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화(4/241)
이윽고 소년이 입술을 달싹였다.
“……왜?”
묻는 목소리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왜, 나한테…….”
자신에 대한 관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고 싶으니까.”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말 그대로, 정말 그러고 싶었으니까.
내 말에도 데미안은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이러면 강수를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카르센한테 빵을 빼앗겼거든.”
그러자 데미안의 몸이 우뚝 멈췄다.
오. 뭔가 될 것 같았다.
난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엄청 배가 고픈 상태야.”
데미안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빵…… 하고 중얼거리며 시선을 늘어뜨렸다.
망설이는 기색.
이때다. 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 우린 같은 처지라는 거지. 그런데 네가 여기 있는 걸 내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혼자 들어가.”
“…….”
“그러니까 그만하고 일어나.”
밥 먹자.
나는 데미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
램프의 등불이 아른거리는 내 얼굴과 어둠 너머를 바라보던 데미안이 이윽고 손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데미안의 손은 얼음보다도 차가웠다.
동상에 걸린 건 아닐까? 식사시간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일단 빨리 몸부터 녹여야겠다.
나는 손에 힘을 줘 데미안을 일으켰다. 다행히 데미안은 저항하지 않았다.
숲을 완전히 나서기 전, 시계탑을 바라봤다.
지금 쯤이면 원장과 선생들은 모두 카지노로 떠났을 것이다.
카르센은 뭐, 알 바 아니고.
“데미안. 지금부터 조용히 해야 해. 쉿. 알았지?”
집게손가락까지 입술에 대며 속삭이자 데미안은 말없이 내 행동을 바라보기만 했다.
숲은 원장실과 더욱 가까웠기 때문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굳게 닫힌 원장실 문을 바라보다, 셔츠 칼라에 꽂아두었던 가는 핀을 꺼냈다.
누가 보면 단순한 머리 고정 핀인 줄 알겠지만 사실 철사였다.
구멍에 맞춰 몇 번 돌리자 찰칵, 익숙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리 와.”
나는 데미안을 이끌고 원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원장은 고아원에 있는 욕실을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방에 개인 욕실을 두었다.
물이 한정되어 있어 고양이 세수하듯 빠르게 씻고 나와야 하는 우리와는 달리, 원장은 뜨거운 물로 마음껏 목욕을 즐겼다.
그래서 나는 원장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 욕실을 이용하곤 했었다.
나는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 옷 벗자.”
“……뭐?”
“옷 벗자고. 옷 입은 채로 목욕할 순 없잖아.”
자, 빨리. 나는 손을 까딱거렸지만 데미안은 굳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으름장 놓듯 말했다.
“너 지금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거 알아?”
“…….”
“계속 이대로 있다간 손이나 발, 둘 중에 하나는 잘라야 할걸. 아니면 둘 다 자르든가.”
“……!”
눈에 띄게 몸을 움찔 떤 데미안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내 맞잡고 있었지만 파랗게 물든 손끝은 돌아오지 않았다.
죔죔 하듯 손을 오므렸다가 펴길 반복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내 과장이 통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제 나이 때의 소년처럼 보였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옆에 있는 게 싫어서 그래? 나가 있을까?”
“하지만…….”
“응? 뭐라고?”
우물거리는 데미안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몸, 징그러워서…….”
“징그럽다니?”
데미안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답하길 망설이는 듯했다.
난 뒤늦게 아차 했다.
데미안은 고아원으로 오기 전, 노예로 살았다.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나는 반성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미안.”
그런데 데미안이 갑자기 사과를 했다.
내가 물러난 것이 그에게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그래서 안 보여주려고-”
“징그럽지 않아.”
“…….”
“그냥, 나는…….”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물어버렸다.
무슨 말을 해도 어쭙잖은 위로밖에 되지 못할 터다.
이곳에 내가 아닌 여주인공이 있었다면 좀 더 다정한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엑스트라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조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나는 데미안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혼자 씻을 수는 있겠어?”
나의 물음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씻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나는 나가서 기다릴게. 다 되면 나 불러. 여기 수건으로 몸 닦으면 돼.”
“…….”
“알았지?”
입술을 벙긋거리던 데미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 문을 닫았다. 데미안의 기죽은 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짜증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언뜻 봤던 아이의 상처를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 * *
“다 씻었어?”
욕실 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데미안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뺨에 오른 홍조만은 선명했다.
“어때? 목욕하길 잘했지?”
“……응.”
데미안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원복을 입은 게 조금 어색한 듯 쭈뼛거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그 나이 때 아이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 이거.”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데미안에게 미리 가져온 것을 내밀었다.
데미안이 목욕 중일 때, 나는 보육교사들만 쓸 수 있는 식료품 창고에서 햄과 치즈를 몰래 훔쳐왔다.
원장을 닮아 입맛이 고급인 보육교사들은 이런 빵을 먹지 않으니 훔쳐먹어도 상관없었다.
