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4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48화(48/241)
소리가 들린 곳은 공작성 뒤편의 외부 정원이었다.
성의 외벽과 가까워, 유독 인적이 드물었다.
몇 개의 기둥으로 연결된 복도를 지나자 정원이 나타났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걸어갈 때였다.
저 멀리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슈에츠 공작이었다.
홀로 서 있던 공작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에 적응한 시야가 넓게 트였다.
자세히 보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호위 기사 안테도 그와 함께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뭐 하는 거지?’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안테가 검을 높이 쳐들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검붉은 액체가 투둑 투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공작님!”
내 부름에 안테가 나를 돌아보았다.
“엘리 님? 여긴 어쩐 일로……!”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공작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안테가 당황하며 피 묻은 검을 숨겼다.
“엘리 님. 이건 그냥 단순한 훈련으로…….”
“말도 안 되는-”
나는 날카롭게 소리치며 공작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우뚝 멈추고 말았다.
“……!”
달빛을 머금은 공작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이며 내게 꽂혔다.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마물을 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것이 아니야.’
이게, 그 말로만 들었던 슈에츠가의 광증인 것일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던…….
“이쪽으로 오십시오, 엘리 님. 위험합니다!”
안테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나는 홀린 듯 공작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 슈에츠 공작이 위험한 상태였다면, 안테가 저렇게 공격하도록 가만히 놔뒀을 리 없었다.
나는 피가 꾸물거리며 흘러나오는 공작의 팔 위에 조용히 내 손을 올렸다.
공작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빛이 본래의 빛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너…….”
잠시 당황한 듯 중얼거리던 공작이 내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피가 후드득 내 옷에 튀었다.
“왜 네가 이곳에 있지?”
“공작님…….”
눈앞에 먹잇감을 둔 맹수 같은 눈빛으로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대로 굳어 대답하지 못하자, 그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말을 이으려던 공작이 옷에 튄 핏자국을 마주했다.
멈칫한 그가 엉망이 된 손을 뒤로 감추며 중얼거렸다.
“……너는 이걸 봐도 아무렇지 않군.”
“…….”
“그만큼 피를 보는 게 익숙하단 소리인가.”
공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밤에 멋대로 돌아다니면 이런 꼴을 보게 된다. 어서 돌아가.”
공작이 내 뒤편에 선 안테에게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안테가 뒤늦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파요?”
내 물음에 시선을 돌리던 공작이 멈칫했다.
“뭐?”
“공작님, 어디 아파요?”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단단히 겁에 질리긴 했나 보군. 별소리를 다 하는 걸 보니.”
“저는 무섭지 않아요. 해치지 않으실 거잖아요.”
“뭐?”
나의 말에 조소를 짓고 있던 공작의 얼굴에 일순간 작은 파동이 생겼다.
“절 죽이실 정도라면 그전에 옆의 기사님을 먼저 공격하셨을 거잖아요.”
그러자 공작이 잔뜩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검이 없어도 너처럼 작은 아이를 죽이는 건 힘들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조금 너그럽게 풀려 있었다.
사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거칠게 흔들리던 눈동자를. 그리고 그 속에서 솟구치는 당황을.
‘무엇 때문에…….’
그때였다. 어디선가 처음 듣는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공작의 팔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팔이 원래대로 재생됐어.’
이건 상처가 아문 수준이 아니었다.
별다른 치유 마법 없이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신전에서도 손꼽히는 신성력을 써도 불가능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게…… 슈에츠의 광증?’
놀라서 입만 뻐끔거리자 공작이 작게 혀를 찼다.
“그러니 돌아가라고 했지 않느냐.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는군.”
인상을 찌푸리던 공작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게 툭 던졌다. 나는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너도 들었겠지. 이 지긋지긋한 피의 저주를.”
“…….”
“이것도 그중 하나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는 공작은 무척이나 덤덤해 보였다.
“그보다, 생각보다 너무 담담하군.”
“…….”
“이런 꼴을 대체 얼마나 많이 봤던거지.”
나는 입을 가만히 다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겁먹지 않은 건 확실히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러면 엄마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공작이 듣기 싫어하지 않을까.
난 기죽은 눈으로 공작을 올려다봤다.
그 무심한 눈빛이 오늘따라 왜인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이모가…….”
그래서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모?”
“엄마랑 같이 뒷골목에서 살 때, 친하게 지내던 이모가 있었어요. 친 이모는 아니지만, 친 이모처럼 따랐어요.”
이모도 엄마처럼 범죄자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범죄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이모는 무척이나 예뻐했다.
호쾌하고 당당한 성격처럼, 이모는 늘 크고 작은 사고를 몰고 다녔다.
큰 상처를 입을 때마다 이모는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가 타박해도 “인생은 이런 거지.”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이모와 친하게 지낸 탓에, 나는 웬만한 상처가 아니라면 잘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뒷골목의 환경은 어린아이가 보지 않아도 될 많은 장면을 매일같이 보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도 덤덤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하자 공작이 낮게 중얼거렸다.
조금은 무서워할 걸 그랬나.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슬퍼 보였는데…….’
“시간이 늦었다.”
툭 던지는 공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봤던 것은 잊어라. 꿈에 나올지도 모르니까.”
“꿈…….”
“그래, 꿈.”
그가 내 말을 따라 하며 안테를 향해 눈짓했다.
“엘리 님. 방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테가 내 곁으로 다가왔으나 나는 돌아보지 않고 되물었다.
“공작님은 안 주무세요?”
“뭐?”
내 물음에 공작이 귀찮다는 듯한 숨을 내쉬었다.
“악몽이 자주 꿔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이 정도면 답이 됐겠지?”
“악몽…….”
나는 그의 말을 곱씹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공작님.”
“또 무엇이냐.”
“제가 재워드릴까요?”
“뭐?”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랑 손잡고 자면 악몽을 꾸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누가.”
“고아원 아이들이요. 그, 그리고 데미안도…….”
날카로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공작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공작님의 악몽이 사라지도록 옆에 있어 드릴게요.”
“…….”
“안 되나요?”
* * *
무척이나 어두운 방 안.
나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방금 전 일을 회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공작에게 재워주겠다고 겁 없이 나불거렸고…….’
심기불편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공작은 홱 몸을 돌렸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공작의 침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공작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너무 쉬운데?’
나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사이, 공작은 검에 베여 잘린 셔츠를 아무렇게나 훌렁 벗어던졌다.
탄탄한 가슴팍과 넓은 어깨가 드러났다.
‘아무리 몸이 좋아도 그렇게 훌렁훌렁 벗냐.’
에구, 망측해라.
‘진짜 탄탄하네. 셔츠 입을 때 불편하겠…….’
“뭐하고 있지?”
“……!”
나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어느새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공작이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까딱였다.
“재워준다고 하지 않았나.”
“아.”
나는 쪼르르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날 어떻게 재울 거지?”
“일단 누우세요.”
공작은 못마땅한 듯 한쪽 눈썹을 으쓱이면서도 얌전히 누워주었다.
‘건방진 고양이 같아.’
그래. 집사, 네 뜻이 그렇다면 특별히 해주마, 하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