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7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77화(77/241)
상자엔 무언가를 감싸는 용도로 만들어진 듯한 하얀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이건…… 기저귀잖아?”
그때 로한이 외쳤다.
갓 태어난 쌍둥이의 아버지인 로한은 기저귀가 익숙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제작소에 나와 일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건 처음 보는데.”
그것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아이가 쓸 것처럼 작은가 하면, 성인이 써도 될 정도로 큰 것도 있었다.
옆엔 아코디언처럼 살짝 주름이 져있어, 품 조절도 가능해 보였다.
얇은 겉면을 살짝 벗기자 끈적거리는 단면이 만져졌다. 어딘가에 붙이는 용도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속옷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다.
“기저귀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큰 걸 누가 써?”
“성인 여자들이요.”
로한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제인이 말했다.
“여자들도 월경이 시작되면 기저귀를 차요. 아내분도 쓰실 텐데. 모르셨어요?”
“그, 그래? 그런 건 잘 몰라서…… 하하.”
로한이 머쓱하게 웃었다.
월경이 시작되면 일회용 기저귀를 차는 여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아이들이 쓰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에 천만 한가득 덧대며 버티곤 했었다.
게다가 여자들의 월경은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낸들 아나.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야. 세 사람에게 사용을 맡기고, 후기를 들려달라 하더군.”
바겐의 물음에 점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시중의 물건들보다 조금 싸게 만들려나 봐. 이름도 기존 것과는 다르더군. 뭐더라?”
“패드입니다.”
“그래, 패드.”
다른 직원이 속삭여주자 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귀하신 분들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싼 물건은 잘 안 쓰잖아? 그러니 우리에게 테스트를 맡긴 거겠지.”
점장이 상자에 들어 있는 패드를 눈짓했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 대신 사용 후기는 제대로 들려줘야 할 거야.”
“감사합니다!”
쌍둥이의 아빠인 로한이 싱글벙글 웃으며 패드를 가져갔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제인도 슬그머니 패드 몇 개를 챙기고선 방을 빠져나갔다.
바헨은 잠시 머뭇거리다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제인의 말대로, 그의 아내에게 가져다주면 좋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바겐은 공장에서 준 패드를 아내에게 건넸다.
“어머, 이게 뭐예요?”
“위에서 새로 만든 거래. 출시 전에 미리 사용해 보라고 준 거야.”
바겐은 조금 머쓱하게 말했으나, 아내는 눈을 빛냈다.
“마침 월경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막막했는데. 잘됐네요. 덧댈 천도 없었는데.”
“그, 듣기로 여자들도 기저귀 한 달에 한 번씩은 써야 한다고 하던데…… 당신은 안 써?”
바헨이 제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코웃음을 쳤다.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
“아…….”
“그리고 그것도 다 돈이에요. 그 값을 또 어떻게 감당하라고? 아기가 생긴 후에 사도 늦지 않아요.”
“그, 그런가……?”
“그래도 다행이네.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아내의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아내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저도 이러는데, 쌍둥이의 아버지인 로한은 더더욱 기뻐할 터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보, 그, 전에 준 거 말이에요.”
“응? 왜? 혹시 쓰기 불편해?”
바헨이 곤란한 투로 물었다.
혹시라도 점장에게 ‘사용감이 좋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야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니요, 너무 좋아서요!”
그러나 돌아온 아내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밤마다 일어나서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게다가 쉽게 붙였다 뗐다 탈부착도 가능하더라고요. 어찌나 편한지!”
“그래? 쓰기 편하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말인데요, 여보.”
아내는 바헨의 팔을 붙잡으며 외쳤다.
“최대한 많이 가져와요!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이토록 열정적인 모습은 오랜만이었기에, 바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점장님 방에 두었으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했었지.’
출근한 바헨이 점장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
제인이었다. 그녀의 손엔 패드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아.”
제인은 바겐을 마주친 게 조금 난감한 듯했다.
슬쩍 보니 남아 있는 패드는 한 개도 없었다.
“그거, 다 필요한 거야? 제인도 필요해?”
바헨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대놓고 묻기에는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아니고요. ……저희 부모님이요.”
“부모님?”
“거동이 불편하셔서 화장실을 잘 못 가시거든요. 그런데 이게 있으면 좀 편하더라고요. 자다가도 일어나지 않아도 돼서 더 좋고요.”
부착형 패드도 무척 편했지만, 나이 든 노인들에겐 직접 착용하는 패드가 더 편했다. 게다가 흡수력은 또 어떻고.
