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4화(54/241)
한차례 기세가 꺾였다는 생각에 느른한 미소를 짓던 에르하르트가 멈칫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는 온 제국을 들쑤시며 데미안을 찾아 헤맸다.
정겹게 마주 앉아, ‘네 아버지는 이랬다, 저랬다.’하는 성격은 못되더라도 후견인 같은 관계는 될 줄 알았건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는 꼴이라니.
에르하르트가 자조하듯 웃었다.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고 싶지 않기도 했다.
‘누가 클라이더의 핏줄 아니랄까봐.’
털을 바짝 세우는 게 괘씸하기도 했고, 아닌 척 꼬리를 살랑거리는 것이 귀엽기도 했다.
묘한 감회에 젖은 에르하르트에게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른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분명 데미안의 은인이었다. 친우의 아들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온 제국을 들쑤시며 결국 데미안을 찾아냈고, 이후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엘리까지 함께 데려와 주었다.
‘분명 감사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지고 싶지 않아.
으으……. 입을 꾹 다물던 데미안이 울상을 지으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
“……그럼, 앞으로 나랑은 안 먹는 거야?”
왕왕거릴 기세로 노려볼 땐 언제고, 금세 보이지 않는 귀와 꼬리를 축 내리듯 엘리를 바라보았다.
“나, 훈련도 열심히 했는데…….”
시무룩하게 내려간 어깨가 짠했다. 애써 참으려는 듯, 꼭 깨문 붉은 입술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수작이군.’
에르하르트는 단숨에 파악했다.
일부러 ‘앞으로’라는 말을 넣어서 원하는 답을 얻어내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엘리다.
저에게 조건을 걸며 협상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가 이빨을 감춘 소형견의 본심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무슨 소리야, 데미안.”
……없을 텐데.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
“정말?”
“그럼. 내가 너 아니면 누구랑 먹겠어.”
에르하르트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리가 데미안에게 유독 약하다는 점이었다.
엘리는 이 작은 아이가 낑낑거리며 애정을 찾는 것을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쭉, 계속 같이 먹자.”
엘리가 데미안의 양손을 붙잡으며 약속했다. 데미안의 귀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허. 에르하르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 * *
그날 이후, 어째서인지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공작과 식사를 나누는 건 그날이 끝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빠르게 친해지면 좋지. 두 사람은 가족이니까.’
맛있는 식사는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드는 법이었다.
나는 아직 어색한 공작과 데미안의 사이가 원작보다 빨리 좋아졌으면 했다.
그런데…….
“오늘도 먹는 게 영 시원찮군. 많이 먹도록 해.”
“엘리가 좋아하는 디저트야. 내 것도 다 먹어.”
“이것도.”
“이것도!”
……원래 식사라는 게 이렇게 양보하면서 먹는 거였나?
“전 이미 잘 먹고 있어요.”
내 접시는 벌써 이만큼이나 비었는데, 두 사람의 접시는 손 한번 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밀어진 접시를 바라보다, 다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꿀타래를 얹은 사과파이였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반으로 잘라, 공작의 그릇에 올려주었다.
“이거, 공작님 드세요.”
공작이 단 걸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과파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러자 공작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사과파이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데미안, 너도.”
남은 반쪽은 데미안의 것이었다. 데미안의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맛있는 건 나눠 먹는 거라고 그랬어요.”
나를 향한 두 쌍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더 이상 다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식사를 이어가려고 했는데…….
“이것도 함께 먹거라.”
“엘리, 이것도 먹을래?”
“천천히, 급히 먹다간 체한다.”
“이것도 맛있어.”
내 행동이 오히려 그들의 나눔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하아…….
나는 산처럼 쌓여가는 음식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래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내가 한숨을 폭 내쉬자 남작부인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시는군요.”
“사랑이요?”
나는 믿을 수 없는 말에 만들고 있던 장식용 매듭을 내려놓았다.
원래대로라면 산책을 좋아하는 그녀와 함께 밖을 돌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의 감기 기운이 심해지는 바람에 수공예 제품을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장식용 매듭은 주로 검집에 달거나 허리에 달곤 했는데, 연인이나 남편을 기사로 둔 여인들이 주로 선물하곤 했다.
“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살이 엄청 쪘거든요.”
나는 투실투실해진 뺨을 꼬집었다.
영양가 없는 고아원 식단에 비하면 공작가의 식사는 천국이었기에 살이 오르는 건 당연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배불러 죽겠다고 해도 끝없이 먹이던 공작의 얼굴을 떠올렸다.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공작을 떠올렸다. 장난기가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모습이었다.
“공작님은 저를 놀리는 걸 행복으로 여시기는게 분명해요.”
“어머,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남작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공작님께선 식사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꾸준히, 매 끼니마다 엘리 님을 챙기는 건 공작님 입장에선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시죠.”
“…….”
“그리고 공작님께선 귀찮은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시고요.”
