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6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67화(67/241)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데미안은 현재 슈에츠가의 양자로 입적된 상태였다. 너무 어려, 클라이더가를 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데미안과 결혼한다면 내성이 슈에츠가 되는 건 당연했다.
‘사실상 누나 동생 사이겠지만.’
우린 아직 꼬꼬마니, 실제로 부부라고 말하기도 조금 민망했다.
뭐, 어쨌든 내 성이 슈에츠가 되는 건 맞으니까.
“네, 잊지 않을게요!”
힘차게 대답하자 공작의 얼굴이 만족스럽게 변했다.
“데미안, 우리 이제부터 진짜 가족이야.”
나는 데미안을 바라보며 속닥였다. 데미안은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맑고 순수한 아이를 보자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들끓었다.
‘걱정 마, 데미안.’
이 누나가 네 앞에 꽃길만 깔아줄게!
* * *
아만타 남작이 나의 입적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신전의 허가를 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있었는데, 신전이 허락을 해줄 리가…….’
그러나 의외로 신전에선 너무나 쉽게 입양 허가서를 내어주었다.
믿을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공작은 보란 듯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월히 아만타 남작가의 양녀로 입적되었고, 남작저로 오게 되었다.
아예 거처를 옮긴 것은 아니고, 간단히 인사하기 위해서였는데…….
“형식적인 절차다. 너무 긴장하지 마.”
어떻게 된 일인지, 공작은 나를 무릎에 앉히고서 몇 번이나 저렇게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형식적인 절차이니 긴장하지 않을게요”하고 몇 차례나 따라 말해야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엘리 님.”
간단한 대화를 마친 후, 제리트가 나에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려요, 오라버니.”
“오, 오라버니…….”
나의 대답에 그가 감격한 얼굴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너무 들뜨지 마라, 제리트.”
“아, 죄, 죄송합니다, 남작님.”
그 옆에 있던 아만타 남작이 작게 그를 타일렀다. 제리트가 머쓱한 얼굴로 뒷목을 쓸었다.
“오라버니라는 호칭이, 크홈, 아무리 가족처럼 느껴져도 말이다.”
그러면서 남작은 자꾸만 나를 힐끔거렸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나는 그를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제리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남작부인께선 어디 계시나요?”
내 물음에 제리트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아…… 그게 어머니께선 오늘 몸이 좋지 않으셔서요. 방에서 쉬고 계십니다.”
“많이 안 좋으시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제리트가 애써 웃었다.
“엘리 님을 만나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계시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군요…….”
나는 조금 침울해졌다. 남작부인의 몸 상태가 이대로 계속 나빠지면 안 될 텐데.
“그, 이제 남은 건 정말 결혼뿐이군요.”
내 기분을 알아차린 듯, 제리트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결혼.
결혼만 성사된다면 나와 데미안은 정식으로 부부가 된다.
하지만 귀족끼리의 결혼은 신전과 황제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황제가 순순히 허락해 줄 리 없는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까 고민할 때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를 지켜보던 남작이 말했다.
“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에츠 공작님 아닙니까.”
남작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라고 해도 섣불리 공작님의 뜻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약간의 잡음은 생기겠지만요.”
황제와의 대치가 잡음 수준이라니.
쉽사리 믿을 수 없었지만 날 안심시키려는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그야 슈에츠니까.’
제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슈에츠 공작에게 함부로 제재를 가할 순 없겠지.
나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로 가려는데, 제리트가 말했다.
“아, 이제 가시려는 겁니까? 마차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차가 조금 더러울 거예요.”
오염된 땅이라고 불렸던 북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그래서 한번 외출을 나가면 마차는 엉망이 되곤 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자 제리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거라면 이미 닦았을 겁니다.”
“벌써요? 그거, 잘 안 닦인다던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지워도 잘 닦이질 않아, 한 번 외출하면 사용인들은 크게 고생하곤 했다.
“일반적인 천으로는 잘 안 닦이죠.”
제리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껍질로는 잘 닦을 수 있습니다.”
그가 한쪽에 가득 쌓인 검은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뤼겔 나무의 껍질로 만든 천입니다. 무척 부드러운 데다가 흡수력도 좋아, 무엇이든 빠르게 닦아낼 수 있습니다.”
뤼겔 나무라면 이바나가 지나가듯 말해준 적이 있었다.
뤼겔 나무는 동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이었다.
일반적인 나무들보다 속껍질이 유독 하얄 뿐,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시원한 동부에서 자라야 할 나무가 북부까지 오게 된 건 클라이더 공작 때문이었다.
클라이더 공작은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오히려 이런 게 어울린다’며 슈에츠 공작에게 뤼겔 나무를 선물했다.
시답잖은 장난에 슈에츠 공작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 나무를 버리지 않고 심으라 명령했다.
무척이나 추운 날씨임에도 뤼겔 나무는 시들지 않고 잘 자랐다.
‘친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라, 그 슈에츠 공작도 이 나무를 꽤 아낀다고 했었지.’
