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6화(56/241)
주위를 둘러봤지만 워낙 사람이 많고 번잡해 구분이 힘들었다.
‘그때 소매치기 패거리는 다 소탕했다고 들었는데.’
미처 잡지 못한 놈이 나를 노리는 건가?
일부러 이쪽으로 오게끔 유도하고 싶었지만, 앙심을 품은 자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일단 제리트 경이 있는 곳으로 가자.’
“데미안, 이리 와.”
나는 데미안의 손을 잡아끌어, 많은 인파 속에 섞였다. 마차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그곳으로 갈 작정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이면 쉽게 찾지 못할…….’
그때였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수준의 강한 악취가 났다. 무언가가 썩어 곪아가는 듯한 냄새.
그 냄새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나는 도망칠 틈도 없이 휘청이며 그곳을 향해 끌려갔다.
팔을 부러뜨릴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다.
나는 벗어나기 위해 팔을 비틀었다. 그러자 콱, 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팔을 파고들었다.
“……!”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짙은 통증이었다.
악의를 가진 자의 힘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을 잡은 반대쪽 손에 저절로 힘이 빠졌다.
“……엘리?”
데미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엘리!”
멀어지는 나를 본 데미안이 황급히 손을 뻗었다. 그러나 몰려온 인파 때문에 데미안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데미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으나, 시끄러운 소음 속에 파묻혔다.
이러다간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말 것이었다.
“누가, 좀……!”
최대한 목소리를 짜내려 할 때였다.
“엘리 님!”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메이였다.
메이는 단숨에 이상한 기운을 가진 자를 나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내 몸이 뒤로 힘없이 밀려난 순간, 누군가 나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엘리 님. 괜찮으세요?”
따스한 품. 아셀이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뒤이어 달려온 이바나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상태를 살폈다.
잠시 멈칫하던 메이는 곧 앞으로 튀어 나갔고, 인파 속으로 다급히 도망치려던 자를 붙잡았다.
그러곤 팔을 뒤로 꺾어, 바닥을 향해 힘차게 내리찍었다.
쿵!
땅이 울릴 정도의 거대한 엎어치기였으나, 늘 그렇듯 메이의 무표정한 얼굴엔 작은 변화조차 없었다.
메이가 내려찍은 검은 로브를 쓴 자는, 엎어진 채로 꿈틀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 메이, 죽여버려!”
“소리 안 질러도 그렇게 할 거야.”
메이는 아셀의 품에 안긴 나를 힐끔 바라보다, 단숨에 로브를 벗겼다.
화악!
괴한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에 온갖 검댕을 가득 묻힌 사내였다. 얼룩덜룩한 머리카락은 본래의 색을 잃어 푸석푸석했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듯, 강한 악취가 났다.
유독 냄새에 예민한 아셀이 신음과 함께 코를 틀어막았고, 메이는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엘리!”
“엘리 님!”
데미안과 제리트 경이 곧이어 우리 곁으로 달려왔다.
“엘리,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느……..”
내 모습을 살피던 데미안이 팔을 타고 흐르는 내 피를 발견하곤 얼굴을 굳혔다.
데미안의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제리트는 메이와 붙잡힌 남자를 보며 허둥거렸다.
“이, 이게 무슨…… 이게 어떻게 된……!”
“납치입니다.”
메이가 사내의 팔을 뒤로 꺾으며 말했다.
“엘리 님을 납치하려고 했어요. 데려가려 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은 겁니다.”
메이의 깔끔한 설명에 제리트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걸 그럼 어떻게 해야…….”
“답은 하나죠.”
메이는 뒤로 꺾은 사내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공작님께 넘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희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의 처벌을 해 주실 거예요.”
“좋, 좋습니다. 저희 쪽 기사들을 불러 연행시키겠습니다.”
“그전에 일단 묶어야 하거든요. 저쪽 팔 좀 잡아주실래요?”
“아, 알겠습니다.”
침착한 메이의 대응에 제리트가 그대로 따르려던 찰나.
“자, 잠시만요!”
그때였다. 내내 신음만 흘려대던 사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제 아이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아이? 아이라고?”
메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누가 딸의 팔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메이가 피가 흐르는 내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만큼 급해서…….”
메이의 지적에 사내는 움찔 떨다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 꼴이 엉망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는 딸이, 아내처럼 도망을 칠까 싶어 마음이 앞선 것뿐입니다.”
