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2화(42/241)
나는 실례라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나의 지긋한 시선에 그레이스가 자신의 뺨을 쓸었다.
“아니, 그냥 잘생겨서.”
“……뭐?”
“순간 다른 생각이 안 날 정도였어.”
왜 그레이스가 등장할 때마다 다른 영애들이 볼을 붉혔는지 알 것 같았다.
‘가끔은 이성보단 동성에게 설렐 때가 있는 법이지.’
나는 깊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고마워. 너, 너도 예뻐.”
잘생겼단 말은 생경한지, 그레이스가 빨갛게 볼을 물들이며 말했다.
“……진심이야.”
동성에게 저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뭐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돌연 표정을 굳혔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고마워할 말은 아닌 것 같네.”
“응?”
“지금 내 얼굴, 뚫릴 것 같거든”
그레이스는 난처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자 부축을 도와주던 데미안이 그레이스를 지그시 바라보는 게 보였다.
‘아니, 이건 지그시라기보단 째려보는 느낌인데…….’
데미안이 워낙 낯을 가려서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시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그레이스. 아까 그 사람들, 이름 알아?”
“이름…… 이름은 몰라. 이 광장에서 몰려다니면서 소매치기를 한다는 것밖엔.”
“그렇구나. 그럼 그 수가 엄청 많겠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라이너 경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잡았어요?”
“예.”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다.
북부에선 첫 외출을 나간 아이들이 선물을 주는 게 관습이라고 했다.
‘공작이 좋아하겠어.’
씩 웃으며 라이너 경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
라이너 경의 인상이 한층 험악해졌다.
살벌한 표정에 무서웠는지 그레이스가 끅, 거리며 겁먹은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공자님! 엘리 님!”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이바나와 아셀이었다.
“누가! 누가 이랬나요! 감히 누가!”
“손목을 끊어놓겠어요!”
이바나와 아셀의 분노를 양손으로 가볍게 제압한 메이가 나에게 물었다.
“허리는, 아직도 아프신가요?”
“네. 허리가 아파요.”
나는 가볍게 허리를 통, 두드렸다.
“야, 약을 구해와야 해!”
“빨리! 늦으면 안 돼!”
이바나와 아셀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품에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작은 봉투엔 각종 약들이 들어있었다.
아픈 건 허리라고 말했는데도 두통약, 감기약 등등 종류별로 가득했다.
‘이 많은 걸 그 짧은 새에 사 온 거야?’
나는 짧게 감탄하다 손을 뻗어 약을 받아 들었다.
“모두 고마워요.”
나의 인사에 이바나와 아셀이 수줍게 웃었다.
“어,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바나가 그레이스를 보며 물었다.
“으응, 내 친구.”
나는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대충 둘러대었다.
“친구요?”
“응. 오늘 만났어요. 그렇지, 데미안.”
“……응.”
고맙게도 데미안은 내 말에 동조해 주었다.
“친구…….”
그레이스는 입을 뻐끔거리다 볼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주인공의 자리를 탐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레이스와 미리 얼굴을 익혔으니 나쁠 건 없겠지.
“다음에 또 봐, 그레이스.”
아마 그땐 내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뒷말은 안으로 삼킨 채, 나는 그레이스와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맞붙은 손 사이로 이바나와 아셀이 구해준 약을 건넸다.
“어…….”
왜 이걸 제게 주냐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일종의 뇌물이지.’
나중에 우리 데미안도 예쁘게 봐 달라는, 일종의 뇌물.
그러고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아이고, 허리 아파라. 얼른 마차로 돌아가야지. 가자, 데미안.”
나는 능청을 떨며 걸음을 돌렸다. 그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묵직한 저음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나와 데미안 사이로 들어온 라이너 경이 번쩍, 우리의 몸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팔다리가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겨, 경?”
줄에 널린 빨래가 된 우리는 그대로 마차까지 이동했다.
* * *
햇빛이 창문 안으로 쏟아지던 오후.
공작의 집무실 안엔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아만타 남작과 대장장이 외보르크였다.
