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7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73화(73/241)
경악한 숨소리조차 내뱉을 수없었다.
살로메 자작은 딸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잔뜩 허둥거렸다.
“수건! 수건!”
발악하듯 외치던 그의 시야에 널브러진 수건이 들어왔다.
엘리의 발을 닦았던 수건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가 마법으로 수건을 가져와 얼굴을 닦아냈다. 분노에 얼굴이 화끈거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네 옷.”
데미안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흠뻑 젖었어?”
“예?”
“네 두 눈으로 봐. 옷이 어떻게 물들었는지.”
살로메 자작은 데미안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찻물은 어깨를 따라 흘러내려 바지까지 물들였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얼룩이 희미해졌다.
“이게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얼굴에 끼얹으면 이렇게 되지.”
“무슨 말을…….”
“호수에 빠뜨렸다면 온몸이 젖었어야 해.”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바닥에 엎어져 있는 윈티아를 내려다보았다.
윈티아의 옷도 살로메와 똑같았다.
붉은 물줄기는 밑으로 갈수록 희미했고, 끝자락은 아예 물들지도 않아 깨끗했다.
윈티아의 얼굴이 낭패로 물들었다.
“그게, 그것이…….”
윈티아가 더듬거리자 살로메 자작이 다급히 외쳤다.
“마, 마른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호수와는 다르니, 금방 마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시 빠뜨려 볼까요?”
그때,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옷에 물든 호숫물이 아래부터 사라지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엘리가 또렷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씨근덕대는 윈티아와는 달리 너무나 올곧은 눈빛.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론의 눈빛이 짙어졌다.
엘리가 말했다.
“저도 궁금하네요, 자작님. 호숫물이 옅어지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
“그리고 근처에 뭐가 있는지도 함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엘리는 마지막 말과 함께 빙긋 웃으며 윈티아를 바라보았다.
“……!”
까마귀 떼를 떠올린 윈티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이내 설움이 북받쳤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이야……!’
왜 자꾸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윈티아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흐어엉! 아빠가 그랬단 말이야! 그 자린 내 거라고!”
“위, 윈티아!”
“그런데 데미안 공자님은 저를 무시했어요. 쟤가 공자님을 꾀어내서 그런 게 분명해요!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잖아요!”
“윈티아! 그만하지 못해!”
“왜 다들 저한테만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흐아앙!”
살로메 자작이 다급히 윈티아를 붙잡았으나, 이미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군데에 쏠렸다.
공작의 오러가 한계까지 치솟아, 걷잡을 수 없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 * *
공작성은 한바탕 쑥대밭이 되었다.
살로메 자작가가 클라이더의 방계라고 해도, 공작의 보호 아래 있는 아이들을 해치려 한 정황이 드러난 이상 무사할 수 없었다.
윈티아를 억지로 밀어붙였던 가신들마저 차갑게 등을 돌리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데미안을 어떻게 구슬려 보려고 했던 가신과 방계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나는 힐끔 눈치를 보았다.
데미안과 공작은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심각한 얼굴로 내 부은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매일매일 다쳐서 돌아오는구나.”
“그…….”
“얼마나 더 철렁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할련지.”
공작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공작은 빈말로라도 허튼 말은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야.’
나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 어차피 별로 안 아파요.”
“엘리.”
그러자 데미안이 단호한 얼굴로 내 변명을 잘라냈다.
“약속, 또 어겼어.”
“…….”
“안 다칠 거라고,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라고 나랑 약속했잖아.”
늘 활짝 웃기만 하는 데미안이, 오늘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지. 많이 화났나 봐.’
그러니 이 순한 아이가 살로메 자작에게 차까지 부은거겠지.
하지만 이번엔 나도 좀 억울했다. 먼저 공격한 건 윈티아였다.
그러나 내가 두 사람을 걱정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미안, 데미안. 앞으론 안 그럴게. 잘못했어요, 공작님.”
“…….”
“조심할게요.”
그러나 공작과 데미안은 말이 없었다. 내 말이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정말인데…….”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
그때, 머리 위로 따스한 것이 내려앉았다. 공작의 손이었다.
“혼내려는 것이 아니니 기죽지 마라.”
“…….”
“다만…… 걱정이 된다.”
공작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 네가…….”
공작은 잠시 말끝을 늘이다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구의 딸인지 알려지게 된다면 더더욱 힘들어지겠지.”
공작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황제의 보물을 훔친 도둑의 딸이니까.
그런 내가 데미안과 함께한다면, 클라이더가를 노렸던 황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있으면 공작도, 데미안도 힘들어지겠지.’
쿵,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엉망이 된 치맛자락을 움켜쥘 때였다.
“그러니 나는 너를 지킬 거다.”
“……!”
“너를 증명하기 위해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는 뜻이야.”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 표정을 본 공작이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생각도 없이 너희들을 데려왔을까.”
“하지만…….”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공작이 살짝 생채기가 난 내 뺨을 조심스레 쓸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해. 낮에는 넓은 대지를 마음껏 뛰놀고, 밤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어라.”
“…….”
“그것이 아이들이 할 일이야.”
어른과 아이의 일.
나는 멍하니 공작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작이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제대로 알아들은 건가? 표정을 보니 영 못 미덥군.”
“이, 이해했어요! 오늘처럼 다치지 말라는 뜻이잖아요.”
“웬일로 잘 이해했군.”
공작이 픽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나는 입술을 삐쭉였지만, 그가 일부러 짓궂게 말했다는 걸 알았다.
‘아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정말 가족이 된 것만 같았다.
가족.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조용히 굴려보았다.
공작은 내가 어떤 아이인 줄 알면서도 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데미안은 여전히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체념을 가장 먼저 배운 소년.
그 아이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나서 주었다.
‘……그렇다면 나도.’
“데미안.”
나는 손을 뻗어 데미안의 뺨을 쓸었다.
“네 편이 되어줄게.”
“…….”
“누구도 너를 건들지 못하도록, 강한 방패가 되어줄게.”
나에겐 원작의 지식이 있다.
그가 무사히 여주인공을 만날 때까지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잠시뿐이겠지만.’
“데미안. 우리 결혼하자.”
“어?”
데미안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였다.
“우리가 부부가 되면 쉽게 널 못 건드릴 거야. 네가 작위를 받는 데에도 도움이-”
“자, 잠깐만.”
잠시 멍해졌던 데미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 부부라니. 가, 갑자기 무…….”
“싫어?”
명색이 프러포즈인데, 너무 빈손인가?
꽃이라도 한 송이 가져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데미안이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나, 나는, 그러니까…….”
데미안이 붉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응, 알았어.”
“정말?”
데미안이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다. 파르르 떨리는 긴 속눈썹이 꼭 겁에 질린 토끼 같았다.
“네가 알겠다고 한 거야. 이제 못 물러. 알겠지?”
“응…….”
순조로운 승낙이었다.
다시금 확인을 받아낸 난, 데미안의 손을 깍지 껴 잡고선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수완이 좋구나, 하며 늘 그렇듯 장난을 칠 줄 알았는데.
공작은 묘하게 심통 난 얼굴이었다. 기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못마땅한 얼굴.
‘왜 저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깍지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수완이 좋구나.”
그제야 공작이 예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데미안에게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