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화(5/241)
“얼른 와. 나 졸리단 말이야.”
오늘 일어난 일이 너무 거대해서, 진이 쭉 빠졌다.
나는 다시금 내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우물쭈물하던 데미안이 조심스럽게 내 옆에 누웠다.
“자, 이제 자자.”
나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주며 눈을 감았다.
목욕을 마친 데미안에게선 은은한 향기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일까. 원장실에서 자주 목욕하는 나도 이런 향은 맡지 못했는데.
킁킁. 나도 모르게 향을 맡자 데미안이 몸을 움츠렸다. 그의 귀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 보였다.
이러니까 꼭 변태 같네. 멋쩍어진 나는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데미안의 체온은 높은 편인 듯했다. 따끈따끈.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잘 자, 데미안.”
“…….”
“인사 안 해줄 거야?”
“아…… 너, 너도 잘 자…….”
데미안은 서툴게 말을 더듬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그게 이상하게 귀여웠다.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노곤한 감각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 *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데미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잘 자라는 엘리의 인사와는 달리, 데미안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침대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겐 잠자리 같은 게 없었다. 차가운 바닥과 이불 대용으로 쓰이는 누더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데미안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달빛이 엘리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데미안은 눈앞의 아이가 신기했다.
원장이라고 불리었던 사람이 저를 소개했을 때, 데미안은 분명히 들었다.
“그냥. 약해 보이잖아.”
익숙한 말이라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햇빛을 훔친 듯한 금발머리를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제 시선을 느낀 녹안이 거칠게 흔들렸다. 말해놓고 아차 하는 눈빛이었다.
정작 데미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는 건 익숙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죄책감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는데.’
누구도 데미안과 가까이하지 않았다. 불결하고 하찮은 노예는 멀리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제 없어. 돌아온다고 해도 곧 사라질 거야.”
“내가 약속할게. 내 목숨을 걸고. ”
“징그럽지 않아.”
‘내가 정말 징그럽지 않은 걸까?’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 데다가, 이토록 꼭 끌어안고 자는 것만 해도…….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데미안이 소심하게 손가락을 꼬물거릴 때였다.
엘리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저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
데미안의 얼굴에 다시 열기가 올랐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자꾸만 얼굴이 빨개졌다.
데미안은 타인과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엘리와 눈이 마주쳤을 땐, 저절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맑고 예쁜 눈동자였다.
낡고 어둡던 축사 사이로 스며들었던 한 줌의 햇빛이 그런 빛을 띠었던 것도 같았다.
데미안은 손을 꼬물거리다 제 가슴께에 올렸다.
멈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데미안은 눈을 꼭 감았다. 어서 이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며.
&
눈앞은 온통 어둠이었다.
데미안은 손에 쥐고 있던 목검을 고쳐 잡았다.
크르륵. 익숙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데미안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물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랐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데미안은 그들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데미안을 볼 수 있었다.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노예와 마물을 겨루게 하는 도박은 귀족들의 큰 유흥이었다.
마물을 이긴 횟수가 많은 노예일수록 주인은 높은 성취감과 자부심을 가졌다.
“내가 널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떤 것까지 구해왔는지 아느냐?”
언젠가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뒤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주인과 친하게 지내는 불법 제조업자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사람일 텐데, 그들이 마물과 겹쳐 보였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크르륵……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렸다.
데미안은 눈을 꼭 감았다. 정신 차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
“……미안.”
“으으…….”
“데미안!”
“……!”
데미안은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햇빛이 얼굴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공포스러운 주인의 얼굴은 없었다. 그러나 쉬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데미안.”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데미안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너 괜찮아?”
저를 향해 묻는 아이는 금발의 여자아이였다. 제 주인이 아니었다.
“악몽 꿨어?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엘리가 데미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짓이 순간, 저를 향해 손을 뻗던 주인과 겹쳐 보였다. 데미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데미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가 점점 선명해졌다. 엘리가 심각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향한 걱정스러운 얼굴이 너무나 생경해, 데미안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기라도 걸린 건가?”
엘리가 중얼거리며 데미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서늘한 체온이 이마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오싹한 공포와 들끓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정화되듯이.
데미안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마저 잊은 채였다.
데미안의 숨이 천천히 원래의 호흡을 되찾았다.
엘리는 데미안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 올려주며 상태를 확인했다.
“열은 없는데. 악몽이라도 꿨나 보다. 세상에, 이 땀 좀 봐.”
엘리는 땀을 식혀주듯 젖은 머리칼을 가만가만 만져주었다.
저와 마주한 아이의 얼굴에선 작은 불쾌감이나 혐오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데미안은 그런 엘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데미안이 아무 말도 없자 엘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너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냐?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 데미안은 괜찮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데미안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생소한 물음에 데미안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자, 엘리가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다. 물수건 가져올게.”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뜬 데미안이 엘리의 손을 잡았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자신이 붙잡아놓고 되레 깜짝 놀란 데미안은 황급히 손을 놓았다.
“나, 난 괜찮아.”
데미안이 더듬거리며 서툴게 말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기껏 내뱉은 말은 방금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 같았다.
데미안이 몰려오는 창피함에 고개를 푹 숙일 때였다.
“많이 무서웠나 보네.”
다정한 목소리에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의 손이 부드럽게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상해.’
너무나 이상했다.
손짓 하나일 뿐인데, 뒤틀릴 것처럼 꼬여 있던 속이 풀리고, 간지럽고 따스한 무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태양을 배 속에 꿀꺽 삼킨 것만 같아.’
그래서일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운 것도 같았고, 창피한 것도 같았다.
데미안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서늘한 손이 거둬졌다. 데미안은 번쩍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열 없으면 다행이고.”
“…….”
“혹시라도 아픈 건가 해서 걱정했어.”
안 아프다니 다행이야.
엘리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아프다고 했어야 했나.’
데미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뎅- 뎅-
그때,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칭얼거리며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싫어…….”
옆 침대의 아이가 잠꼬대로 웅얼거리자 엘리가 픽 웃으며 등을 토닥였다.
“얼른 일어나야지, 베티.”
“언니랑 더 잘래…….”
베티라 불린 아이가 엘리의 품에 꼭 안겼다.
저렇게 안기는 것이 익숙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자,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데미안은 손을 올려 가슴께를 긁었다.
어젯밤에 느꼈던 감각과 비슷한데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러지.’
소년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물음표를 띄울 때였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카르센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방안이 조용해졌다.
“너, 이 자식…….”
데미안을 보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르센이 데미안에게 다가왔다.
무섭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얼쩡대는 것이 조금 시끄러웠을 뿐이다.
그때였다.
“카르센, 좀 늦었네.”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가 빙그레 웃었다.
“엘리 너, 일부러 그랬지! 창고에 저 자식은 없었단 말이야!”
“어, 정말?”
“그래! 덕분에 선생들한테 들켜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아?”
울분을 터뜨리는 카르센과 그의 무리들을 보며, 엘리는 조용히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창문 밖의 시계탑이 보였다.
‘이제 곧 올라올 시간이겠네.’
다시 시선을 돌린 엘리가 카르센에게 말했다.
“그게 왜 데미안 탓이야?”
“……뭐?”
엘리가 싱긋 웃었다.
“속은 사람이 멍청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