단순한 생리 현상도 크나큰 난관인 노인들에게, 패드는 고민을 한시름 덜어줄 물건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바헨이 물러서자 제인이 한숨을 내쉬며 패드 몇 개를 내밀었다.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예요.”
“어? 괜찮은데……. 제인이 더 필요하잖아.”
“아내분 생각도 하셔야죠.”
제인은 끝끝내 바겐의 손에 물건을 쥐어주었다.
“고마워, 제인. 이건 잊지 않을게.”
“잊으세요.”
제인은 가볍게 대꾸하곤 몸을 돌렸다.
“같은 여자라서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거든요.”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제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점장실 앞을 떠났다.
바겐은 손 안의 패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제인의 말이 이상하게 귀에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세 사람은 각자의 평가를 점장에게 알렸다.
결과는 모두 대만족이었다.
* * *
내 예상대로 이곳에는 아직 생리대라는 개념이 없었다.
기저귀를 대신 쓰고는 있지만 유아용이라는 인식이 강해, 사이즈도 다양하지 않았다. 위생은 또 어떻고.
그래서 부착형과 착용형, 두 가지를 함께 제작했다.
‘성인도 입을 수 있도록 옆에 주름도 달았지.’
크기의 제약이 없다면 노릴 수 있는 사용자의 범위는 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그렇게 말 그대로 남녀노소 쓸 수 있는 필수품이 탄생한 것이다.
“그럼 일단 시장성은 확보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 여성, 노인들까지 다양하게 쓸 수 있으니까요. 시장에서의 구매율은 일반 기저귀보다 훨씬 높을 겁니다.”
보고를 마친 헤론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저귀를, 그것도 성인용으로 만드실 생각을 하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다 제리트 님 덕분이에요!”
“제작소 직원들의 명단을 유심히 보신 것도 이 때문이십니까?”
“그, 그것도 제리트 님 덕분이에요!”
나는 모든 공을 제리트에게 넘겼다.
어린 내가 생각했다고 하기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헤론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증명되었으니 곧장 판매를 지시하겠습니다.”
“저, 헤론 님.”
나의 부름에 헤론이 물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헤론 님의 수업을 듣고, 한 가지 생각한 게 있는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클라이더 상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시장 가격보다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할인이라……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패드를 만드는 건 클라이더 사람들이잖아요.”
“…….”
“직원들에게만 할인을 적용한다면 구매율은 더 오를 거예요. 당장 자신들과 아이들이 사용할 물건이니까요.”
내 말에 헤론의 눈이 깊어졌다.
시장 판매 가격과 차이를 두는 건 내가 생각한 일종의 복지 개념이었다.
패드가 필수라고 해도 평민들이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매일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그만큼 돈이 나가니까.
“그리고…….”
헤론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나는 슬그머니 덧붙였다.
“클라이더 상단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에겐 매월 일정 수량을 지급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여성들에겐 일체 값을 받지 않는 겁니까?”
“네.”
이 세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남자들이 밖에 나가서 일을 했고, 여자들이 아이를 돌보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남자들 사이에서 꿋꿋이 버텨가는 여자들이 있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시선을 이겨내고 밖으로 나온 여자들.
이런 혜택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복지가 될 터였다.
“그리고 직원들의 가정에 3세 미만의 아이가 있다면 매월 일정 수량을 지급했으면 좋겠어요.”
덧붙인 말에 헤론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 생각은, 저번에 말씀하셨던…….”
“네, 이모 생각이 나서요.”
“그 이모님께선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갑자기 고아원으로 가게 되어서 연락이 끊겼거든요.”
그러자 헤론이 미간을 좁히며 천천히 턱을 쓸었다.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이 의견은 헤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럼 상단에서 일하려는 사람들도 더욱 늘어나겠군요.”
이윽고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생각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 님.”
빠르게 추진하고 싶은지, 헤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나 아직 말 안 끝났다구요!’
“저, 헤론 님!”
내가 다급히 그를 부르자 헤론이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더 생각해 놓으신 게있으십니까?”
헤론이 놀라다 못해 얼떨떨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죠. 아직 끝이 아니거든.’
나는 기죽지 않고 씩 웃어 보였다.
* * *
며칠 뒤.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다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마리페 고아원장이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누군가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고액 기부자 때문이었다.
그 기부자는 바로…….
“아이들은 제국의 미래니까요. 부디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 제리트 아만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