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0화(40/241)
거리는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나는 사람들 틈에 휘말리지 않도록 데미안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건들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마물이 많이 나오는 북부답게, 주로 무기와 갑옷,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포션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
‘확실히, 북부에선 저런 게 잘 먹히긴 하지.’
하지만 그만큼 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품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해.’
나는 가판에 나온 물건들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았다.
“관심 있니?”
그때 수염이 잔뜩 난 사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 상점의 주인인 듯했다.
“네. 신기해서요.”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아서, 나는 그냥 순진한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아서라,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사내가 어린아이 달래듯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 자식이……!”
그러자 뒤편에서 우리를 지키고 있던 이바나가 앞으로 튀어나왔고, 그 옆에 있던 메이가 달래듯이 바나의 입을 팁! 하고 틀어막았다.
대신 죽일 듯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뭐, 뭐 그만한 돈이 있다면 한번 둘러보시든가…… 요.”
그런 메이가 무서웠는지, 사내의 목소리는 한결 상냥해졌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물어볼까.’
나는 눈앞의 포션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상처를 치료하는 포션이다. 아니, 입니다. 가벼운 타박상에 주로 사용하는데, 이걸 쓸 바엔 그냥 신관들을 찾아가는 게 더 나을 겁니다. 하하…….”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메이의 표정이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나는 사내의 노력을 무시한 채 포션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가격이라면 그냥 신전을 찾아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제국에는 두 개의 중심이 있었다.
하나는 황족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신전이었다.
그들 중, 중앙 신전인 그라페스 대신전은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교리를 내건 곳 답게, 온전한 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쳤다.
‘슈에츠 공작의 광증을 치료하기 위해 가끔씩 정화의식을 치러주는 것만 해도 알 만하지.’
하지만 신관들의 신성력을 빌리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했다.
특히나 종전된 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라 더더욱 신전을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전쟁은 완전히 끝날 수 없었다.
신체의 흉터와 마음의 상처, 기억들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영원토록 기억된다.
‘그만큼 신전에 대한 믿음도 높아졌을 거야.’
하지만 그건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최하위층 사람들이었다.
당장 하루 먹을 음식도 없어 배를 곯는 사람들이 신성력에 기댈 수 있을 리가.
‘그러니 이런 값싼 포션도 계속 팔리는 거겠지.’
포션을 지그시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엘리 님, 어디 아프신가요?”
“왜 이런 포션을…….”
“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올까요?”
이바나, 메이, 아셀이 차례대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활짝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공작님께서 아프실 때, 이걸 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대충 둘러댄 말이었는데, 세 명의 하녀들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었다.
“어쩜…….”
“마음씨가 그리도 고우셔요.”
세 사람은 감동한 표정으로 가슴께를 꾹 쥐었다.
“그럼 엘리 님, 선물로 하나 사가시는 건 어떠세요?”
“선물?”
“예. 저희 영지에서는 첫 외출을 나간 아이들이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 오는 게 관습이랍니다.”
위험한 영지인만큼 외출을 자주 할 수 없어, 첫 외출의 의미가 크다고 이바나는 설명했다.
“……그럼 하나 사갈까.”
나는 다시 포션에 시선을 두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슈에츠 공작이 좋아할까? ‘그’ 슈에츠 공작이, 이런 포션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두통약을 건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람이다.
‘이런 걸 좋아할 리 없지.’
나는 스스로 답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냥 안 살래요. 다른 거 둘러보고 싶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데미안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거리를 빠져나오자 방금 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화려한 각양각색의 장신구들이 한가득 늘어져 있었다. 빛을 받아 유독 반짝거려 보였다.
“예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눈앞 의상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는 눈이 좋으시군요. 하나 골라보시지 않겠습니까?”
방금 전, 무기 상인과는 달리 정중한 표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구경만 하려 했던 마음이 한결 진지하게 바뀌었다.
전보다 꼼꼼히 둘러보는데, 유독 맑고 푸른 보석을 박은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 꼭 데미안 눈동자 같다.
물론 다이아몬드처럼 맑지는 않았지만, 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모습이 데미안과 닮아 보였다.
