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6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60화(60/241)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데미안. 네가 왜 미안해해.”
“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질타가 사그라들지 않는 듯, 데미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데미안이 손을 놓은 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오히려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내 상처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는 절대 날 놔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자책할 필요는 없는데, 항상 질책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데미안은 종종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한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데미안, 그러면 내가 더 속상해.”
속상하단 말에 곧장 데미안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잖아.”
“하지만…….”
“그럼 만약에, 내가 실수로 네 손을 놓쳤고, 네가 다쳤어. 그럼 그것도 내 탓이야?”
“아, 아니……!”
데미안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간절한 눈빛이었다.
그러다 ‘어때?’하는 내 눈빛을 보곤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봐. 나도 그래. 이건 그냥 사고야. 누구의 탓도 아닌 사고.”
“…….”
“그러니까 나는 데미안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공작님도 속상해하실 거야. 물론 내가 더 속상하고.”
“…….”
데미안이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시무룩한 모습에 한숨이 폭 나왔다.
사실 미안해야 하는 건 나였다.
원작대로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불순물인 나 때문에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나 때문에 고생시켜서 미안해.”
나는 데미안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나는…….”
데미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엘리랑 있을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숙인 고개와 꼭 모은 손이 마치 신 앞에서 고백하는 어린 신도 같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은 정말 고마웠지만, 계속 마음의 짐을 지게할 수는 없었다.
“있잖아. 그럼 이것도 들어줄 수 있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데미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코코아가 마시고 싶어.”
“코코아……?”
예상치 못한 부탁에 데미안이 눈을 끔뻑였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요즘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금지당했거든. 몰래 가져와 줄 수 있을까? 아주 뜨거운 걸로.”
“아…… 웅! 금방 가져올게.”
데미안이 빠르게 방을 나섰다.
거짓말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데, 데미안에게 하려니 마음 한쪽이 콕콕 찔렸다.
‘미안해, 데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들리지 않은 사과를 한 나는 곧장 한쪽에 놓인 깃펜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종이를 펼치고선 쓱쓱 쓰여 내려갔다.
수신인까지 완벽히 적은 후 인장을 찍었다.
슈에츠 공작가를 뜻하는 사자 문장이 아닌, 아만타 남작가의 문장이었다.
아까 제리트에게 안겨 있을 때 슬쩍 빼낸 것이었다.
‘미안해요, 제리트 경.’
하지만 공작의 이름으로 서신을 보낼 수는 없었어요.
속으로 짧게 사과를 마친 나는 아까 주치의의 가방에서 슬쩍한 바늘을 꺼냈다.
왁스가 굳기 전 바늘로 살살 문지르자, 문장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게 새로운 귀족의 문장으로 바뀐 왁스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난 편지를 서랍에 몰래 숨겼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데미안이 뜨거운 김이 나는 컵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 코코아 가져왔어.”
“다른 하녀들한테 안 들켰어?”
“응.”
“우와, 고마워.”
내 칭찬에 데미안이 볼을 붉혔다. 나는 까만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어 주며 코코아를 마셨다.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만큼 달콤했다.
* * *
신전에 서신이 도착한 것은 이틀 후 저녁이었다.
신전의 이름으로 발송된 서신 정리 순서는 이러했다.
일차적으로 누가 보냈는지를 분류하고, 이차적으로 누구에게 온 것인지를 분류했다.
‘그러니 나한테 왔다는 건 귀족이 보냈다는 건데…….’
성수 관리 담당인 신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수의 값은 금값보다 비쌌다.
평민 신분으로는 평생을 벌어도 부족했다.
하여, 그에게 오는 서신들은 하나같이 귀족들이 보낸 것이었다.
그것 중 일부는 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내용도 담겨 있긴 했으나…….
신관은 모르는 척 그 서신을 품속에 감췄다.