이윽고 사내의 녹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호하게 추궁하던 메이도 조금은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다.
전혀 관리가 되질 않아 길게 자란 손톱에는 내 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있었다.
“아내가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저와 같은 금발에, 저와 같은 녹안을 가졌다고요……!”
사내는 더러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땟국물 가득한 머리카락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나와 같은 금빛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누구도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는듯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 사람의 딸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같은 거리의 부랑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 혼자 유추만 했을 뿐.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 기분은 그리움일까 원망일까.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멀리 가시면 안 된다고 말씀을……! 어머.”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할 말을 잃은 우리 앞에서 멈췄다.
하얀 로브를 쓴, 나와 체구가 비슷한 아이였다.
“신, 신관님! 너무 빠르십니다! 저도 함께…….”
뒤따라 오던 밀색 머리의 아이도 우리를 확인하곤 멈춰 섰다.
“엘리?”
“그레이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아이는 그레이스였다.
“엘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왜 이 아저씨랑 같이 있어?”
“그건 내가 물을 말이야. 아저씨라니?”
우리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흰색 로브를 쓴 소녀가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로브를 벗었다.
붉은 기 섞인 갈색 머리카락과 짙은 녹안이 드러났다.
“저는 북부 대신전의 신관, 오블리에라고 합니다.”
아이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간단히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이름은 오블리에. 나와 같은 나이인 열세 살이며 북부 신전의 신관이었다.
신전은 신의 뜻을 널리 알리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기 위해 여러 ‘낮은 곳들’을 방문하곤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레이스를 만나게 되었고 친해지게 되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오늘도 신의 부름을 받아 거리의 부랑자들의 재생을 돕는 중이었습니다. 이분도 그들 중 한 분이셨고요.”
오블리에는 바닥에 주저앉은 사내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을 찾았다며 뛰어나가시더군요. 당황한 저와 그레이스는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해 급히 뒤를 따랐고,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 거랍니다.”
오블리에는 능숙하게 설명을 끝내며 빙긋 웃었다.
나도 조숙하기론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편인데, 그녀도 굉장히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제리트도 생각을 정리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자의 행동이 모두 정당화되는 건 아닙니다.”
“일단 딸이라는 말도 쉽게 믿을 수가 없군요.”
제리트와 메이의 단호한 태도에, 사내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형제님.”
그러자 오블리에가 위로하듯 사내의 손을 잡았다. 손수건을 꺼낸 그녀가 사내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형제님께서는 그저 아이를 찾고 싶으셨을 뿐입니다. 마음이 앞섰을 뿐, 잘못하신 건 없습니다.”
오블리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내를 위로했다.
흡사 축복이라도 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관.”
그때, 날카로운 미성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데미안이 싸늘한 얼굴로 오블리에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해?”
“……예?”
“다친 건 엘리잖아.”
“…….”
“그건 엘리가 할 말이야. 네가 할 말이 아니라.”
데미안의 목소리는 더없이 서늘했다.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나는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치료부터 해.”
오블리에가 무어라 해명하려 했으나, 데미안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신관이라면 다친 사람부터 신경써야 하는 것 아닌가?”
오블리에가 쌓아놓았던 부드러운 분위기가 다시금 험악해졌다.
찬물이라도 쏟은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덕분에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야야야, 아파.”
나는 큰 소리를 내며 피투성이인 팔을 붙잡았다.
“엘리, 많이 아파?”
데미안이 금세 기세를 누그러뜨리곤 내 상태를 살폈다.
“응, 너무 아파. 여기 좀 봐줘.”
“응, 응.”
데미안은 내 말대로 내 상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잠시 시야를 다른 데로 돌린 사이 난 오블리에를 바라보았다.
데미안의 태도에 기분이 상할법한데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역시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한 태도였다.
‘북부 신전의 신관이라고 했었지.’
자꾸 치솟는 기시감을 누르며, 상처 난 팔을 들여다보았다.
엉망으로 찢긴 옷자락 너머, 손톱자국이 길고 깊게 나 있었다.
“아프셨겠군요.”
오블리에가 미약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네. 너무 아파요.”
나는 울상을 지으며 팔을 내밀었다.
“신관님의 신성력으로 치료해주실 거죠?”
“……예?”
그녀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선물을 바라는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제 상처, 신관님의 신성력이라면 단숨에 치료해 주실 수 있잖아요.”
어디 그 비싼 신성력, 구경이나 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