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6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65화(65/241)
포르겔이?
그가 이렇게 불쑥 황제를 찾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들라하라.”
벤터스의 명령에 문이 열리고 리칼 포르겔이 들어왔다. 그는 늘 그랬듯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신의 축복을 뵙습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라는 건국 신화를 내건 루멘치아 황가를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그 인사는 지겹지도 않나 보군.”
벤터스는 손을 내저었다. 웃으면서 말하곤 있지만 내심 만족스러운 어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사는 간략해졌고, 그들을 신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탁을 전하는 신전까지 막강한 세력을 갖게 되었으니, 황가를 신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젠 자네가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야. 내 민망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저는 폐하께 마땅한 인사를 올렸을 뿐입니다.”
“하하! 자네 말은 역시 이길 수가 없군.”
벤터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입에 발린 말이라지만 주제를 아는 짐승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볼일로 왔나. 내 맡긴 일은 없는 것으로 기억 하네만.”
턱을 쓸던 벤터스가 리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손을 들었다.
“아, 잠깐. 내가 맞춰보지. 그래. 클라이더와 관련된 일이겠군.”
리칼의 반응에 벤터스는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자네는 표정에서 생각이 드러나. 조금 더 감추는 법을 배워야겠어.”
“……폐하의 말씀을 받듭니다.”
리칼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클라이더의 아들을 찾은 건가?”
“그것이…….”
리칼은 눈을 질끈 감으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리비아부터 시작해 신전, 그리고 슈에츠 공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벤터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사실인가?”
“예…… 예, 그렇습니다.”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벤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칼은 바닥에 엎드릴 기세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저희도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신전이라니! 게다가 슈에츠까지……! 이 일이 외부에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황실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벤터스의 분노가 대전을 뒤흔들 정도로 들끓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대대로 황가의 개로 살아온 포르겔.
그 포르겔의 딸인 리비아가 신전에 몰래 숨어든 걸로도 모자라 슈에츠 공작까지 건드렸다.
‘황제가 시킨 일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벤터스는 책상에 팔을 짚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폐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뒤편에서 나긋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와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카르티아 황후였다.
“큰 소리가 들려서 와보았답니다.”
그녀가 큰 눈을 깜빡이며 벤터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황후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오.”
“폐하의 문제가 곧 제 문제 아니겠습니까. 어찌 고민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녀가 애교스럽게 덧붙이며 벤터스의 손을 잡았다.
“제게도 말씀해 주셔요.”
그러곤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눈을 마주했다. 유혹하는 정부처럼 요염한 자태였다.
그 말에 벤터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무슨 수작인지는 알지만, 사근사근하게 구는 황후를 보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황후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래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벤터스는 카르티아에게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깜짝 놀란 카르티아가 옷소매로 입가를 가렸다.
그러나 리칼을 흘기는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머리 검은 짐승은 주인을 무는 법이다. 주제도 모르는 것을 지금까지 키워주었건만, 이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하지만 위기는 기회로 바꿔야 하는 법.’
카르티아 황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그래도 이 사람이 꽤 유용한 정보를 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클라이더의 아들 말입니다.”
카르티아의 말에 벤터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카르티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슈에츠라고 해도 그 사실을 숨기다니요. 광증에 미쳐, 사리분별을 못 해도 정도가 있지요. 클라이더가 제국의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데요.”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중, 클라이더의 죽음이 허무한 마차 사고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카르티아의 표정엔 한치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습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긴 하지.”
“그러니 저희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카르티아가 벤터스의 어깨와 팔을 살살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군. 이대로 갔다간 그 아이가 고스란히 상단을 물려받을 거야.”
“어머, 후계는 당연히 클라이더가 이어야죠.”
“황후.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벤터스의 눈빛이 단박에 매서워졌다. 그러나 카르티아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후계를 잇는 방법은, 알고 계시지요?”
“무슨 말을…….”
벤터스는 뒤늦게 깨달은 얼굴을 했다. 카르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를 잇는 방법은 결혼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지요.”
그러니 적당한 짝을 만들어 주심이 어떠십니까.
“폐하께서 직접 고르신 아이로요.”
카르티아는 황제의 뺨을 부드럽게 쓸며 웃었다.
매혹적인 미소와 상냥한 말투는 그녀의 말을 꽤 그럴듯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지. 황후의 말이 옳아. 하루아침에 그 큰 가문을 잇게 된 아이니, 짝은 현명한 아이가 좋겠군.”
“폐하의 축복에 하늘에 있는 클라이더도 기뻐할 것입니다.”
벤터스의 분노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카르티아가 눈매를 사르르 휘며 웃었다.
리칼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길길이 날뛰던 저 남자를 한순간에 잠재우다니. 황후의 노련함에 감탄할 무렵이었다.
야살스럽게 웃고 있던 황후가 싸늘히 눈을 흘겼다.
어서 나가라는 뜻이었다.
리칼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와 함께 대전을 빠져나갔다.
“제 미천한 생각이 폐하께 도움이 되었습니까?”
“물론이지.”
카르티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소녀 같은 모습에 벤터스가 피식 웃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아내라니, 신께서 내린 축복이 바로 이런 건가.”
“아이, 몰라요.”
카르티아가 앙탈 부리듯 웃다가 그에게 와락 안겼다.
무엄하다 말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황제는 자비롭게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앞으로도 폐하께 유일한 도움이 되어 드릴게요.”
사랑을 속삭이는 목소리는 더없이 달콤했으나,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저 외의 다른 여자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리라.
‘그런 일은 15년 전에 겪은 일로 충분했으니까.’
* * *
아침 햇살에 눈이 번쩍 떠졌다.
기지개를 쭉 켠 나는 부은 눈을 끔뻑였다.
“엘리 님, 안녕히 주무셨나요?”
“네, 잘 잤…….”
나는 대답을 이어가려다 멈칫했다. 눈앞의 낯선 하녀들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어요?”
“사정이 생겨 자리를 비웠답니다. 당분간은 저희가 엘리 님을 모실 겁니다.”
급한 일이라니.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서운하네.’
나는 뺨을 긁적이다 고개를 저었다. 말도 못 하고 갈 만큼 급한 일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옆자리가 허전했다.
나는 이불을 걷었다. 늘 옆에 있었던 데미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얘가 어딜 간 거지?’
항상 먼저 일어난 건 나였는데.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난 건가?
나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였다. 항상 내 곁엔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혼자가 되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에이, 또 약한 생각 한다.’
혼자면 뭐 어때?
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디 가시나요?”
“화장실 갈래요.”
“곧 식사가 시작되니 얼른 오셔야 해요.”
“네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아침식사를 하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벽에 딱 붙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지하 감옥 앞엔 그 흔한 경비병 하나 없었다.
스멀거리는 어두운 기운을 보아, 공작이 마법을 걸어둔 듯했다.
‘다가가도 괜찮으려나?’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가자, 검은 기운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마법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도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흔한 자물쇠조차 걸려있지 않아,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악취가 심해졌다. 나는 코로 손을 틀어막았다.
얼마 가지 않아 감옥이 보였다.
“끄으윽…….”
앓는 소리에, 나는 램프를 조금 더 위로 들었다.
감옥 내부가 넓어 전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오블리에의 하반신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썩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흑마법은 강력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답니다. 세상의 흐름을 어긋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문득 이바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나는 간신히 숨만 몰아쉬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내 목소리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블리에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그녀가 몽롱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아…… 이번엔 주인님께서 직접 오셨네.”
“뭐?”
“하하, 아직 모르나 봐……?”
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날 보러 온 거야, 예쁜아?”
그녀가 반쯤 무너진 얼굴로 사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