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7화(47/241)
* * *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남작부인은 외보르크와 함께 일단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들인 제리트가 그의 곁을 지켜야 했지만, 그는 탈룸과의 협상을 마저 끝마쳐야 했다.
제리트는 초조한 얼굴로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얼굴은 더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절대 안 돼!”
탈룸이 콧김을 내뿜으며 안된다는 말을 열한 번째 내뱉었을 때, 제리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엘리 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제리트를 향해 돌아본 엘리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희의 요구가 저들에게 너무 터무니없는 제안이 었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너무 큰 보수를 제안한 겁니까?”
“그게…….”
엘리는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탈룸을 한번 힐끔거렸다.
신호를 알아들은 그가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를 가리키는 두툼한 손가락도 함께였다.
“우리는 은인과 함께다! 함께가 아니면 절대 일할 수 없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하, 하지만 엘리 님께선 너무 어리십니다. 조금만 더 생각…….”
그러나 탈룸은 고집불통인 얼굴로 콧김만 내뿜을 뿐이었다.
제리트가 한숨을 푹 내쉬자 엘리가 못 이기는 척 말했다.
“저…… 제리트 님. 저는 괜찮아요. 해볼게요.”
“예? 하지만 엘리 님을 번거롭게 만들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제리트 님을 돕고 싶은걸요.”
“엘리 님…….”
어쩜 이리 마음씨도 고우실까.
제리트의 얼굴이 찰나의 감격으로 물들었으나, 다시 실망하는 빛으로 변했다.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엘리는 아직 너무 어렸다.
‘아니, 그전에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슈에츠 공작님께 목이 잘릴지도 몰라.’
무시무시한 공작의 얼굴을 떠올리자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저들과 계약을 맺는다면 공작성에도 큰 도움이 될 텐데.’
어떻게든 이 일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고민하던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상단 교육.’
엘리는 아만타 가문에 입적되기 직전이었다.
평민과 귀족의 결혼은 성사될 수 없기에, 제 가문의 양녀로 들이기로 했다는 것을 제리트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교육을 목적으로 제 상단과 계약을 맺는다면.
그리고 그에 따른 수익을 나눠드린다면.
공작님도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실 것이었다.
“엘리 님.”
생각을 끝낸 제리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희에겐 엘리 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제 도움이요?”
“예. 부디 저희 아만타 상단과 함께 일해주십시오.”
“네에?”
제리트의 말에 엘리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도 드려야겠지요. 우선 제 이야기를 먼저…….”
제리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엘리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니, 가릴 수밖에.
엘리의 가려진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를 비밀이었다.
이윽고 몸을 추스른 남작부인이 다시 오두막을 나섰을 땐, 계약이 체결된 후였다.
* * *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가는 길.
제리트의 입가에 웃음이 지워지질 않았다.
드디어 아버지께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제리트.”
남작부인 비에라가 그런 제리트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러자 제리트가 아차 싶었는지 멋쩍게 웃었다.
“남작님께서 기뻐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하나도 내지 못했으니까요…….”
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어머니 앞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닫곤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어머니의 얼굴이 슬픔에 젖어 있었다.
제리트는 아버지와 무척이나 서먹했다.
제리트가 태어난 후, 어머니인 비에라의 건강이 무척이나 나빠진 데다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오클루먼시 병까지 걸렸으니까.
제리트가 아버지를 남작님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남작님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실 겁니다. 그건 확실해요.”
제리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의 노력을 알았는지, 미약한 슬픔을 거둬낸 비에라가 옅게 웃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기뻐하실 거야. 네가 노력한 것을 아버지께서도 아시니까.”
“……예.”
변함없는 믿음을 주는 어머니가 감사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웃음엔 완연한 병색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리트는 그것이 꼭 제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티를 낼 수가 없어서, 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 님께서 오신 이후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입니다.”
“그래서 엘리 님 곁을 계속 기웃거렸구나?”
“어, 어머니……!”
정곡을 찔린 제리트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빙그레 웃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제리트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똑같구나, 너도.”
“……남작님께서요?”
“그래. 엘리 님 이야기를 어찌나 많이 하시는지.”
비에라가 그 상황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어딜 가도 사랑받으실 분이야.”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비록…… 그런 꼬리표가 붙어 있지만요.”
엘리가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엘리의 이름 뒤에 붙은 ‘도둑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래서 처음엔 모두 엘리 님을 공작가에 들이는 데에 반대했지만…….
