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75)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75화(75/241)
“이것 참 달고 맛있군요.”
내 생각과는 달리, 헤론은 단 음식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와 함께 때아닌 디저트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무척이나 귀한 시간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아는 나로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나는 그를 한번 힐끔거리다 딸기 맛이 나는 마카롱을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함을 한가득 느끼고 있을 때, 헤론이 말했다.
“제 손녀도 푸딩을 참 좋아한답니다.”
“손녀가 있으세요?”
“예. 엘리 님과 또래랍니다. 엘리 님처럼 달고 맛있는 걸 아주 좋아하지요.”
헤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깨끗하게 비워낸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 하지만 나이는 살로메 영애와 더 비슷하겠군요.”
살로메. 윈티아를 말하는 거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은 윈티아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꺼리던데.’
헤론은 거침없이 내게 그 이름을 꺼내고 있다.
나는 우물거리던 것을 멈추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제가 엘리 님을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혹시 살로메 영애와 자작님을 용서해 주실 순 없으십니까?”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날도 보셨겠지만, 살로메는 대대로 강한 염력(念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 덕분에 상단 물자의 유통도 한결 수월해졌지요.”
“…….”
“엘리 님께 불순한 짓을 저지르려 했으니 당연한 처벌입니다만…….”
살로메 자작의 부재가 상단 운영에 차질을 빚을 테니, 살로메와 윈티아를 용서해 주면 안 되냐는 소리였다.
‘물자의 이동이 끊기는 건 상단의 입장에선 최악일 테지.’
그러나 그들은 슈에츠 공작의 보호 아래 있는 아이들을 건드렸다.
나야 그렇다 쳐도, 공작이 10년을 넘게 찾아 헤매었던 데미안까지 무시했다.
‘공작의 입장에선 당장 죽여도 이상하지 않지.’
상단의 입장도 퍽 난처할 터였다.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누구 하나 나서서 ‘죽이는 것은 피해달라’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구나.’
그렇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어떤 대답이, 그를 만족시킬까?
헤론은 말없이 나의 망설임을 지켜보았다.
* * *
깊은 침묵이 이어지자, 헤론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아이는 지금껏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를 공격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건 어른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아이는 오죽할까.
하지만 고작 이런 청에 흔들려서는 아니된다.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소녀는 많은 어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윈티아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윈티아에게 지목당해 억울하게 몰릴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이를 몰아세웠다.
어디 그뿐인가. 제 간식을 탐내는 사람에게 치아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며 푸딩을 내밀기까지 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상대에 따라 대응하는 능력이 제법 뛰어났다.
슈에츠 공작의 말대로였다.
‘이 아이는 데미안 공작님께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청 하나에 흔들리다니.
선대 클라이더 공작의 스승으로서,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뛰어나다고 자부했건만…….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얼굴이 찰나의 안타까움을 빚어냈다.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엘리를 침잠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품속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그가 시종을 시켜, 가짜로 만들어낸 서류였다.
“만일 공작님께서 데려오신 그 아이가 스스로 서명한다면, 모든 뜻을 거둬주십시오.”
다른 이가 들으면 기함할 말이었다. 슈에츠 공작에게 조건을 걸다니.
그러나 공작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겠군.”
오히려 보란 듯이 웃을 뿐이었다.
공작의 자신만만한 웃음은 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여 헤론도 엘리에게 무척이나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것이다.
서류를 내밀자 엘리의 시선이 그에게 따라왔다.
“제 뜻에 동의하신다면 잘 읽고, 이곳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
“부탁드립니다, 엘리 님.”
헤론의 청에 엘리는 눈앞의 서류를 가만히 바라보다, 펜을 들었다.
아직 어린 아이다. 게다가 살아온 배경이 그런 탓에, 글자도 제대로 알지 미지수다.
이제 막 글을 배웠다고 해도, 서류 안에 무슨 말이 쓰여 있는지는 모를 터였다. 간신히 제 이름만 쓸 수 있는 상태겠지.
그렇게 헤론이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 엘리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헤론은 곧장 서류를 확인했다.
-엘리 아만타 클라이더 에르하르트 슈에츠
이름을 확인한 그가 서류를 접어, 품속에 넣었다.
‘검증은 끝났다.’