덕분에 조잡하지만 그래도 속은 채울만 한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었다.
“이걸 왜 나한테…….”
데미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그야 너, 아까 저녁도 안 먹었잖아.”
“…….”
“잘 챙겨 먹지 않으면 내일이 힘들어. 내일이 힘들면 앞으로가 힘들고.”
“…….”
“얼른 먹어. 그래야 나도 먹지.”
다시 한번 재촉하듯 손을 흔드는데, 데미안이 우물거렸다.
설마.
“먹어본 적 없어?”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피한 듯 귀가 붉어졌다.
하는 수 없지. 나는 내 몫으로 가져온 것을 들어 보였다.
“자 봐봐. 이건 샌드위치라는 건데, 엄청 맛있어. 이렇게 먹는 거야.”
나는 보란 듯이 샌드위치를 들고 입에 넣었다.
앙, 하고 깨물자 햄과 치즈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순식간에 입안에 퍼졌다.
“이렇게.”
나는 얼른 먹어보라는 듯 눈짓했다. 망설이던 데미안이 샌드위치를 합, 하고 물었다.
몇 번 우물거리던 데미안이 멈칫했다. 그러곤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무덤덤한 모습만 보다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머리를 말릴 시간이다.
어깨까지 오는 단발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게 분명했다.
“잠깐 실례 좀 할게.”
나는 들고 있던 수건을 들어 보였다.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데미안이 “아”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느릿하게 숙였다.
익숙하지 않을 뿐, 눈치는 빠른 것 같았다.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말려주었다. 관리가 되질 않아 뻣뻣했지만 머릿결 자체는 고와보였다.
그때, 살짝 드러난 데미안의 목덜미에 무언가 물린 자국이 보였다.
‘짐승에게 물린 듯한…….’
내가 가만히 굳어 있자, 데미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왜?”
“이거…….”
나는 말을 이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데미안의 상처를 더 이상 건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눈치챈 듯, 데미안이 작게 오물거렸다.
“나를 주울 때부터 있었던 상처래.”
“…….”
“그래서 주인이…….”
데미안이 말끝을 흐렸고, 나는 멍하니 입만 벙긋거렸다.
‘그래서 머리를 길렀구나.’
어린 시절, 그가 단발머리였다는 서술은 있었지만…….
발육이 늦은 나보다도 한 뼘 정도 작은 데미안은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또래 기준으로 제일 작은 셔츠를 가져왔는데도 어깨가 한참이나 남을 정도였다.
나는 어느 정도 물기가 가신 데미안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다 조심스레 물었다.
“잠깐 실례 좀 해도 될까?”
“…….”
“머리를 말려야 해. 안 그러면 감기 걸려.”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살 머리를 말려주던 난, 그의 앞머리를 살짝 걷어 올렸다. 혹시 이마에 땀이 나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가려져 있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기다란 속눈썹과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인형처럼 예뻤다.
게다가 막 목욕을 끝낸 터라 뺨엔 살짝 홍조까지 올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쁘잖아?
나는 상황도 잊은 채 멍하니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데미안과 눈이 마주쳤다.
깨지기 쉬운 유리알처럼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일렁였다.
“아…….”
그런데 데미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데미안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흠칫 몸을 떨었다.
“열이 좀 있는 것 같아.”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약을 미리 먹여야 할까 고민하는데 데미안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난, 난 괜찮아.”
“하지만 아직도 뜨거운데. 여기 봐.”
“그건 그냥, 더, 더워서…….”
데미안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홍조가 올랐던 뺨에 이어 어느새 귀 끝까지 물들어 있었다.
‘내가 너무 부담스럽게 했나?’
“알았어. 대신 어디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해.”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자, 이제 가자.”
“……어딜?”
“어디긴. 시간이 늦었잖아. 이제 자러 가야지.”
나는 바닥에 놓인 램프를 들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자는 곳이 따로 있어?”
“그게 무슨…….”
나는 멈칫하고 데미안을 바라보다 빙그레 웃었다.
“자는 데는 따로 있어. 앞으로도 쭉 거기서 잘 거야.”
데미안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설명을 잇는 대신 데미안의 손을 잡아 이끌었고, 그는 얌전히 나를 따라왔다.
* * *
양치와 세수까지 깔끔하게 마친 우리는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에 빠진 듯 조용했다.
“으응…… 엘리? 뒤엔 누구야?”
“쉿.”
램프의 불빛 때문에 잠에서 깬 듯, 토미가 작게 칭얼거렸다.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대자 토미가 다시 눈을 감았다.
램프 불을 끄고 안으로 들어왔다.
카르센과 그의 무리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이리 와.”
나는 작게 속삭이며 데미안을 이끌었다.
저 끝에 데미안의 침구가 있지만 혹시라도 돌아온 카르센이 데미안을 발견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터였다.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간 나는 옆자리를 토닥였다.
“오늘은 여기서 나랑 같이 자자.”
“……여기서?”
“응.”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이 입을 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