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6화(46/241)
* * *
“……이들은 다 누구입니까?”
망치를 든 채 우뚝 굳어버린 외보르크가 나를 둘러싼 남자들을 보며 물었다.
한쪽엔 마물, 그러니까 한때는 광석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탈룸과 그의 일족들은 스승과 마주하게 되어 감격한 듯, 가슴께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눈빛이 께름칙했는지, 외보르크가 망치를 고쳐 잡았다.
수틀리면 탈룸과 그 일행의 머리라도 내려칠 기세였다.
나는 일부러 겁먹은 얼굴을 꾸며내고선 외보르크에게 작게 속삭였다.
“혹시 제가 협박당하고 있는 것 같으면 망치를 흔들어주세요.”
“……!”
내 말에 외보르크가 침을 꿀꺽 삼키곤 망치를 천천히 흔들었다.
“푸흡!”
적잖이 귀여웠는지 제리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엘리 님도 정말 짓궂으시군요.”
남작부인도 입을 가리며 함께 웃었다.
속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외보르크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렸다.
“……제리트 님.”
외보르크의 날 선 눈빛이 제리트에게 향했다.
나는 보았다.
망치를 쥔 외보르크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나는 것을.
설명을 요구하는 험악한 눈빛에 제리트가 황급히 웃음을 멈췄다.
“그…… 저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엘리 님께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신 듯합니다.”
“친구?”
“아저씨 혼자 검 만들려면 힘들잖아요!”
그러자 외보르크의 얼굴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괜찮습니다, 엘리 님. 힘들지 않습니다. 그냥 잠자는 시간만 좀 줄인다면…….”
“잠을 줄여요?”
“…….”
“잠 안 잔 거예요?”
울상을 지으며 묻자 외보르크가 움찔했다.
외보르크의 눈 밑에 가득한 그늘이 보였다.
‘설마 잠도 줄이면서 일한 거야?’
이제 막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수면은 중요했다. 과로한 업무만큼 건강을 해치는 것은 없었다.
“건강해지려면 잘 자는 게 중요하다고 로이나가 그랬어요.”
“…….”
“아저씨는 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고요.”
나는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
외보르크가 무어라 변명하려다가 끙,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약속하신 거예요.”
“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탈룸이 어서 소개해 주지 않고 뭐 하냐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맞다. 일단 소개할게요. 이쪽은 내 친구 탈룸이에요. 조금 적극적인 면이 있는…….”
[스승!]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탈룸이 외보르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스승!] [우리의 스승님!]뒤이어 탈룸 일족이 외보르크를 둘러쌌다.
외보르크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것도 엘리 님께서 시키신 장난입니까?”
그는 내가 여전히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음, 탈룸은 무기를 만드는 걸 숙명으로 여기는 일족이래요. 저희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는데, 말하는 데엔 능숙하지 않대요.”
“이 사자후 같은 걸 알아듣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외보르크는 당황한 얼굴로 나와 탈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탈룸의 말이 굉장히 특이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저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니 이상하게 느낄 법도 하지.’
나는 외보르크에게 찰싹 붙어있는 탈룸과 그의 일족들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제국 예법에 익숙지 않아서 그래요. 아저씨의 기술을 배우고 싶대요.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맞다, 제자!”
“제자! 제자!”
탈룸과 그의 일족들이 앵무새처럼 내 말을 따라 했다.
“제자라니…….”
외보르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퀸타르 자작과 디에른 때문에 탈룸을 쉽게 믿을 수 없는 듯했다.
[……아무래도 스승은 우리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저들끼리 수군거리던 탈룸과 그의 일족들이 의논을 마쳤는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은인. 우리가 이것을 써봐도 되겠는가?]탈룸이 한가득 쌓인 마물 광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 일족은 항상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대대로 입 닫고 묵묵히 일만 하는 게 최고라는 평을 들어왔다.]“……그거 욕 같은데.”
탈룸은 내 말을 못 들은 척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러니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무엇을 만들 건데요?”
[은인의 손에 들려 있던 그거.]그거? 나는 탈룸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탈룸이 한번 쥐었기 때문일까.
화살대가 살짝 휘어 있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걸로 만들어주겠다.]탈룸이 자신만만하게 씩 웃으며 한쪽에 널브러진 망치와 도끼를 집어 들었다.
[가져와 봐.]탈룸이 고개를 까딱이자 옆에 있던 일족 중 하나가 마물 광석을 집어 들었다.
“어, 그거 맨손으로 만지면 위험……!”
다급히 말리려던 제리트의 말이 뚝 끊겼다.
사람의 손이라면 악착같이 달라붙었어야 할 마물 광석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미 말했다, 은인.]외보르크와 제리트의 얼굴이 멍해졌다.
