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2화(82/241)
“은인의 눈엔 내가 날아다니는 해결사지?”
탈룸이 못마땅한 얼굴로 엘리를 내려다보았다.
대장간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한 듯, 발음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와줬잖아요.”
“그래. 왔지…… 왔는데…….”
탈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를 수족처럼 부리는 건 은인밖에 없을 거다.”
“나도 탈룸이 유일해요. 항상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나!”
탈룸이 머쓱한 얼굴을 하면서도 볼을 붉혔다.
“크흠.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지?”
“삽관 같은 거 있어요? 나무 수액 채취할 때 쓰는거요.”
“삽관? 그건 갑자기 왜?”
“쓸 데가 있어요. 얼른, 얼른!”
엘리는 재촉하며 탈룸의 등을 밀었다. 탈룸이 못 이기는 척 우리를 따라왔다.
호수 근처, 유독 굵은 나무 앞에 섰다. 얼른 해보라는 뜻으로 손을 팔락이자 탈룸이 어깨를 으쓱였다.
“능력을 뽐내는 시간이군.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지.”
탈룸은 그렇게 말하고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까마귀 상태로 변했다는 뜻이다.
“까, 까마귀?”
깜짝 놀란 데미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탈룸이 날개를 펼치며 늠름한 척 머리를 한껏 치켜들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데미안. 탈룸, 얼른요!”
엘리의 재촉에 탈룸의 날개가 시무룩하게 내려앉았다.
까악…… 하고 슬프게 울던 까마귀가 마지못해 나무를 발로 톡톡 두드렸다.
그러더니 다시 날아올라 부리로 다다다다다 쪼기 시작했다.
‘부리를 삽관으로 쓰는 거야?’
딱따구리인가?
그러나 효과는 굉장했다. 쪼는 부분을 따라 나무가 파이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물이 하얀 눈을 물들였다.
엘리는 얼른 눈을 파헤쳤다.
그 속에는 투명하고 붉은 보석이 반짝이며 빛을 뿜고 있었다.
“이거! 이것 좀 봐주세요!”
엘리의 말에 탈룸이 붉은 보석을 콕콕 쪼았다.
그러더니 곧장 사람으로 변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은인, 이게 왜 여기 있지? 이건 신성석이잖아!”
“확실해요? 정말이에요?”
“내 500년 까마귀 인생을 걸고 맹세하지. 이건 틀림없는 신성석이야.”
그의 확언에 엘리는 콧김을 흥, 하고 뿜었다.
심봤다!
* * *
면학실 창문이 다시 열렸을 땐, 헤론이 방으로 돌아온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다른 업무를 보던 그가 덜컹거리는 소리에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
창문을 넘어 올라오려던 엘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헤론 님.”
엘리가 헤헤 웃었다.
상체는 여전히 창틀에 빨래처럼 늘어진 상태였다. 헤론이 부드럽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엘리 님. 공자님과 무척 재밌는 놀이를 하고 오신 것 같군요.”
“네.”
“다음부터는 말주변 있는 시종을 붙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하…….”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어설펐구나. 엘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하셨길래…….”
헤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싸움을 하고,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워 쌩쌩 부는 칼바람을 맞았다. 엘리의 상태는 무척이나 꼬질꼬질했다.
게다가 까치집이 된 머리엔 웬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헤론과 눈이 마주치자 까마귀가 크게 울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우선 올라오십시오. 그러다 감기 걸리십니다.”
“넵.”
엘리는 수영이라도 하듯 팔을 허우적거리다, 창틀을 붙잡고선 방 안으로 폴짝 들어왔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귀 뒤로 넘기고 코를 크게 훌쩍인 엘리가 다시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누나 손 잡아.”
엘리도 또래에 비해 현저히 체구가 작은 편이었지만, 데미안은 유독 왜소했다.
공작성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곤 있었으나, 어릴 때의 공백을 채우기엔 아직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누나라.’
선이라도 긋는 듯한 단어였다.
헤론이 두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읏차!”
약간의 기합과 함께 데미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서, 성공했다……!”
데미안이 기쁜 듯 웃었으나, 헤론과 눈이 마주치자 곧 울상이 되었다.
