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화(8/241)
찬찬히 엘리를 훑던 원장은 이내 생각을 마쳤다.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사이가 좋은 거겠거니, 생각했다.
어차피 데미안은 빚쟁이의 소유물이었다.
다시 돌려줘야 했으니, 저런 아이들의 소란에 어울리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말렌.”
“네.”
“시끄러우니 어서 그 아이들을 데려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앞으로도 일에서 제외시켜.”
원장이 데미안을 가리켰다.
“예……?”
“제외하라고. 다른 아이들은 평소대로 시키고.”
할 말만 남긴 원장은 그대로 주방을 빠져나갔다.
보육교사와 다른 아이들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지워낸 엘리가 데미안을 향해 몸을 돌렸다.
“데미안. 넌 일단 들어가 있어.”
“……너는?”
“난 여기서 일해야지.”
그러자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싫은 듯, 엘리의 옷자락까지 꼭 틀어쥔 채였다.
요 며칠 새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 고맙기는 했지만…….
엘리는 조금 난감했다.
원장이 데미안을 제외한 이유는 그가 ‘막 대할 수 없는 아이’이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나 여기 있는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아이들 눈에 이것은 명백한 특혜로 보일 수 있었다.
“데미안. 금방 일 끝내고 갈게. 이거 금방 끝나.”
“…….”
달래는 듯한 엘리의 목소리 끝에 난감함이 묻어났다.
‘혼자 있기 싫어.’
하지만 엘리에게 미움을 받는 게 더 싫었다.
데미안은 느릿하게 엘리의 옷자락을 놓았다.
“그…… 데미안? 이쪽으로 오지 않겠니?”
두 사람을 지켜보던 보육교사가 데미안과 함께 주방을 나갔다.
“혼나러 가나?”
“무섭겠다. 저 선생님한테 맞으면 진짜 아픈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데미안이 열외 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데미안의 기죽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 * *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밖으로 빠져나갔다.
데미안은 혼자 식당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데미안.”
내 부름에 데미안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은 새로 들어온 데미안이 신기했는지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은 경계하는 분위기에 다가가지 못했는데, 호기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데미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꾹 다물린 입이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이 옆에서 먹자, 이쪽으로 와.”
그러자 데미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옆에서?”
“응. 얼른 와. 오늘은 맛있는 메뉴야.”
내 설득이 통했는지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어어?”
그때, 식기를 들고 오던 토미가 데미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엘리 옆자리는 내 거야!”
항상 눈치를 주던 카르센이 없어 기쁜 듯, 토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컸다.
나는 익숙하게 토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하루만 양보해 줘, 착한 토미.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잖아.”
“싫은데…….”
“멋진 남자는 양보할 줄도 알고 그래야 돼.”
“그, 그런 거야?”
내 말이 통했는지 토미가 눈을 깜빡였다.
“알았어! 그럼 오늘 하루만 봐줄게.”
토미는 몇 번 살살 달래주면 금세 생각을 바꾸는 귀여운 아이였다.
토미가 뿌듯하게 웃으며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맛있게 먹어, 데미안. 양은 별로 없지만.”
“……너도.”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데미안의 밥을 먹는 모습이 영 시원치 않았다.
“왜 그래, 데미안? 입맛이 없어?”
“……아까 왜 그런 거야?”
망설이던 데미안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나는 데미안의 물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왜 원장에게 거짓말을 했냐는 뜻이겠지.’
데미안은 폭력에 익숙한 아이였다.
거짓말을 모르는 아이.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했던, 체념을 가장 먼저 배운 아이.
나는 먹던 스푼을 내려놓고선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전에 내가 말했잖아. 복수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만약 솔직하게 말했다면 같이 벌 받았을 거야.”
“…….”
“거짓말하긴 했지만, 호구처럼 당하는 것보단 나아.”
“…….”
“상대방의 수에 휘말려서는 안 돼. 거짓말이어도 괜찮아.”
데미안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듯이.
“그러니까 너도 당하고만 있지 마, 데미안. 알았지?”
“…….”
나의 말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그 동그란 뒤통수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또다시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며칠 지나고 보니 알겠다. 데미안은 너무나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이런 순둥이를, 그렇게 괴롭히다니.’
울분이 밀려올 때였다.
“으아앙!”
어디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베티가 수프에 흠뻑 젖은 토끼 인형을 안은 채 엉엉 울고 있었다.
저 토끼 인형은 돌아가신 베티의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실수로 수프에 떨어뜨린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데미안, 밥 먹고 있어. 나 금방 다녀올게.”
데미안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나는 베티에게 다가갔다.
“언니이…….”
내가 다가가자 베티가 눈물을 가득 매단 채 나를 바라봤다.
“깨끗하게 씻으면 돼. 봐봐, 여기 한쪽밖에 안 젖었잖아.”
“하, 하지만…….”
“언니가 깨끗하게 빨아줄게. 그러니까 뚝.”
베티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올게. 너희 먼저 밥 먹고 있어.”
나는 베티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갔다.
데미안은 엘리와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무어라 이야기를 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무도 없는 문을 빤히 쳐다보던 데미안이 자신의 그릇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잠깐 일었던 소란에 술렁이던 아이들이 데미안을 힐끔거렸다.
엘리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아이들은, 그중에서도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엘리를 좋아했다.
엘리는 또래들보다 어른스럽기도 했고, 특히나 자신들을 괴롭히는 카르센 무리에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데미안이 신기했다.
엘리가 유독 그를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치는 앞자리에 앉았던 토미에게까지 닿았다.
옆에 있던 아이가 팔꿈치로 토미를 건드렸다. 데미안에게 말을 걸어 보라는 뜻이었다.
‘알았어.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째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토미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야.”
그러곤 평소보다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데미안을 불렀다.
그러나 데미안은 식기에 고정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야!”
큰 목소리로 외치고 나서야 데미안이 시선을 들었다.
“내가 불렀는데, 안 들렸어?”
데미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용건이냐는 듯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뭐…… 그냥 엘리랑 친해진 것 같길래.”
“…….”
“우리도 잘 지내보자.”
토미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데미안은 내밀어진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낯을 가리나?’
토미는 어색함을 풀어보고자 짧게 덧붙였다.
“나도 엘리 친구야.”
“……친구?”
그제야 데미안이 토미를 바라보았다.
얼굴 절반을 가린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푸른 눈동자가 엘리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짝이기 시작했다.
“응. 엘리랑 제일 친한 친구.”
데미안의 반응에 신난 토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토미의 말은 데미안의 망설임마저 휘발시키기 충분했다.
데미안이 홱 고개를 돌렸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엉?”
토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토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릴 때였다.
엘리가 베티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다정하게 베티의 눈가를 쓸어준 엘리가 자리로 돌아왔다.
“데미안. 잘 먹고 있었어?”
“응.”
엘리의 물음에 데미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을 세우던 맹수가 사라지고, 꼬리만 흔드는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허. 토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그러고 있어?”
엘리가 허공에 멈춘 토미의 손과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보며 물었다.
“어? 어, 그냥 손이 좀 아파서.”
토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외면하듯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