[이런 하찮은 건 우리한텐 아무것도 아니다.]탈룸이 씩 웃으며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
* * *
그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랐다. 망치를 몇 번 내려친 것 같지도 않은데, 금세 화살이 만들어졌다.
[은인.]탈룸이 나에게 방금 막 만든 화살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제리트가 만들어준 화살과 비슷했으나, 그보다 조금 더 가벼웠다.
“우와, 신기하다. 이렇게 빨리 만들 수도 있네?”
나는 천연덕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외보르크를 올려다보았다.
화살을 내밀자, 외보르크가 홀린 듯 집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말도 안 돼.”
어느새 다가온 제리트까지 감탄사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빠른 손기술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아니, 잠깐만.”
제리트가 기억을 더듬는 듯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오래전, 제국의 성검을 만들었다는 일족에 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손이 빠르며, 사람의 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했는데…….”
제리트의 말에 그제야 탈룸이 기고만장한 태도로 어깨를 쭉 폈다.
“생김새까지는 미처 듣지 못했는데, 설마 당신들이 그 일족입니까?”
[이제야 우리를 알아봤다.]탈룸은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한껏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실력. 최고.”
“최고! 최고!”
“최고다!”
이어지는 말들은 그다지 멋있지는 않았지만.
제리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난데없이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는데, 놀라지 않을 리가.
나는 얼른 외보르크와 제리트 사이로 들어가, 양손으로 두 사람의 옷자락을 살짝 끌어당겼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가 아니라 그저 놀란 것뿐입니다. 저 마물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다니, 신기하군요.”
“그렇구나. 아저씨는요?”
외보르크를 올려다보며 묻자, 그가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군요. 망치를 잡았던 지난 세월 동안, 저렇게 빠른 손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입니다.”
외보르크도 탈룸의 실력은 부정할 수 없는 듯했다.
“난 또, 친구들을 혼내려는 줄 알았어요.”
“혼내다니요.”
제리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이런 전설 속의 종족을 만나게 되어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들과 의사소통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말이 안 통하니, 이거 원…….”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며 애써 웃던 제리트가 문득 멈칫했다.
외보르크와 제리트가 시선을 마주했다.
같은 생각을 한 듯, 두 사람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저, 저어, 엘리 님.”
제리트가 한 번도 지은 적 없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엘리 님, 괜찮으시다면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활짝 웃어주었다.
“좋아요, 뭔데요?”
“엘리 님의 친구들에게 여기서 일할 생각 없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일이요?”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제리트가 빠르고 또 작게 말을 이었다.
“예.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일손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엘리님의 친구들의 힘을 빌린다면 빠르게 생산량을 맞출 수 있을 듯합니다.”
“어…… 하지만 친구들이 괜찮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일부러 곤란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자 제리트의 표정이 절박함으로 물들었다.
“말씀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일에 대한 계약사항과 보수는 원하는 대로 조정해 드린다고요.”
“음…… 알았어요.”
나는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이며 탈룸에게 다가갔다.
탈룸과 그의 일족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때, 은인. 스승께서 우리의 실력을 마음에 들어 하셨나?]“한 가지 절차가 남았어요.”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그들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절차가 무엇인가? 스승의 제자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이겠다.]“아주 좋은 태도예요.”
고개를 높이 쳐든 나는,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간을 찡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하는 건가, 은인? 급히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은 건가? 데려다주면 되나?]“이게 절차예요. 얌전히 제 표정을 따라 하세요.”
[음, 알겠다.]탈룸과 그의 일족들은 얌전히 날 따라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절차라는 건가? 너무 쉬운 것 아닌가?]“아니요, 이렇게만 하면 돼요. 그보다 손이 빠르던데요? 혹시 비결이라도 있어요? 아, 표정은 유지한 채로 말해주세요. 콧김까지 뿜어주면 좋고요. 말끝에 ‘절대 안 돼!’ 같은 감탄사도 인간 언어로 말해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비결은 없다. 그저 우리 일족의 타고난 솜씨일 뿐이지. 우리가 언제부터 망치를 쥐었는지는 이야기하자면 참 긴데…….]탈룸은 진지한 얼굴로 일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요구한 대로 중간중간 콧김까지 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맞장구를 치며 그의 장황한 역사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진지한 협상으로 보일 터였다.
‘너무 일이 빠르게 이뤄지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시간 끌기였다.
협상이 늦어질수록 초조해지기 마련이니까.
겸사겸사, 내가 없으면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좀 더 깊게 새겨주고 싶었다.
‘그래야 내 지분도 챙기지.’
통역과 협상 주도는 공짜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