어차피 관리인은 저 하나였고, 몰래 답장만 한다면 큰돈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이번엔 또 누가 보낸 거야.’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신을 뒤집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흐음?’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왁스 상태나 문장으로 볼 때, 수신인은 귀족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문장은 처음 보는데.’
몰락 귀족이라도 되는 건가.
신관은 안경을 한번 고쳐 쓰곤 봉투를 열었다.
또 어떤 콩고물이 떨어질까. 심드렁하게 내용을 읽어내려가던 신관의 눈이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성수의 뒷거래를 알고 있다니!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란 나머지 서신이 바닥으로 팔락 떨어졌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나 말고 또 다른 신관이 있다는 건가?
이걸 보낸 자는 누구란 말인가! 허둥지둥 당황하던 그가 뒤늦게 멈칫했다.
서신에 적힌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가 보냈는지도 불확실했다. 무턱대고 믿을 순 없었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만약 이 일이 대신관님께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하…….”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가 성수 보존실로 향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보존실 문을 열자 투명한 병 안에 담긴 성수가 그를 반겼다.
하나, 둘, 셋, 넷…….
개수를 확인한 그는 보존실 문을 닫았다.
열쇠로 단단히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괜찮겠지.’
그는 손을 탁탁 털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보존실 문을 열었다.
* * *
오블리에가 탄 마차가 슈에츠 공작성 앞에서 멈췄다.
‘이게 얼마만이더라?’
신전에 들어가 있느라 억지로 발걸음을 끊어야 했었는데.
두 발로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 오블리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봐.”
“예.”
사내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전보다 훨씬 차림새가 깔끔해져 있었다. 빈민가를 어슬렁거리는 부랑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실체는 그저 쓰레기지만.’
거리의 부랑자들 중에선 돈만 주면 제 가족이라도 기꺼이 죽일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 남자도 그들 중 하나였다.
아버지 역할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말에, 오블리에가 직접 골랐다.
‘실제로 잘하기도 했었고.’
“전처럼만 하면 돼. 보수는 원하는 만큼 주겠어.”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 해낼 자신 있습니다.”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오블리에는 불쾌한 얼굴로 혀를 차곤 마차에서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어서 오십시오, 신관님.”
미리 전갈을 받은 공작성 사용인들이 그녀를 반겼다. 그중엔 엘리도 섞여 있었다.
“아…….”
오블리에를 따라 마차에서 내리던 사내가 슬픈 얼굴로 엘리를 보며 탄식했다.
잃어버린 자식을 눈앞에 둔 아버지 같은 얼굴이었다.
엘리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사용인들의 표정이 짙은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역시 연기 하나는 잘하는군.’
감탄을 속으로 감춘 오블리에가 엘리를 향해 물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상처는, 괜찮으시고요?”
“네. 적절한 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괜찮답니다.”
“다행이네요. 공자님도 잘 지내셨나요?”
형식적인 인사를 한 후,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계집이 사라지고 나면, 두 번째로 공략해야 할 대상은 저 소년이었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고.’
오블리에가 다정히 웃으며 안부를 물었으나,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를 홱 돌릴 뿐이었다.
“공, 공자님.”
뒤편에 있던 로이나가 잔뜩 당황했으나, 오블리에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전엔 눈만 마주쳐도 덜덜 떨었는데.’
이젠 마주할 줄도 알고.
버릇이 나빠졌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이다.
그래도 아직은 어리니, 제 손에 들어온 후 제대로 교육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신관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 그러신가요?”
“네. 아시다시피 신관님들의 발걸음은 끊긴 지가 오래되어서요.”
로이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슈에츠가와 신전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그러니 슈에츠 쪽 사람들은 오블리에의 방문이 퍽 반가울 터였다.
‘에르하르트도 나를 반기겠지.’
오블리에가 입가를 가리며 웃을 때였다.
“게다가 공작님께서도 자리를 비우셨고요.”
“……네?”
오블리에의 웃음이 우뚝 멈췄다.
공작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