여전히 외보르크는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상태였으나 전처럼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다.
새로 온 주치의의 처방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외보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작 앞에 검을 내려놓았다.
손잡이 가운데엔 블루 호프가 빛을 내고 있었고, 검은 날은 샹들리에의 빛을 머금어 한층 서늘해 보였다.
“아만타 남작님과 함께 이번에 새로 만든 검입니다. 공작님께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에르하르트가 손을 가져가자, 블루 호프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우웅,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르하르트의 강한 마나에 반응하는 소리였다.
검을 쥐자 푸른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마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복종이었다.
마나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제국에 몇 없었다.
봐도 봐도 신기한 장면에 아만타 남작은 놀란 눈으로 에르하르트를 바라보았으나, 정작 그는 무신경한 얼굴로 검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떠십니까?”
외보르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에르하르트가 검게 빛나는 날을 훑으며 말했다.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는 까칠한 목소리였으나 더할 나위 없는 칭찬에 외보르크의 험악한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모든 게 엘리 님 덕분입니다. 엘리 님이 없었다면 저는 두 눈이 멀 때까지 그 방에 틀어박혀있어야 했을겁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쩜 그리도 영민하신지.”
외보르크와 아만타가 제 손녀를 자랑하듯 엘리를 칭찬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시끄럽다고 입을 다물게 했겠지만, 엘리에 대한 칭찬을 부쩍 많이 듣고 있어 어느새 에르하르트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런 분을 한 번에 알아보시다니. 공작님의 눈썰미는 역시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예. 그러니 엘리 님께서도 공작님을 그리 좋아하시는 거겠지요.”
이어진 말에 미동도 없었던 에르하르트의 입꼬리가 아주,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런 꼬마가 좋아해 봤자지.”
“어유, 저는 그런 손녀가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을 겁니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맞장구를 치던 아만타 남작이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엘리 님의 입양 건 말입니다.”
검날을 훑던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우뚝 멈췄다.
“전에는 조금 갑작스러워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만, 역시 저희 쪽에서 엘리 님을 모셨으면 합니다.”
“…….”
“물론 염려하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걱정 없으시도록 잘 모시겠습니다.”
에르하르트의 안광이 일순간 흉흉해졌으나, 늘 험악한 얼굴이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만타 남작은 멈추지 않고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저희 성에서 엘리 님을…….”
“아이는 내 딸이 되고 싶다고 하더군.”
“……예?”
에르하르트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만타 남작은 입을 뻐끔거렸다.
“생각을 바꾼 거지. 내 딸이 되는 게 더 좋다고.”
그가 검을 내려놓은 채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살짝 옆으로 기울인 고개가 먹이사슬 최상위의 포식자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알아. 내 딸이 되면 말 그대로 개족보가 되지.”
데미안은 엄연한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었으나, 작위를 이어받기 위해선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황제가 이를 허락해줄리 없었다.
해서 에르하르트는 데미안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양자로 삼을 작정이었다.
그러니 법적으로만 따져 봤을 때, 데미안과 결혼하는 엘리는 에르하르트의 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아이는 내가 더 좋다는 것을. 그래서 내 친히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
데미안은 현재 슈에츠 공작가의 양자였다.
데미안과 엘리가 결혼식을 올린다면 엘리의 성도 따라서 ‘슈에츠’가 된다.
제 딸이 되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그 작은 아이가 영지를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해주었으니 이 정도의 보답은 해줄 수 있었다.
에르하르트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렸다.
“그래도 정리는 제대로 해야겠지. 입양은 하되, 남작은 아이를 손녀처럼 여기도록.”…….”
“…….”
“딸이 아닌, 손녀로.”
공작이 ‘손녀’에 힘을 줘 말했다.
멍청히 공작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일제히 안테를 바라보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이렇게 되신 지 꽤 되었습니다.’
안테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 프란츠가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외출이라고 하셨지요.”
아만타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바꿨다.
“공작님께 드리는 첫 선물은 무엇일까요.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글쎄. 쓸데없는 선물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에르하르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