 없어.”
“응. 내가 가져갔어.”
“어, 어떻게 한 거야?”
데미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는 킥킥 웃으며 손 안의 동전을 보여주었다.
“그냥 네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 거야. 아까 까마귀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
“아…….”
데미안이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눈을 빛냈다.
대단한 기술이라도 되는 양 거창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상대가 데미안이니 이렇게 얕은 수가 통한 거다.
웬만한 어른이라면 시선을 분산시키는 건 힘들다.
게다가 물건을 손안에 넣었다고 해도 금방 들키기 마련이었다.
적당한 타이밍을 파악할 것. 물건을 훔칠 땐 적어도 두 명 이상일 것.
이 두 가지의 전제가 없다면 소매치기는 힘들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알려줬다. 아이들에게 이런 손기술은 하나의 마술이었으니까.
“신기해……!”
“너도 해볼래? 음, 동전은 작으니까 좀 큰 걸로 해보자.”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꺼냈다.
훈련장에서 기사가 내게 준 손수건이었다.
깨끗하게 세탁한 다음 돌려줄 생각으로 따로 챙겨둔 것이었다.
손수건을 보자 집중이라도 하는 건지, 데미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번엔 이걸로 해보자. 자, 이걸 한번 가져가 봐.”
물론 얕은 수는 통하지 않겠지만.
나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데미안의 말을 기다렸다.
손수건을 태워버릴 기세로 보던 데미안은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낮출 때까지도 말이 없었다.
이윽고 마차가 완전히 멈추자 데미안이 창밖을 힐끔거렸다.
이바나와 메이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데미안이 배시시 웃으며 손수건을 잡았다.
“못 하겠어, 엘리.”
“괜찮아. 못 해도 돼.”
나는 웃으며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맞은편 창문에서 아셀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공자님, 엘리 님. 도착했습니다. 어서 내리셔요.”
아셀의 말에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시장조사다!’
나는 이바나와 기사들의 손을 잡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휘황찬란한 광장의 풍경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돈이 굴러가는 소리가 저절로 들렸다.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데미안, 얼른 가자!”
나의 재촉에 꼬물거리며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던 데미안이 재빨리 내 곁으로 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데미안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무서운 듯, 몸을 움츠렸다.
“무서워? 손 잡아줄까?”
나는 얼른 데미안의 손을 잡으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사람이 많아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내 손 놓으면 안 돼.”
“사람이 없으면?”
“응?”
“사람이 없으면…… 내 손 놓을 거야?”
데미안이 조금 기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시무룩하게 내려간 눈꼬리가 마치 주인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강아지 같았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안 놓을게. 계속 잡고 있자.”
“정말?”
“당연하지.”
나의 대답에 데미안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약속했어. 절대 안 놓기로.”
“알았어.”
내 대답에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보다 한참 작은 손인데도 맞잡는 힘이 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