남은 건 이 결과를 공작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되었군요.”
헤론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디저트를 잔뜩 먹었습니다.”
“이런 건 처음 드셔 보시나요?”
“예. 좀처럼 잘 접할 기회가 없어서요.”
“역시 그러셨군요.”
엘리가 작게 중얼거렸으나, 헤론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때, 정중히 인사하고 물러나려는 헤론을 엘리가 붙잡았다.
“다음 수업은 언제인가요?”
“……다음 수업은.”
“저는 좀 더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
“헤론 님이랑 맛있는 거 또 잔뜩 먹고 싶거든요!”
순수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그렇기에 서류에 직접 제 이름을 적은 것이겠지.
안쓰럽고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헤론은 잠시 뜸을 들이다 빙긋 웃었다.
“공작님과 일정을 논의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론은 다시 인사하며 방을 나섰다.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헤론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입안에 남아 있는 달콤한 푸딩의 맛이 유난히 씁쓸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다.’
헤론은 즉시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느슨하게 앉아 있던 공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벌써 끝났나?”
“예.”
헤론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되었지?”
“여기에 직접 서명하셨습니다.”
헤론은 품속의 서류를 꺼내, 공작에게 내밀었다.
“……엘리가 서명을 했다고?”
“강제성은 없었습니다.”
헤론의 말에 에르하르트는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 없는데…… 하고 중얼거린 그가 서류를 펼쳤다.
글자를 읽어가던 공작의 적안이 아래로 향한 순간이었다.
“하.”
그가 기가 찬 웃음을 터뜨렸다.
헤론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그의 반응을 차분히 기다렸다.
‘그럴 만도 하지.’
그 슈에츠 공작이 유일하게 믿었던 아이 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서명을 했으니, 그 생각도 마지막…….’
그때였다.
“하하.”
웃음이 재차 이어졌다.
그런데 그 안에 섞인 건 허탈함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의아하게 여긴 혜란은 시선을 들어 올렸다.
“……!”
공작이 웃고 있었다.
많은 세월을 거쳐,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는 헤론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그만큼 공작의 웃음은 놀라웠다.
‘그것도 저렇게 즐겁다는 듯이 웃고 계시다니.’
헤론이 멍하게 굳어 있자, 에르하르트가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그대가 진 것 같군.”
그가 서류를 내밀었다.
“읽어 봐.”
헤론의 주름진 손이 그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들었다.
헤론의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엘리가 직접 작은 손을 움직여 서명했던 자리였다.
-엘리 아만타 클라이더 에르하르트 슈에츠
제국식 서명은 이름 뒤에 결혼 전 가문의 성을, 결혼 후 가주의 이름과 성을 쓰는 것이었다.
그 규칙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작게 감탄하긴 했지만.
역시 틀린 점은 보이지 않았다.
한데 공작은 제 패배를 어디서 찾았다는 것인가.
그러자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확실히 서명엔 틀린 점이 없지.”
“…….”
“그래서 그대가 진 거다.”
“예?”
“거기 쓰여 있지 않은가. ‘클라이더’라고.”
“그것이 무슨 문제가…….”
서명을 읽던 헤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국식 서명의 마지막엔 가주의 이름과 성을 쓴다.
여기서 가주는 남편을 뜻했다.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성을 가지니까.
그러니 엘리는 클라이더 없이, 그냥 슈에츠의 이름만 쓰면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데미안은 슈에츠 공작에게 입양되긴 했으나, 그전에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었다.
그러니 남편의 성이었던 클라이더도 함께 쓴 것이었다.
이건 단순한 서명이 아니었다.
남편인 데미안을 클라이더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그의 부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가 직접 작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대가 직접 인정한 셈이지. 엘리의 이름에 클라이더가 들어간다는 것을.”
“…….”
“그 서명을 아무런 지적도 없이 받아들인 건 그대니까.”
에르하르트가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대며 느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말하지 않았나. 엘리를 너무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엔 즐거움이 잔뜩 묻어났다.
“……실례하겠습니다.”
헤론은 인사와 함께 빠르게 집무실을 나섰다.
‘이미 떠난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했다. 헤론의 발걸음이 더더욱 빨라졌다.
쿵!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방을 떠났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엘리는 차분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셨어요?”
그러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그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