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5화(55/241)
붉은 눈동자는 침묵이 내려앉은 밤의 호수처럼 고요했다.
“저, 엘리 님.”
그때 안테가 난감한 얼굴로 내 곁에 다가왔다.
“공작님께선 이미 장식이 무척 많으십니다. 그런데 때마침 제 허리 장식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가 비어서 말입니다.”
안테가 자신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이런 심술궂은 공작님 말고, 제게 선물해 주시면 안 됩니까?”
안테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공작을 나쁘게 말하고는 있지만, 그 속에 좋게 무마하려는 기색이 엿보였다.
‘공작에게 장식을 선물해 주는 건 역시 무리였던 모양이야.’
분위기가 더 싸해지기 전에 수습해 주려는 거겠지.
‘역시 괜한 짓을 했어.’
이미 예상한 결말이었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왜일까. 거절은 익숙한 것인데.
‘남작부인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어쩌면 공작이 받아주지 않을까, 내심 헛된 기대를 한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이거 기사님 드릴게요.”
나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안테에게 매듭을 내밀었다.
그런데 안테가 가져가기도 전에 큰 손이 매듭을 홱 낚아챘다.
“그걸 왜 네가 가져가?”
공작이었다. 그가 심통이 난 얼굴로 손에 들린 장식을 보았다.
“공작님, 하지만…….”
“조용히 해.”
공작이 단호히 일갈하며 장식을 허리에 묶었다.
가죽 벨트와 내가 만든 매듭은 한눈에 봐도 어울리지 않았다.
착용한 걸 눈으로 보니 더욱 부끄러워졌다.
“역시 다른 걸로 바꿔드릴게요.”
“누구 마음대로?”
공작이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못생긴 물건이니 평생 가지고 다니며 놀려주마.”
“모, 못생기진 않았어요.”
발끈하며 반박하자 공작이 픽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예쁜 매듭이야.”
큼지막한 손은 의외로 무척이나 따스했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다녀오마. 그때까지 다치면 안 된다.”
“……네.”
누군가를 배웅하는 건 처음이라서, 나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작이 정말 좋아서 내 매듭을 가져갔는지, 내가 가엾어보여 가져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맙구나.”
그가 내 선물을 받아주었다.
* * *
공작이 영지 시찰을 떠나고 며칠이 지났다.
북부의 모든 영지를 둘러보려면 꽤 오랜 시일이 걸릴 터였다.
‘그동안 무슨 성과라도 보여 줘야 해.’
굳게 다짐을 한 나는 데미안과 함께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새로 개발한 검이 제작을 끝마쳤다는 귀하고 반가운 소식 때문이었다.
“엘리 님!”
다른 마차를 타고 함께 온 하녀들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고 있을 때, 멀리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작업경을 채 벗지도 못하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는, 이 사업의 추진자 제리트였다.
“공자님도 오셨군요.”
그러다 옆에 있는 데미안을 발견하곤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을텐데 이렇게 와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죠!”
다른 것도 아니고 신제품인데! 큰 목소리로 소리치자, 제리트가 조금 감동한 얼굴로 작은 천에 싸여 있던 검을 내밀었다.
“저희가 발견한 마물 광석과 외보르크의 기술, 그리고 탈룸의 빠른 손이 함께 만들어낸 쾌거입니다.”
나는 제리트가 내민 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오늘을 대비해 잊지 않고 장갑까지 낀 상태였다.
‘손잡이는 광석으로 만들지 않아서 맨손으로 만져도 되지만, 혹시 모르니 주의해야겠어.’
특정한 사람만 공격하지 않는 마물이면 좋겠지만, 아직 그렇게까지는 개발이 어려웠다.
‘그래도 첫 상품이잖아. 차근차근 개발해 나가면 돼.’
원래대로라면 데미안이 전쟁을 나가기 전에나 개발했을 검이다.
이만큼 시간을 앞당긴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데미안도 들어볼래?”
“내, 내가?”
“괜찮죠, 경?”
제리트를 바라보며 묻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은 우물쭈물하며 검을 받아 들었다.
“괜찮아? 무겁진 않고?”
“응. 생각한 것보다 가벼워.”
데미안은 검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동안 아만타 남작에게 배운 게 효과가 있었는지, 검을 다루는 몸짓이 처음보다 더욱 능숙해져 있었다.
“어? 이게 누구. 은인?”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서 보니 더욱 반갑다! 완성된 검, 보러 온 건가?”
탈룸이 넉살 좋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언어를 써서인지 탈룸의 발음은 무척이나 어눌했지만,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탈룸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람의 언어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족의 언어를 쓰면 탈룸이 성검을 만든 자이자, 이종족이라는 게 소문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재를 빼앗길 순 없지.’