즉, 공작은 나와 식사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정말 그럴까.’
데미안이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확신할 수 없어, 손만 꼬물거렸다.
“잘 만드시는군요.”
상념에 깊이 빠져들기 전, 남작부인이 화제를 돌렸다.
나는 만들고 있던 매듭에 시선을 옮겼다.
매듭이 조금 꼬여 있어, 누가 봐도 초보자가 만든 티가 났다.
“공작님께 선물해 드리면 좋아하실 거예요.”
“어…… 하지만 공작님께선 선물을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나는 첫 외출 때 있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주었다.
공작에게 소매치기 조직을 잡아다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도.
“그런데 별로 좋아하시는 기색이 아니더라고요.”
“아, 이런…….”
남작부인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쩜 내 주변 사람들은 이리도 서툰건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녀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엔 그 매듭을 선물로 만들어 공작님께 드리는 건 어떠세요?”
“이, 이걸요?”
선이 깔끔하고 촘촘한 남작부인의 매듭에 비해, 내 매듭은 볼품없고 초라했다.
이런 걸 선물로 주면 공작은 보란 듯이 코웃음을 칠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작님께선 무척이나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나 남작부인은 확신하며 말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려 했지만, 남작부인이 갑자기 기침을 터뜨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담요를 꼭꼭 덮어드리고,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고 나서야 남작부인의 기침이 멎었다.
“죄송합니다, 콜록, 엘리 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서요.”
“부인, 날이 추워요. 들어가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요. 저는 이런 바람을 맞는 게 더 좋답니다. 방에만 있으면 답답하거든요.”
고개를 젓는 부인의 뺨이 조금 패여 있었다.
“그러니 우선 완성을 해볼까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매듭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 * *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만들면 더 좋습니다.”
부인의 조언을 받아 마무리한 매듭은…….
‘망했는데?’
나는 심란한 마음으로 완성된 장식 매듭을 바라보았다.
남작부인은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셨지만, 내가 상심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었다.
전달하고 꼭 후기를 알려 달라는 남작부인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공작의 집무실 앞에 선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노크를 하려고 문을 연 순간이었다.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집사 프란츠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엘리 님?”
“아…… 안녕하세요.”
얼결에 인사하던 난 집무실을 들여다봤다.
늘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가득했던 집무실엔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엘리 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일부 집행관과 가신들이 나를 보며 알은체를 했다.
문가에 서 있던 안테의 부름에 공작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가시나요?”
“영지 시찰입니다.”
어쩐지 공작은 늘 가슴팍까지 풀어헤쳤던 정복을 딱 갖춰 입고 있었다.
“최근 영지의 물을 흐리는 작자들이 늘어나서요. 그걸 해결하러 가시는 거랍니다.”
안테는 쉽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공작이 직접 나설 정도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터였다.
“그럼 며칠 동안 공작저를 비우시나요?”
“그렇다.”
공작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말이야.”
중얼거리는 공작의 기세가 흉흉했다. 그는 무어라 험한 말을 더 중얼거리려다 나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검은 사자들도 함께 성을 비울 거다. 물론 소수 인원은 남겨두겠지만.”
“…….”
“내가 없다고 말썽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마, 말썽 안 부려요.”
“흐음, 과연?”
“정말이에요. 프란츠도 있고, 남작부인도 있고, 제리트 경도 있으니까요!”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리트는 나에게 상단 교육을 해도 되겠냐고 공작에게 청을 올린 상태였다.
‘내 도움 없이는 탈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제리트는 내가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슈에츠 공작성에 함부로 접근하는 얼간이들이 있을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는데, 주위가 고요했다.
‘응?’
고개를 들자 살벌한 얼굴의 공작이 보였다.
“참, 꽤, 친해 보이는군.”
공작이 원수를 앞에 둔 사람처럼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꼭 제리트 영식이 네 보호자라도 된 것 같구나.”
“어…… 그럼 아닌가요?”
내가 입적될 가문이 일단 아만타였으므로, 제리트가 보호자 중 하나가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공작의 얼굴은 더더욱 무섭게 변할 뿐이었다.
“……교육이니 뭐니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공작이 섬뜩하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어루만졌다.
다른 가신들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저, 공작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때 안테가 조심스레 말했다.
쯧, 혀를 찬 공작이 검집에서 손을 떼어냈다.
‘공작은 허리 장식이 없네.’
다른 기사들은 허리에 하나씩 매듭 장식을 달고 있는데, 공작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공작 앞으로 총총 다가가, 들고 있던 장식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
“제, 제가 만든 장식이요.”
나는 더듬거리며 덧붙였다.
“남작부인과 함께 만들었어요.”
처음 만든 거라 볼품없지만 목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데미안에게 선물할 때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쿵쿵 뛰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게 네가 만든 것이라고?”
공작이 고개를 기울여 내 손바닥 위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장식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