‘하나 사볼까.’
나는 옆의 데미안을 힐끔거렸다. 데미안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다른 장신구들을 빤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걸로 하나 주세요.”
나는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상인에게 말했다. 눈치 빠른 그는 조심스레 장신구를 포장해 주었다.
소중히 귀걸이를 품에 안고 돌아서는데, 아셀이 부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상자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문득 이바나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여기 영지는 첫 외출 때 사오는 선물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했었지.’
슈에츠 공작의 보호 때문에 이뤄진 관계라고 해도, 공작성의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친절했다.
‘……하나 사볼까.’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사본 적이 없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내 선물을 좋아해 줄까?’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을 때, 손에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엘리?”
“아, 데미안. 다 샀어?”
나는 얼른 상념에서 깨어났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얼른 포장지를 등 뒤로 숨겼다.
“응, 다 샀어.”
“그, 그럼 다른 곳으로 가보자.”
나는 하녀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둘이서만 둘러볼래요!”
“예?”
그러자 아셀이 이별 통보라도 받은 것처럼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두 분이서만 다니시면 위험해요.”
“하지만…….”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그때,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우리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훈련장에서 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던 그 기사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분명 기사들과 함께 왔었지.’
하녀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기사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존재감을 잘 숨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기사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우락부락한 몸과 험악한 표정, 쭉 찢어진 눈매.
아무도 쉽게 다가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확실히 라이너 경이 함께 가주신다면 안심은 하겠지만…….”
이바나가 머뭇거리자 나는 재빨리 말했다.
“라이너 경, 저희랑 함께 가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바나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이너 경, 공자님과 엘리 님을 잘 부탁드려요.”
걱정이 가득한 이바나의 말에 라이너 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흐음…….”
무사히 하녀들과 거리를 둔 나는 눈앞의 상품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엘리, 어려워?”
“응.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 이바나랑 메이 거는 골랐는데, 아셀은 뭘 좋아할까……. 아, 데미안 혹시 지루해?”
“아니, 전혀.”
데미안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부러워서.”
“응?”
“아무것도 아니야.”
데미안이 워낙 작게 중얼거려 잘 들리지가 않았다.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 빨리 고르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나는 다시 눈앞의 상품에 집중했다.
“어머, 이거 예쁘다.”
그때 거리를 지나가던 남녀 한쌍이 우리가 있는 가판으로 다가왔다.
밀색 머리를 가진,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였다.
“마음껏 둘러보세요. 비싼 세공품은 아니지만 꽤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들이랍니다.”
“아, 정말이네. 빛나는 게 정말 예뻐요.”
“하나 골라볼래?”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슨 신호라도 들은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늘어나자 상인이 헤벌쭉 웃었다.
‘이러다 데미안을 잃어버리겠어.’
일단 빠져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데미안의 손을 잡아 이끌 때였다.
“이거 하나 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상인이 계산을 위해 몸을 돌린 순간, 밀색 머리를 가진 아이가 손을 뻗었다.
그리곤 아주 은밀하게, 물건 하나를 손안에 숨겼다.
“우리 다른 거 보러 갈까?”
아이의 주먹을 확인한 여자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오. 나는 작게 감탄했다.
‘내가 데미안에게 알려준 기술을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뭔가 기분이 새로워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내 물건도 아니니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나중에 내가 장사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의 손목을 턱, 잡았다.
“어디 가?”
“뭐, 뭐야!”
“방금 네가 저지른 짓을 본 사람.”
방긋 웃으며 말하자 밀색 머리를 가진 아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 우리 애가 뭘 했다고?”
부부가 아이를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허둥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으로 보였다.
‘찾았다.’
공작님께 드릴 첫 선물.
나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흐읍,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선-
“라이너 경-!”
온 힘을 다해 이 광장에서 제일 힘이 강한 어른을 불렀다.
내가 붙잡아서 도둑이라고 해봤자 아이라고 무시할 게 뻔했다.
이럴 땐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어른이 필요했다.
태산 같은 라이너 경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히익, 누군가 겁먹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