그 묘목을 아만타 남작에게도 주었으니, 공작의 신임이 두터운 모양이었다.
‘이 껍질로 얼룩을 닦을 수 있다니.’
“만져봐도 돼요?”
“물론입니다.”
나는 얼른 나무껍질을 만져보았다.
껍질 표면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는데, 방금 전 닦았던 얼룩은 묻어 나오지 않았다.
‘즉, 벌써 흡수했다는 거야.’
이렇게 빠른 흡수력을 가졌다니.
‘이거, 단순한 걸레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순간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빛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이 껍질 너무 신기해요!”
“그렇죠? 저도 처음 만졌을 땐 무척이나 신기했답니다. 혹시나 해서 닦아본 건데, 무척이나 잘 닦여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말을 잇던 제리트가 문득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공작님껜 비밀입니다. 아셨죠?”
뤼겔 나무는 공작의 선물이다.
그런 나무를 이런 용도로 쓴다는 게 알려진다면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네, 알았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 대신 저도 나무껍질 갖고 싶어요!”
“껍질이야 많습니다만…….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거 잔뜩 들고 가서, 로이나랑 이바나랑 메이랑 그리고 아셀 도와줄 거예요!”
“마음씨도 참 고우시군요. 알겠습니다.”
활기찬 나의 말에 제리트의 얼굴이 흐뭇함으로 가득 찼다.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
내가 덧붙인 말에 시종에게 나무껍질을 가져오라 시키던 제리트가 멈칫했다.
그는 시종을 다시 불러 세워 무언가를 지시했고, 시종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땐…….
“……이렇게나 많이요?”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껍질이 내 앞에 드리워졌다.
“마음껏 가져가십시오. 오히려 이것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족하면 다음에 또 와서 받아 가셔도 됩니다. 아, 제가 가져다 드릴까요?”
제리트는 뭐라도 더 얹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만해라, 제리트.”
보다 못한 아만타 남작이 아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바보 같은 아들 녀석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남작부인께 안부 전해주세요.”
나는 마차에 올라타기 전, 남작을 힐끔 돌아보았다.
‘서류상 아버지라고 해도 나이가 있으니까…….’
망설이며 고민하던 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봬요, 할아버지.”
그 순간, 남작의 콧수염이 씰룩거렸다.
나는 그가 제리트처럼 가슴께를 부여잡기 전에 얼른 마차 문을 닫고 출발을 지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게 다 뭐예요?”
“아만타 남작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난 산처럼 쌓인 나무껍질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껍질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우히히 웃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엘리 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껍질들을 저쪽으로 밀고선 몸을 일으켰다.
로이나와 함께 세 명의 하녀들이 방 안에 들어왔다. 공작이 내 부탁대로 그녀들을 풀어준 듯했다.
“엘리 님…….”
그녀들은 나를 볼 면목이 없는 듯 모두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마음고생이라도 한 듯,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나는 몇 차례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에게 애정을 준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자백보다도 무서웠다.
나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전 도둑의 딸이에요.”
“에, 엘리 님.”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지, 그녀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처음엔 말 안 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알면 돌아설까 봐.”
“…….”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는 여기가 좋고, 모두가 좋아요. 그래서…….”
이곳에 계속 있고 싶어요.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박힌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뻔뻔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받아준다는 건 황실과 척을 지는 것과 같았으니까.
“나는…… 그러니까…….”
눈앞이 팽팽 도는 것 같았다.
옷자락을 쥐었던 손이 잘게 떨렸다.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던 시선이 바닥에 박힐 때였다.
“엘리 님.”
따스한 체온이 손 위로 내려앉았다.
로이나였다. 그녀는 늘 그렇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작님처럼 강하지는 못 하지만, 저희도 공작성의 일원이랍니다. 엘리 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죠.”
“그 말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멍하니 입술만 달싹였다.
다 알고 있었다니. 그럼 설마…….
“엘리 님께서 공작성에 오신 첫날, 공작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엘리 님께 최대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 저희의 일이었지요.”
로이나가 다정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 슬퍼 보였다.
“저희는 항상 엘리 님 곁을 지킬 겁니다.”
“엘리 님께서 저희를 편하게 대해 주시는 그날까지요.”
“말을 바꿔야겠군요. 엘리 님께서 저희를 귀찮게 해주실 때까지 더 노력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로이나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듯했다.
“그럼 앞으로도…….”
“예.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로이나의 말에 세 명의 하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오로지 날 그대로 받아들여 준 사람들이 생긴 것만 같았다.
목이 뜨거웠다. 나는 울컥하고 차오르는 것을 꾹꾹 참아 내고선 활짝 웃었다.
* * *
다음날 아침.
처음 보는 브로치가 로이나와 하녀들의 앞치마 주머니에 담겨있었다.
탈의실은 굳게 잠겨 있어 누가 보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브로치를 옷에 달았다.
이 물건이 작은 소녀의 침대 밑에 꼭꼭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