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0화(50/241)
“네, 무척이나 닮으셨어요.”
그레이스는 상냥한 그녀의 태도에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도 신관님처럼 예쁜 녹안을 가졌답니다.”
“어머. 눈동자가 예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아…….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저, 저는 동생들이 많아서 이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거든요.”
“실례라니. 전혀요.”
신관이 고개를 저었다.
“좋은 말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오블리에 님.”
그때, 다른 신관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조금만 시간을 달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곧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곧장 친우를 떠올리실 만큼 친하신가 봅니다.”
“네. 전에 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줬어요.”
“무척 좋은 분이시군요. 함께 있으면 든든하겠어요.”
신관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레이스는 멋쩍은 마음에 뒷목을 쓸었다.
“신분 차이가 너무 크게 나서 그건 좀 어려울 거예요. 그 아이는 귀족이거든요.”
그 순간, 신관의 웃음이 뚝 멈췄다. 찰나의 파동이 그녀의 얼굴에 어렸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이 영지에는 녹안을 가진 영애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 그런가요?”
“네.”
확신하는 목소리가 전보다 서늘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적어도 북부에는.”
있을 리 없다. 내가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까.
신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직도 그레이스와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신, 신관님?”
그레이스가 움찔 떨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신관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친우분이 얼마나 좋은 분이실지, 궁금하네요.”
“그, 그러신가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 당시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 그게…….”
그레이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상하게, 말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망설이는 기색.
신관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저희 신전에서 가져온 성수와 구호식량이 있습니다. 그중엔 신력으로 만들어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게 도와주는 약도 있지요.”
그레이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확 밝아졌다.
신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런 구질구질한 고아원에서 후원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저와 함께 나눠주지 않으시겠어요?”
신관이 싱긋 웃었다. 천사의 얼굴이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관님이다.
‘수상한 사람일 리 없잖아.’
그레이스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관들이 떠날 준비를 하자, 아이들이 서운한 얼굴로 옷자락을 잡았다.
“다음에 또 오셔야 해요?”
“당연하죠.”
신관, 오블리에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태양과 세계수의 축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오블리에는 몸을 일으키며, 방금 전까지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레이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감사합니다, 신관님.”
인사를 끝마친 신관들이 마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오블리에는 인영이 사라지자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굳혔다.
‘더러운 것들.’
그녀가 손등으로 입술을 벅벅 문질렀다.
세례랍시고 이마에 입 맞추는 행위는 도통 익숙해지질 않았다.
살갗이 쓸릴 정도로 강하게 문지르던 그녀가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가슴속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녹색 눈을 가진 아이.’
그 아이가 슈에츠의 영지에 나타났다. 그게 뜻하는 바는 명징했다.
‘내가 뭣 때문에 이런 거지들까지 상대해 왔는데……!’
그 피 나는 노력들이…….
“아아악!”
히스테릭한 고함 소리가 덜컹거리는 마차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몇 차례 울분을 쏟아낸 그녀가 입술을 짓이겼다.
이렇게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그때,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어느새 북부 신전에 도착해 있었다.
신관들을 따라 오블리에도 마차에서 내렸다.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어서 빨리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신관 하나가 반가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오블리에 자매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우뚝 멈춰 애써 웃어 보였다.
“형제님도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매님께서 애써주신 덕분이지요. 모두 자매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더군요.”
그건 그레이스, 그 계집의 동생들이 그토록 많았던 탓이다.
줄줄이 따라붙던 동생들이 얼마나 끈질기던지.
오블리에는 목 끝까지 차오른 욕을 꿀꺽 삼켰다.
천사 같고 상냥한 소녀, 오블리에가 어찌 그런 험한 말을 쓰겠는가.
“신의 축복이 그들에게 닿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같은 말로 대꾸하고 돌아가려는데, 신관이 멈칫했다.
“저…… 자매님.”
오블리에는 구겨지는 얼굴을 애써 펴며 고개를 돌렸다.
“네, 형제님.”
“자매님 눈이 오늘따라 오렌지빛이네요.”
“……네?”
순간, 오블리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하, 등불 때문인가 봅니다. 날이 어두우면 등불의 색이 더 짙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유독…… 어, 자, 자매님?”
신관이 장난스레 덧붙였으나, 그녀는 끝까지 듣지 않고 곧장 제 방으로 돌아왔다.
쿵!
거칠게 문을 걸어 잠근 그녀가 휘청이며 거울 앞에 섰다.
녹음을 담고 있어야 할 자신의 눈동자가 오렌지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제 얼굴을 더듬었다.
그런데 얼굴을 더듬는 손가락이 늘 보던 제 손이 아니었다.
어른의 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빨리?’
아직 지속 시간이 남아 있을 텐데……!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자를 들춰내자 일렬로 늘어선 수많은 약병들이 나타났다.
오블리에는 뚜껑을 열고, 쉼 없이 약을 마셨다.
한 병, 두 병, 세 병……. 빈 병 개수가 시체처럼 쌓여갔다.
이 정도면 됐겠지. 대충 병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오블리에가 비척거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어리고 사랑스러운, 맑은 녹안을 가진 천사 같은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원래의 제 모습이었다.
“하아…… 하아…….”
오블리에가 떨리는 숨을 내쉴 때였다.
품속에 감춰두었던 영상구가 떨리기 시작했다.
오블리에는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영상구를 꺼냈다.
“……아버지.”
〈늦었구나.〉
영상구 너머, 누군가의 인영이 희미하게 빛났다.
오블리에의 아버지, 리칼 포르겔 백작이었다.
그녀가 사죄의 의미로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신관들과 함께 움직이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느냐?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만 하는구나.〉
“……그래도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바로-”
〈클라이더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겠지.〉
“……예? 크, 클라이더의 아들이라니요?”
오블리에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영상구의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그럼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게야? 멍청한 것은 여전하구나.〉
경멸스러운 시선에 오블리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기어코 슈에츠 공작이 아이를 찾았다. 우리보다 먼저 아이를 찾았다고!〉
“…….”
〈신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너를 신전에 밀어 넣느라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아느냐? 신관들에게 들어간 돈만 헤아려도 영지는 덮고도 남을 거다. 그런데!〉
“…….”
〈뭣 하나 제대로 된 성과도 내지 못하다니! 하다못해 클라이더의 아들이라도 먼저 찾아냈어야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오블리에는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가엾다.
쯧쯧거리며 혀를 찬 남자가 말했다.
〈방법을 강구해라, 리비아. 그 자리는 원래 네 것이지 않느냐. 유리아, 그년만 없었어도 슈에츠가의 안주인 자리는 네 것이었을 거야.〉
“……네, 아버지. 알고 있어요.”
절대 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할게요.
몇 번의 잔소리 끝에 인영이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오블리에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거울 속에 낯선 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익숙해진 ‘오블리에’의 모습이었다.
‘난 할 수 있어.’
이건 아버지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제 목적이기도 했다.
슈에츠 공작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오블리에는 입술을 짓씹었다.
스스로를 노려보는 안광이 흉흉했다.
* * *
그날 밤.
북부 신전에서 검은 로브를 쓴 자가 빠져나왔다.
깊은 잠에 잠긴 신전을 유유히 빠져나온 그는, 말을 타고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쓸모를 다해 버려진 노예들과 거지들로 가득한 폐촌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