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59)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59화(59/241)
기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재빨리 말을 고쳤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딸처럼 이 아니고 손녀처럼 이겠지요. 남작님께서는 나이도 있으시니…….”
뒤늦은 수습이었으나 이미 그의 심기는 상한 지 오래였다.
에르하르트가 고개를 숙여, 피 묻은 검날을 바라보았다.
외보르크가 만든 검은 마물 광석으로 만들어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에르하르트의 모습을 한층 섬뜩하게 만들어주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안테.”
이윽고, 큰 침묵 끝에 공작이 입을 열었다.
“예, 예!”
“가족 같다는 건 무엇이지.”
“……예?”
조금 뜬금없는 물음에 안테는 바보처럼 물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글쎄요. 너무 모호한 질문이군요.”
“그런가.”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안테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가장 보통인 것을 말씀드리자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식은 그런 부모를 믿고 걱정 없이 쑥쑥 성장하는 것이겠지요.”
그러자 에르하르트가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라면 이미 하고 있지 않나.’
그 작은 것이 쑥쑥 자라도록 아낌없이 먹이고 있는 데다가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
“나한테는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는 거지.”
에르하르트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순간, 에르하르트를 제외한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에르하르트는 저도 모르게 나온 물음인 듯, 여전히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돌아오면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봐야겠군.’
그는 그렇게 결심하며 검을 들었다.
저 멀리서 인간을 갈구하며 달려오는 언데드들이 있었다.
“빠르게 끝내고 돌아간다.”
“예!”
검을 쳐든 에르하르트의 붉은 눈동자에 흉흉한 안광이 일었다.
* * *
성수를 가져오겠다는 약속은 겨우 받아냈지만, 우선은 내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였다.
하녀들은 빠르게 마차를 불러왔다. 이윽고 도착한 마차에는 슈에츠의 문장이 아닌 아만타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앞에 선 나는 뒤를 돌아 오블리에를 바라보았다.
“오늘 여러모로 신세 많았습니다. 먼저 물러나 보겠습니다.”
“저야말로.”
오블리에가 나를 따라 인사했다.
나는 웃다가 머뭇거리는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친부님…… 아니, 형제님은 제가 함께 모셔가도록 하겠습니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네. 잘 부탁드려요.”
“그럼…….”
오블리에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신관들은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헤어질 때 손등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곤 했다.
그러나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데미안의 눈치가 보였는지 다시 손을 거뒀다.
“우리 애가 좀 낯을 가려서요.”
낯을 가린다기보단 으르렁거리는 것에 가깝지만.
오블리에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씀드렸던 날에 방문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오블리에는 사내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거리의 부랑자인 그를 그냥 둘 수 없어, 신전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엘리 님. 이제 가시죠.”
제리트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레이스, 나중에…….”
인사하기 위해 뒤를 도는데, 그레이스가 못마땅한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러다 또 싸우지.’
“데미안. 이제 가자.”
내 부름에 데미안이 쪼르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레이스가 허,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오블리에에게 보였던 데미안의 태도가 그레이스의 입장에선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이해했다. 신전은 모든 고아들의 은인 같은 존재니까.
하지만…….
“그레이스.”
나는 그레이스를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데미안은 나쁜 애가 아니야.”
“……뭐?”
“난 데미안만큼 착하고 순한 애를 본 적이 없거든.”
“…….”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뒷말은 삼켜낸 난 손을 흔들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레이스는 조금 멍한 얼굴로 나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세상에, 엘리 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집사 프란츠와 하녀장 로이나가 제리트의 품에 안겨 있는 나를 보곤 경악했다.
“으응, 조금 다쳤어요.”
나는 애써 웃어 보였고, 제리트는 주치의에게 나를 데려다 주곤 그들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데미안은 내가 치료받는 내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데미안, 나 안 죽어.”
“하지만…….”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자, 다 되었습니다.”
공작성의 주치의가 내 팔에 붕대를 마저 감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주치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아프진 않으셨나요?”
“네, 이 정도는 익숙해서 괜찮아요.”
이렇게까지 살이 찢어진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원장에게 맞을만큼 맞아봤다. 맷집 하나는 스스로도 자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주변이 조용했다.
시선을 들자, 어두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왜 저러는 거지?’
“엘리 님, 어찌 그런 말씀을…….”
“다 저희 잘못입니다. 저희를 벌해주세요.”
아셀과 이바나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였다.
‘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정도는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말 때문인 듯했다.
“나, 정말 괜찮아요.”
나는 일부러 다친 팔을 붕붕 흔들었다.
하지만 노력과는 달리 하녀들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질 뿐이었다.
“……엘리 님.”
그때, 로이나가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다. 너무나 따스한 품에 나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로이나?”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상처는 상처입니다.”
“…….”
“그러니 아프지 않더라도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로이나의 목소리는 어쩐지 너무 슬퍼 보였다.
‘나를 꼭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들려.’
나에겐 익숙지 않은 애정이었다.
아마 하녀들이 나를 이리도 다정히 대해주는 건.
‘내가 도둑의 딸이라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니야. 약한 생각 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저, 그럼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인가요?”
“그게……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데요.”
나는 로이나에게 낮에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로이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친아버지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확실하지는 않대요. 그래서 그 확인을 위해 며칠 후에 방문하기로 했어요.”
로이나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나를 데려온 사람은 공작이지만, 엄연한 보호자 신분은 아니었다.
모든 고아원은 신전의 보호를 받는다. 즉, 고아들의 보호자는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신전이기도 했다.
이미 입양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슈에츠 공작도, 아만타 남작도 자리를 비운 상태다.
신관의 제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이를 어쩌지…… 우선, 우선 공작님께 알리고, 그다음엔……. 아, 시간이 얼마 없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로이나가 내 시선을 느끼곤 황급히 표정을 풀었다.
“우선 공작님께 급히 전갈을 넣겠습니다. 엘리 님께선…… 다른 생각 마시고 푹 쉬세요.”
로이나가 방을 나섰다. 원래라면 하녀들도 로이나의 뒤를 따라야 했겠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이바나와 아셀이 머뭇거렸다.
“정신 사나워.”
그러다 메이에게 뒷덜미가 붙들려 밖으로 내쳐졌다.
“혼자 계시게 놔둬. 너희 때문에 더 혼란스러우실 거야.”
그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고마워요.”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메이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자세를 낮춰 나와 눈을 맞췄다.
“주제넘는 말씀이겠지만.”
“…….”
“엘리 님께서 부채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쉬세요.”
그러곤 한 마디를 남긴 채 방을 나섰다.
늘 무표정하던 메이답지 않게 슬픈 얼굴이었다.
위로를 해주려던 걸까?
저런 걱정스러운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내 것이 아닌 걸 억지로 빼앗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 돼. 정신 차려!’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멍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내 옆에 꼭 붙어있는 데미안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하다. 그렇지?”
“……하나도.”
“…….”
“나보단, 엘리가…….”
데미안은 말을 잇기 어려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푸른 시선이 붕대에 둘러싸인 환부에 닿아 있었다.
데미안의 손이 환부 위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촛불을 만지듯 머뭇거리면서도, 오히려 제 손에 불이라도 들린 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안 아프다니까.”
데미안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미안해.”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사과였다.
“그때 내가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잠깐, 데미안.”
“다 내 탓이야…….”
데미안의 눈가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