그래서 우리는 탈룸이 수인이 아닌, 세계수 근처의 작은 왕국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언어가 서툴러도 납득이 갈 테니까.
“그런데 옆은 누구인가? 처음 보는 소년이다.”
“아, 데미안이에요. 데미안, 이쪽은 탈룸이야. 인사해. 이 검을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을 주셨어.”
데미안이 조금 경계하는 눈빛으로 내 옷자락을 잡았다.
“괜찮아. 착한 친구야.”
낯가리는 어린애를 대하듯 살살 달래자, 그제야 꾸벅 고개를 숙였다.
탈룸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경계심이 많은 꼬마다. 그 태도 나쁘지 않다.”
그는 데미안의 손에 들린 검을 눈짓하며 물었다.
“그래서 검은 어떤가?”
나는 데미안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눈치를 보다가, 검을 다시 한번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 아주 괜찮다는 뜻이었다.
“아주 좋대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다시금 껄껄거리며 호탕하게 웃던 탈룸이, 문득 나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응? 그런데 은인, 얼굴이 전보다 조금 동그래진 것 같다.”
“……!”
“꽤나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나 보다.”
탈룸이 킬킬거리며 웃었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맛있는 식사였으니까.’
자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민망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탈룸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 뺨을 콕콕 찔렀다.
“전부터 느꼈다. 은인의 뺨은 참 말랑말랑해 보인다.”
뺨을 찌르는 탈룸의 얼굴이, 아련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아셀과 닮아 보였다.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이쪽 사람들은 뺨 만지는 걸 참 좋아한단 말이야.
나보다 데미안이 훨씬 더 말랑거리는데.
“음?”
그때, 갑자기 탈룸의 손이 멈췄다. 아셀 덕분에 어느 정도 손길이 익숙했던 나는 왜 그러냐는 듯 탈룸을 올려다보았다.
“흠.”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경계심을 낮추지 못한 데미안에게 닿아 있었다.
[은인. 이 꼬마는 몇 살이지?]갑자기 탈룸이 수인의 언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어…… 곧 열두 살이 돼요.”
[그래?]탈룸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으쓱이며 [빠르군. 벌써 그 나이에.] 하고 중얼거렸다.
“엘리 님, 괜찮으시다면 오늘 함께 광장으로 나가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제리트의 물음에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벌써 검을 파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 검은 슈에츠 영지에서만 판매되는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팔지 않을 겁니다.”
“그럼요?”
제리트가 맡은 건 이번 마물 광석이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그마저도 아만타 남작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오롯이 혼자 운영하는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사실…… 남작님께서 이번 일 말고도 다른 상품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셔서요.”
제리트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상품.
그것이 말하는 바는 무척이나 컸다.
제리트는 상단 소속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상품을 기획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제리트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건.
제리트를, 아들을 믿어보겠다는 뜻이겠지.
“축하해요, 제리트 경!”
“가, 감사합니다.”
제리트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다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남작님께선 저를 많이 못 미더워하십니다. 어머니를 아프게 한 장본인이니까요.”
제리트는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엘리 님 덕분에 저는 이렇게 큰 발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큰 기회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상단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제리트가 결의에 가득 찬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작님께서 처음으로 믿어주셨으니까요.”
제리트의 눈동자에 긴장과 설렘이 뒤섞였다. 희망을 가진 자의 눈빛이었다. 내가 한때 가졌던 것이기도 하고.
“물론 엘리 님께서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갈래요!”
“저, 정말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리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감, 감사합니다! 어서 준비를 끝마치겠습니다!”
“그전에, 작업경은 벗고요.”
“……아.”
머쓱한 얼굴로 여태까지 쓰고 있던 작업경을 벗어던진 제리트가 바쁘게 움직였다.
“탈룸도 같이 갈래요?”
광장엔 여러 무기가 있었다. 탈룸과 함께 가면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얻게 될지도 몰랐다.
“은인의 청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탈룸이 고개를 저었다.
“만들고 싶은 게 새로 생겼다.”
탈룸이 들뜬 목소리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데미안이 조금 더 내 쪽으로 몸을 숨겼다.
탈룸은 그런 데미안이 귀여운 듯 씩 웃었다.
* * *
또다시 방문하게 된 펠린구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리트의 말에 나는 데미안과 잡은 손을 들어보였다.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시장조사였다.
처음 외출 땐 첫 선물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어 시, 물건을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었다.
‘게다가 소매치기 집단까지 만났지.’
덕분에 공작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었지만…….
‘오늘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자.’
가판에 늘어선 상품들을 꼼꼼히 살필 때였다.
‘……응?’
어디선가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