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6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68화(68/241)
* * *
며칠 후.
나는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앞엔 뤼겔 나무의 껍질이, 그위엔 여러 액체가 담긴 병이 차례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병을 들어 껍질 위에 조금씩 부었다.
처음엔 조금만, 그 후엔 넘칠 정도로 듬뿍.
결과는 똑같았다. 껍질은 양에 상관없이 액체를 모두 흡수했다.
나는 완벽히 흡수하여 뽀송뽀송한 껍질을 손으로 쓸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다다다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엘리!”
데미안이 손에 작은 화관을 들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다 만들었어?”
나와 데미안은 온실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중이었다.
공작성 안에서 껍질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예쁘게 만들었나 한번 보자.”
나는 냉큼 데미안이 준 화관을 머리에 얹었다.
“어때? 잘 어울려?”
데미안이 뺨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너무 예뻐.”
“고마워.”
나는 씩 웃으며 화관을 다시 벗었다.
“이번엔 데미안 차례.”
익숙하게 손을 내리려던 나는, 높이가 달라진 느낌에 멈칫했다.
“데미안, 키 좀 컸어?”
“어?”
“아니, 전엔 이만큼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가슴께에서 흔들던 손을 조금 높이 들어 올렸다. 내 입술이 있는 위치였다.
“이젠 이만큼이네?”
“나, 나 그렇게 안 작아. 그것보단 컸어.”
데미안이 얼굴을 붉히며 반박했다.
“아니야. 이만했어. 아직도 기억나는데?”
다시 손을 가슴께로 내리자,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잔뜩 심술 난 얼굴이 마냥 귀여워, 나는 뺨을 쪼물거렸다.
“장난이야, 장난. 당연히 이것보단 크지.”
“……하이 마. 에이 미어. (하지 마. 엘리 미워.)”
잔뜩 토라진 듯 말하면서도 내 손을 내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귀여워서 그랬어. 한 번만 봐줘. 응?”
“…….”
“용서해 줄 거지?”
“……응.”
다시 한번 사과하자 데미안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착해. 아낌없이 칭찬을 쏟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 이게 바로 남동생을 둔 누나의 마음이구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때였다.
“어머, 참 예쁜 화관이네요.”
어디선가 나긋나긋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데미안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녕하세요.”
또래로 보이는 갈색 머리 여자아이가 우리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이가 치맛단을 잡고 우아하게 인사를 올렸다. 언뜻 봐도 귀애받는 이름 높은 귀족의 자제처럼 보였다.
“죄송하지만 누구신가요?”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윈티아 살로메라고 합니다.”
아이가 웃자 입꼬리 옆의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사랑스럽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저희 살로메 자작 가는 클라이더 공작가의 방계 가문 중 하나랍니다.”
클라이더의 방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왔지? 하던 나는, 얼마 안 가 수긍했다.
클라이더 쪽 사람들이 클라이더 공자를 봐야겠다고 찾아오면, 슈에츠 공작이라고 해도 숨기기는 어려울 터였다.
숨기면 아이의 정체가 확실치 않다며 수군거릴 테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데미안에게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잔뜩 당황하고 있을 때, 윈티아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참 예쁜 온실이네요. 공작님께서 무척이나 신경 쓰셨다던게 정말이군요!”
윈티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다 내가 들고 있는 화관에 시선이 꽂혔다.
“어머나, 화관까지 만들고 계셨네요. 아, 괜찮다면 저도 함께 만들 수 있을까요?”
윈티아의 말에 내 뒤에 숨어 있던 데미안이 몸을 움츠렸다. 싫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싫다고 했다간…….’
어디서 굴렀는지도 모르는 아이가 주제도 모른다고 수군거릴 테지.
윈티아는 우리와 또래처럼 보이는 작은 여자 아이다. 가문들의 이해관계가 어쨌든 간에, 아이는 아이.
우리가 만일 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쌀쌀맞게 대했다간, 클라이더 쪽 가신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몰랐다.
하는 수 없지.
“데미안, 같이 놀자.”
“하지만…….”
망설이던 데미안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너무 기뻐요!”
윈티아가 활짝 웃었다. 맑은 웃음엔 악의라곤 보이지 않았다.
“화관을 만드는 건 쉬워요.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서-”
“공자님은 어떤 꽃을 좋아하세요?”
