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6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63화(63/241)
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성수로 인해 사내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끝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슈에츠 공작에게 모든 것을 들켰다.
덜덜 떨던 사내는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저것이, 모두 저것이 시킨 것입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그게 마지막 대답인가?”
에르하르트가 사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눈빛만으로 입에 보이지 않는 재갈이 물리는 것만 같았다.
그가 혀가 잘린 사람처럼 입만 뻐끔거리자, 공작이 피식 웃었다.
“유언치곤 한심하군.”
“뭐, 그런 인생을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에르하르트가 뒤편을 향해 눈짓했다. 눈치 빠른 기사들이 남자를 연행했다.
이윽고 다른 기사들이 허망하게 앉아 있는 오블리에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양팔이 붙잡히자 몸이 힘없이 들렸다. 오블리에는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독기 가득한 발버둥에 체력 좋은 기사들도 조금 주춤했다.
결박이 느슨해졌다. 오블리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르하르트에게로 달려갔다.
“공작님! 제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세요. 그럼 저를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오블리에가 넋 나간 얼굴로 그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저는 그저…… 공작님 곁에 있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고독을 알고 있다.
날카롭게 내리 꽂히는 비수를, 나는 알아.
우리는 닮았으니까.
“전부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한 번만 귀 기울여 주신다면 저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포르겔.”
“……!”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일순간 오블리에의 숨이 멎었다.
“제, 제 가문의 이름을 어떻게…….”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에르하르트는 바짓가랑이를 잡은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 그보다 더 아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오블리에의 고개가 따라서 내려갔다.
“……!”
그녀의 발밑부터 천천히 어둡게 변해 가고 있었다.
‘성수.’
사내에게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성수의 일부분이었다.
“오염된 성수라고 해도 정화는 되더군.”
손이 덜덜 떨렸다. 오블리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공작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했다.
경멸 섞인 시선이었다.
“아, 안 됩니다. 공작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발……!”
“데리고 가.”
기사들이 오블리에의 팔을 결박해 일으켰다. 악에 받친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끝인 건가.’
모든 게 끝났는데도 사고가 정지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엘리.”
그때,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공작님.”
방황하던 시선이 공작에게 닿은 순간,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공작이 천천히 엘리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굽히고 앉아, 엘리와 눈을 마주했다.
“내 분명 다치지 말라,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공작의 손이 상처로 가득한 엘리의 팔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그런데 이런 꼴이라니.”
그는 제가 상처라도 입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광증을 앓을 때도 작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던 사람이, 자신의 상처엔 이런 얼굴을 한다니.
그래서일까.
엘리는 반대쪽 손을 뻗어, 공작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저, 쉬고 싶어요.”
그러곤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입에 올렸다.
눈앞이 뿌옇게 변해가는 것 같았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어지럽다.
“쉬고 싶어요, 공작님.”
“……엘리.”
“저, 너무…… 지쳤…….”
엘리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긴장이 풀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엘리는 까무룩 눈을 감았다.
* * *
커튼이 드리워진, 어둠이 짙게 깔린 공작의 집무실.
“끄으윽…….”
어디서 희미한 신음이 들렸다.
모두 마른침을 삼켰으나, 에르하르트는 그것이 음악 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종의 트라우마로 보입니다.”
주치의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엘리가 쓰러지고 난 후, 공작은 곧장 주치의를 소환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생명이 꺼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치의는 잠시 기절한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트라우마?”
“예. 엘리 님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 정확한 진단은 어렵지만, 이런 상황에 꽤 자주 노출되셨던 걸로 사료됩니다.”
“…….”
“한계에 다다랐던 거겠지요. 정신이 이겨내지 못해 도망을 친거고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르하르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현실은 악몽보다 끔찍했거든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하는 엘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참아왔던 거였는데. 그 작은 아이가 꾸역꾸역 자신을 억눌렀던 것이었는데.
그걸 눈치채진 못할망정.
“쓸모 있는 아이가 될게요.”
스스로 그런 말이나 하게 만들었다니.
에르하르트는 스스로에게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렇게 자책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끄흑…….”