“공자님, 엘리 님. 저는 두 분께서 마음껏 뛰노는 걸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헤론이 다정하면서도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규칙을 어길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시간을 어기고 나간 것은 꾸중받을 일이었다. 헤론은 그것을 지적하려 했을 뿐이었다.
“가치 있었어요!”
그때, 엘리가 당당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발랄한 목소리가 톡톡 터지는 사탕 같았다. 헤론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그러셨습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이걸 찾았거든요!”
엘리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펼쳤다.
붉은 보석이 작은 손 위에 담겨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신성석이요!”
“……예?”
헤론이 드물게 얼빠진 표정을 했다.
* * *
“말도 안 돼…….”
헤론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마를 감쌌다.
곧장 마법사까지 불러 검증을 마쳤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나와 데미안은 그의 앞에 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이고 있었다.
당분이 들어가자 한결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호수가 메워지지 않은 게 이것 때문이겠군요. 사람들의 사인도 단순한 익사가 아니라 마나 폭주일 수 있겠고.”
모두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몸엔 마나가 흘렀다.
호숫물에 닿았던 윈티아나 외보르크가 통증을 호소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호숫물로 인한 마나 폭주.’
헤론은 침음 하며 말했다.
“어떻게 신성석이 이곳에서 날 수 있단 말씀입니까. 믿기지 않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슈에츠 영지는 저주받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장 순수한 땅에서만 채굴할 수 있는 신성석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말이 안 되잖아.’
공작의 광증과는 상관이 없는 건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나는 눈앞의 신성석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진짜야.’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게 있다면 공작성이 저주받은 땅이라는 오해를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에겐 더 유리한…… 응?’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헤론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저는 엘리 님께서 또래에 비해 영민하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론의 시선이 신성석 위에 한번 닿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신성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어디서,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그건…….”
“게다가 신성석은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이게 신성석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
질문이 한가득 쏟아지자 나는 겁먹은 척 몸을 움츠렸다.
“탈룸이랑 놀다가 발견했어요…….”
“탈룸이라면…….”
“제리트 님이랑 함께 일하는 대장장이예요. 아까, 호수에서 저희랑 같이 놀았거든요.”
탈룸을 언급하자 헤론의 눈빛에 수긍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탈룸의 일족은 세계수 근처에서 살았다. 신성석이라면 제국인들보다 잘 알 터.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다시 물었다.
“하면 나무를 이용할 생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음, 그건…….”
나는 옆을 힐끔거리다 활짝 웃었다.
“데미안이 알려줬어요.”
“나?”
데미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미안과 놀다가 우연히 호수 근처까지 가게 됐거든요. 그런데 데미안이 오늘 들었던 수업 내용을 말해주었고 그러다…….”
“거기서 단서를 얻으셨단 말씀이십니까?”
“네에.”
해맑게 대답했지만, 의심스러운 헤론의 눈초리는 여전히 풀리질 않았다.
나는 조용히 데미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움찔 몸을 떤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 말이 맞아요.”
“흐음…….”
“어, 어쨌든 잘된 일이잖아요. 신성석이 있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헤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슈에츠 공작성의 영지에서 신성석이 발견되었다는 건, 신전과 골이 더욱 깊어지는 걸 의미하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슈에츠 공작과 신전의 마찰은 원작에서도 계속된다.
‘그 역할을 중재하는 게 아샤벨이었고.’
신성석을 아샤벨 대신 발견한 게 무척이나 양심에 찔렸지만…….
‘일단 공작성이 잘되어야 너도 잘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시누이가 역할을 뺏어갔다고 해도 너무 미워하지 마.
나는 미래의 여주인공에게 사과하며 코코아를 홀짝였다.
“우선 이 일을 공작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내가 마음 깊이 반성하는 사이, 생각을 마친 헤론이 신성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건 해결했네.’
이제 남은 건 어른들의 일이었다.
흐뭇하게 웃던 난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았다.
“데미안, 우리 뭐 먹으러 가자. 너무 열심히 놀았더니 배고파.”
“응.”
그러자 문을 열고 나가려던 헤론이 멈칫하더니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전에, 우선 씻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