화관 만드는 법을 설명해 주려는데, 윈티아가 불쑥 데미안에게 물었다.
‘내 말이 안 들렸나?’
데미안에게 쏠린 저 강렬한 눈빛을 보면 가능성이 있었다.
“공자님께선 이 꽃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윈티아는 개의치 않고 데미안에게 다가갔다.
“이쪽에 있는-”
조막만 한 손이 데미안의 팔을 붙잡을 때였다.
탁!
데미안이 불결한 것이라도 닿은 것처럼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아…….”
“함부로 만지지 마.”
데미안이 저렇게 차가운 목소리도 낼 줄 알았던가.
나는 윈티아에게 무시당했다는 것도 잊은 채,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죄, 죄송해요. 저는 그냥 저 꽃과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덩달아 윈티아도 깜짝 놀란 듯,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윽고 투명한 벽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울리면 안 돼!’
나는 얼른 양손을 들어 데미안만 볼 수 있게 엑스표를 만들었다.
사정사정하는 표정을 짓자 데미안이 입술을 삐쭉이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그, 그럼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데미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윈티아의 얼굴이 맑게 개었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의 고비는 넘겼다.
“공자님, 이 온실엔 어떤 꽃들이 있나요? 제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나도 잘 몰라.”
“그래도 소개해 주셔요. 네?”
윈티아가 살갑게 말하자 데미안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대로 갔다간 서로 불편해진다. 나는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살로메 영애. 온실 안내는 제가 해드릴게요.”
“으응?”
그러자 윈티아가 눈을 깜빡였다.
“난 시종이 아니라 공자님의 안내를 받고 싶은 건데. 놀이 시종의 안내는 필요 없어.”
놀이 시종?
내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윈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 아이는 나를 데미안의 놀이 시종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내 말이 안 들린 게 아니라, 일부러 무시했다는 뜻인 거고.’
이유가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참을 필요도 없었다.
“살로메 영애. 저는 공자님의 놀이 시종이 아니에요.”
“……그럼?”
“이번에 새로 아만타 남작가의 양녀로 입적된 엘리 아만타라고 합니다.”
소개를 끝마치자 윈티아가 토끼눈을 뜨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어머, 실례를 저질렀어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충분히 오해하실 만도 합니다. 양녀 입적 소식은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용서해 주시는 건가요?”
윈티아가 내 양손을 꼭 붙잡았다.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활짝 웃었다.
“함께 화관 만드는 걸 도와주실래요? 부끄럽게도 저는 손재주가 많이 부족하답니다.”
“좋아요.”
‘데미안을 고생시키는 것보단 낫지.’
고개를 끄덕이자 윈티아가 내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갔다. 덕분에 데미안과 멀어지고 말았지만…….
‘데미안, 미안해. 잠깐만 혼자 놀고 있어.’
두 사람을 떼어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였다.
“저기 있다.”
무어라 중얼거린 윈티아가 붉은 장미 근처로 다가갔다.
확실히 이곳 온실의 장미는 유독 색이 붉어 예쁘긴 했지만, 넝쿨이 얽혀 있어 가까이 가면 위험했다.
“살로메 영애, 저 장미는 위험해요. 다른 꽃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조심해서 가져오면 되죠?”
“살로메 영애!”
윈티아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장미 넝쿨로 달려갔다.
위험하단 생각에 다급히 달려갔지만…….
“아!”
아이의 손이 장미 줄기에 닿은 찰나, 발을 헛디뎠는지 쿠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영애!”
“꺅! 흐아앙!”
윈티아는 엉망이 된 장미를 끌어안은 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환부를 살폈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예쁜 드레스가 엉망이 되었다.
“괜찮아요, 영애? 일어날 수 있겠어요?”
“아파요. 아프단 말이야. 흐어엉…….”
나는 손을 뻗어 윈티아의 얼굴을 붙잡았다.
“가시가 박히진 않았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만 뚝 해요.”
“……!”
윈티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잠깐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이 뚝 멎었다.
“조심하셨어야죠. 만약 가시에 찔리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나, 나는…….”
놀란 듯 눈만 깜빡이던 윈티아가 다시 왕왕 울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이야?”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데미안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데미안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황급히 나에게 달려왔다.
“엘리,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난 괜찮아. 나 말고 살로메 영애가…….”
“흐아아앙!”
데미안에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윈티아가 더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