그의 발에 등을 밟힌 신관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꺽꺽대고 있었다.
성수를 담당하던 신관이었다.
오블리에는 곧장 공작성의 지하감옥에 갇혔다. 신관의 행세를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신전 쪽에서 그녀를 데려가야 했으나…….
공작의 핏발 선 눈을 본 순간 누구도 입을 뗄 수 없었다.
“미안하군.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래, 무어라고 했지?”
“사, 살려, 커혹…….”
“잘 안 들리는데…….”
에르하르트가 말끝을 늘리며 미간을 좁혔다.
“혹시 그대들은 이 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나?”
신관들이 시선을 피했다. 에르하르트의 눈빛이 짙어졌다.
“다들 동료애라곤 눈곱만큼도 없나 보군.”
그가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 애석한 목소리를 했으나, 무감한 표정은 작은 변화조차 없었다.
“그럼 차례대로 해볼까.”
“…….”
“누구부터 해야 하지?”
에르하르트의 붉은 눈동자가 신관들을 훑었다.
뱀이 발치를 타고 올라오듯, 스멀스멀 소름이 일었다.
신관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저희 쪽…….”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신관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희 쪽 불찰입니다, 공작님.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입은 다들 열려 있었군. 말들이 없길래, 혹시나 했는데.”
공작이 그렇지 않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 오만한 지배자 같은 태도와 신랄한 비꼼에 신관들은 파르르 떨었다.
신관은 제국의 또 다른 기둥이자, 신의 말씀을 전하는 대리인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말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운공기는 금방이라도 제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하면,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무엇이라도 들어주겠다는 태도군.”
에르하르트는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그래. 그럼 무엇이든 말해볼까.”
그가 발을 치우자 신관이 쿨럭거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폐로 급격히 들어오는 공기가 버거웠던 탓이다.
그 힘겨운 소리를 음악 삼아, 에르하르트가 책상에 걸터앉았다.
“조만간 신전으로 입양 허가서를 보낼 예정이네. 하나는 슈에츠 공작의 이름으로, 또 하나는 아만타 남작의 이름으로 들어갈 거다.”
“그리고 나중엔 결혼 허가서를 보낼 예정이네. 그대들은 얌전히 인장을 찍어주면 돼.”
“…….”
“이것이 요구 사항의 전부다.”
공작의 선언에 신관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웬 입양이야? 결혼은 또 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겠다고 해야 돼’?’
‘미쳤어? 입양이야 그렇다고 쳐도 결혼은 황실까지 이야기가 들어간다고! 우리가 함부로 처리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여기서 만약 거절했다간…….
“아, 알겠습니다. 모두 공작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
에르하르트가 부드럽게 입매를 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우웅, 그의 발밑에 시동인이 떠올랐다.
짧게 솟구친 빛이 아직도 헐떡이고 있는 신관의 몸에 스며들었다. 언약의 마법이었다.
신관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신관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죽음을 뜻했다.
신관들의 공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에르하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야기는 잘 끝낸 걸로 알겠네.”
에르하르트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나 웃음과 달리 딱딱하게 굳은 눈매는 뚜렷한 살기로 젖어있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공작님.”
하여 신관들은 이런 대답밖에 내뱉지 못했다.
* * *
내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것은, 보름달이 뜬 밤하늘이었다.
‘응? 여긴 어디지?’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저렇게 큰 보름달도 있구나.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있는 곳은 드넓은 초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지? 의아해하던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집채만한 짐승이 누군가를 등에 업은 채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저건 마물인가?’
아니, 그전에 마물이 사람을 업고 달리는 게 가능한 일인가? 제대로 보고 싶었지만 시야가 흐릿해 잘 보이지 않았다.
“잡아라!”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절대로 놓쳐선 안 돼!”
“죽여서도 안 된다! 무기는 최대한 삼가라!”
누구이길래 저렇게까지 잡으려 하는 것일까.
어쩐지 익숙한 느낌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달리던 마물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있는 것을 눈치챈 것처럼.
‘하지만 이건 꿈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걸까.
그 순간,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주먹을 쥔 손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을 확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