‘그분께서 상처를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제리트는 엘리에게 아만타의 이름이라도 빌려 기꺼이 보호해주고 싶었다.
설사 황실의 미움을 받게 될지라도.
‘그러려면 남작님에게 더욱 좋은 인상을 심어드려야 할 텐데…….’
“저, 어머니.”
잠시 고민하던 제리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있었던 일, 남작님께는 설명을 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뭐?”
“수인의 언어는 무척이나 희귀한 능력이지 않습니까.”
수인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황족을 제외하면 소수 일족뿐이었다.
소수 일족은 모두 전쟁 때 몰살당했지만, 엘리에게 그들의 피가 흐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 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남작님께 설명을 드린다면 엘리 님을 좀 더…….”
“제리트.”
비에라가 단숨에 말을 잘랐다.
드물게 단호한 어조. 제리트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비에라를 바라보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버지께 절대 말씀드려서는 안 된다. 알겠니?”
“……무엇 때문이십니까? 분명, 희귀한 능력이긴 하지만 소수 일족의 피가 흐른다면 불가능한 능력도 아닙니다.”
“제리트.”
비에라의 주름진 손이 제리트의 손을 맞잡았다. 제리트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엘리 님께서 뛰어난 것은 알지만…….”
그녀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이다 힘겹게 말했다.
“소수 일족은 모두 죽었어. 게다가…… 그것은 황족 고유의 능력이잖니.”
“예? 하지만 어머니. 그게 엘리님과 무슨 연관이…….”
순간 제리트의 눈이 커졌다.
“어, 어머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찌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십니까!”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혹시 모르잖니. 엘리 님의 어머니는 황족의 보물을 훔쳤다고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것이 황족의 보물일 수도 있고 어쩌면-”
“…….”
“……폐하의 아이일 수도 있지.”
제리트가 당혹한 얼굴로 비에라를 바라보았다.
비에라는 피하듯 시선을 흐렸다가,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곤 제리트를 바라보았다.
“……카르티아 황후께서, 아들인 2 황자님을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
“그러니 우리는 이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 이것은 엘리 님을 위해서야.”
“…….”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비에라가 다짐을 받겠다는 듯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 * *
모든 게 침묵에 잠긴,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너무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제리트의 설명은 무척이나 길었다.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쉬운 말들을 이것저것 덧붙였으나,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것이었다.
같이 일하자.
탈룸 일족과 의사소통이 되질 않으면 무기 제조에 차질이 생길 테니, 그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당연했다.
물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나는 너무 어려서, 내 이름으로 된 상단을 만들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리트 밑에서 일을 배운다면, 내가 만든 아이디어를 은근슬쩍 흘려서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하고, 괜찮은 상품이면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
‘어떤 물건을 만들어야 좋을까.’
시장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 상념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음.”
그러다 데미안의 잠꼬대에 재빨리 뒤척거리던 것을 멈췄다.
공작성에 온 이후, 우리는 계속 한방을 쓰고 있었다.
집사 프란츠는 곧 내 방을 신경써서 마련해주었고, 각자 방을 쓰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데미안, 잠 잘 못 잤어? 얼굴이 왜 그래?”
“나 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물론 데미안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너무 티나는 거짓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라는 듯 지그시 바라보자, 결국 데미안은 요즘 계속 악몽을 꾼다며 바른대로 이야기했다.
좋은 훈련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도 마음 한 편의 불안함을 하루아침에 없애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데미안과 한방을 쓰겠노라 말했고, 공작은 왜인지 모르게 못마땅한 얼굴로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러다 애 깨겠다.’
슬그머니 데미안과 잡고 있던 손을 빼낸 나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으니 잠시 주변이라도 거닐어 볼까 싶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어두운 복도가 드러났다.
공작성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이따끔씩 램프의 불꽃을 스쳤다.
일정한 거리마다 불을 피워놔 많이 어둡진 않았지만 조금 색다른 기분이었다.
‘음, 그래도 성 한복판에서 갑자기 마물이 나타날 리 없잖아.’
차라리 귀신이라면 모를까…….
그때 어디선가 철퍽, 하고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뭐지?’
이 끔찍한 소리는?
‘진짜 귀신인가?’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큰일을 계획할 때, 귀신을 만나면 대박을 친다고 들었다.
‘귀신! 귀신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던 나는, 눈을 빛내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